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호

데뷔 10년 맞은 팔색조 배우 황정음

“걸그룹 슈가 시절 끔찍 덕분에 웬만해선 안 아파요”

  • 김지영 기자│kjy@donga.com

    입력2012-10-23 14: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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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옥상서 물풍선 던지던 악동, ‘슈가’ 하면서 착해져
    • 일·사랑 모두 중요하지만 공사는 구분
    • 찰떡호흡 파트너는 최다니엘, 이상형은 차태현
    • CF 찍어 모은 돈, 수익형 재테크에 분산투자
    • 연기 한계와 슬럼프, 긍정의 힘으로 극복
    데뷔 10년 맞은 팔색조 배우 황정음
    편견은 때로 의외의 감동을 낳는다. 최근 MBC 의학드라마 ‘골든타임’에서 주연을 맡았던 배우 황정음(27)이 좋은 예다. 그는 병원재단 이사장 손녀인 응급실 인턴 강재인으로 등장해 “의사 역이 안 어울릴 것”이라는 방영 초기의 우려를 잠재우고 갈수록 극에 녹아드는 혼신의 열연으로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견인했다. 기대치가 낮았던 만큼 그가 연기로 보여준 ‘반전’은 깊은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드라마가 끝난 뒤에도 그의 연기력에 대한 칭찬이 끊이지 않은 이유다.

    사실 이런 경험이 그에게 처음은 아니다. 2009년 시트콤 드라마 ‘지붕 뚫고 하이킥’(이하 ‘하이킥’)에서 엉뚱 발랄한 캐릭터로 큰 사랑을 받은 그는 이후 기존의 이미지를 고수하며 편한 길을 가지 않았다. 오히려 기댈 데가 없는 다른 장르의 작품을 골라 연기 변신을 거듭해왔다. 그 때문에 드라마 ‘자이언트’와 ‘내 마음이 들리니’를 시작할 때도 연기력 논란이 불거졌지만 결과는 모두 해피엔딩이었다. 2010년에는 4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한 ‘자이언트’의 이미주 역으로 SBS 연기대상에서 뉴스타상의 주인공이 됐고, 지난해엔 ‘내 마음이 들리니’의 봉우리 역을 완벽하게 소화해낸 덕에 MBC 드라마대상 미니시리즈 부문에서 여자우수상을 받았다.

    하지만 왜 굳이 새로운 도전을 계속하며 고생을 자처할까. 2002년 걸 그룹 슈가 멤버로 데뷔한 그가 맨바닥이나 다름없는 배우의 길로 들어선 이유가 뭘까. 현재진행형인 사랑 경험이 연기에 도움이 될까. 많은 궁금증을 안고 10월 9일 저녁, 서울 강남의 한 레스토랑에서 그를 만났다. 4개월에 걸쳐 부산에서 진행된 ‘골든타임’ 촬영과 바로 이어진 해외화보 촬영으로 몹시 지쳐 있을 것이란 예상을 깨고 그의 낯빛은 생기발랄했다. 목소리도 경쾌하고 말투도 싹싹했다. “이렇게 기자와 마주 앉아 인터뷰하는 건 실로 오랜만”이라는 그는 시종 달뜬 표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풀어냈다.

    “러브라인 없어 안타까웠다”

    ▼ 의사 역이 잘 어울리던 걸요?



    “처음엔 정말 많은 분이 안 어울릴 것 같다고 했어요. 심지어 저도 감독님한테 왜 절 캐스팅했는지 묻고 싶었어요. 캐스팅은 중요한 문제니까 감독님에겐 뭔가 큰 뜻이 있겠거니 하면서도 연기하기가 두렵고 무서웠어요. 당연히 못할 거라는 짐작은 했지만 부딪쳐보기 전엔 결과를 알 수 없으니까 일단 저 자신에게 주문을 걸었어요. 이번에도 잘될 거라고요. 전 항상 잘될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일하거든요.”

    ▼ 감독에게 캐스팅한 이유를 물어봤나요?

    “묻고 싶었는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어요. 감독님에게 먼저 물어보는 게 성급한 행동 같아서 전화를 안 했거든요. 그랬더니 감독님이 한번은 “‘아잉~ 전화 좀 해’라는 문자를 보내왔어요. 거절할 수 없어서 전화했더니 감독님이 ‘널 왜 캐스팅했는지 왜 안 물어봐?’ 하시더라고요. 하지만 그날도, 그 후에도 답은 못 들었어요.”

