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호

즉흥에 의한 북한을 위한 卓上개혁

307 vs 2020 전쟁

  • 이정훈 기자│hoon@donga.com

    입력2012-09-20 10: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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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은 지금 국방개혁 307과 국방개혁 2020을 내세운 육군과 해·공군이 내전을 벌이고 있다. 2020이 육군 병력을 30% 정도 축소하기로 하자 육군은 군 상부구조를 육군에 유리한 쪽으로 만드는 국방개혁 307로 대응하면서 싸움이 벌어졌다. 이 가운데 문제는 법제화가 된 2020이다.
    • 2020에 따라 해병대 병력을 줄여가던 국방부는 연평도 포격전을 치른 후 오히려 증강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는 2020이 주먹구구식으로 해병대 감군을 결정했다는 증거다. 통일기 한반도의 안보를 뒤흔들 수 있는 국방개혁 2020의 오류와 국방개혁을 둘러싼 우리 군의 갈등을 육·해·공군별로 3회에 걸쳐 정밀 분석한다.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 시절 대한민국은 국방개혁으로 내전(內戰)에 준하는 내홍을 겪었다. 코앞에 다가온 제18대 대통령선거로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갔지만 다음 정부를 준비하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구성되면 내전은 다시 확전될 수밖에 없다. 이 싸움은 거대 군(軍)인 육군이 한편이고, 소군(小軍)인 해군과 공군이 한편이 돼 대립하는 구도다. 양쪽이 들고 있는 무기에는 똑같이 ‘국방개혁’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다.

    육군이 추진하는 국방개혁에는 ‘307’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고, 해·공군의 국방개혁에는 ‘2020’이라는 번호가 찍혀 있다. 국방개혁 307(이하 307)은 천안함-연평도 사건을 겪은 2010년 말부터 적극 검토되었다. 307은 서열 1번인 합참의장이 군령-군정권을 모두 행사할 수 있게 하자는 내용이라, “통합군을 지향한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복무기간 단축으로 법제화 성공

    육군 대장 출신인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전면에 나서서 307 입법화를 추진했지만, 해·공군 측이 결사 반대하는 바람에 307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국방부와 육군은 천안함-연평도 사건 같은 북한의 국지도발 위협을 억제하려면 307을 입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해·공군 측은 307은 천안함-연평도 사건을 빙자해 육군 중심의 비민주적인 통합군을 창설하려는 계획이라고 비판한다. 육군에서도 일부는 “307의 군 상부구조 개편안은 통합군을 만들자는 것이라 문제가 있다”며 307 입법화에 반대 의사를 표하고 있다.

    국방개혁 2020은 2005년 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다. 2020의 핵심은 당시 54만7000명이던 육군을 17만7000명 줄여 2020년에는 37만 명으로 한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24개월이던 육군 병사의 복무기간을 2014년 18개월로 줄이는 등 의무병의 복무기간 단축을 내걸었다. 이 계획은 많은 지지를 끌어냈다.



    국가안보를 염려하는 보수세력은 반대했지만, 이들을 대변하는 한나라당(현재 새누리당)은 복무기간 단축에 반대할 경우 예상되는 감표(減票)를 의식해, 2006년 12월 조용히 2020을 법제화한 ‘국방개혁에 관한 법률(국방개혁법)’ 통과에 협조했다.

    이로써 오래전부터 통합군을 외치며 해·공군을 압박하던 육군이 오히려 ‘개혁의 칼날’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육군이 천안함-연평도 사건이 일어나자 육군이 절대 다수인 합참이 군령권과 군정권을 모두 갖는 307을 강력히 추진해 해·공군과 날 선 대립을 벌였다. 해·공군은 2020으로 육군의 숨통을 조이고, 육군은 307로 해·공군의 목을 졸라, 종국에는 양쪽 모두 쓰러지는, 무협지에서 흔히 나오는 ‘동귀어진(同歸於盡)’ 형세를 보이게 된 것이다.

    북한의 위협은 계속되고 있는데 한국군은 심각한 적전(敵前) 분열 상태에 놓인 것이다. 지금부터 왜 국방개혁이 한국군을 분열시키게 됐는지를 정밀 검증한다. 이 취재를 위해 기자는 육·해·공군의 전현직 장성 10여 명을 만났다.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이들의 신원은 공개하지 않기로 한다.

    ◆ 해병대 감군-증강 혼선

    2020은 2005년 기준 68만1000명인 한국군을 26.6%(18만1000명) 줄여 2020년 50만 명으로 한다는 것이 요체다. 한반도의 냉전은 끝나지 않았는데 4분 1에 달하는 병력을 줄여도 괜찮은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하루빨리 재검토해 변경해야 한다. 2020은 해·공군 병력에 전혀 손대지 않고 지상군만 육군에서 17만7000명, 해병대에서 4000명을 축소하기로 했다.

    당시 육군 총병력은 54만7000명이었으니 무려 32.3%를 줄이기로 한 것이다. 해병대는 2만7000명이었으니 25.9%를 감축하는 것이 된다. 지금부터 주목할 것은 해병대 감군 4000명의 변화 추세다.

    북한과의 충돌이 잦은 서해 5도에서 가장 중요한 섬은 백령도와 연평도다. 이 때문에 해병대는 백령도에 3000명으로 구성된 6여단을, 연평도에 1000명으로 편성된 연평부대(마이너스 연대)를 뒀는데, 이것이 서해 5도에 배치된 해병대 전력의 대부분이다.

