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이 폐쇄적으로 되어 있으면 아무래도 주인은 내성적이고, 사소한 일에도 잘 삐치기 쉽다. 집이 군더더기가 없고 심플하면 틀림없이 성격도 심플하다. 욕심도 별로 없고, 사색을 많이 해서 뭐가 중요하고, 뭐가 덜 중요한지를 쉽게 간파한다. 남의 집을 방문했을 때 구조나 전망, 가구배치, 인테리어 등도 보지만, 필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기운(氣運)’이다.
기운? 기운은 눈에 보이지 않는 요소다. 그 집에 들어갔을 때 따뜻한 기운이 도는지, 밝은 기운이 도는지, 차가운 기운이 도는지, 산만한 기운이 도는지가 중요하다. 사무실도 마찬가지다. 국회의원 사무실이 들어서 있는 국회의원회관에 들어가보니까, 기운이 스산했다. 썰렁하고 냉정한 기운이 가득했다. 여야 간에 대립하고, 자기 보존을 위해 적과 동지가 없는 투쟁을 하는 곳이다보니까 그런 에너지가 가득 차 있는 것 같았다. 거주하는 사람의 심리 상태가 눈에 보이지 않는 기운이라는 요소로 결집된다. 기운을 대강살펴보면 집주인의 평소 심법(心法)을 추론해볼 수 있다.
육바라밀송이 있는 마당
정찬주 작가가 사는 전남 화순(和順)의 ‘이불재(耳佛齋)’ 현관에 들어서자 청량하다는 느낌이 밀려왔다. 판소리 ‘호남가(湖南歌)’의 가사는 ‘화순은 풍속이 순하다’고 되어 있다. 산세가 부드러워 화순이라 이름 지었을까? 바위가 날카롭게 솟아 있는 산이 별로 없다. 둥그런 육산이 많아서 그런 가사를 지었을 성싶다.
큰 도로에서 벗어나 4~5km 계곡 길을 따라 들어가니 9세기 때의 선승인 철감선사(798~868)가 창건한 쌍봉사(雙峰寺)가 나온다. 절은 계곡을 따라 들어가 깊숙한 곳에 자리 잡아야 그윽한 분위기가 있다. 쌍봉사는 고즈넉하다. 시끄럽지 않아서 절 맛이 난다. 국보로 지정된 철감선사 부도탑을 구경하다 절 입구 쪽을 바라보니 앞산 언덕에 기와집이 한 채 있다. 쌍봉사의 부속 암자인가 싶은 곳에 위치한 이 기와집이 정찬주의 집이다. 글을 쓰는 무염산방(無染山房)인 것이다. ‘오염되지 않은 산방’.
“요즘은 청량리(淸凉里)에 가도 기운이 청량하지 못하고 매연만 잔뜩 휘날린다. 여기는 청량리도 아니고 청량산도 아닌데 왜 이렇게 집에 들어오니 기분이 상쾌해지는가?”
“나는 잘 모르겠는데, 조 선생이 그렇게 느꼈다면 다행이다. 하루 종일 책 보고, 산책하고, 글 쓰는 일에만 집중하니 그런지 모르겠다.”
“뭘 먹고 사는가?”
“풀만 먹고 산다. 가능하면 육식은 안 한다.”
“법정 스님이 정 작가에게 무염(無染)이라는 법명을 지어준 것도 그냥 지어준 것이 아닌것 같다. 법정 스님은 생전에 여기에 자주 왔는가?”
“가끔 차 마시러 놀러 오셨다. 내가 불일암에 놀러 가기도 했다. 지금 저 사랑채에 걸린 ‘무염산방’ 현판 글씨도 스님이 직접 써준 것이다. 현판에 낙관은 없다. 스님이 ‘낙관을 찍으면 왠지 자기를 과시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낙관 없이 써주고 가셨다.”
나는 50대에 들어서면서 없던 버릇이 하나 생겼다. 상대방과 이야기를 30분 정도 나눠보다가 머리가 아파지고 몸이 피곤해지면 얼른 자리를 피해버리는 것이다. 40대까지만 해도 참고 견디었지만, 50대가 되며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전술을 선택했다. 복잡한 상황에서 복잡한 생각을 하며 많은 이야기를 하면 오래 못가서 피곤해진다. 그래서 상쾌한 기분이 드는 사람하고만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에너지가 떨어져서 그런가, ‘청탁(淸濁)을 가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하다보면 가려지게 된다.
그러다보니 담양의 소쇄원(瀟灑園)이란 이름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소쇄’는 물을 뿌린 것처럼 맑고 시원하다는 뜻이다. 소쇄원이라 이름 지은 것은 역으로 그 이름을 지은 사람에게 얼마나 머리 아픈 일이 많았을까를 생각하게 한다. 무염산방의 소쇄하고 청량한 기운을 가진 주인과 접하면서 순식간에 든 생각이다.
이불재는 쌍봉사의 부속 암자로 생각될 만큼 암자 분위기가 나는 집이다. 대문도 철제가 아니고 나무로 엮은 사립문이다. 대문 옆으로는 나뭇가지 넝쿨이 둘러싸고 있다. 옆으로 둥그렇게 돌담이 연결되어 있다. 돌담 위에는 기와가 얹혀 있다. 원래 돌담이 없었는데, 법정 스님이 와서 ‘담벼락이 없으면 사람 허리띠가 없는 것과 같다. 허리띠가 없으면 허전하다. 낮게라도 담을 만들어라’는 충고를 해서 설치했다고 한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조그만 연못이 있다. 연못 속에는 연꽃의 두꺼운 녹색 잎이 가득 차 있다. 연못 옆에는 키가 크지 않은 소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소나무 가지가 6갈래라고 해서 주인은 ‘육바라밀송’이라고 이름 붙였다고 한다. 육바라밀은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를 가리킨다. 연못 뒤로는 방 2칸이 있는 사랑채가 있다. 손님이 오면 이 방에서 머물 수 있다. 무염산방이라는 현판이 걸린 방이다.
육바라밀송을 왼쪽으로 보면서 오른쪽으로 틀어 돌계단을 2, 3개 오르면 주인이 거처하는 한옥의 현관문이 나온다. 현관문 위에는 나무를 둥그렇게 해놓았다. 해인사 장경각으로 들어가는 현관문 위가 이렇게 아치형으로 되어 있다. 장경각 들어가는 문을 본떠서 만들었다고 한다. 안으로 들어가면 마룻 바닥이 나오는데, 거실 겸 방문객과 차를 마시는 다실이다. 찻잔들과 차 주전자, 그리고 대추나무 차판이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