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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淸-日전쟁 치닫나

센카쿠 사태-미·중·일 해양전략 심층 분석

  • 이정훈 기자│hoon@donga.com

21세기 淸-日전쟁 치닫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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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워싱턴에서 열린 미일 대(對) 아세안 협력회의에 참석한 한 스즈키 총리는 이를 발전시켜 일본으로 이어지는 해로를 지키는‘1000해리 전수방위’ 개념을 제시했다. 유사시 일본의 생명줄은 원유 수송로 확보다. 일본은 중동에서 원유를 수입하는데, 유조선들은 싱가포르 인근의 말라카해협-대만과 중국 사이의 대만해협을 지나 일본으로 온다. 일본은 인도양에서 말라카 해협-대만해협까지는 미국 해군이 지키지만, 대만해협에서 일본으로 이어지는 1000해리는 해상자위대가 지키겠다는 전략을 내놓았다.

이를 나카소네 총리가 더 발전시켰다. 유조선이 많이 다니는 남서 항로뿐만 아니라 미국과 무역하는 태평양 항로 등에도 1000해리 전수방위 개념을 적용한 것. 나카소네 총리는 ‘일본열도 불침(不沈)항모론’을 내세웠다. 유사시 소련의 태평양함대가 소야(宗谷)-쓰가루(津輕)-쓰시마(對馬島) 등 일본 주변의 해협을 통해 태평양으로 나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1000해리 전수방위를 전 방위로 확장시켰다.

1000해리 전수방위 전략은 1991년 소련이 무너짐으로써 존폐의 기로에 섰다. 일본은 핵과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하는 북한을 새로운 가상적으로 보고 대응책 마련에 들어갔다. 핵탄두를 단 북한 미사일은 아주 빠르게 날아오기에 미국과 공동으로 MD(미사일 방어) 체계를 구축하기로 하고, 북한이 미사일을 기립시키면 일본을 공격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선제공격해야 한다는 주장을 반복했다. 이는 방어를 위한 공격이기에 평화헌법 정신을 어긴 것이 아니라는 설명을 덧붙이며.

2004년 일본은 ‘신방위대강(大綱)’을 통해 이 개념을 ‘적극적 전수방위’로 정리했다. 1000해리라는 거리를 없애고 ‘적극적’이라는 단어를 넣어, 일본을 위협하는 세력은 1000해리가 넘는 곳에 있어도 선제공격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2010년 일본은, 그때까지의 방위전략은 상대의 행동이 있을 때 대응하는 소극적인 것이었다며, ‘동적(動的)방위력’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동적방위를 하려면 상대의 의도를 미리 파악해 대처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감시-정찰 자산과 초정밀 유도무기가 있어야 한다. 일본은 이지스함과 E-767 경보기 등을 도입했다.



그리고 센카쿠 문제가 발생하자, 이 전력을 중국 쪽으로 돌리고 있다. 중국의 의도를 파악해 중국이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 예측해가며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센카쿠 영유권 다툼에서 일본은 기세가 꺾인 것 같지만, 강력한 맹방 미국이 버텨주기 때문에 끄떡도 하지 않고 있다.

류화칭의 적극적 방어

오랫동안 중국 해군은 지상군으로 편성된 인민해방군의 일부로 있었기에 보잘것없었다. 대륙 석권 후에도 중국 공산당은 내부 통일에 주력했기에, 해군은 외부 세력이 중국으로 접근하는 것을 막는 연안방어 전략만 펼쳤다. 이는 육상에 설치한 포와 미사일로 접근해오는 적 함정을 공격해 쫓아버리는 것이라, 중국 해군은 함대를 만들어 먼 바다로 나갈 수 없었다. 중국 해군은 작은 잠수정과 유도탄정, 어뢰정 등을 도입해 접근해온 적 함대를 게릴라식으로 공격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마오쩌뚱에 이어 집권한 덩샤오핑은 제1, 2차 세계대전과 같은 전쟁은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며 ‘세계대전 불발생론(不發生論)’을 주장했다. 당분간 초강대국들이 싸우는 핵전쟁은 일어나지 않고 작은 전쟁만 일어날 것이므로 핵전쟁에 대한 과도한 대비를 줄이고 국지전에 신경 쓰라고 한 것이다. 1979년 이러한 관점에서 중국은 통일 후 화교(華僑)를 쫓아내며 반중(反中)의식을 드러낸 베트남을 공격하는 ‘징월(懲越)전쟁’을 감행했다.

개전과 동시에 중국군은 베트남 영내진입에 성공했으나 대대적인 역습을 당해 패퇴했다. 그러자 중국은 ‘어쨌든 베트남을 징벌했다’는 말로 패배를 미화했다. 이 전쟁을 계기로 중국은 중국군의 무기가 크게 낙후돼 있고 국지전에서도 승리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러한 때인 1982년 5월 류화칭(劉華淸)이 해군 출신으로서는 최초로 해군사령원에 취임했다. 류화칭은 ‘해양을 통해 들어오는 위협은 육지가 아닌 해양에서 막아야 한다. 앞으로는 해양 이익을 놓고 각국이 충돌할 것이므로 중국 해군은 큰 함정을 갖춰야 한다’며 중국 해군도 바다로 나가자는 ‘To the Sea’, 중국판 대양해군 전략인 ‘근해방어전략’을 내놓았다.

함재기 없는 중국 항모

1986년 류화칭은 중국 앞바다에 있는 섬들의 체인을 중국 해군이 지켜야 할 방어선으로 삼아야 한다며, ‘도련(島鍊·Island Chain)’ 전략을 내놓았다. 일본열도-난세이열도-필리핀을 잇는 선은 제일 먼저 지켜내야 할 제1도련, 사이판-괌-팔라우 군도를 제2도련, 하와이 근처 날짜 변경선쯤을 제3도련으로 선정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근해방어전략도 버리고 원해(遠海)방어를 해야 한다며, ‘적극적 방어전략’을 내놓았다.

도련을 지키려면 악천후에도 굴하지 않는 대형 함정을 먼 바다에 항상 띄워놓는 ‘On the Sea’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이 때문에 중국은 러시아판 이지스함인 ‘소브레멘니’급 구축함 두 척을 도입하고, 핵무기를 탑재하는 ‘샤(夏)’급 전략핵추진잠수함 한 척을 건조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에서 구소련이 건조하다 중단한 바랴그 항모(6만7500t)를 구입해, 추가 건조한 후 지난 9월 ‘랴오닝(遼寧)함’으로 명명해 진수했다.

그러나 중국의 On the Sea 전략은 너무 서둘렀기에 허점이 많다. 함재기를 마련하지 않고 랴오닝 항모를 진수한 것이 대표적이다. 중국은 러시아의 수호이-33을 참고해 J-15 함재기를 개발하기로 했으나, J-15는 이제 시제기가 나온듯 하다. 2005년 진수한 한국의 독도함은 탑재할 헬기가 없어 지금도 빈 배로 다니는데, 랴오닝함도 같은 꼴이 된 것이다.

도련 전략을 펼치려면 도련 선상의 섬을 영유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도련상의 섬은 전부 다른 나라의 영토이니, 중국은 조금이라도 영유권을 주장할 틈이 있으면 파고들어가 중국 섬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센카구-스카보로-쯔엉사-호앙사-이어도 다툼을 일으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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