    2020은 ‘놀랍게도’ 서해 5도에 전개된 해병대를 300~400명으로 줄여, 4000명 감군을 실현하기로 했다. 대신 서해 5도에서 발생하는 위기에는 해·공군으로 대응하기로 했다.

    대부분의 국민은 2020이 서해 5도에 배치된 해병대 병력을 10% 이하로 줄이기로 했다는 사실을 몰랐다. 군 정보에 밝다고 하는 기자도 간과했다.

    그러는 사이 복무기간 단축은 대단한 힘을 발휘해 2009년의 한국군은 2005년보다 2만6000여 명이 줄어 있었다. 2만6000명은 2020년까지 줄이기로 한 18만1000여 명의 14.3%에 해당하는 큰 수치였다. 이러한 감군이 부담스러웠기에 이명박 정권의 국방부는 2009년 6월 ‘2020년에 달성할 총 병력은 원안보다 1만7000명이 늘어난 51만7000명으로 한다’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한 ‘2020 1차 조정안’을 발표했다(이 조정안의 정식 명칭은 ‘국방개혁 기본계획 2009~2020’이다).

    국방부는 내부 구성원 중 육군이 절대 다수라 ‘육방부’로 불린다. 국방부는 ‘육방부’답게 덜 줄이기로 한 1만7000명을 전부 육군에 할당했다. 서해 5도의 병력을 줄이고 있는 해병대의 고통은 외면한 것이다. 그런 시점에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 포격 사건이 벌어졌다. 합참 주도로 한국군 최대 훈련인‘호국훈련’을 하고 있던 때였다. 이 때문에 한민구 합참의장 이하 전 지휘관은 정위치 상태에서 연평도 포격전을 보고받았다. 이명박 대통령도 청와대에서 바로 보고를 받았다.

    연평도 포격전은 무려 1시간7분 동안 계속됐다. 그러나 한국군 통수권자인 이명박 대통령과 김태영 국방부장관, 한민구 합참의장은 어떠한 결심도 하지 못했다. 한국군은 북한이 서해 5도를 향해 도발하면 공군을 동원해 대응한다는 작전계획(작계)를 갖고 있었으나 실행 명령을 내리지 못한 것이다. 그들이 침묵하는 사이 대령인 연평부대장만 홀로 결심해 대응 사격을 했다. 한민구 합참의장 등은 현장 지휘관에 일임했다는 논리로 뒤로 숨어 있었다.

    연평도 포격전 때 맥 못춘 軍

    연평도 포격전이 끝난 후 이것이 큰 문제가 됐다. 세계 10위의 국방비를 지출하는 대한민국 군 최고 수뇌부가 북한군의 포격 도발 상황에서 아무런 결정도 하지 못하다니…. 게다가 불과 8개월 전에 천안함 피침 사건을 당했는데 말이다. 정부는 김태영 국방부 장관을 경질하는 선에서 사태를 수습하려고 했다.

    그리고 서해 5도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고 해병대 감군을 취소하겠다는 의견을 ‘선제적으로’ 흘렸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2명의 전우가 전사해 울분을 토하고 있던 해병대를 달랠 수 없었다. 노무현 정부가 서해 5도의 해병대 병력을 10분의 1 이하로 줄이겠다고 했을 때 해병대사령부는 백령-연평도에 장사정 타격 수단을 배치해달라고 요구했으나, 국방부는 “위기상황이 벌어지면 공군으로 대응해줄 테니 염려 말라”는 말로 묵살했었다. 때문에 재빨리 한국판 방사포인 ‘구룡’ 다련장로켓과 K-9 자주포 등 장사정 무기와 운용할 포병을 증강했다.

    이어 해병대사령부를 중심으로 서해 5도 방위를 전담하는 ‘서북도서방위사령부(서방사)’를 만들었다. 서해 5도의 포병 증강과 서방사 창설 등으로 해병대병력은 오히려 1000명 늘어났다. 2020 원안에 따른 4000명 감군을 포함하면 5000명이 늘어난 셈이 되었다. 지난 8월 29일 국방부는 ‘2020 제2차 조정안’이라고 할‘국방개혁 기본계획(2012~ 2030)’을 발표하면서 1000명이 늘어난 해병대 증강을 공식 발표했다. 이로써 해병대는 2020 체제에서 유일하게 병력이 증가하는 군이 되었다.

    이는 2020 원안에서 50만 명으로 감군한다는 결정이 확실한 안보 위협 분석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졌음을 보여주는 유력한 증거일 수 있다. 노무현 정부 때 윤광웅 장관이 이끈 국방부는 어떠한 판단으로 서해 5도의 해병대 병력을 10분의 1 이하로 줄이기로 했는가? 이 질문에 답해주는 사람은 만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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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방사는 옥상옥

    흥미롭게도 안보 전문가들은 연평포 포격전 후 서해 5도의 해병대 병력 증강에 반대했다. 이유로는 ‘옥상옥(屋上屋)’의 문제를 들었다.

    1개 사단은 보통 3개 보병연대와 1개 포병연대로 편성된다. 보병연대는 2400명으로 구성되나 포병연대는 보병연대의 70%인 1700명으로 편성된다. 그런데도 포병연대는 사단 전체 화력의 85%를 담당한다. 병력은 작아도 화력만큼은 화끈한 것이 포병이다. 따라서 포병을 증강하면 보병은 큰 폭으로 줄여도 된다.