    ▼ 다 알려주고 시작하면 연기에 지장을 줄까 봐 일부러 알려주지 않은 건 아닐까요?

    “그것도 일리가 있겠네요(웃음).”

    ▼ 생각보다 더 밝고 구김살이 없어 보여요.

    “원래 생각이 없는 아이였는데 ‘골든타임’ 하면서 생각이 많은 애로 변해 인생이 피곤해지고 있어요. 캐릭터에 빠지면 헤어나기가 쉽지 않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겠어요. 이제야 배우의 길을 제대로 가고 있나봐요. 이번 작품을 하면서 느끼고 배운 게 많아요. 제 자신이 작아 보이기도 했다가, 울다가, 좋았다가…, 삶의 희로애락을 느끼게 해준 드라마예요.”

    ▼ 그 덕에 한결 성숙해졌나요?

    “배우로서도, 사람 됨됨이로도 아직 멀었지만 이 드라마가 삶을 좀 더 진지하게 대하는 계기가 됐어요. 사람이 힘든 것을 겪고 나면 한 단계 성숙해지고, 바닥을 쳐야 또 올라가는 법이잖아요. 내 인생에서 바닥을 친 게 ‘골든타임’이에요. 나쁜 의미의 바닥이 아니라 내가 가진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연기의 한계를 느끼게 해줬거든요.”

    ▼ 어떻게 극복했나요?

    “너무 괴로웠지만 긍정의 힘으로 이겨냈어요. 극복은 주위에서 도와준다고 되는 게 아니라 제가 감당해야 할 몫이니까요. 도와줄 사람도 없었어요. 연기 베테랑인 선배들도 힘들어했어요. 촬영 당일에 쪽대본이 나와서 다들 대사를 못 외워 난리였죠. 물어보기가 미안할 정도였어요. 그래서 부산에서 연기선생님을 섭외했어요. 대본을 봐도 무슨 감정을 표현하려는 것인지 작가의 의도조차 파악이 안 돼서 ‘멘붕(멘탈 붕괴)’이 왔거든요. 근데 연기선생님도 대본이 이상하다고 하셨어요. 저 혼자만 대본이 어렵다고 얘기했으면 제가 이해력이 부족한 사람이지만, 모든 사람이 어려운 대본이라고 말했어요. 의학드라마니까 전문가에게 자문해 리얼리티를 살려야 하고, 배우의 감정도 녹여야 하고, 에피소드도 만들어야 하니까 작가가 살짝 버거웠던 것 같아요. 그래서 드라마틱한 러브라인이 없었어요. 근데 그걸 시청자가 신선하게 받아들여 참 다행이었죠.”

    ▼ 러브라인이 빠져서 아쉬웠나요?

    “많이 안타까워요, 러브라인이 있었으면 편했을 것 같아요. 저랑 이선균 씨가 숨 돌릴 겨를이 생겼을 테니까요.”

    ▼ 촬영 중 재미난 일도 있었나요?

    “어떤 촬영도 재미날 순 없어요. 촬영장은 늘 긴장의 연속이거든요. 특히 ‘골든타임’은 응급한 상황이 많아 전쟁터가 따로 없었어요. 다들 벅차서인지 초반에는 웃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요. 부산에서 모든 촬영이 이뤄지다보니 나중엔 배우들끼리 친해져서 한 번씩 모였어요. 드라마에 대한 아쉬움을 서로 털어놓고, 경험 많은 선배들에게 힘들게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은 위로를 받았죠.”

    “악성댓글, 날 강하게 만들었다”

    ‘골든타임’은 당초 9월 11일 종영할 예정이었으나 2주를 연장 방영해 9월 25일 막을 내렸다. 연장 방영이 결정됐을 때 기분이 어땠는지 묻자 그는 웃으며 “죽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종영 날짜를 손꼽아 기다리다 연장 방영이 결정되니 다들 웃으며 똑같이 얘기했어요. 죽고 싶다고요. 그래도 드라마 반응이 좋아서 방영 기간을 늘린 거니까 행복했어요.”

