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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기록, 그 진실과 왜곡 사이 ⑦

역사는 사실에 기초하고 영화는 허구로 먹고산다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과 영화 ‘광해’

  • 오항녕| 전주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hallimoh@hanmail.net

역사는 사실에 기초하고 영화는 허구로 먹고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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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역사

그런데 나의 책과 관련해 벌어지는 논의에 대해, 그 이견(異見), 찬반(贊反)과 상관없이 저자인 나는 조금 슬프다. 그리고 내가 글을 좀 못 쓰나보다 하는 생각도 든다. 왜냐하면 나의 책, ‘광해군’은 광해군이 실제로 백성을 생각하고 나라를 걱정했던 성군(聖君)은 못돼도 명군(明君)은 된다는 항간의 풍문을 부정하기 위해 쓴 글이 아니다. 이미 광해군에 대한 비판은 ‘조선의 힘’(역사비평사, 2010)에서 했다.

그러니까 이번 ‘광해군’은 비판보다 ‘그 시대에 대한 이해’에 초점이 있었다. 그 이해를 위해 역사서술에서 두 가지 실험을 했다. 하나는 이야기, 또 하나는 역사서술의 시각이었다. 모두 ‘역사를 어떻게 쓰는가’(이상길 외 옮김, 새물결, 2004)의 저자 폴 벤느(Paul Veyne)와 홉스봄 두 분에게 신세를 졌다.

예전 기억. 역사공부를 하고 있다고 나를 소개하면 사람들은 재미있는 얘기를 해달라고 했다. 한동안 그게 싫었다. 원래 얘기를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역사학자가 옛날얘기나 하는 사람인 줄 아느냐’, 이렇게 생각했다. ‘귀여운’ 자부심이었다. 지금 보니 재미있는 얘기 해달라는 분들이 맞았다. 역사는 재미있는 이야기다. 울고 웃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무엇보다 안타까워할 만한 이야기.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역사학자가 되고 싶은데 그럴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고, 이번 책에서 처음 그걸 시도했다.

벤느는 “역사는 첫째 진실의 축적이고, 둘째 줄거리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했다. ‘광해군, 그 위험한 거울’은 광해군 전후의 시대사다. 흔히 역사는 해석의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걸핏하면 “보기 나름”이라고 말한다. 맞다. 부분적으로는. 그러나 진정한 역사공부는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사실(史實)에는 늘 구멍이 뚫려 있다. ‘사람의 눈은 서로 다르다’는 그 지점에서 말이다. 하지만 사료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상황을 합리적으로 추론해 공감할 수 있는 진실을 찾아나가는 지루하고 재미있고 때로는 숭고한 여정, 그것이 진정한 역사공부다. 그래서 역사공부는 연대의 삶, 공감의 삶, 배려의 삶을 확장시키는 토대라고 굳게 믿는다.



역사는 사실에 기초하고 영화는 허구로 먹고산다

영화사 측은 ‘광해, 왕이 된 남자’가 역사와 팩션이 섞인 사극이라 말하지만 이름, 용어, 관직을 빼면 모두 허구다.

접근방법 : 세 가지 요소

그래서 다시 읽었다. 이제는 광해군 담론을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을 이해하고 위로하기 위해서. 유령을 드러내기 위해 담론이 딛고 있는 현실을 파보았던 셈이다. 역사를 설명하는 세 가지 요소를 염두에 두면서.

인간은 맨땅에 태어나지 않는다. 타고 나면서 주어진 조건이 있다. 먹고살아야 한다는 생물학적, 경제학적 조건 등. 이것은 객관적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객관적 조건만 생각하면 쉽게 결정론에 빠진다. 반도(半島) 근성을 내세우는 지리적 결정론, 계급만 내세우는 경제 결정론, 원래 민족성이 그렇다는 민족성 결정론 등. 객관적 조건만 고려하면 모든 걸 설명할 수 있을지 몰라도 사람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책임을 질 수도 없다.

인간은 주어진 대로만 살지 않는다.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때론 생각하지 않고 고민하지 않으면서 뭔가 비전을 만들고 추구하고 가치를 부여한다. 목적의식을 가진 존재로서의 삶이다. 객관적 조건의 맞은편에 있는 의지다. 이것을 강조하면 목적론(目的論)이 된다. 그 극단에 신(神)이 있다. 이런 관념론적 목적론은 흥미롭게도 속류 유물론의 목적론과 통한다. 목적의식만 강조하면 도덕적 요청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사태를 설명할 때 빈곤해지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취약하다.

마지막으로 타이밍, 곧 우연이다. 우리가 역사에서 느끼는 숱한 아쉬움은 모두 이 우연의 엇갈림에서 발생한다. 얼마나 많은 연인이 타이밍의 절묘한 어긋남 때문에 이별하는가.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광해군 시대 시스템의 작동(객관적 조건), 사람들의 비전 또는 욕망(의지), 그리고 우연한 사건들의 엇갈림과 부딪침을 살펴보고 싶었다. 아무래도 이런 나의 시도는 실패한 듯하다. 아직도 사람들은 광해군이 벌거숭이인지 아닌지에 더 관심이 많은 걸 보면.

영화 ‘광해’를 본 분이나 볼 분을 위해 서비스 하나 하겠다. 자꾸 영화 어떤 장면을 지적하면서 그게 진짜냐고 묻는 분들 때문에 한꺼번에 대답해둔다. 우선 영화 ‘광해’ 중 광해, 허균, 대동법, 백성, 명(明)나라, 중전, 상궁, 상참 등 이런 이름, 용어, 관직 빼고 모두 허구라고 보면 된다. 영화니까, 하고 이해하면 된다.(실은 이러면 안 된다. 관객이 실제 사실과 혼동하니까.)

영화, 진짜예요?

영화 도입부에 배경은 광해군 8년, 2월 28일이라고 했다. 이어 15일간의 기록이 실록(‘광해군일기’를 말함)에서 빠져 있다고 했다. 나중에 허균(류승룡 분)이 ‘승정원일기’ 15일분을 빼오라는 말을 하는데, 승정원일기와 실록은 다른 기록이다. 광해군대 ‘승정원일기’는 인조 2년(1624) 이괄의 난 때 불타서 전해지지 않고, ‘광해군일기’ 2월 28일 이후 15일 동안 기록이 빠진 적이 없다. 혹 내가 잘못 기억하고 있나 해서 다시 확인했더니 2월 29일, 3월 1일 기록도 다 있다. 그러니까 도입부터 픽션이다.

2월 28일 기록에, ‘숨길 만한 일은 조보(朝報)에 싣지 말라’는 말이 실려 있다. 영화에서처럼 역적모의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 당시 선조의 왕비였던 인목대비를 폐위시키자는 논의 때문이다. 광해군대에는 형인 임해군을 유배 보낸 이후 명나라 사신에게 은(銀)을 뇌물로 주어 구슬리는 것이 상례가 되었는데 폐모 논의마저 사신의 귀에 들어가면 안 된다는 구차한 이유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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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항녕| 전주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hallim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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