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호

조선 침법, 고전 명약 이명 비염 잠재우다

갑산한의원을 칭찬하는 까닭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12-09-20 16: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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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침법, 고전 명약 이명 비염 잠재우다

    알레르기 비염에 대해 설명하는 갑산한의원 이상곤 원장.

    의학·건강담당 기자는 종종 고민에 빠진다. “이명 치료 잘하는 병의원이 어디에요” “알레르기성 비염 속 시원하게 치료하는 곳 어디 없어요?” 기자에게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이미 웬만한 병의원을 거쳐온 ‘찌든’ 환자들이다. 이명과 알레르기성 비염은 치명적 질환은 아니지만 삶의 질을 바닥으로 떨어뜨리는 악성 질환이자 치료하기가 힘든 난치성 질환이다. 병의원을 잘못 추천했다가는 이런저런 공박을 각오해야 한다.

    이런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할 때마다 기자는 “치료가 될지 안 될지는 모르지만 믿고 치료를 맡길 수 있는 곳은 있다”고 말한다. 즉, 이 세상에 치료율 100%를 자랑하는 병의원은 양·한방을 합쳐도 없고, 그런 약도 없으며 다만, 의사가 가진 치료 지식과 논리, 술기, 환자를 대하는 태도가 믿을 만한 곳은 있다는 의미다. 특히 자신이 치료하는 환자와 질병에 겸손한 의사라면 금상첨화다.

    이명과 알레르기 비염 치료에 대해 기자가 ‘믿을 만하다’고 추천할 수 있는 의사는 서울 서초구에 자리 잡은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 박사다. 대구한의대 이비인후과 교수를 지낸 그는 각 매체의 칼럼니스트로 활약하고 있으며 TV 강연도 몇 번씩 했지만 유난스럽게 자신을 광고하지 않는다. 스테디셀러 반열에 오른 그의 저서 제목도 ‘낮은 한의학’이다.

    솔직히 선후배 기자를 비롯해 많은 지인에게 추천했지만 욕을 먹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10명이 다녀오면 7, 8명은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 이명과 알레르기성 질환 같은 난치성 질환에 이만한 성적표라면 대박이다. 실제 이 박사는 “완치할 수 있다”는 말을 절대 쓰지 않는다.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만 한다.

    이런 겸손함과 함께 기자가 그에게 신뢰를 보내는 이유는 이들 질환에 대한 이 박사의 해박한 지식과 열성 때문이다. 그는 동서양을 아우르는 치료법뿐 아니라 해당 질환과 치료법이 나오게 된 역사적 맥락과 배경 철학까지 꿰뚫고 있다. 사라진 치료법까지 복원해내는 그의 철두철미함은 혀를 내두를 정도. 거기에 한방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려 애쓰고, 한의학과 서양의학의 접점을 모색하려는 그의 ‘오픈 마인드’도 믿음을 더한다.



    그럼 지금부터 이명과 알레르기성 비염에 대한 이 박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워낙 논리와 근거가 확실해 말을 듣다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우선 이명의 원인과 치료 침법에 대한 부분이다.

    이명 잡는 허임 침법

    “이명은 한자로 ‘耳鳴’으로 쓴다. 귀에 소리가 나는 증상을 왜 한의학은 귀소리라 하지 않고 귀의 울음이라는 감정적인 말로 표현할까? 울음은 당연히 심신의 고통스러운 상태를 표현한다. 고통은 보통 두 가지로 나뉜다. 정신적 고통과 육체적 고통이다. 정신적 고통은 현대적으로 말하면 스트레스다. 스트레스는 인간관계의 스트레스나 직장의 업무, 고민거리, 고부 갈등 등으로 몸의 싸움이 아닌 마음의 싸움이다. 스트레스가 생기면 우리 몸속에서 투쟁을 주도하는 교감신경계가 흥분하는데 설명하자면, 외부의 적과 싸움하는 것과 같은 긴장 상태에 놓이게 된다.