    해병대도 바로 이 점에 주목해 서해 5도 병력을 10분의 1 이하로 줄이라고 했을 때 강력한 장사정 무기(포병화력)의 증강을 요청했으나 묵살당했다. 2010년 연평도 포격전의 진실은, 인민군 4군단의 포병여단이 방사포를 동원해 공격했을 때 마이너스 연대급인 연평부대에서는 K-9 자주포 6문으로 구성된 1개 포대(중대에 해당)로 대응한 것이다. ‘여단 대 중대’의 대결로, 비교가 안 되는 싸움이었다.

    따라서 K-9과 ‘구룡’ 등을 증강하면 4군단 포병여단에 밀릴 이유가 없다. 여기에 정밀한 적진 관측으로 적의 포격 조짐을 찾아내는 UAV(무인 정찰기)와 사격을 가한 적 포대의 위치를 잡아주는 대포병(對砲兵)레이더를 추가 배치한다면 서해 5도의 방어는 확실해진다. 포병에는 항공기를 잡는 방공(防空)포병도 포함된다. 한국은 자주(自走)대공미사일인 ‘천마’와 자주대공포인 ‘비호’를 갖고 있으니, 이를 배치한다면 북한 전폭기의 폭격에도 대응할 수 있다.

    상륙을 시도하는 북한 함정은 ‘움직이는 화력’인 전차로 잡는 게 좋다. 전차의 포는 직선으로 포탄을 날리기 때문에 장갑이 두꺼운 적 전차도 일거에 무력화한다. 접근해오는 함정은 적 전차보다 큰 표적이므로 전차포로 대응하면 한 방에 수장시킬 수 있다. 백령도와 연평도에 전차를 많이 배치하면 북한 함정은 상륙하기 어렵다.

    즉흥에 의한 북한을 위한 卓上개혁

    연평도 포격전 이후 연평도에 배치된 ‘구룡’다련장 로켓.

    국방부와 합참은 연평도 포격전이 있은 후 이러한 화력을 집중 배치했다. 그렇다면 서해 5도에 배치해놓은 해병대 보병은 대폭 축소해도 된다. 보병은 간첩 침투를 막는 경계작전과 적이 상륙한 후 대응 전투를 할 때 주로 필요하다. 좁은 섬에 보병이 밀집해 있으면 적이 선제 사격과 폭격을 할 때 희생자만 늘어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전략가들은 서방사도 불필요한 조직으로 본다. 화력을 증강시키고 유사시 공군력 투사만 보장한다면 서해 5도는 기존 체제만으로도 충분히 지킬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들은 “포병을 증강했다면 서방사야말로 국방개혁으로 없애야 할 군살 조직”이라고 말한다. 서해 5도의 해병대 병력 감축도 주먹구구였지만 증강도 주먹구구 식으로 이뤄졌다고 비판한다. 과학적으로 위협을 분석하고 ‘비용 대 효과’를 따져본 병력의 증감 조치가 아니라는 것이다.

    ◆ 우습게 결정된 ‘50만’ 감군

    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노무현 정부가 무엇을 계기로, 어떤 근거로 50만으로 감군할 결정을 했느냐는 문제다. 노무현 정부가 2020을 결정하기 전 조지 W 부시 대통령 정부에서 럼스펠드 국방부 장관이 감군을 시도했다. 럼스펠드의 국방개혁은 가혹했다. 유럽 냉전 종식 후 미국은 18개이던 육군 사단을 12개로 줄였는데, 럼스펠드는 10개를 만들라고 했다.

    럼스펠드가 국방개혁을 하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들도 감군에 들어갔다. 미국은 전 세계의 위협에 대처해야 하지만, NATO는 지역 위기에만 대응하니 한결 쉽게 감군할 수 있었다. 그 때인 2004년 프랑스를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이 프랑스의 여성 국방부 장관을 만나 이야기한 후 ‘필’이 꽂혀 50만으로 감군할 결심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2020은 과연 그렇게 시작된 것일까.

    노무현 대통령 시절 국방비서관실 행정관으로 근무하며 2020을 담당했던 김종대 ‘디펜스21’ 편집장이 이를 확인해주었다. 김 씨는 주간동아 2011년 12월 29일자에 기고한 기사에서 ‘2004년 프랑스를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이 여성 국방부 장관인 미셸 알리오 마리를 만나 프랑스의 군 개혁에 관한 열정적인 설명을 들으면서 감동을 받아 2020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김 씨는 이 기사에서 ‘프랑스 여성 국방부 장관의 열정에 자극받은 노 대통령은 법과 제도에 의해 장기적으로 추진되는 국방개혁을 마련하게 됐다’고 밝혔다.

    즉흥에 의한 북한을 위한 卓上개혁

    2004년 프랑스를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에게 감군 의지를 심어줬던 프랑스의 여성 국방부 장관 미셸 알리오 마리(왼쪽 여성)가 2007년 청와대를 방문하자 노무현 대통령이 환대하고 있다.

    프랑스가 감군을 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소련과 동유럽 공산국가가 무너지던 1990년 프랑스군은 54만8000명이었다. 유럽 냉전이 끝난 1994년 프랑스는 군 병력을 50만2000명으로 약간 줄였다. 1999년부터 유럽에서는 안보 지형을 바꾸는 일이 연속해서 벌어졌다. NATO의 적이었던 구 바르샤바조약기구(WTO) 회원국 폴란드와 체코 헝가리가 NATO에 가입한 것. 그러자 2000년 프랑스는 39만4000명으로 감군했다. 2004년에는 소련의 일원이던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를 포함한 구(舊)공산권의 일곱 나라가 NATO에 가입했다.

