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호

아이들이 숲 속에서 말 타며 재충전하는 사회 만든다

한국마사회 김광원 회장

  • 허만섭|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10-09-30 17: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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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 국민 말 타기’ 대중화
    • 말 산업을 국가 성장 동력으로
    • 경마 세계 수준으로 업그레이드
    아이들이 숲 속에서 말 타며 재충전하는 사회 만든다

    김광원 한국마사회 회장



    1990년 작가 하일지의 ‘포스트 모던’한 소설 ‘경마장 가는 길’을 탐독했던 기자는 9월9일 경기도 과천시의 경마장 가는 길 앞에 섰다. 경마장과 한국마사회 본사 등 여러 시설물은 초록의 서울경마공원(Seoul Race Park) 안에 안겨 있었다. 대학 조경학과에서 견학 올 정도로 오밀조밀하게 조경이 잘되어 있는 공원과 울창한 숲은 이국적 풍광을 자아낸다.

    공기업인 한국마사회는 이곳 서울경마공원과 부산경남경마공원, 제주경마공원을 운영하고 있다. 도심 곳곳의 스크린경마장을 포함해 전국적으로 이러한 경마장을 찾는 연인원이 2000만명에 달한다고 하니, 마사회는 국민 여가생활에 밀접하게 관련된 곳이라 하겠다.

    ‘말(馬)’에 푹 빠져 산 2년

    나지막한 마사회 건물 오른편에 곧게 뻗은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데 가격이 1억원이 넘을 것이라고 한다. 맞은편에 대칭으로 서 있던 소나무는 태풍 곤파스가 왔을 때 강풍에 부려져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2층에 올라가 김광원(金光元·70) 마사회장을 만났다. 경북 울진 출신인 김 회장은 행정고시로 관직에 들어와 포항시장, 내무부 감사관 등을 역임했다. 이후 정계로 진출해 15, 16, 17대 한나라당 국회의원을 지냈다. 2008년 9월 마사회장에 취임한 그는 지난 2년여간 ‘말(馬)’에 푹 빠져 지내왔다고 말한다.



    ▼ 몇 년 전 국회에서 뵈었을 때와 그대론데요. 새까만 머리카락도 염색한 거 아니라면서요. 그동안 나이가 하나도 안 드신 것 같아요.

    “내가 낙천적으로 살거든요. 밤마다 1시간씩 꼭 걷습니다. 또 나만의 건강 목욕법이 있고요.”

    ▼ 요즘 주량은?

    “전엔 소주, 맥주 섞어서 마셨는데 다섯 잔 넘어가면 꼭 배탈이 나더라고요. 그렇게 먹지 말라는 신호죠.”

    ▼ 정치인 출신으로 마사회를 맡아 경영하고 있는데….

    “내 경력이 단순합니다. 공무원 했고, 그것도 주로 지방공무원. 다음은 정치, 이어서 지금 공기업 이렇습니다. 지방행정 할 때 내 철학이라고나 할까, 주식회사 이론으로 도시를 맡아서 경영해봤어요. 주주들은 시민들이고, 주주총회는 선거고, 이사회는 시의회, 주주들에게 나눠주는 배당금은 주민복지…. 이렇게요.”

    ▼ 주주들은 고배당을 받기 원하죠.

    “바로 그 점이 중요한데요. 몇몇 시장은 주가는 떨어지는데도 고배당을 주어서 문제가 되는 반면 나는 주가를 높여서 고배당을 주는 행정을 하려고 노력했어요. 지방행정은 곧 지방경영이라는 등식이 성립합니다.”

    ▼ 정치도 경영이던가요?