    ▼ 출연작마다 반응이 좋아서 황정음이 나오면 드라마가 잘된다는 흥행 공식이 생겼더군요. 비결이 뭔가요?

    “마음속 깊은 곳에 항상 ‘난 잘되는 사람이고, 지금까지 잘돼왔고, 앞으로도 잘 될 것’이라는 무한한 자신감이 있어요. 겉으로 표현하진 않지만 나도 모르는 자신감이 항상 있어요. 사람들이 날 험담한 글을 봐도 개의치 않아요.”

    ▼ 욕을 많이 먹었나요?

    “작품을 할 땐 반응이 어떤지 보려고 댓글을 확인해요. 근데 제가 새 작품에 들어가면 ‘주인공이 그렇게 없어?’ 하는 식으로 비방 글을 올리는 네티즌이 꼭 있더라고요. ‘골든타임’도 감독님이 절 원해서 하게 됐지만 ‘황정음은 안 어울릴 것 같다’는 반대의견이 굉장히 많았어요. 하지만 신경 쓰지 않고 소신껏 열심히 했어요. 좋은 결과를 내는 게 중요하니까요. 그런 악성 댓글이 오히려 나를 강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웃음).”

    ▼ 성격이 밝아서 상처를 안 받는가보네요.

    “나도 사람인데 상처를 왜 안 받겠어요. 그저 상처 안 받으려고 노력하는 거예요. 내 혈액형이 O형인데 O형이 이 직업에 잘 맞는 것 같아요. 단순해서 안 좋은 일은 빨리 잊어버리고 잘 주눅 들지 않거든요.”

    ▼ 모험이나 도전을 즐기나요?

    “두렵지만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면 결과를 알 수 없으니까 계속 부딪쳐보는 거예요. 그 대신 다음에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해요.”

    올해 그는 ‘골든타임’ 촬영을 시작하기 전에 원수연 작가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 ‘풀하우스 테이크2’를 찍었다. 이 드라마는 10월 5일부터 일본에서 방영 중이지만 한국에서도 전파를 탈지는 미지수다. 극 중에서 전도유망한 배우로 주목받는 박기웅, 노민우와 삼각 사랑을 나눈 그는 “연기 호흡을 잘 맞추는 것도 배우의 능력인데 두 친구는 어땠는지 몰라도 난 좋았다”며 “나보다 나이가 너무 많거나 어리면 힘들지만 또래는 항상 편하고 좋다”고 고백했다.

    ▼ 작품에서 만난 상대역 중에서 가장 잘 맞는 배우는 누구던가요?

    “최다니엘이요. 연기 호흡은 정말 좋았는데 따로 연락할 정도로 성격이 잘 맞는 친구는 아니었어요. 전 ‘하이킥’의 황정음이 내가 잘해서 사랑받은 줄 알았는데 다니엘이 없었다면 그 캐릭터가 그렇게 빛날 수 없었을 거예요. 다니엘한테 전화해서 고맙다고 했고요. 그 친구가 나보다 나이가 어린데 누나라는 호칭은 안 쓰더라고요(웃음).”

    ▼ ‘내 마음이 들리니’로 찬사를 들었는데 그 작품이 잘된 비결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대본이 정말 좋았어요. 제가 소화할 수 있는 대본이었거든요. 얼굴을 포기하고 연기한 것도 처음이었고요. ‘골든타임’ 때도 얼굴을 포기하긴 마찬가지였어요. 너무 힘들어서 얼굴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피곤해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하이킥’ 때도 잠이 항상 부족했는데 그땐 예뻐 보였잖아요(웃음). 뭐든 잘되고 못되고는 마음가짐에 달린 것 같아요.”

    ▼ 작품 선택의 기준은 뭔가요?

    “캐릭터와 내용뿐 아니라 모든 게 조화를 이뤄야 빵 터지기 때문에 제 감을 믿어요. 정말 단순하게 제목과 처음 대본 봤을 때의 느낌을 중요하게 여겨요. 대본을 다시 보면 느낌이 또 달라지거든요. 무엇보다 옆에서 일을 봐주는 분들의 도움이 컸어요.”

    길거리 캐스팅돼 예술고 그만둬

    평소 그와 가장 닮은 캐릭터는 ‘하이킥’의 황정음이라고 했다. 어릴 때도 지금처럼 밝았느냐고 물었더니 그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졌다.