    이로써 유럽은 러시아를 제외하고 NATO로 통일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게 되었다. 이때 프랑스는 징병제를 포기하고 모병제로 돌아섰다. 프랑스의 여성 국방부 장관은 이러한 변화를 노무현 대통령에게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여기서 안보전문가들은 노 대통령의 한계를 지적한다. “노 대통령은 유럽의 감군을 개별 국가 단위가 아닌 ‘NATO 대 러시아’ 관계로 봤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은 것이다.

    “제1, 2차 세계대전을 치른 만큼 유럽 국가들은 절대로 안보를 가볍게 보지 않는다. 유럽 냉전 종식 후 NATO를 위협할 수 있는 나라는 러시아 하나로 줄어들었다. 현재 유럽에 있는 NATO 회원국의 총병력은 209만7000명인데 러시아는 101만 명이다. 유사시에는 미국과 캐나다도 참여하므로 NATO의 병력은 3대 1 이상으로 러시아를 앞선다. 이런 상태에서 유럽 국가들은 대규모로 감군하는 것이다. 최근 프랑스는 23만4000명으로, 독일은 24만6000명, 영국은 19만8000명으로 군 병력을 줄였는데, 이는 그렇게 해도 안보에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육군의 감군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은 “북한이 휴전선에 있는 육군 부대를 강력하게 공격해주면 좋겠다”는 뼈있는 말을 한다. 그래야만 연평도 포격전 후 해병대가 증강됐듯, 육군도 감군의 족쇄를 벗어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농담 아닌 농담을 한다. 노무현 정부의 주먹구구식 감군과 증강을 빗댄 날카로운 비판이다.

    ◆ 육군 사단 수 감축 문제점

    2020 원안은 육군의 병력뿐만 아니라 부대 수도 강력히 줄일 것을 요구했다. 육군의 제대(梯隊)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사단인데, 2020 원안은 당시 47개이던 사단을 20개로 줄이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2분의 1이 넘는 135%를 줄이라고 요구한 것이다. 사단 수 축소는 병력 축소 이상으로 논쟁 대상이 됐는데 이 문제를 살펴보려면 사단의 종류부터 알아야 한다.

    대한민국 육군에는 세 종류의 사단이 있다. 정원의 85~90%를 현역으로 편성해 전방 작전을 하는 ‘상비사단’, 60~70%의 현역으로 구성돼 후방에서 각 도(道)방위를 담당하는 ‘향토사단’, 15~20%의 현역을 주축으로 한 ‘동원사단’이 그것이다. 유사시 동원령이 내리면 예비군이 입소하는데, 상비사단은 동원예비군, 향토사단은 일반예비군을 받아 편제를 완성한 뒤 자기 지역 작전에 들어간다. 동원사단은 동원예비군을 받아 완편한 후 전방으로 이동해 지역군단의 통제를 받으며 상비사단을 후원한다.

    사단 수 유지에 겨우 성공한 육군

    2005년 육군은 ‘22개 상비사단+11개 향토사단+14개 동원사단=도합 47개 사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20개로 줄이라고 했으니 육군은 발칵 뒤집힐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의 기세에 눌려 불만을 표출하지 못했다. 청와대 지시를 이행하려는 윤광웅 국방부 장관과 육군 장성들이 대거 포진한 국방부의 간부단 사이에는 묘한 긴장감이 형성되었다. 육군은 궁리 끝에 ‘먼저 14개 동원사단을 해체하고 이어 다른 사단을 줄인다’는 시차별 감축 계획을 내놓았다.

    갑갑했던 육군의 숨통은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조금 트이게 되었다. 2009년 6월 국방부는 2020 1차 조정안으로 육군 감군 규모를 1만7000명 덜어주면서, ‘2020년 상비사단과 향토사단은 합쳐서 20개, 동원사단은 4개로 해, 도합 24개로 한다. 전쟁이 일어나면 새로 10개 사단을 편성한다’고 발표했다. 눈에 띄는 것은 모두 없애기로 한 동원사단 4개를 살려낸 항목이다. 전시에는 10개 사단을 편성할 수 있으니 전시의 총 사단 수는 34개가 된다.

    천안함-연평도 사건이 마무리된 2010년 12월 이명박 정부와 가깝다는 평가를 들은 김상기 총장이 취임한 후 육군은 사단 수 축소에 본격 대응했다. 그 결과 올해 8월 발표된 2020 2차 조정안에서 육군은 병력을 덜 줄이는 카드는 받아내지 못했지만 ‘사단 수 유지’라는 예상외의 큰 선물을 받아냈다. 전시에 10개 사단을 추가 편성한다는 것은 그대로 둔 채, ‘평시에 22개 상비사단, 11개 향토사단, 4개 동원사단, 도합 37개 사단을 유지’하기로 한 것이다.

