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찰생활 20년째인 장 경감은 강력수사의 귀재다. 서울경찰청 강력계, 서울경찰청 형사과 기동수사대,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등 강력부서에서만 15년 동안 근무했다. 남들은 한 번 하기도 힘든 특진을 네 번이나 했다. 순경으로 출발했으니 경감에 이르기까지 매번 특진을 한 셈이다(순경-경장-경사-경위-경감). 전국 강·절도 검거실적 1등을 차지하기도 했다.
강력반에서 잔뼈가 굵은 형사답게 그의 몸은 근육 덩어리다. 키는 170㎝가 채 안 돼 보이지만 몸무게가 100㎏이나 나간다. 떡 벌어진 가슴이 힘깨나 쓸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팔뚝 굵기도 보통 사람의 두 배쯤 돼 보인다. 가슴둘레가 120㎝라고 한다.
외유내강(外柔內剛)이랄까. 험한 근육과 달리 그의 표정은 매우 부드럽다. 쌍꺼풀이 있어서 더 그런지 몰라도 남자치고는 고운 눈매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강력범들을 제압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 정도로 선해 보이는 인상이다.
그는 원래 유도선수였다. 초등학생 때부터 운동을 시작해 중·고등학교 시절엔 전국체전에 출전했다. 1983년 유도 특기생으로 용인대에 입학한 그는 1학년을 마치고 군에 입대했다. 단기사병이었다. 제대 후 복학이 안 돼 재입학해 85학번이 됐다. 용인대 4학년이던 1988년, 올림픽을 앞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984년 LA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안병근 선수에게 패했다.
“너 몸 좋은데…”
국가대표 꿈이 좌절된 그는 대학 졸업 후 문일고(서울 금천구 시흥동)에서 1년8개월 동안 체육교사를 지내다 경찰로 전향했다. 1991년 충북 충주에 있는 중앙경찰학교에 입교했다. 결혼한 지 4개월 만이었다.
애초 무도 특채를 희망했으나 필기시험에서 탈락하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의 첫 근무지는 서울 남부경찰서(현 금천경찰서)였다. 신고식 하는 날 강력반장이 “너 몸 좋은데 강력계 해볼래” 하고 권한 것이 강력형사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됐다.
대형 강력사건 해결사로 이름을 날린 그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청송교도소 재소자들과의 특별한 인연이다. 청송 재소자들 사이에서 그는 ‘장 반장’으로 통한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에서 10여 년간 강력반장으로 활약한 덕분이다. 경찰 동료들 사이에선 ‘청송맨’으로 불린다. 알고 지내는 청송 재소자와 청송 출신 전과자가 3000명에 달한다고 한다. 그들 모두가 그에겐 소중한 제보자다. 웬만한 강력사건은 그들에게 물어보면 답이 나온다. 어떻게 된 사연일까. 그는 “취미생활이 청송 방문”이라며 겸연쩍게 웃었다.
“매달 몇 번씩 청송에 갑니다. 그냥 면회하기는 뭣하니 옷이라도 사서 가지요. 매번 새 옷을 살 수는 없으니 더러는 헌옷을 가져가기도 합니다. 헌옷가게에서 구입해 깔끔하게 세탁하지요. 많지는 않지만 영치금도 넣어줍니다. 한 사람당 2만~3만원씩 넣어주지요. 청송 재소자 대부분은 가족이 없거나 가족과 단절돼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만큼 정에 굶주려 있죠. 조사할 때 인간적으로 대해주면 무척 고마워하면서 인간적으로 다가옵니다. 조금만 정을 줘도 금방 친밀한 관계가 형성됩니다. 그들이 내게는 큰 자산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