    “어릴 땐 더했어요. 학교에서 절 모르는 사람이 없었을 거예요. 서울 길동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리틀엔젤스 단원으로 활동했고, 선화예중·예고를 다녔는데 제가 튀는 행동을 하지 않아도 존재감이 확실했던 것 같아요. 어딜 가나 항상 더 예쁨을 받거나 더 크게 혼났거든요. 그땐 제멋대로였어요. 지금은 많이 착해진 편이에요. 보통 연예인 되고나서 성격이 나빠졌다고들 하는데 전 반대예요. 슈가 활동하면서 성격이 좋아졌다고 친구들이 그러더라고요.”

    데뷔 10년 맞은 팔색조 배우 황정음
    ▼ 원래 어땠는데요?

    “고등학교 때는 애들 도시락 뺏어 먹고 그랬어요. 제 일이 바빠서 후배들을 괴롭히진 않았는데 선배들이 절 많이 괴롭혔죠. 그래도 선배들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았어요. 선배 언니가 트집 잡으면 오히려 당당히 맞섰어요. 언니들이 한 대 툭 치면 그 상태로 선생님한테 가서 이르고, 옥상에 올라가 절 괴롭히는 언니를 물풍선으로 맞힐 정도로 개념 없고 장난기 많은 아이였어요. 화수분 같은 자신감도 그때 생긴 것 같아요.”

    그는 2남1녀 중 막내로 어릴 때부터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부모님은 모두 사업으로 바쁘고 생활권도 인천이어서 그를 학교 다니기 편한 서울 할머니 집에 맡겼다. 그래도 막내딸이 눈에 밟혀 거의 매일 학교나 할머니 집으로 그를 보러왔다. 그는 중학교 때까지 할머니 집에서 살다가 고1 때부터 슈가 숙소에 들어가 연습생 생활을 했다.

    ▼ 어쩌다 슈가 멤버가 된 건가요?

    “원래 중3 때 길거리 캐스팅이 됐는데 엄마가 선화예고에 합격하면 연예인 되는 걸 허락해주겠다고 해서 그때부터 무용 연습을 미친 듯이 열심히 했어요. 선화예고는 연예활동하면서 다닐 수 없기 때문에 합격한 후 바로 상명여고로 전학했고요. 그게 좀 후회되기도 해요.”

    ▼ 예고 보낼 정도면 경제적인 어려움은 없었겠네요?

    “어릴 땐 남부럽지 않게 살았어요. 할머니 할아버지도 용돈 주시고 부모님도 용돈 필요하다고 하면 바로 부쳐주고, 오빠들도 나보다 열 살 위니까 용돈을 잘 줬어요. 외환위기 한파에도 힘든 줄 몰랐어요. 우리 학교 아이들이 대부분 그랬어요.”

    ▼ 리틀엔젤스엔 어떻게 들어갔나요?

    “전 노래에 관심이 없었는데 아빠가 집으로 날아온 전단지를 보고 꼭 보내고 싶어 하셨어요. 그래서 레슨을 받고 들어간 거지 특출한 재능은 없었어요. 무용도 어른들의 강요에 못 이겨 배운 거예요. 뛰어나게 잘한 것도 아닌데 부모님이 강권하니까 이쪽 길로 가야만 하는 줄 알았어요. 그때는 이대 무용과 나와서 교수 되겠다고 했어요. 친구들이 그걸 최고의 성공으로 여겨서 저도 그래야 하나보다 했던 거죠.”

    ▼ 길거리 캐스팅되기 전부터 연예인을 선망했나요?

    “핑클·SES를 보고 자란 세대이긴 하지만 연예인을 동경하진 않았어요. 학교 무용실이랑 리틀엔젤스회관이 연결돼 있어서 HOT, SES, 핑클을 만날 봤지만 관심도 없었어요. 친구들도 마찬가지였어요. 지금도 만나는 학교 친구가 여섯 명 있는데 그중에 배우 박한별도 있어요. 한별이는 저랑 리틀엔젤스 단원 생활도 같이 했어요. 우리 학교 애들은 자부심이 대단해서 연예인을 쫓아다니는 학생들을 격이 낮다고 여겼어요. 그런 분위기에서 생활하다보니 연예인에 대한 환상 같은 건 없었는데 막상 길거리 캐스팅이 되고 나니 직접 경험해보고 싶었어요. 그야말로 호기심 반, 기대 반이었죠.”