    2020 원안에는 사단을 20개로 한다고 돼 있었는데, 1차 조정안에서 전시편성 10개를 포함해 34개(상비·향토 20+동원 4+전시편성 10)로 바꾸고, 2차 조정안에서는 전시편성 10개를 포함해 47개(상비 22+향토 11+동원 4)로 변경시켰다. 전시에 편성되는 10개 사단은 동원사단과 그 성격이 비슷하다. 그렇다면 육군은 2005년과 같은 14개 동원사단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된다. 육군은 노무현 정부가 애써 추진한 사단 수 감축을 점진적인 증가(20개→24개→37개 사단)와 ‘전시 창설(10개 사단)’로 무력화한 것이다.(표 참조)

    즉흥에 의한 북한을 위한 卓上개혁


    대신 육군은 2030년에 상비+향토+동원을 더한 사단 수를 28개로 줄인다는 대안을 내놓았다. 2030년은 먼 훗날이니 육군이 28개 사단을 만들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이러한 육군의 노력은 대단한 ‘자군(自軍) 이기주의’로 보인다. 육군은 국방부를 장악하고 있기에 그들이 원하는 쪽으로 국방개혁을 변형시킨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육군이 사단 수를 유지하려 하는 데는 나름대로의 고충과 진정이 있다.

    북한 안정화에 11개 사단 필요

    육군이 사단 수를 2005년 이전과 똑 같이 유지하려는 첫째 이유는 북한 안정화작전 때문이다. 안정화 작전은 전쟁에서 승리했거나 적진에 급변사태가 일어났을 때 펼치게 된다.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이라크전에서 승리한 미군이 이라크 전역을 무대로 군정(軍政)을 편 것처럼 한국군이 북한 지역에 들어가 치안 등을 확보하는 작전을 벌이는 것이다.

    이때 가장 중요한 일은 ‘인민군 무장해제’다. 모든 인민군이, 북한에 들어간 한국군에 순순히 무기를 내놓을 것으로 본다면 순진한 생각이다. 일부는 무기를 들고 게릴라전인 ‘빨치산 투쟁’을 펼치게 된다. 북한 안정화는 일차적으로는 빨치산을 북한 주민들로부터 분리시키고, 빨치산을 조기에 소탕해야 달성된다. 이렇게 하려면 북한 주민들에게 식량을 비롯한 많은 생필품을 제공해 그들의 마음을 우리 쪽으로 돌려놓아야 한다. 이른바 선무(宣撫)공작을 해야 하는 것이다.

    선무공작을 하려면 북한 구석구석까지 뻗치는 행정조직을 갖고 있어야 한다. 북한 빨치산은 이라크에서처럼 도시게릴라전을 펼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산악에 은신해 투쟁할 가능성이 높다. 혼란에 빠진 북한에는 산골마을까지 뻗치는 행정조직이 있을 수 없으니, 진주한 우리 군이 대행해야 한다.

    북한 안정화작전을 위해 필요한 병력이 얼마냐는 빨치산 투쟁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나 1도(道)에 1개 사단을 두되, 평양은 인구와 시설이 밀집한 중요한 곳이니 남북으로 나눠 2개 사단은 투입해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평양을 제외한 북한의 도는 9개(북한 강원도 포함)이니, 11개 사단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런데 2020 원안에 2020년 상비사단과 향토사단을 더한 수를 20개로 한다고 해놓았으니, 육군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20개 사단을 ‘상비 12+향토 8’로 구분한다면, 한국은 전투력이 강한 상비사단은 1개만 남기고 모두 북한 지역으로 보내야 한다. 남한 지역은 일반예비군이 많이 섞인 향토사단으로 지키는 것이다. 통일기의 한반도는 혼란할 텐데 남한 지역이 위험해지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빨치산들이 남한 지역으로 넘어와 준동한다면 한반도 전체가 내전에 준하는 상황에 빠질 수 있다. 육군이 사단 수 감축에 강력히 반발한 첫째 이유다.

    이 때문에 37개 사단을 유지하고 전시에 10개 사단을 편성한다는 2차 조정안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50만으로의 감군을 명시한 국방개혁법의 독소 조항 때문에 병력 감소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다.

    사람은 힘과 지략을 갖고 있기에 병력은 장비 이상으로 중요한 전력이 된다. 특전사 중의 특전사인 707부대원이나 정보사의 HID 요원(북파공작원)처럼 고도로 훈련받은 병사의 전투력과 은밀한 침투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오랜 세월 ‘100만 대군’은 강한 군대를 상징하는 말로 쓰여왔다. 아무리 장비가 발전해도 지상전에서는 많은 병력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경영학(마케팅 분야)에서도 많이 쓰이는 근대 군사이론 중에 프레더릭 란체스터가 만든 ‘란체스터의 법칙’이 있다. 이 법칙 중의 하나는 ‘적과 내가 가진 무기의 성능이 비슷하다면 인원이 많은 쪽이 이긴다’는 것이다. 란체스터는 이 이론을 심화시켜 ‘병력을 반으로 줄이려면 장비는 네 배로 증강해야 한다’는 공식을 만들어냈다. 병력을 3분의 1로 줄이면 장비는 아홉 배 증강시켜야 한다.

    ‘전쟁론’을 쓴 전략가 클라우제비츠도 병력이 많은 쪽이 이긴다는 ‘수의 우세 법칙(Law of Numbers)’을 만들어냈다. 2차 조정안은 사단 수 유지는 실현했으나 육군 감군은 막지 못했다. 여기서 상당수의 전문가는 “국방개혁법은 개정하거나 폐지하고, 육군 의무병의 복무기간을 24개월로 복원해 더 이상의 육군 감군을 중단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 럼스펠드 vs 신세키 논쟁

    위기 평가를 제대로 하지 않고 무리하게 추진한 감군이 안보와 국익에 어떤 부담을 주는지는 외국과 국내 사례를 통해 분석해볼 수 있다. 외국 사례로는 조지 W 부시 대통령 때 미국 국방부 장관을 지낸 도널드 럼스펠드와 같은 시기 미국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일본계 미국인 에릭 신세키 대장의 격돌을 꼽을 수 있다.