    싸울 때 사람들은 주먹을 움켜쥔다. 그러면 손발의 혈관은 긴장되어 좁아지거나 굳어진다. 심장박동이 빨라지면서 흥분하거나 열 받는 상태가 된다. ‘열 받은 상태’라는 것은 한방적 해석의 핵심이다. 귀 건강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불에 손을 데 뜨거워지면 귓불을 만지면서 식힌다. 귀는 본래 찬 성질을 지니기 때문에 이런 본능적 반응이 나온다. 따라서 귀가 더워진다는 것은 병적인 상태로 진행되고 있다는 증거다.‘동의보감’ 귀울음 조문은 이렇게 표현한다.

    ‘스트레스를 주관하는 경락은 간담이다. 간담이 열을 받으면 기가 치밀어 오르면서 귓속에서 소리가 난다’

    이런 사실은 역사적으로도 증명된다. 선조는 중종의 정비가 아닌 창빈 안씨 사이에서 난 둘째 아들 덕흥군 이초의 아들이다. 조선에서는 처음으로 후궁의 자손으로 왕위에 오른다. 선조의 할머니인 창빈 안씨의 능이었던 동작릉이 풍수가들의 연구대상이었던 점을 생각하면 얼마나 파격적인 왕위 추대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바야흐로 왕권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신권의 시대가 시작되면서 선조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이명증상이 생긴다.

    조선 최고 침법의 부활

    조선왕조실록은 선조의 이명을 치료하기 위해 조선 최고의 침의(鍼醫) 허임이 침을 놓았다고 전하고 있다. 스트레스로 인해 기가 치밀어 올라 귀로 집중된 것을 손발에 침을 놓아 손발 끝으로 기를 분산하고 조화롭게 균형을 잡아 귀울음을 해소했다. 선조를 치료한 허임 침법은 특징이 있다. 일반적인 침법이 득기(得氣)를 위주로 한 번 찌르는 반면 허임의 침법은 세 번에 걸쳐 돌리고 기의 방향에 따라 득기를 하면서 침의 효과를 극대화한다. 이면에 천지인(天地人)이라는 철학적 원리를 내포한 조선 고유의 심오한 침법이다.”

    조선시대 최고의 한의사라 하면 대부분 허준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허준조차 인정한 조선시대 최고의 침의는 따로 있다. 허임(1570~1647년 추정)이 바로 그다. 허임은 선조와 광해군 때 활약한 침의로 공식적인 직함은 종기를 치료하는 ‘치종교수’였다. 조선왕조실록(선조 35년 6월 12일)은 그에 대해 “의관 허임은 모든 침을 잘 놓는다. 일세를 울리는 사람으로 고향에 물러가 있다”고 기록해놓았다. 선조 37년 9월 23일 조선왕조실록에는 허준이 허임에 대해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신은 침을 잘 놓지 못합니다만, 허임이 평소 말하기를 경맥을 이끌어낸 다음에 아시혈에 침을 놓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때 어의였던 허준의 나이 58세, 허임은 34세. 허임의 침 실력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자신의 침법을 ‘침구경험방’과 ‘동의문견방’에 남겨놓았다. 백과사전도 ‘조선 제일의 침의’로 인정하는 그의 ‘침법’은, 그러나 경전과 혈(穴)자리, 오행(五行)이라는 유교적·관념적 철학에 빠진 조선의 풍토에서 대를 잇지 못한 채 사장됐다. 400년이 흐른 지금 허임의 침법인 ‘허임 보사법(補瀉法)’을 각종 문헌과 구전을 종합하고 자신의 치료 경험을 더해 복원시킨 이가 바로 이 박사다.

    조선 침법, 고전 명약 이명 비염 잠재우다

    2010년 2월 갑산한의원을 방문해 치료과정을 지켜보는 일본 도야마의과대학 와타나베 유키오 교수.

