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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함께하는 우리 산하 기행 16

옛사람의 樓閣과 園林 찾는 고상한 여로

전남 담양

  • 최학│우송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jegang5@yahoo.com

옛사람의 樓閣과 園林 찾는 고상한 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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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는 전혀 다른 투이지만 경상도 밀양 명문가 출신의 시인은 소쇄원에서 소쇄옹께 문후 여쭙지 못함을 아쉬워한다. 사람이 산을 사랑하나 산이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까닭을 아는 터라 굳이 이곳에다 뒷담 없는 정자를 짓고 살았던 이의 안쓰러운 외곬 사랑을 짐작해보는 시인은 이들 첩첩한 기와며 아이들 소꿉장난처럼 꾸며놓은 장치들이 이고 있는 문명 또는 운명의 신산스러움도 헤아릴 줄 안다.

알려져 있듯이 원림은 조선 중종 때 인사인 소쇄 양산보가 조성을 시작했다. 15세에 상경, 조광조의 문하에 들었던 그는 기묘사화로 인해 스승이 유배를 떠나고 최후를 맞는 모습까지 지켜보았다. 조정의 권력투쟁에 환멸을 느낀 그는 고향인 이곳으로 내려와 소쇄원을 경영하며 독서를 즐겼다. 소쇄원 경영에는 당대의 문사인 송순과 김인후 등도 참가했는데 송순은 양산보와는 이종사촌 간이며, 김인후는 사돈 간이었다. 소쇄원의 조형 특징 등에 대해서는 하도 적어놓은 데가 많으니 굳이 또 옮겨 적을 일은 없다.

식영정과 환벽당

옛 선비들이 가졌던 한유(閒遊)의 흔적을 더듬어볼 수 있는 누각과 정자, 정원들은 대개 지금의 광주호 주변에 흩어져 있다. 그러니까 명옥헌, 식영정, 환벽당, 소쇄원, 취가정 등이 이쪽이며 나중에 언급하는 면앙정, 송강정은 고속도로 너머 담양 읍내 쪽에 있다. 따라서 면앙정, 송강정을 먼저 둘러보고 광주호 쪽으로 들든지 아니면 광주호 주변을 먼저 구경한 뒤에 담양 쪽으로 나가든지 개인의 사정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호남고속도로 창평나들목을 빠져나오면 887번 국도를 만난다. 이 도로를 타고 오른편으로 달리면 광주호로 갈 수 있다. 도중에 이정표를 따라 옆 도로로 들면 명옥헌으로 가는 길이다. 광주호 호안도로를 따라 직진하면 식영정, 가사문학관, 소쇄원을 차례로 만난다. 멀리 무등산을 바라보고 가까이는 푸른 호수를 대할 수 있는 이 호안도로 주변의 풍광은 아름답다. 곳곳에 소문난 음식점들도 있어 잠시 휴식을 취하며 남도의 별미를 맛보는 일도 어렵지 않다.



번듯한 현대식 건물과 넓은 주차장이 있는 데가 가사문학관이고, 그 너머 산 언덕에 날렵하게 선 정자가 식영정이다. 고등학교 시절, 별 재미도 없지만 시험 때문에 외고 해석하느라 골머리를 썩였던 그 성산별곡, 사미인곡, 면앙정가…. 그 기억과 연분만으로도 이곳은 사람에 따라 지극히 감회 깊은 자리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이름 하나가 송강 정철이다. 학창 시절, 송강의 정치적 행적은 거의 알지 못한 채 그가 지은 작품부터 먼저 중뿔나게 공부해야 하는 우리네 처지에서는 자칫 그 이름이 ‘만고에 빛나는’ 것이 될 수도 있고, 뒤늦은 각성에 의해 턱없이 급전직하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 그래서 교사들은 고전시간에도 문학 외적인 가르침을 풍부히 하여 학생들에게 이해의 균형감을 줘야 마땅하다.

실은 나도 오랜 기간 그와 씨름을 했으며 아직도 하고 있는 형편이다. 조선 중기의 동서당쟁을 공부하다보면 정철만큼 빈번히 이름이 오르내리는 인사도 드물다. ‘정여립 사건’으로 발발한 기축옥사(己丑獄事)의 뒤처리에서 보이는 그의 행적도 세상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이다. 서인의 시각에서 보면 송강은 과격 우직할 정도로 정의로우며 평생의 지기로 아깝지 않을 만큼 다정다감하고 파당(派黨)을 위해 헌신적이다. 그러나 반대당의 입장에서 보면 그처럼 간사 음험할 수 없다. 끝없는 권력욕의 화신이며 비정할 정도로 잔인 참혹한 성격의 소유자가 되는 것이다.

식영정, ‘그림자가 쉬는 정자’란 뜻을 가진 이곳도 송강이 노닐던 곳이다. 그래서 환벽당, 송강정과 더불어 ‘정송강 유적’이라는 이름까지 붙었다. 이 인근이 ‘성산별곡’의 그 ‘성산’이다. 원래 이 정자는 서하당 김성원이 스승이자 장인인 임억령을 위해 지었다. 김성원은 송강의 먼 친척인 동시에 이곳 성산에서 함께 공부하던 동학이기도 하다. 김성원이 살던 서하당과 부용정은 식영정 맞은편에 따로 복원돼 서 있다. 정자로 오르는 초입에 ‘송강 정철 가사의 터’라는 큼직한 표석까지 있는 터라 이제 이곳의 주객도 바뀐 셈이다.

한쪽 귀퉁이에 작은 방을 붙이고 있는 정자의 쪽마루에 걸터앉아 광주호를 내려다보는 조망이 일품이다. 자미탄(紫薇灘)이란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여울이 흘렀던 그 예전에는 물론 더 좋은 경치였으리라. 돈 있고 힘 있는 양반 가문에 태어난 덕에 평생 괭이 호미 손에 안 쥐어보고 어린 날부터 이런 경치 좋은 데서 책이나 읽다가 서울에 가서 권세를 휘두르고, 또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훌쩍 고향 땅에 내려와 종자들이 가져다 차려주는 술과 음식을 먹으면서 같은 처지의 벗들과 어울려 시나 읊고 바둑이나 두면서 세월을 즐길 수 있었던 옛사람들이 부럽지 않은 바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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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학│우송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jegang5@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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