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9월호

우후죽순 재개발·재건축 ‘헌 집 주고 새 집 받기’제대로 하자

  • 입력2010-09-02 12: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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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정부 때는 전국적인 도시개발이 진행됐고,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에는 서울에서 뉴타운 계획이 잇달아 발표됐으며, 이어 이명박 정부도 보금자리 주택사업을 내놓는 등 근래 10년 동안 우리나라 대도시는 그야말로 대규모 공사판이 되고 있다. 정부 주도의 이러한 대형 사업이 부동산 값을 들썩이게 하자 일반 주택, 상가가 밀집된 지역의 주민들은 앞다퉈 재개발조합 또는 재건축조합을 결성해 자체 개발에 나서고 있다.

    2010년 2월 현재 재개발사업장 736곳, 재건축사업장 534곳 등 전국 1270곳에서 도시정비사업이 진행 중이고, 이 가운데 이미 조합설립인가가 난 곳이 570여 곳에 달한다고 한다. 사업장 1곳당 조합원 수를 300명, 가구당 가족 수를 4명으로 보면 전국적으로 152만여 명의 국민이 도시정비사업의 직접적 영향을 받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재개발·재건축사업이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이러한 사업을 통해 새 집을 싸게 얻어 재산을 증식할 수 있으리라는 조합원의 기대 때문이다. 도시정비사업의 진정한 목적인 주거환경 개선은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과연 재개발·재건축사업이 실제로 조합원에게 새집을 안겨주고 재산증식에도 도움이 되고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그렇지가 못하다. 이미 완료된 도시정비사업의 경우 원주민 재정착률이 20% 안팎에 머물고, 심지어 서울 길음뉴타운은 12%에 불과하다는 보도도 있었다. 조합원 10명 중 8~9명은 새집을 얻기는커녕 헌 집을 내주고 정든 터전을 떠나 낯선 동네를 전전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는 얘기다. 비록 헌 집이긴 해도 대도시에 자기 땅과 건물을 갖고 아쉬울 것 없이 살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세입자 신세로 전락하는 것이다.

    이렇게 재개발·재건축의 이익이 원주민에게 돌아가지 않는다면 분명히 누군가 다른 쪽에서 이익을 챙기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조합장실 문은 감방으로 들어가는 문이다’라는 말이 나돌 만큼 부정부패가 만연한 조합장과 조합임원들인지, 그들을 뒤에서 조종하는 시공사와 정비업체 등 사업체들인지 아니면 그들 모두가 공범인지는 따져볼 일이다.



    이에 대한 구조적인 문제와 해결책을 논하는 것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이 글에서는 어떻게 하면 땅주인들이 제대로 된 정비사업을 통해 자신들의 재산권을 지킬 수 있을지에 대해 재개발사업을 중심으로 알아보고자 한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패라고 했으므로 ‘양심불량’ 조합과 시공사가 어떤 식으로 탈법, 불법을 자행하는지 그 수법과 대책을 먼저 알아두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아래의 내용은 정상적인 조합이나 시공사에는 해당되지 않는 것임을 밝혀둔다.

    몰래몰래 비밀작전

    주택 재개발사업의 경우 재개발조합엔 정부가 행사할 수 있는 토지수용권한까지 행사할 수 있도록 법이 보장하는데, 민간단체인 재개발조합에 이렇게 강력한 권한을 주는 것은 조합원의 절대다수가 재개발사업의 내용을 잘 파악하고 동의한 것을 대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합과 시공사는 조합원에게 시시콜콜 정보를 다 알려주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사업과 관련된 내용을 조합원에게 모두 알려줄 경우 사업이 어렵게 되지 않을까 두려워서일 수도 있고, 불량·노후지역 토지 소유자가 대개 고령의 노인들이라서 사업을 잘 이해시키려면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일 수도 있다. 또는 대규모 건설사업 경험이 거의 없는 조합임원 자신들도 사업 내용을 잘 몰라 정보를 알려주지 못할 수도 있다. 이유야 어떻든 재개발조합이 조합 설립 때는 물론 이후에도 조합원에게 친절하고 자세한 설명을 해주고 조합원이 그 내용을 온전히 이해한 후 의사표시를 받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집 한 채 달랑 가진 조합원에게 전 재산과 다름없는 땅과 건물의 주인이 바뀌는 결과를 초래할 사업에 참여할지 말지를 결정하기 전에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경제적 효율성의 잣대를 적용할 수 없는, 절대적으로 보장돼야 할 절차다. 그것만이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재산권을 보장하는 길인데도 조합을 관할하는 지방자치단체마저 조합의 불법행위를 방치하는 현실은 실로 유감스럽다.