    “허임의 보사법은, 예를 들어 5푼 깊이로 침을 찌른다면 침을 먼저 2푼 찌르고 멈췄다 다시 2푼 찌르고 또 잠시 쉬다 1푼 찌르는 방식입니다. 그런 다음 환자에게 숨을 들이쉬게 한 뒤 침을 빼고 손가락으로 침구멍을 막습니다. 그럼 풍선에 바람이 들어가듯 몸의 기가 보(補·가득 참)됩니다. 사법(瀉法)은 이와 반대로 5푼 깊이로 찌른 다음 2푼 빼고 다시 2푼 빼고 나머지를 들어올려 침구멍을 연 다음 환자에게 숨을 내쉬게 합니다. 이렇게 하면 풍선에서 바람 빠지듯 기가 빠져나가게 됩니다.”

    이 박사는 허임의 보사법을 ‘천지인(天地人) 침법’이라 부르는데, 깊이에 따라 상·중·하로 찌르고 빼는 과정이 하늘과 땅과 사람에게서 기를 얻고 빼는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패치로 이명 잡는다

    이 박사는 귀에 집중된 열을 식히고 기를 흩어줘 이명을 치료하기 위해 붙이는 외용약물도 쓴다. 스트레스로 인해 발생한 이명에 붙이는 약은 ‘투관통기약’이다. 막힌 것을 열어주고 기를 통하게 하는 약이라는 뜻. 사향과 지룡, 용뇌가 대표적 약재다. 사향은 사향노루의 배꼽에 형성된 향료다. 사향은 수도자의 넋으로 인정될 만큼 마음속에 생긴 번열을 해소하는 약물. 여기에 추가되는 약물은 지렁이(·#54281;蚓)다. 성질이 아주 차갑기 때문에 편도선의 달아오르는 열을 식혀주고 현대에서도 혈전용해제로 그 진정시키는 작용을 인정받은 약물이다. 이런 약물들이 어우러져 귀 뒤에 붙이거나 귓속에 솜으로 감싸 넣게 되면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열을 진정시켜줘 이명을 치료한다.

    이명, 즉 귀울음을 만드는 정신적 측면의 고통이 스트레스라면 육체적으로는 신장(腎)의 작용과 관계가 많다. 동의보감은 이렇게 적고 있다.

    ‘피로가 겹쳐 과로하거나 중년이 지나서 중병을 앓거나 성생활이 지나치면 신수(腎水)가 고갈되어 음화(陰火)가 떠오르기 때문에 늘 귀에서 소리가 나는데 매미 우는 소리 같기도 하고 종이나 북 치는 소리 같기도 하다.’

    정통 한의학은 신장과 부신이 일치한다고 보는데, 부신의 기능이 떨어지면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고, 자주 깨며, 일어났을 때 피로하고 이명이 심해진다. 사는 게 재미없거나 해야 할 일이 명확하게 떠오르지 않고 불안하다. 얼굴이나 다리가 잘 붓고 이마, 얼굴, 몸에 검은 점이 생기며 주위에서 혈색이 좋지 않다고 말한다. 참을성이 없고 화를 많이 내며 배고픔을 참기 힘들어진다. 알레르기나 이유 없는 알레르기 반응이 생기고 감기에 잘 걸린다.

    이 박사는 부신의 기능이 떨어져 발생한 이명에 대해선 보신(補腎)의 개념에 따라 송진, 석창포 등의 약물을 귀에 솜으로 감싸 넣어 치료한다. 동의보감은 이들 약물이 ‘신기(腎氣)가 허(虛)해 귀에서 바람 부는 소리, 물 흐르는 소리, 종이나 경 소리 같은 소리가 나거나 갑자기 들리지 않는 것을 치료한다’고 적고 있다.

    이렇듯 스트레스와 피로는 귀에 울음을 유발하는 근본적인 원인이다. 이 두 가지를 제외한다면 이명을 일으키는 또 하나의 원인은 갱년기장애다. 이 박사는 “갱년기장애로 인한 이명의 치료는 스트레스로 인해 발생하는 자율신경장애성 이명과 유사하다. 한의학은 단순히 이명의 증상 해소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발병 원인에 관심을 두고 전체적인 건강회복과 이명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애를 쓴다”고 밝혔다.