    “그건 달라요. 국회의원은 국민을 상대로 하는데 그렇게 대상이 넓어지면 책임질 부분은 줄어듭니다. 그래서 국회에선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거죠. 특정 선거구에서 선출되어 국민 전체에 봉사한다는 지위가 좀 애매해요. 마사회와 같은 공기업은 민간 기업에 비해 국가와 국민에 대한 책임의식이 높아요. 이익도 많이 내야 하지만 기업윤리, 사회적 책임을 많이 느끼고 있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아이들이 숲 속에서 말 타며 재충전하는 사회 만든다

    서울경마공원 야간 경기 모습. 경주마들이 트랙을 박차며 질주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는 ‘신의 직장’으로 불리던 여러 공기업에 메스를 대어 효율과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목적으로 추진되어왔다. 다만, 학계 일각에선 ‘선진화=구조조정’이라는 획일적 등식으로 흐르는 건 조심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각 공기업의 업무 특성에 맞춰 국가경제와 국민생활에 실질적 편익(benefit)이 돌아가는 방향으로 개혁의 큰 흐름이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김 회장은 “마사회는 말 회사인데, 말 회사가 무엇을 개혁해야 하는지 많이 고민했고 그 해답을 찾은 것 같다”고 했다.

    ▼ 고민의 결과가 어떠했나요?

    “역설적으로 기업은 CEO가 성공하는 기업이 되어선 안 된다고 봐요. 조직원과 고객이 성공하는 기업이 되어야 합니다. 직원들이 즐겁게 일해야 창의성이 나오고 직원의 행복이 고객에게 전이되는 거죠. 직원과 고객은 개혁의 출발점이자 종점이에요. 누군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사회는 도박회사라는 사회적 인식이 있어 직원들 마음에 열등감이 있다’고요. 마사회 개혁은 이런 잘못된 인식을 불식하고 우리 사회에 기여하는 방향이 되어야 한다고 본 거죠.”

    ▼ 그런 문제의식에서 나온 개혁안은 뭔가요?

    “마사회가 경마장을 운영하는 회사만이 아니라 경마, 승마, 말 사육 보급 등을 포괄해 ‘말 산업’을 일으키는 회사로 변하자는 거죠. 말 산업본부를 만들어 차근차근 실천에 옮기고 있어요. 말 산업육성법의 국회 통과를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는데 연말쯤 입법화될 것으로 봅니다.”

    ▼ 새로운 비전의 제시에 대해 내부에서 반대는 없었는지….

    “고임금 직장에 편하게 다니겠다고만 생각하면 타성밖에 안 생기죠. 직원들이 말 산업에 공감하고 있어요. 내가 칭기즈칸 이야기를 자주 하는데, 800년 전의 칭기즈 칸 군대나 오늘날의 기업이나 원래 없던 길을 스스로 만들어서 간다는 점에서 같다고 봐요. 직원들이 함께 가면 그게 길이 됩니다. 희망을 갖고 개척하면 안 되는 일이 없죠.”

    “연 1조4000억 세금 납부”

    19세기까지 말은 거의 유일한 육상교통수단이었다. 그러나 산업화 이후 말은 교통수단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해갔다. 그러다가 경마, 승마 등 말을 이용한 서비스 산업이 나오면서 말은 여전히 인간의 곁에 남아 있다.

    경마의 경우 현재 서울, 부산경남, 제주 경마공원이 운영되고 있는데 기자가 서울경마공원을 찾은 날은 레이스가 없는 날임에도 많은 시민이 경마장에 들어와 전광판으로 제주경마공원에서 열리고 있는 경기를 관람하고 있었다. 관람대 층별로 중식당, 한식당, 24시간 편의점 등이 있다. 술은 될 수 있는 한 안 판다고 한다. 부산경남, 제주 경마공원을 찾는 시민은 각각 하루 평균 1만명 안팎. 한국의 경마 산업은 매출 규모로 세계 7위에 올라 있다. 아시아에서 경마가 활성화된 곳은 일본, 홍콩, 한국, 두바이 정도라고 한다. 마사회는 특히 마권발매,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경기운영, 영상방송시스템 등에서 세계적 수준에 올라와 있어 여러 나라에서 견학을 오거나 자문을 요청한다고 한다. 김 회장은 “부산경남경마원공원의 경우 이 지역에 대규모 위락시설이 없어 인기가 좋다. 전철 등 교통이 좋아진다면 더 많은 시민이 찾아올 것”이라고 했다.