    ‘슈가’ 때 처음 패배감 맛봐

    그는 이수영 스타월드 대표 밑에서 2년간 연습생 생활을 하고 2002년 슈가로 데뷔했다. 이 대표는 SM엔터테인먼트 이수만 프로듀서의 형이자 걸 그룹 소녀시대 멤버 써니(본명 이순규)의 아버지다. 슈가는 데뷔 초부터 제법 인기를 끌었지만 황정음은 계약 기간 3년을 채우고 2005년 그룹을 탈퇴했다. 그는 “슈가로 활동하면서 괜히 했다는 회의가 들어 매일 울었다”고 고백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학창 시절 예쁘다는 말을 수없이 듣던 그였지만 슈가 시절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4명의 멤버 중 유독 재일교포인 아유미(28)에게 세인의 관심과 스포트라이트가 쏠렸으니 상대적인 박탈감이 컸을 터.

    “어린 나이에 처음으로 패배감을 느껴선지 다 싫었어요. 사회가 참 냉혹하다는 것을 슈가를 통해 처음 경험했어요. 친구들도 ‘정음이는 슈가 하고 얼굴이 못생겨졌다’고 하고, 학교 친구들이 이대, 숙대, 서울대, 한양대에 들어갈 때 저만 수원대(연극영화과)에 갔어요. 물론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가 중요하진 않지만 슈가 하면서 모든 걸 잃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어요.”

    ▼ 처음 경험한 실패라 큰 상처가 됐겠네요?

    “상처는 둘째치고 자신감이 없어지더라고요. 다 필요 없고 연예인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엄마가 힘들어하지만 말고 나오라고 하셨어요. 엄마도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지만 상심이 컸을 거예요. 대단한 미인이셨는데 어느 날 보니 저 때문에 신경을 많이 써서 늙었더라고요. 그게 참 미안하고 속상했어요.”

    ▼ 슈가 시절 아유미와 사이가 안 좋았나요?

    “한창 민감한 나이의 여자아이 넷이서 같이 지내다보니 늘 좋을 순 없었어요. 다들 어릴 때라 싸웠다 풀렸다 했어요. 아유미가 주목을 받으니까 부럽긴 했지만 불화설이 불거질 정도로 사이가 나쁘진 않았어요. 불화설은 언론이 만들어낸 소설이에요. 지금은 유미가 일본에 있어서 만나기가 쉽진 않지만 한국에 오면 연락도 하고 시간 되면 만나고 그래요. 안 그래도 일본에서 방영 중인 ‘풀하우스 테이크2’ 반응이 궁금했는데 유미에게 물어봐야겠어요(웃음).”

    ▼ 슈가에서 나온 2005년부터 드라마 ‘루루공주’로 연기를 시작했는데 배우 전향은 애초에 계획했던 건가요?

    “마음 비우고 쉬고 싶었는데 여러 기획사에서 자꾸 연락이 오니까 이게 내 길인가 싶더라고요. 그중 김광수 현 코어엔터테인먼트 대표에게 마음이 갔어요. 가수와 연기자를 겸할 수 있는 사람을 키웠거든요. 가수 할 생각은 없었지만 또 다른 기회가 오면 잡을 수 있겠단 생각으로 그분을 선택했어요. 엄마도 그분이 가장 나을 것 같다고 하시며 제 뜻을 존중해주셨어요. 엄마는 어릴 때부터 뭔가를 강요하지는 않았어요. 건강하게만 자라달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힘든 일을 겪어도 휘둘리지 않고 잘 넘긴 것 같아요.”

    ▼ 배우로 주목받지 못하던 시기에는 힘들지 않았나요?

