조경구가 한마디씩 낮고 또렷하게 말하는 것은 ‘지시사항’이기 때문이다. 이 지시사항은 곧 점조직식으로 연결되어 있는 각 단체, 언론 매체, 그리고 인터넷과 트위터로까지 빗발처럼 확산될 것이었다. 정수남이 알아들었다는 듯이 천천히 머리만 끄덕였을 때 조경구가 말을 잇는다.
“어뢰정은 방향타가 고장 난 상태였으며 KF-24기 격추는 영해를 2마일이나 침범했기 때문이라고 말야. 러시아 위성이 찍은 증거사진이 있다고 퍼뜨려.”
“알았습니다.”
각진 턱을 끄덕이던 정수남이 문득 머리를 들고 조경구를 보았다.
“오늘밤 대학생연대의 촛불집회 때 단체들을 더 모아야 되겠는데요.”
“가능한 한 많이.”
주위를 둘러본 조경구가 말을 이었다.
“박성훈이 보수층의 지지를 받고 있지만 전쟁위협이 고조되면 웰빙 보수들은 분열해. 쫌만 길게 빼면 박성훈이 꼬랑지를 내린다고. E-3가 전쟁 도발용 작전이라고 몰아붙여.
“알겠습니다.”
위기가 기회인 것이다. 노인네가 주력인 보수층에 비하면 이쪽은 수적으로 열세지만 젊은데다 단결력이 강하다. 3% 조직으로 97%의 무기력한 대중을 이끌어가야만 하는 것이다.
7월24일 17시25분. 소공동.
망원경을 눈에 붙인 허성만이 남창빌딩의 입구를 바라보며 말했다.
“정수남이 돌아왔습니다.”
정수남은 막 빌딩 현관으로 들어서는 중이다.
“저놈은 빌딩에 감시장치가 부착되어 있는 걸 알아요, 개자식.”
허성만이 혼잣소리처럼 말했을 때 귀에 이어폰을 붙이고 있던 백기준이 쓴웃음을 지었다.
“우리야 견제용 아닌가? 저놈들은 우리가 여기 있다는 것도 알 거야.”
그들은 조금 전에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 조경구와 정수남이 헤어진 것을 보고받은 것이다. 허성만이 망원경을 눈에서 떼고 손끝으로 눈을 문질렀다. 소공동의 남창빌딩은 3층 건물로 낡아서 주위 건물에서 다 내려다보였다. 그 남창빌딩의 3층이 ‘한민족민주연합’ 사무실이다. 한민족민주연합은 남북교류, 인도적 지원, 평화통일을 목표로 하는 시민단체로 회원 수는 1000여 명이다. 그러나 지금 사무실로 들어간 조직부장 정수남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두 번에 걸쳐 5년형을 살았고 시청역에서 헤어진 사무총장 조경구는 세 번에 8년을 복역했다. 조직의 간부 대부분이 철저한 반미·친북 세력이다. 창가로 다가간 백기준이 이제는 대신 망원경을 눈에 붙였다. 이곳은 길 건너편의 비스듬한 위치에 세워진 빌딩 12층이다. 직선거리는 120m, 망원경을 눈에 붙이면 얼굴의 점까지 보인다.
“이것들이 어뢰정이 넘어왔을 때부터 바쁘게 나대는데 북에서 지령을 받은 모양이야.”
망원경으로 3층을 보면서 백기준이 말을 잇는다.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