    이 박사는 이런 문헌적 자료를 바탕으로 다양한 패치 처방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스트레스성 이명에는 사향과 지룡 등의 약물이 들어간 청음고(淸音膏), 신장 기능의 약화로 생긴 이명에는 보신고(補腎膏), 갱년기장애로 인한 이명에는 청음고와 장원고(狀元膏)를 함께 쓴다. 장원고는 배에 붙여 원기를 돋우는 배꼽 패치인데 옛날 선현들이 배꼽 뜸을 뜨던 원리에서 착안했다.

    알레르기 비염 치료율 74%

    이 박사가 허임의 침법인 보사법의 복원에 나선 것은 사실 이명 때문이 아니라 알레르기 비염의 치료 때문이었다. 20만 명 이상의 이비인후과 환자를 진료했지만, 자신의 침이 과연 치료에 효과적인지 의문이 들었던 그는 15년 전 미국 뉴욕에 사는 지인에게서 “중국인 한의사가 침 한 방으로 알레르기 비염을 1년 동안 잠재운다”는 말을 듣게 된다. 허임의 ‘침구경험방’은 일본에서도 1725년과 1778년 두 번이나 간행됐고, 중국에까지 명성이 자자했으므로 중국 의사가 허임의 침법을 구사하지 말라는 법도 없었다. 그는 그때부터 각종 문헌과 구전을 종합하고 자신의 치료 경험을 더해 허임의 보사법을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침을 통해 기를 넣고 빼는 과정, 즉 보사 과정이 일어나는 곳이 폐의 영역이기 때문에 호흡기 질환인 비염, 축농증, 기침, 천식 등의 치료에 효과가 크다”고 설명한다. 또 사법을 쓰면 타이어에서 바람이 빠지듯 소리의 진동을 감지하는 귓속 유모세포의 비정상적 흔들림이 진정되면서 귀울림 현상(이명)이 치료된다는 게 그의 주장. 허임 침법은 실제 진료 현장에서 큰 힘을 발휘한다. 지난해에는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프로야구 선수가 찾아와 단 1회의 침 치료로 콧물, 재채기, 가려움증이 사라지는 효과를 보고는 큰 절을 하고 갔다 한다.

    2006년 대구한의대 교수(안이비인후과 과장)였던 이 박사는 자신의 한방 처방이 얼마나 많은 수의 알레르기성 비염을 치료할 수 있는지를 일본 도야마의과대학 와타나베 유키오 교수팀과 임상시험을 통해 증명해냈다. 한방의 임상시험에 양의가 참가한 것도 최초의 일이었지만 난치성 질환인 알레르기 비염에 대한 한방의 치료효과를 서양의학의 잣대로 증명한 것은 세계적으로도 이례적인 일이었다. 와타나베 교수는 이 박사의 임상시험 프로토콜을 직접 만들고 그 결과를 인증했다.

    임상시험의 결과는 놀라웠다. 대조군 약물이 있는 이중맹검(환자가 어떤 약물이 실험대상인지 모르게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임상시험에서 이 박사의 한방 처방을 받은 환자 74%에서 ‘유의미’한 치료효과가 나타난 것. 이 임상시험은 정부에서 제공한 연구기금으로 이뤄진 것으로, 이는 이 박사의 알레르기 비염 치료 경험을 정부가 인정했다는 의미다. 이와 함께 이 박사는 교수 시절 한방과학화에 관한 양·한방 퓨전 연구 프로젝트로 보건복지부로부터 14억 원의 예산을 지원받기도 했다.

    조선 침법, 고전 명약 이명 비염 잠재우다
    이 박사는 이 임상시험을 바탕으로 전국 한의사를 상대로 보수교육을 실시했으며 한방 이비인후과의 진료 표준을 만들었다. 2010년 2월 갑산한의원을 방문한 와타나베 교수는 “임상시험을 할 때도 한국의 한의학 치료가 과학적이고 체계적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갑산한의원을 와보고 다시 한 번 한방 진료에 놀랐다”고 극찬했다. 와타나베 교수는 이 박사에게서 알레르기 비염 치료에 들어가는 약재 목록을 받아들고 “바로 환자들에게 적용해보겠다”며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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