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 18일 오후 5시 반, 한국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주경기장. 흰 정장을 차려입고 무대 중앙으로 나온 가수 강타와 보아는 4만여 관객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계 첫 가상 음악국가 탄생을 알렸다. 이날 선포식은 올림픽 개막식을 연상케 했다. 한국을 비롯해 미국, 말레이시아, 이스라엘, 프랑스 등 세계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 나라 이름이 호명될 때마다 자국 국기가 그려진 피켓을 앞세우고 장내로 입장해 주경기장 트랙을 돌았다. 피부색도 국적도 다르지만 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SM엔터테인먼트(SM) 소속 가수들의 팬이라는 것이다.
30여 개국 팬들이 모두 입장하자 스타디움 주변에는 SM 소속 가수 52명의 전신사진이 내걸렸다. 일부 멤버는 커다란 ‘SM타운’기를 펼쳐들고 트랙을 돌았다. 동방신기가 ‘SM타운’기를 게양하고 강타와 보아가 선언문을 낭독한 뒤에는 슈퍼주니어 예성과 소녀시대 태연 등이 나와 축가를 불렀다. ‘SM타운 국민’에게 바치는 ‘디어 마이 패밀리(Dear My Family)’였다. 대형 스크린에는 각국을 대표하는 팬들의 축하인사가 이어지고, 장내를 메운 관중은 환호성을 지르며 축제 분위기를 즐겼다. 함께하는 모든 이가 ‘SM타운 국민’이라는 연대감으로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가상국가 선포식은 ‘SM타운 라이브 월드투어3 인 서울’ 공연을 보러 세계 각국에서 온 팬들을 위한 일종의 이벤트였다. 김은아 SM 홍보팀장은 “올해 월드투어가 5월 미국 로스앤젤레스(LA) 공연을 시작으로 대만, 일본, 한국에서 열렸고 9월 22일에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다”며 “케이팝 열풍이 전 세계에서 불고 있고, 한국의 수도 서울은 케이팝의 본거지인 만큼 서울 공연을 좀 더 특별하게 꾸미려고 음악으로 하나 되는 가상국가 선포식을 오프닝 세리머니로 준비했다”고 밝혔다.
연예계 관계자들은 SM의 가상 음악국가 선포식을 두고 “케이팝과 SM 브랜드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고도의 마케팅”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는 “SM이 공연을 사전 예약한 팬들에게 발급한 SM타운 여권은 단순히 일회성 이벤트 상품이 아니라 SM타운 국민이라는 공식 인증서나 다름없다”며 “여권 소지자에게는 SM이 여는 모든 공연과 행사에 갈 때마다 스탬프를 찍어주고 특전도 제공하기 때문에 팬들의 소속감과 충성도를 높이는 중요한 매개체 노릇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SM이 SM타운 서울 공연에서 가상 음악국가 탄생을 알린 건 가벼이 볼 일이 아니다. 이 회사의 실질적 오너인 이수만 프로듀서는 2000년대 중후반부터 직원들에게 “아시아가 음악시장의 흐름을 주도하고, 한류가 국경과 인종을 초월한 가상 음악국가의 중심이 될 날이 머지않았다”고 말해왔다고 한다. 1990년대 중반 아이돌그룹 H·O·T의 등장 이후 팬클럽 중심의 오빠부대가 국내 음악의 흐름을 주도해왔다면, 앞으로는 한류 콘텐츠에 버추얼 네이션(virtual nation·가상 국가) 개념을 도입한 엔터테인먼트 국가가 세계 음악의 흐름을 주도할 것이라고 본 것이다.
이 프로듀서가 공식석상에서 ‘버추얼 네이션’을 처음 언급한 것은 지난해 8월, 국내 최대 학술축제인 경영학회 통합학술대회 초청 강연에서다. 그해 6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SM타운 라이브 월드투어가 유럽의 케이팝 열풍을 입증하며 연일 화제를 모으던 때라 ‘버추얼 네이션’이라는 신조어를 꺼내든 한류 전도사의 강연은 큰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강연에서 그는 “현재 지식과 정보들은 유튜브, SNS, 스마트폰, 스마트TV 등을 통해 빛의 속도처럼 빠르게 시공을 초월해 전달되고 교환되고 있다”며 “앞으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버추얼 네이션이 급부상할 것이고 SM타운이 그 중심에 자리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유튜브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SM의 콘텐츠를 시청하는 팬이 전 세계적으로 급속히 늘고 있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