    ▼ 앞으로 경마장 한 곳을 더 짓는다면서요?

    “경북 영천에 3만 관중이 들어갈 수 있는 규모의 경마공원을 신설할 겁니다. 4000억~4500억원이 투자되는데 개장 후 해당 지자체에 매출의 16%를 레저세(稅) 등으로 냅니다. 마주, 기수, 조교사, 관리사, 마사회 직원 등이 일하게 되고 말 1000여 필이 들어옵니다.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이 때문에 유치경쟁이 치열했었죠.”

    ▼ 영천에 들어온 이유는 무엇인가요?

    “경마장은 인구 밀집지역에 있는 게 좋아요. 영천 인근의 대구, 울산, 구미, 포항, 경산 등지에 인구가 많아요. 또한 200만 인구의 대도시인 대구에 변변한 공원이 없다는 점도 고려됐습니다. 레이스를 재미있게 구성한다면 많은 시민이 아름다운 자연환경 속에서 경마를 즐기고 여가를 보내기 위해 이곳을 찾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루 평균 1만명 이상은 무난하리라고 봐요.”

    ▼ 경마장에 대해선 도박 등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는 것도 사실인데….

    “일본은 우리보다 경마 문화가 더 발달했지만 도박 논란은 거의 없습니다. 호주 멜버른에선 경마경기가 있는 날이 공휴일로 지정되기도 해요. 그래서 ‘말이 나라를 세웠다(Horse stop the nation)’고 보도되기도 합니다. 경마가 시민들의 건전한 일상생활의 일부가 되고 있는 거죠. 일부 중독된 사람은 별도로 치료를 받도록 해야 하지만 경마 자체를 매도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마사회는 경마를 통해 벌어들이는 수입 등으로 연간 1조3000억~1조4000억원에 달하는 세금을 내고 있어요. 이외 매년 200억원 정도를 장학금으로 내어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돕고 있죠.”

    “영화 ‘그랑프리’ 괜찮더라고요”

    아이들이 숲 속에서 말 타며 재충전하는 사회 만든다

    한국 마사회가 투자한 영화 ‘그랑프리’

    ▼ 수도권 시민이 레저의 일환으로 경마를 건전하게 즐기는 방법을 추천한다면?

    “보통 가족과 영화 보고 간단히 외식하거나 아니면 친구들과 소주 한잔하면서 여가를 보내려 해도 5만원은 들잖아요. 그 정도 액수로 멋진 공원에 와서 좋은 공기 마시면서 베팅도 하고 말 달리는 걸 보면서 두세 시간 즐긴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경주마에 대한 정보가 사전에 제공되기 때문에 두뇌게임이기도 해요. 그러면 경마는 정말 박진감 넘치고 스릴 있는 스포츠가 됩니다. 경마가 있는 날은 오전 11시20분부터 오후 5시40분까지 6시간에 걸쳐 10개의 경마경기가 펼쳐집니다. 우리는 경기당 100원부터 10만원까지 베팅하도록 하고 있어요. 레이스를 보다가 인근 잔디밭에서 피크닉도 하는 가족단위 고객도 많아졌어요.”

    ▼ 현재 우리나라 경주마의 경기력은 세계적으로 어느 수준에 와 있나요?

    “3등급 수준이죠. 마사회는 앞으로 세계적 경주마를 육성하는 데에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 삼국지의 적토마와 같은 명마가 나오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요?

    “수십 년이 걸리기도 해요. 그렇지만 그런 말 한 필이 한 나라의 경마 문화 자체를 바꿔놓죠. 민간이 주도한 일본 경마 산업은 ‘선데이 사이런스’라는 걸출한 명마를 사오면서 몇 단계 업그레이드됐어요. 선데이 사이런스의 자마(子馬)인 ‘딥 임팩트’는 국제대회에서 일본에 우승컵을 선사했죠. 우리에게도 국제대회 우승과 같은 일이 일어나면 경마는 피겨스케이팅처럼 국민적 스포츠가 될 수 있어요. 경마가 도박이라는 시비는 완전히 사라질 거예요.”