    ▶ 대책 : 도장을 함부로 찍지 말라

    재개발사업은 한마디로 ‘헌 집 줄게 새집 다오’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조합원이 소유한 헌 집과 땅을 신축될 새 아파트와 바꾸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업에 참여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처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당연히 헌 집과 새집의 교환조건이다. 집을 사고 파는 사람들에게 매매가격이 가장 중요한 정보인 것과 마찬가지로 재개발사업에서는 헌 집을 얼마로 쳐줄 것인지, 그리고 새집을 얼마에 공급해줄 것인지가 핵심정보다. 이 핵심정보를 알아야 각 조합원은 계산기를 두드려볼 수 있고 그 사업이 자신에게 득인지 실인지를 따져본 뒤 동의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조합설립 동의서에 도장을 찍기 전에 반드시 내 집을 얼마로 평가해줄 것인지, 시가로 해줄 것인지 공시지가로만 해줄 것인지, 분양가는 어느 정도 선에서 결정될 것인지를 분명히 물어봐야 한다. 그리고 조합으로부터 그에 대한 답을 들었다면 그 내용을 동의서의 빈 칸에 쓰고 확인을 요구해야 한다.

    조합설립 동의서뿐 아니라 조합에서 요구하는 어떤 서류에든 도장을 찍을 때는 조합직원이 찍으라 한다고 무작정 찍어주면 안 된다. 서류에 적힌 내용이 무엇인지 꼼꼼하게 확인한 후 도장을 찍어야 한다. 서류에 적힌 내용이 어려워서 도통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면 그 자리에서 도장을 찍지 말고 하루 이틀 뒤에 결정하겠다고 한 뒤 믿을 만한 사람에게 자문하도록 하자.

    끼리끼리 사업진행

    ‘몰래몰래 비밀작전’과 같은 맥락에서, 조합은 자신들이 주최하는 각종 회의에 조합원이 참석하는 것을 별로 바라지 않는 듯하다. 조합을 설립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는 창립총회는 물론, 조합원이 헌 집 주고 새집 받는 조건이 확정되는 관리처분계획의 의결을 위한 총회 등 중요한 총회에 조합원이 참석하는 비율은 10~20%에 불과하다.

    대다수의 조합원은 서면결의만 하고 총회엔 참석하지 않는다. 조합이 조합원에게 총회에 참석하는 대신 서면결의로 대신하라고 유도하기 때문이다. 총회에 실제로 참석하는 조합원이 많을 경우 비판적인 조합원의 목소리가 여과 없이 다른 조합원에게 전파될 수 있고, 이는 조합이 바라는 바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 대책 : 총회엔 반드시 참석하라

    평생 일군 귀중한 내 땅과 집에 관한 문제이므로 재개발사업에 관한 서류나 회의는 당연히 숙지하고 참여해야 할 것이다. 전문가조차 이해하기 쉽지 않은 법률용어로 가득 찬 서류를 혼자 읽고 이해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으므로 적어도 조합에서 주최하는 회의에는 무조건 참여해야 한다.

    총회에 참석해보면 다양한 사람의 주장을 들을 수 있고, 사업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또한 조합원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조합임원들에게 무언의 압력이 되어 그들이 부패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게 하는 훌륭한 견제수단이 될 수 있다.

    은근슬쩍 말 바꾸기

    조합 설립을 위해 조합은 감정평가를 후하게 해준다거나, 분양가를 아주 낮게 해준다거나 하는 달콤한 미끼를 토지 소유자들에게 던지는 경우가 많다. 건설회사 역시 시공사로 선정되기 위해 평당 건축비를 경쟁사보다 낮게 제시하는 것은 기본이고 이주비 무이자 지원 등의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런데 일단 조합이 설립되고 시공사로 선정된 이후에는 안면을 싹 바꾸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조합 설립 당시의 사업비용에 비해 관리처분계획 의결 때 비용이 50~60% 늘어나곤 한다. 심지어 100% 인상되는 경우도 있다. 시공사 또한 선정될 때 약속한 무이자 공약을 후에 건축비를 인상하는 수법으로 무의미하게 하거나 아예 유이자로 바꾸는 경우도 흔하다.

    재개발조합을 운영하는 데 들어가는 적지 않은 규모의 비용은 모두 시공사로부터 차입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므로 조합과 시공사는 서로 독립해 견제하는 관계가 아니라 종속-유착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특수 관계로 인해 조합이나 시공사가 수시로 말을 바꾸는 것이 가능하게 되는 구조적 문제가 생겨난다.

    ▶ 대책 : 조합에서 나온 서류, 자료를 잘 챙겨두라

    조합이나 시공사가 나눠준 서류나 자료를 잘 챙겨둔다면 사후에라도 말 바꾸기한 사실을 알아낼 수 있고, 이 자료를 근거로 해서 조합의 행태에 제동을 걸 수도 있다. 그러므로 조합이 발행한 자료는 물론 조합의 회의 내용 등을 촬영, 녹음해두면 나중에 분쟁이 생길 경우 커다란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우후죽순 재개발·재건축 ‘헌 집 주고 새 집 받기’제대로 하자
    재개발·재건축사업은 규모도 크지만 내용도 매우 전문적이어서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거듭 강조하거니와 자신의 금쪽같은 재산과 직결된 문제이므로 모르면 물어서라도 의미를 파악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위에서 설명한 3가지 사항은 최소한의 의지만 있으면 충분히 실천할 수 있는 것으로 고른 것이다. 이것만 실천하더라도 원주민 재정착률 20% 짜리 엉터리 사업은 대부분 막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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