    “그때는 캐스팅이 안 돼도 괘념치 않고 놀러 다녔어요. 그러다가 어떤 감독이 보자고 하면 만나러 나갔어요. 신기한 것은 연기를 못해도 미팅 후에는 항상 캐스팅된 거예요. 슈가 시절 가세가 기울어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진 못했어요. 아빠는 계속 사업을 하셨고 엄마는 내가 돈 잘 버는 연예인이 될 거라는 기대감에 하던 일을 그만두고 그동안 벌어둔 것으로 생활하셨더라고요. 많이 벌었어도 씀씀이가 커서 나중엔 힘드셨나봐요. 슈가에서 나온 뒤에야 그걸 알았는데 슈가 하면서 힘들었던 것에 비하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전 그저 슈가를 나왔다는 것 자체가 행복했어요. 그동안 못 만났던 친구들을 다 만나고, 전 소속사에서 못 가지고 다니게 하던 휴대전화가 생겨서 좋았어요. 즐겁게 생활하니까 다이어트 안 해도 살이 빠지고 예뻐지더라고요(웃음).”

    갑자기 떠서 우쭐했지만 겸손 배워

    간간이 드라마에 출연하며 연기생명을 이어가던 그는 2009년 대운을 맞이한다. 소속사의 권유로 우연히 출연한 ‘우리 결혼했어요(우결)’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거침없이 밝은 본연의 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덕에 방송 관계자들의 눈에 들었고, 연달아 ‘지붕 뚫고 하이킹’에 캐스팅되는 행운까지 잡았다. 남녀 연예인의 가상 부부생활을 담은 ‘우결’에서 그의 파트너는 같은 소속사에 몸담고 있던 인기 남성 트리오 SG워너비의 김용준(28)이었다. 두 사람은 애정 표현 수위가 ‘우결’의 다른 짝들보다 더 높고 애틋해 ‘닭살 커플’로 불렸다. 이들이 2007년부터 남녀로 만나온 실제 연인 사이라는 사실을 세상에 당당히 알린 것도 그 무렵이다.

    “용준이를 만나서 사랑에 완전 빠졌어요. 너무도 예쁜 사랑을 하다가 ‘우결’ 할 때 용준이랑 싸웠어요. ‘뭐야, 사랑도 별로다. 그래 이제 내가 성공할 때야! 정신 차릴 때야!’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인생의 위기감을 느꼈다고 할까요. ‘우결’ 해서 좋은 작품에 캐스팅이 되고 싶었어요. 그때부터 일에 미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 그해 인기가 한꺼번에 몰려왔을 때 어떤 기분이 들던가요?

    “신기하고 조금 걱정되기도 했어요. ‘이렇게 행복해져도 돼?’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 갑자기 뜨면 초심이 흔들리지 않나요?

    “충분히 그럴 수 있죠. 그런데 뜨고 나서 거만해지거나 싸가지 없어지는 것은 정말 그렇게 변한 것일 수도 있지만, 주위에서 그렇게 몰아가는 경우가 더 많아요. 원래 착해도 화내는 모습이 부각되면 싸가지 없는 사람이 되는 거고, 원래 싸가지 없어도 착한 모습이 부각되면 착한 사람이 되더라고요. 예전에 비해 변했다, 싸가지 없고 도도해졌다는 말을 들었어요. 그건 정말 내가 변한 게 아니라 절 대하는 시선과 태도가 바뀌어서 그런 거예요. 예를 들어 인기가 많아지면 같은 숍에 가도 전보다 더 상냥하고 친절하게 대해줘요. 알아서 내 눈치 보고 비위를 맞추죠. 그걸로 끝나면 좋은데 뒤에서는 ‘정음이 떠서 비위 맞추기 힘들어 죽겠어’ 하는 식으로 욕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러면 전 바로 거만하고 싸가지 없는 애가 돼버리는 거죠.”

    ▼ 그럴 땐 어떻게 대응하나요?

    “신경 쓰지 않아요. 신인 때는 제가 같은 행동을 해도 관심이 없으니까 다른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았을 뿐이지, 제 언행이 예전보다 크게 달라지진 않았거든요. 다만 이런 건 있을 수 있어요. 전보다 일에 대한 열의와 책임감이 더 강해져서 절 도와주는 매니저나 스타일리스트에게 아쉬운 점을 더 많이 토로할 수밖에 없어요. 그 때문에 상대가 잔소리나 싫은 소리로 듣고 언짢게 생각할 순 있겠지만 사감이 아니라 공적인 영역인 만큼 서로 더 발전하기 위한 과정으로 여겼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 현재 위치가 소중하다는 것을 느끼나요?