    ▼ 좋은 말만 있으면 되는 건가요?

    “기수의 실력도 향상되어야 하고 말을 관리하는 기술 수준도 높아져야 해요. 명마는 조자룡이 타야 명마가 되는 거지 평범한 사람이 타면 보통 말인 거죠. 기수를 양성하는 데도 시간이 걸립니다. 최고의 인력 양성 시설, 말 산업 연구소, 말 사관학교 등 과학적 관리시스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 마사회가 투자한 영화 ‘그랑프리’가 추석연휴에 개봉하는데요. 탤런트 김태희가 기수로 나오더군요.

    “시사회 때 봤는데 영화가 괜찮더라고요. 남자 주인공 역인 양동근의 연기도 인상적이고 경마공원의 그림 같은 명소들이 담겨 있더군요.”

    마사회에 따르면 경마는 베팅 금액의 27%를 마사회가 갖고 가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예상이 적중하면 큰 돈을 벌 수도 있지만 ‘반드시 돈을 따겠다’는 심산으로 했다간 스트레스가 된다는 것이다. 한 경마 전문가는 “경마장에선 말들이 서로 경쟁하며 달리는 모습 자체가 주는 묘한 비현실성, 이질성을 즐길 수 있다”고 말한다. 소설 ‘경마장 가는 길’에서 경마장이라는 공간은 ‘실존하는 세계에서 벗어난 상상 속의 비상구’‘언어 이전의 에로스의 세계’(김윤식씨)로 해석된다. 다른 전문가는 “말들이 모래 위를 달린다는 점이 인간의 원시적 욕망을 자극하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일본이 아시아 1위의 말 산업 국가 지위를 공고히 하고 있는 데 이어 지난 3월 중국도 두바이 부동산개발회사 등지로부터 4조4000억원의 투자를 받아 ‘중국 톈진 호스시티(Horse City)’를 개발하기로 발표했다. 이 프로젝트는 말 산업 관련 대학, 말 생산기지, 사료공장, 경매시설, 호텔, 클럽하우스, 쇼핑센터, 승마파크 등의 인프라를 톈진 호스시티에 집약해 단번에 전세계 말 산업의 중심으로 도약한다는 내용이다.

    “말 산업은 황금 알”

    한국으로선 일본에 이어 중국에도 뒤처질 것이라는 긴장감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 이런 점이 계기가 되어 최근 마사회 김 회장의 말 산업 육성론이 여론의 주목과 지지를 받고 있다. 한국일보는 말 산업을 ‘황금알’이라고 했다.(5월7일) 동아일보는 “한국은 경마가 사행산업으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으며 말 산업이 빛을 보지 못했지만 2008년 한국마사회 김광원 회장이 부임하면서 승마를 포함한 말 산업으로 외연을 확대했다”고 했다.(5월7일)

    승마는 경마와 함께 말 산업을 이끄는 또 다른 중심축이다. 김 회장은 최근 대한승마협회 회장을 맡았다. 경마와 승마를 함께 관장해 시너지 효과를 거두겠다는 복안이다. 그는 “마사회는 기존의 경마 중심에서 승마에도 눈을 돌려 전 국민 말 타기 운동, 승마 전문 인력 양성 등에 나서고 있다”고 했다.

    ▼ 전국적으로 승마를 즐길 수 있는 곳이 어느 정도 있나요?

    “200개 정도 승마장이 있어요. 앞으로 300개로 늘릴 예정입니다.”

    ▼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승마장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나 요?

    “그렇게 개별적으로 해도 되고요. 저희가 권하는 것은, 저희가 전 국민 말 타기 운동의 일환으로 인터넷사이트 호스피아(www.horsepia.com)를 운영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말 타기 참여 신청을 하면 편리하게 경험할 수 있습니다.”

    ▼ 그러나 승마는 아직 대중화되지 않은 것 같은데요.