    유럽 냉전이 종식된 후 미국은 18개이던 육군 사단을 12개로 줄였다. 그런데도 럼스펠드 장관은 ‘앞으로는 북한·이란·이라크 같은 불량국가(rogue state)들이 후원하는 테러전 같은 작은 전쟁만 있다’고 보고 대(對)테러전은 해·공군력과 경(輕)기동화된 육군으로 대응할 수 있다며 육군 사단을 10개로 줄이게 했다. 이에 대해 신세키 총장을 중심으로 한 육군은 “대테러전에 승리한 후 장악한 지역을 평정하는 안정화 작전을 펼치려면 많은 병력이 필요하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9·11테러 후 이라크전 개전이 임박한 2003년 2월 신세키 총장은 미 상원 군사위원회에서 “이라크전쟁에서 승리한 후 종파 갈등이 심한 이라크를 안정화하려면 많은 병력이 필요하다”고 공개적으로 럼스펠드를 공격했다. 이에 대해 럼스펠드 장관과 울포위치 부장관은 “한참 틀린 이야기다”라고 비판하고, 신세키 총장을 조기 퇴진시켰다.

    이라크전은 1차적으로는 미사일 발사, 2차적으로는 항공기 투사로 모든 표적을 날려 ‘적을 마비시키는 것’으로 시작됐다. 이 작전은 하늘을 통해 펼쳐지기에 ‘A-데이’ 작전으로 명명됐다. A-데이 작전이 성공하면 지상군을 투입해 강력한 A-데이 공격으로 고립된 채로 살아남은 잔적(殘敵)을 소탕하고 수도를 포함한 적지를 장악해 승리를 확인하는 ‘G-데이’ 작전을 구사한다. 3월 20일 A-데이 작전을 개시한 미국은 육군으로 하여금 작은 전투를 하게 하다, 5일 뒤 본격적으로 주공인 3사단 등을 진격시키는 G-데이 작전을 펼쳤다.

    종전 선언 후 수렁에 빠진 미국

    G-데이 작전도 대성공을 거둬 미군은 한 달도 안돼 이라크 전역을 장악했다. 5월 1일 신속한 승리에 고무된 부시 대통령은 주요 작전이 끝났다는 종전 선언을 했다. 미국이 수렁에 빠진 것은 그때부터였다. 미국에 반대하는 각 종파가 여러 마을을 무대로 게릴라전을 펼친 것이다. 이라크에 투입한 지상군은 해병대를 합쳐도 최대 17만여 명에 불과했다. 전투를 해온 부대들은 분대나 분대보다 작은 조(組) 단위로 쪼개 대응해야 했다.

    잘게 쪼개진 미군은 숨어 있는 게릴라들이 쏜 총알과 자살폭탄 테러 앞에 맥없이 쓰러져갔다. 럼스펠드가 간과했던 안정화작전에 빨간 불이 켜진 것이다. 부시 정부는 이 위기를 동맹국 파병으로 대처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한국을 비롯한 36개국이 1만3000명이 넘는 병력을 파병했다. 2007년 견디지 못한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주둔병력 증파를 결정했다.

    10개인 사단 수는 그대로 둔 채, 3개 사단 규모가 넘는 5만 명의 장정을 더 뽑아 이라크 등에 보낸 것. 5만 명을 증강한 후 안정화 작전은 조금씩 성공을 거둬, 2011년 12월 15일 미국은 오바마 대통령을 통해 이라크전이 끝났다는 공식 선언을 할 수 있었다. 미국이 실질적인 전투는 1개월 10일 만에 끝내놓고도 안정화작전을 하는 데 8년 8개월을 보냈다는 것은 안정화작전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로 꼽히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라크전 종전을 선언하기 직전 신세키 전 총장의 선견지명을 인정해 그를 보훈처 장관에 임명했다.

    이라크전에서 간신히 수렁을 헤쳐 나온 미국은 그 후 미국 이외의 지역에서 벌어지는 안정화작전은 그 지역 군대에 맡긴다는 입장을 취했다. 북한을 무대로 한 안정화작전에 미 육군은 투입하지 않을 터이니 한국이나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주변국이 지상군을 파병해 해결하라는 의견을 내비친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육군 병력의 30%를 줄이는 초대형 감군에 들어갔다.

    6·25는 막아냈어야 할 전쟁

    부족한 병력이 빚은 안보 위기는 국내에서도 찾을 수 있다. 6·25전쟁은 10대 8의 싸움이었다. 북한 육군이 10개 사단, 한국 육군이 8개 사단이고, 병력 수도 얼추 10대 8의 비율이었을 때 이 전쟁이 일어났다. 지상전은 공자(攻者)가 방자(防者)보다 세 배 이상 전력이 강해야 이긴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국군은 6·25 때 북한군 남침을 충분히 막아냈어야 한다.

