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년 부산해양경찰서와 해양환경관리공단이 공동으로 실시한 대형 해양오염사고 대비 해상 방제훈련 광경. 선박 21척, 헬기 1대, 오일펜스 1.2km 등의 장비와 220여 명의 인원이 동원됐다.
인구 5000만 명이 넘은 나라는 지구상에 약 50개국이다. 그러나 인구가 많아도 국민소득이 낮고 경제발전이 덜 된 나라는 ‘20-50클럽’에 속할 수 없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6년 10월,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면서 “이제 우리도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고 자랑했다. 하지만 경제적인 내실이 뒷받침되지 못한 상황에서 OECD 가입을 서두르는 바람에 오히려 경제위기를 초래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20-50클럽’의 멤버가 된 것은 한국의 국가적인 위상을 정확하게 나타내는 하나의 지표다. 국가적 위상이 눈에 띄게 향상된 것은 이번 런던 올림픽에서도 입증됐다. 펜싱, 사격, 수영, 체조처럼 문화적·경제적인 뒷받침이 있어야만 선수층의 저변이 확대될 수 있는 종목에서 우리는 여러 개의 메달을 획득했다. 우리 국민의 경제적·문화적인 위상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20-50클럽’ 이야기를 장황하게 꺼낸 이유는, 중요하고도 예민한 기능을 갖는 국가기관인 해양경찰의 현재 모습을 정확히 평가하기 위해서다. 또 발전하는 국가 위상에 걸맞게 되려면, 나아가 국가적인 발전을 선도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역량 있는 국가 기관이 되려면 어떤 목표와 노력이 필요한지도 말하기 위해서다.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는 한 나라의 경제적인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다. 그러나 국민이 돈을 많이 번다고 해서 그 나라가 문화적으로나 정치적으로도 선진국의 반열에 들어가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개인 중에도 돈은 다소 만지지만 윤리적인 인식이 부족한 사람이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국가도 마찬가지다. 1인당 국민소득은 2만 달러를 넘을지라도 문화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일정 수준에 미치지 못할 수 있는 것이다.
한일 대륙붕 공동개발 협정
국가기관은 혈세로 운영된다. 그러니, 물론 조직원들의 사명감과 노력에 많이 좌우되기는 하나, 국가의 경제력이 올라가면 조직도 커지고 기능도 향상되게 마련이다. 해양경찰도 예외는 아니다.
1974년 1월 31일 서울에서 대한민국과 일본 간에 대륙붕 공동개발협정이 체결됐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이 협정의 내용은 우리나라가 1970년 1월, 제7해저개발광구로 설정한 동중국해 대륙붕 지역에서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자원을 개발하기로 한 것이다. 중요한 점은 제7광구의 대부분이 ‘등거리 원칙’을 적용해 배타적경제수역(EEZ)의 경계선을 정할 경우 일본의 EEZ 관할수역 범위에 속한다는 점이다. 쉽게 말해 바다 윗부분은 일본측 EEZ가 되나 해저는 대한민국의 대륙붕이라는 우리 측의 관할 주장이 법적으로 타당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았다면, 논리적으로 불가능했을 협약이다. 물론 이는 1969년 2월 국제사법재판소가 판결한 유명한 대륙붕 경계획정 사건인 ‘북해대륙붕 사건’에서 확인된 ‘육지의 자연연장설’에 근거를 둔 것이다. 필자는 이 사건을 ‘자원외교의 승리’ 사례로 우리 외교사에 길이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국제사법재판소가 인정한 법적 원리, 즉 ‘육지의 자연연장설’에 근거를 둔 것임에도 일본인 대부분과 국회는 이 협약을 ‘중요한 외교적 실수’라고까지 지적하며 반대했다는 점이다. 조약을 체결한 뒤 일본 정부와 국회는 여러 가지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비준을 거부했다. 1976년 들어서 일본이 내놓은 핑계는 우리나라의 국내법에 ‘해양오염방지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해저자원을 탐사하고 개발하다보면 해양을 오염시킬 요인이 많이 발생하는데 ‘해양오염방지법’이 없는 한국과 함께 이런 활동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조약 관계관의 보고를 듣고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물었다.
“우리는 정말 ‘해양오염방지법’이 없는가?”
“예. 없습니다.”
“그럼 당장 만들게.”
환경오염의 기본 개념조차 아직 알려져 있지 않던 그 시대 한국에서 ‘해양오염 방지’라는 건 고위 공무원조차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해양오염방지법’을 만들기 위한 범정부기관 위원회가 소집됐다. 그때 마침 ‘제3차 유엔해양법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석해 약 두 달간 미국 뉴욕에 머물며 ‘해양환경의 보호와 보존’에 관한 토의를 하고 돌아온 필자는 범정부기관 위원회에 국방부 대표로 참석하게 됐다.
해양오염 방지 주무기관
당시 한국 정부는 일본의 ‘해양오염방지법’을 우리말로 번역해 우리나라 ‘해양오염방지법’의 초안을 만들었다. 한자가 섞인 일본어를 번역하는 일은 영어를 한국어로 옮기는 것보다 쉬울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일본과 우리나라의 여건이 여러 모로 달랐기 때문이다. 일본의 ‘해양오염방지법’에는 오염 방지 활동의 실질적인 주체가 ‘해상보안청’으로 규정돼 있다. 당시 번역 작업을 주관한 ‘보건사회부 수질보존과’ 직원들은 기계적으로 ‘해상보안청’을 ‘해양경찰’로 옮겼다. 일본의 ‘해상보안청’은 당시 일본 ‘교통성’에 속해 있었다. 그러나 한국의 해양경찰은 ‘내무부 경찰국’ 소속이었다. ‘교통성’을 ‘내무부’로 번역하면 이것도 사실 큰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해양오염 방지를 위한 국가기관으로서의 각종 소관 업무 범위와 의무 사항이 나열되는 것을 보고 그 회의에 나와 있던 해양경찰 대표는 당황했던 것 같다. 생소할 뿐 아니라 일견 중차대하고 복잡한 임무를 아무런 준비도 없는 해양경찰이, 단순히 일본의 ‘해양오염방지법’ 때문에 갑자기 맡게 되는 것은 부당하기도 하고 어처구니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토의 과정에서 인내력을 발휘하고 앉아 있던 그는 갑자기 일어나 ‘보건사회부 수질보존과’ 당무자의 멱살을 틀어쥐고 복도로 끌고 나가는 해프닝이 빚어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