    “선진국에서는 1인당 국민소득 2만, 3만달러대에 승마 인구가 크게 늘어납니다. 승마와 그 유관산업은 부가가치가 큰 레저-서비스 산업으로서 성장 동력이 될 수 있어요. 우리에겐 기마 민족의 DNA가 있잖아요. 의지만 있으면 승마문화의 확산은 그리 어렵지 않을 거예요.”

    야외의 말 타기가 주는 스릴

    아이들이 숲 속에서 말 타며 재충전하는 사회 만든다
    ▼ 사람들이 승마로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이죠? 왜 말을 타야 하나요?

    “나는 우리 아이들의 인성 함양과 전인 교육을 위해서도 승마가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도시의 대다수 어린이, 청소년은 너무 불쌍하게 살고 있어요. 경쟁에, 공부에 시달리고 주변 환경은 아스팔트, 콘크리트뿐이죠. 그나마 시간이 나면 PC나 휴대전화의 인터넷 게임에 몰입합니다. 이래서는 자연을 사랑하고 창의적이고 바른 인성을 가진 사람으로 자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독일에선 연간 승마대회가 6만8700회나 열리고 참가자도 148만명에 달합니다. 12세, 16세의 소년 소녀들이 말을 타고 숲 속을 천천히 달리며 여가를 보내는 게 흔해요. 우리 아이들도 이런 경험을 하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거죠. 학교와 지방자치단체도 동참해주었으면 해요.”

    ▼ 승마가 아니어도 자전거나 인라인스케이트 같은 것을 타면 되지 않나요?

    “그런 기계를 타는 것과 말이라는 살아있는 생물을 타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입니다. 기술만 가지고 말을 기계처럼 다루면 말은 따르지 않아요. 사람과 말 사이의 사랑을 전제로 감성을 일치시켜야 해요. 승마는 인간, 동물, 자연 사이의 아름다운 관계를 이해하고 그 관계를 직접 체험해보는 일입니다.”

    ▼ 승마는 어른들에게는 어떤 효용이 있나요?

    “스트레스에 찌든 현대인은 숲 속을 걷는 것만으로도 심리적 안정을 얻게 됩니다. 걷기만 해도 그런데 말을 타고 숲 속을 천천히 달려본다면 그 테라피 효과는 훨씬 더 커질 겁니다. 주변에 흔치 않아서 그렇지 사실 말은 개나 고양이와 함께 대표적인 반려 동물이죠.”

    김 회장의 이야기를 듣다가 미국에서의 경험이 떠올랐다. 교외에서 말을 타고 숲과 계곡, 오솔길을 두 시간가량 다닌 적이 있었는데 꽤 상쾌하고 즐거운 기분을 느꼈었다. 인솔을 해준 현지인도 “이것이 진짜 미국”이라고 말했다. 곧은길에서 조금 빨리 달릴 때는 말 등 위로 전해지는 가벼운 진동과 맞바람이 그대로 느껴져 자동차의 가속 페달을 밟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스릴이 있었다.

    ▼ 전 국민 말 타기 운동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일반인 승마 스쿨(초급/중급), 대학생 승마 스쿨, 중·고등학생 승마 스쿨, 초등학생 승마 스쿨, 여성 승마 교실, 부모와 함께 하는 어린이 승마 교실 등 프로그램을 다양화하고 있어요. 국민적 관심이 높아졌고 승마장을 찾는 인구도 늘고 있다고 합니다. (전 국민 말 타기 운동의 인터넷사이트 호스피아의 누적 방문객은 27만7000여 명 정도였다.)”

    ▼ 승마 인구 확대가 가져올 파생효과는 어느 정도로 예상되나요?