    그런데도 한국군이 처절하게 패한 것은 한국이 북한의 침략 의지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고, 북한은 성공적인 기습을 했기 때문이다. 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한국은, 미군이 참전함으로써 극복했다. 미군의 참전으로 남쪽의 병력이 많아졌을 때 미군은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켜 압록강까지 진격했다. 반대로 중국군의 참전으로 북쪽 병력이 많아졌을 땐 1·4후퇴를 하게 되었다. 이후 영국 등 여러 나라 군대가 유엔군으로 참전하고, 전쟁을 지시한 스탈린 사망으로 소련이 정전 의사를 내비친 후, 지루한 진지전을 거듭하다 정전(停戰)을 맞게 되었다.

    6·25전쟁 때 막강한 전투력을 갖고 있던 미국 육군은 여러 차례 중국군의 대병력에 걸려 고전했다.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 2사단은 평북 운산에서 훗날 ‘인디언 태형(笞刑)’이란 별명을 얻은 중국군 포위전에 걸려, 사단이 궤멸하는 피해를 보았다. 장진호 이북으로 진격했던 미 해병대 1사단도 중국군의 포위망을 뚫고 후퇴하느라 큰 고생을 했다. 이는 첨단 전력도 대병력의 포위전에는 큰 힘을 쓰지 못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때문에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이 추진한 정전에 동의해주는 대가로 한국군 60만 명을 현대화해달라고 요구했다. 이때 북한군 병력은 45만 명이었다. 이는 ‘적은 병력으로는 적의 공격을 막을 수 없음을 뼈저리게 느낀 데서 나온 것이었다. 덕분에 정전 후 한국은 큰 폭으로 병력을 증강해 북한을 앞지를 수 있었다.

    그러자 북한도 따라서 병력을 늘려 5·16 군사정변이 일어날 무렵 남북한 병력은 대등해졌다. 정전협정을 맺으면 전쟁을 했던 나라들은 감군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남북한은 오히려 병력을 늘리는 ‘반대의 길’을 간 것이다. 5·16 이후로도 북한은 계속 병력을 증강시켰으나 박정희 정부는 횡보(橫步)를 했다. 횡보를 한 첫째 이유는 미국이 현대화를 이유로 지원해주기로 한 한계가 한국군 60만이었기 때문이다.

    북한군의 증강은 120만 명 선에서 멈췄다. 이것이 위기를 불렀기에 박정희 정권은 예비군을 창설하고, 껍데기만 남은 유엔군이 아니라 실질적인 힘을 가진 미군에 안보를 맡기는 전략을 선택했다. 1978년 한미연합사를 만든 것이다. 한국군사(史)에 밝은 한 전문가는 “박 대통령은 한미연합사를 만들어 연합사에 한국 방어를 위임함으로써 부족한 병력 문제에 대처했다”며 이런 설명을 덧붙였다.

    “연합사를 창설할 무렵 한국군이 60만, 북한군은 120만으로 1대 2의 비율이었다. 이러한 체제는 대단히 위험한데, 박 대통령은 이 문제를 유사시 미국에서 올 증원군으로 해결했다. 미국은 연합사를 통해 한국 방위를 책임지기로 했기에 데프콘 2 이상이 선포되면 시차별부대전개제원(TPFDD) 등에 따라 최대 69만 명의 미군을 한반도에 보내기로 했다. 유사시 남북의 상비병력은 129만 대 120만으로 대등해지는 구도를 만든 것이다. 박정희 정부는 이것으로 북한의 침공을 억제하고 여력(餘力)으로 경제를 발전시켰다.”

    노무현 정부는 국방개혁법을 근거로 육군을 대폭으로 감축하고, 전작권 전환을 추진해 한국이 경제발전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준 연합사를 해체하도록 했다. 안보를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정책 두 개를 동시에 추진한 것이다. 놀랍게도!

    ◆ ‘무늬만 사단’인 상비사단

    2020 2차 수정안으로 육군이 사단 수를 2005년과 비슷하게 유지하게 됐다고 해도 안심할 수는 없다. 국방개혁법 25조 1항에 의해 육군 병력을 지속적으로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병력은 줄었는데 사단 수를 유지한다면, ‘무늬만 사단’이 된다.

    실제 병력은 연대급인데 이름만 사단인 ‘뻥튀기 부대’가 되는 것이다. 이 현상은 대규모 감군이 일어나지 않은 현재에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는 한미 육군을 비교해보면 명확히 알 수 있다.

    미국 육군은 50만2000명으로 10개 사단을 유지하고 있는데 현재 한국 육군은 약 52만 명으로 37개 사단(22개 상비+11개 향토+4개 동원)을 형성하고 있다. 총 병력은 비슷한데 사단 수는 3.7배 많은 것이 한국 육군이다. “미국은 사단 수를 셀 때 빠지는 여단급 부대가 많아 그렇다”는 반론이 나올 수 있으니, 미국 사단 수를 한국의 상비사단 수와 비교해자. 이렇게 해도 한국 사단 수는 미국보다 2.2배 많다는 결과가 나온다.

    현실을 들여다보자. 한국은 1만1500명으로 보병사단을 편성한다. 기계화보병(기보)사단은 보병사단보다 3배 정도 전투력이 강하기에 9900명으로 편성한다. 미 육군은 이름은 보병사단이어도 성격은 기보사단이 대부분이다. 미국 사단은 1만6000~1만7000명으로 편성된다. 최근 미국은, 제4보병사단을 전투력이 더욱 강한 디지털 사단으로 개편하면서 4사단만 1만4000명으로 줄였다.

