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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은 거리에서 마구잡이로 여성을 체포해 위안소에 넣었다”

위안부 강제동원 자료 공개 정진성 서울대 교수

  • 송화선 기자│spring@donga.com

“일본군은 거리에서 마구잡이로 여성을 체포해 위안소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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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의의 강제성

“그런데도 일본은 계속 ‘증거가 없다’고 해요. 심지어 2000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 여성국제법정’에 11개국 피해자가 직접 참석해 자신들의 강제동원 체험을 증언한 것조차 증거가 안 된다고 우기죠. ‘정부가 물리력을 사용해 위안부를 동원하도록 지시한 문서가 없다’는 겁니다.”

정 교수는 “그들의 주장은 ‘길 가는 여성을 납치해 위안소에 넣으라’고 명시적으로 적은 공문서가 발견되지 않는 한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며 “일본군위안부제도의 강제성 범위를 ‘정부에 의한 물리적인 연행’ 부분으로 축소해, 그쪽으로 논의를 몰아가려는 일종의 정치 게임”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8월 27일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가 의회에서 “강제 연행을 했다는 사실이 문서로 확인되지 않고, 일본 측 증언도 없었다”고 한 것은 이런 맥락이다.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이 “군이 위안소를 공적으로 관리했다는 것과 위안부를 강제로 끌고 갔다는 건 전혀 다른 문제”라고 한 것도 맥이 같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이미 일본군위안부 제도 자체의 강제성을 널리 인정하고 있다.

정 교수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정부가 군위안소 제도를 기획하고 설립·운영하는 데 체계적으로 개입한 것은 이미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심지어 일본 정부도 1996년 유엔 인권위원회에 자체 조사 결과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위안소는 당시 일본군 당국의 요청에 의해 설립되고 운영됐다 △일본군은 위안소의 설립과 경영 및 위안부 수송에 직간접으로 관여했다 △위안부 모집은 군의 요청을 받은 사설업자가 주로 행했고 많은 경우 그 여성들은 감언이나 강제에 의해 자신의 의사에 반해 동원됐으며, 간혹 관료나 군인이 직접 동원을 한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정진성 著 ‘일본군 성노예제’ p220~221) 이 상황에서 법적인 책임을 피할 최후의 보루로 “비록 일본 정부가 위안소를 기획·설립·운영했다 해도, 여성이 돈을 벌기 위해 직접 지원했거나 사설 중개업자들의 사기나 강제에 의해 들어왔다면 정부가 책임질 일은 아니다”라는 ‘궤변’을 내놓는 셈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일본 내에서조차 양심적인 지식인 등으로부터 비판받고 있다. ‘일본의 전쟁책임 자료센터’ 공동 대표인 요시미 요시아키 일본 주오대(中央大) 교수는 2007년 발표한 논문 ‘일본 군위안부 문제 연구의 성과와 과제’에서 “중요한 것은 관헌이 모집 현장에서 직접 관여했는지가 아니라 총독부 혹은 군이 전체로서 (위안소를) 관리·통제하고 있었다는 점”이라며 “위안부 창설과 운영의 주체가 군이었으니, 모집 당시나 이들을 부리는 데 위법행위가 있었다면 주된 책임은 군이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소영 당시 충남대 강사 번역)

일본군의 성노예

“일본군은 거리에서 마구잡이로 여성을 체포해 위안소에 넣었다”
1993년 ‘고노 담화’를 발표했던 고노 요헤이 전 관방장관도 최근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료상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고통을 겪고 있는 여성의 존재와 전쟁 중의 비극까지 없었다고 주장하는 데 슬픔을 느낀다”고 했다. “(정치인들이 일본군위안부를 부정하면) 일본의 인권 의식이 의심받고 국가의 신용을 잃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국제사회는 이미 일본의 이런 태도를 강력하게 규탄하고 있다. 2007년 7월 미국 하원은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가 책임질 것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일본 정부는 제국 군대가 제2차 세계대전 중 아시아태평양지역 식민지와 점령지에서 젊은 여성들을 ‘위안부’로 알려진 성노예가 되도록 강제한 것에 대해 명백하고 분명한 방법으로,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사과하고 역사적인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로 시작하는 이 결의안은 구체적으로 “△일본 총리가 공개적인 사과 담화문을 발표할 것 △일본군을 위한 성노예화와 인신매매가 일어난 적 없다는 주장에 대해 분명하고 공개적으로 반박할 것 △이 끔찍한 범죄에 대해 현재와 미래 세대에 대해 교육할 것을 요구했다. 미국에 이어 네덜란드의회(11월)와 캐나다의회(11월), 유럽의회(12월)도 유사한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했다.

유엔도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여러 개의 보고서를 내놨다. 1998년 8월 인권소위에서 압도적 지지로 채택된 ‘제2차 세계대전 중 설치된 위안소에 관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분석’ 보고서에는 “일본 정부는 잔학행위에 대해 개인배상 등 구제조처를 강구해야 하며, 강간소의 설치·감독에 책임이 있는 정부·군 관계자를 소추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정 교수는 “해외 의회 결의안과 유엔보고서 등에서 학자와 정부 관계자들이 이 문제를 지칭할 때‘일본군성노예제(Japanese military sexual slavery)’라는 표현을 쓴다”고 했다. 위안부는 ‘일본군성노예’라고 부른다. 1996년 공식적으로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조사한 게이 맥두갈 유엔 인권소위원회 보고관은 유엔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군위안소를 ‘강간센터(rape center)’라고 칭했다.

“일본 정부와 일본군이 위안부를 강제적으로 동원하고 관리했으며, 그것은 명백한 범죄라는 걸 국제사회가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 사실을 부인하는 건 일본 정부뿐이에요.”

정 교수는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국제사회에 앞장서 제기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영어 명칭도 ‘일본군대성노예제도에 끌려간 여성들을 위한 한국위원회(the Korean council for the women drafted for the military sexual slavery by Japan)’라고 소개했다. 그렇다면 국내에서는 왜 ‘정신대’와 ‘위안부’라는 용어가 여전히 쓰이는 걸까. 정 교수는 이에 대해 “역사적인 배경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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