    “경주마는 2~3세가 되면 레이스에 나옵니다. 6~7세가 황금기인데 그 시기가 지나면 갈 데가 없어요. 결국 식용으로 팔리는 안타까운 일이 생기죠. 승마 인구가 늘면 이런 경주마를 승마용 말로 돌릴 수 있어요. 말은 자기 수명을 다 누릴 수 있어 좋고 경마-승마의 연계로 부가가치도 높아집니다. 국내엔 3만 마리의 말이 있는데 10만 마리 가까이 늘어날 수 있죠. 말을 키우는 농가의 소득이 올라갑니다. 말 타기의 즐거움은 국적을 불문하므로 경마-승마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으면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도움이 됩니다. 지금은 규제가 너무 심해 경마장이나 승마장으로 외국인을 잘 유치하지 못하고 있지만 말이죠.”

    아이들이 숲 속에서 말 타며 재충전하는 사회 만든다

    서울경마공원.

    ▼ 상당수 산업에선 매출이나 수익이 늘어도 일자리는 늘지 않는 현상이 나타나는데요.

    “경마-승마는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는 산업입니다. 말 세 마리당 사람 한 명이 고용되는 꼴이죠. 수요가 많아지면 승마장도 숫자가 더 늘거나 대형화하거나 친환경적이 됩니다. 전국 시군마다 승마장이 1개씩은 들어서도록 하는 게 목표죠. 일부 지방에선 말이 다시 교통수단으로 활용될 거예요. 말을 자주 탈수록 고용도 늘고 세수도 늘어나는 거죠.”

    ▼ 올림픽에서 승마 성적이 신통치 않았죠.

    “최근 20~30년 동안 승마선수는 200여 명에서 300여 명으로 불과 100여 명 늘었어요. 2004년 아테네올림픽 장애물 단체 경기에서 9위에 그쳤죠. 승마를 즐기는 사람이 많아지면 승마경기를 즐겨 보게 되고 그러면 선수층도 두터워져 경기력도 올라가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도 승마의 대중화가 꼭 필요합니다. 최근 승마전문채널이 생겼어요. 또 여러 대학, 고교에서 승마관련 학과를 개설하고 전남 신안군 임자초등학교가 승마 특성화 학교가 된 건 긍정적인 신호라 할 수 있습니다.”

    “노는 걸 죄악시하지 말라”

    ▼ 중국에 말 산업이 들어온다는데요. 이것이 위기일까요, 기회일까요?

    “중국인들이 해외도박을 하며 쓰는 돈이 너무 많으면 중국 정부는 이를 국내에서 흡수하려고 할 거예요. 경마는 중국의 난제인 실업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확실히 효과가 있고요. 성(省)마다 1개씩 경마장이 생길 수도 있다고 봐요. 세계 경마시장 규모가 크게 확대되는 일로, 우리는 말을 중국에 수출하는 데에 관심을 가져야겠죠.”

    우리나라에선 경마, 경정, 경륜, 카지노 등 사행성산업 총량규제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한다. GDP(국내총생산) 대비 0.58%를 넘지 않아야 하고 마사회 매출은 7조6000억원을 초과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반면 ‘도덕국가’ 싱가포르는 최근 세계적 카지노를 개장했는데 외국인 관광객이 급증한다고 한다.

    다국적 기업 벡텔의 한국계 전직 임원은 “제조업 생산성에서 한국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뒤지는 여러 선진국이 한국보다 경제력이 앞서는 이유는, 서비스 분야를 세계적 규모로 키워 생산성을 높이고 외국인 관광객 유치로 막대한 외화를 벌어들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경마 카지노 위락 레저 등과 같은 사업성이 검증된 서비스 분야를 글로벌 산업으로 키우면 국부(國富)를 늘리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이들 산업은 일자리 효과도 크다. 내국인 도박 중독이나 특혜에 대한 안전장치는 충분히 두어야겠지만 정도 이상의 도덕적 엄격함으로 스스로 자신의 날개를 꺾고 있는 건 아닌지도 살펴야 한다.

    김 회장은 “노는 걸 죄악시하지 말라”고 말한다. “우리는 원래 잘 노는 민족이었다. 놀이문화가 성장해야 사회갈등도 줄어든다”고 한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를 풀어줄 열쇠가 이 말 속에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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