    대충 잡아도 미국 사단의 병력은 한국 상비사단의 1.5배에 달한다. 이러니 한국 사단은 미국 사단에 비하면 ‘속 빈 강정’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3각 편제’ 퇴색한 육군부대

    물론 미국 사단이 세계 사단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한국 사단이 미국 사단보다 약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현재의 한국 상비사단은 줄어드는 병력으로, 육군 편제의 기본인 3각 편제가 흔들려 고통을 받고 있다. 왜 3각 편제가 지상군의 기본이 됐는지, 분대를 예로 들어 설명해 보자.

    분대보다 작은 전투단위를 ‘조(組)’라고 한다. 전략가들은 수많은 전쟁과 전투를 분석해, 조를 몇 명으로 할 것이냐를 놓고 고민해왔다. 그러다 3명이 가장 좋다는 결론을 냈다. 3명을 1조로 해 전투하면, 1명이 희생돼도 2명이 의지해 위험을 헤쳐나오지만, 2명을 1조로 했다가 1명이 희생되면 남은 1명의 생존 확률이 낮아진다는 것을 경험으로 터득한 것이다.

    3명을 1조로 하면 전투력도 배가된다. 왼쪽에 있는 전투원이 좌측의 적을 벗겨내고, 오른쪽 전투원이 우측의 적을 밀어낼 때 가운데 있던 전투원이 돌격해 뚫어버리는 것이다. 이를 확대하면, 오른쪽 조가 우측의 적을 제압하고, 왼쪽의 조가 좌측의 적을 유효사거리 바깥으로 밀어내고 엄호해주는 사이, 가운데 조가 돌진하는 분진합격(分進合擊)을 할 수 있게 된다. ‘십장(什長)’이라는 말이 오래전부터 존재해온 것을 보면, 1사람이 지휘할 수 있는 사람 수는 10명이 적정이다. 그래서 분대는, 3명-3조에 분대장을 보태 10명으로 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이 때문에 3개 분대로 1개 소대, 3개 소대로 1개 중대…3개 연대로 1개 사단을 만드는 3각 편제가 정착됐다. 2022년 육군이 30% 정도 병력이 줄어든 38만7000명으로 22개 상비사단을 만든다면, 분대에서 사단까지의 모든 제대(梯隊)에서 정원 부족 현상이 일어난다. ‘2명-3조에 분대장’식으로 분대를 7명으로 구성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분대가 안정화작전에 투입되면 제대로 작전하기 어려워진다. 자칫 ‘적군의 밥’이 될 수 있다.

    앞에서 밝혔듯 현재 상비사단의 완편율은 85~90%이다. 그러나 동해안을 지키는 모 사단의 경우 형식은 상비사단이나 실체는 향토사단과 같아서 완편율이 60%대에 불과하다. 한국 사단의 완전성 결여는 고질이어서, 병이 아니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상비사단에는 신병을 훈련시키는 신병교육대(신교대)가 있다. 신교대는 전투부대가 아닌 만큼 사단 직할로 두어야 한다. 16개인 한국군 보병사단(나머지 6개는 기보사단) 가운데 신교대를 사단 직할로 운영하는 것은 1사단뿐이다. 나머지 사단은 작전을 하는 보병연대에 신교대를 끼워놓고 있다.

    전방 사단은 2개 연대로 휴전선을 지키고, 1개 연대는 사단 예비대로 활용한다. 휴전선을 지키는 2개 연대는 3개 전투대대로 편성돼 있다. 그러나 예비 연대는 병력이 부족해 2개 대대는 전투대대로 구성했으나 1개 대대는 신교대로 편성해 놓았다. 이러니 예비연대는 연대 단위의 훈련을 하지 못한다. 예비연대는 유사시에 대비해 연대단위의 훈련을 반복해야 하는데, 2개 대대뿐이라 절름발이 훈련을 한다. 지금도 이러한데 2022년 병력이 38만7000명으로 줄어든다면 상비사단은 제대로 된 작전도, 훈련도 할 수가 없게 된다.

    완전성 결여에 대해서는 육군에서도 큰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육군이, 완전성 유지를 통한 전투력 증강보다는 부대 수를 유지해 자리를 확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만은 결코 아닐 것이다. ‘국방개혁법 25조 1항을 거스르는 것은 심각한 항명자(抗命者)가 되는 길’이기 때문에 육군은 문제의 심각성을 알아도 침묵한다.

    군살 아닌 생살 도려내는 개혁

    육군은 2020 조치 이전(2005년 이전)에도 완전성을 갖추지 못하고 운용됐다. 그러한 육군 병력의 30%를 줄여놓고 전면전과 국지전, 북한 급변사태 등에 대응하라는 것이 국방개혁법 제정으로 현실화한 2020이다. 북한 급변사태 같은 유사시, 국익을 지키며 ‘우리의 아들’을 희생시키지 않으려면 대군이 있어야 한다.

    2020은 냉전이 완전히 끝난 프랑스의 감군을 보고 흥분해서 즉흥으로 추진된 탁상공론이다.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좌익과 북한을 이롭게 한다. 즉흥에 의한, 북한을 위한 탁상(卓上) 공론(空論)에 따라 육군을 가혹하게 감군한 조치가 2020이라는 것이다.

    육군 병력을 줄이는 2020의 문제점을 지적하다보니 ‘육군은 정말로 군살 없는 군대인가’란 의문이 인다. 육군은 대군이기에 군살이 숨어 있기 좋은 구조다. 육군에도 줄여할 조직은 있다. 그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 상술하기로 한다. 2020은 군살 줄이기를 이유로 생살까지 잘라내 문제라는 것이 전략가들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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