    “요즘에 많이 느껴요. ‘하이킥’ 할 때 갑자기 잘나가는 아이가 돼서 정신이 없었어요. 그 당시 최고 스타가 빅뱅이었는데 빅뱅보다 더 바빠 스케줄 잡기가 가장 힘들다는 말이 돌 정도였거든요. 그 후 겸손의 미덕을 배웠지만 당시에는 어려서 우쭐했었어요(웃음).”

    “겁 많아서 나쁜 짓 안 해”

    그는 자신의 대표작 가운데서도 ‘하이킥’과 ‘자이언트’를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꼽았다. ‘자이언트’에 출연할 당시 배우 주상욱과 러브라인을 엮어가던 중 베드신을 찍은 적이 있다.

    ▼ 남자친구 있으면 극 중 스킨십이 신경 쓰이지 않나요?

    “전혀요. 남친(남자친구)이 살짝 얘기하겠지만 일과 사랑은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과 사랑 모두 중요해요. 제 마음의 양팔저울에 둘을 올려놓으면 수평을 이룰 거예요. 다만 상황에 따라 우선순위가 달라질 순 있겠죠. 그때 어떻게 대처할지는 제 몫이고요.”

    ▼ 사랑을 진득하게 하고 있어서 애정관이 궁금해요.

    “자꾸 변해요.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감정과 상황에 따라서요. 용준과 헤어질 일이 수만 가지 있었고 싸움을 반복했지만, 결국에는 다음 날 되면 웃고 만나고 그래왔어요. 6년 만났는데 그게 쉽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일, 사랑, 돈, 회사, 여러모로 생각할 게 많은 시기라 심경이 복잡해요. 근데 이럴 때 쉬면 무슨 일이 날 것 같아서 계속 일하고 있어요.”

    ▼ 사랑 경험이 연기에 도움이 되던가요?

    “도움 돼요. 다만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에요. 현실에서 느끼는 감정보다 미화하거든요. 드라마에서는 인간의 좋은 면만 보여주려고 하니까 캐릭터가 멋있어 보여도 사람 같은 맛은 덜해요. 또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밑바닥 근성이나 본질로 가면 다큐지, 드라마가 아니죠.”

    ▼ 연예인 중에 이상형이 있나요?

    “얼굴만 보면 차태현 오빠요. 귀여운 타입이 좋아요. 용준이도 처음엔 착해서 만나게 됐고 귀여운 짓을 많이 하니까 좋아진 거예요.”

    ▼ 생김새는 안 따지나봐요?

    “웬걸요. 따지기 때문에 차태현 오빠라고 한 거예요. 차태현, 하정우 씨 같은 인상을 좋아해요. 차태현 오빠는 너무 잘생겼어요.”

    ▼ 외모에 신경 쓰는 편인가요?

    “쉴 때는 한 번씩 마사지 받으러 가지만 열심히 관리하지는 않아요.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다 먹거든요. 최근 살이 많이 쪘어요.”

    ▼ 술 잘 마실 것 같아요.

    “그런 말 종종 듣는데 잘하지 못해요. 술도 맛있는 게 좋더라고요. 칵테일 한 잔 정도가 딱 좋아요.”

    ▼ 살면서 일탈해봤나요?

    “마약은 하지 않아요(웃음). 겁이 많아서 나쁜 짓을 안 해요. 윤리나 법에 어긋나는 짓은 절대 하지 않아요. 마음에 없거나 틀린 말은 하지 않아요. 정직한 사람이에요.”

    “아이 셋 낳고 싶어요”

    ‘하이킥’ 이후 그가 두각을 나타낸 분야로 TV광고를 빼놓을 수 없다. CF퀸으로 불릴 정도로 2009~2010년엔 숱한 광고를 찍었다. 지금도 그는 서너 개의 광고에 출연하고 있다. 그중엔 3년 넘게 전속으로 활동해온 것도 있다. 광고주들이 이토록 그를 좋아하는 이유가 뭘까.

    “극에서 캐릭터를 잘 살리면 광고주가 호감을 갖고 뽑는 것 같아요. 다만 어떤 광고를 하든지 내가 선전하는 제품을 사랑하려고 노력해요. TV에 나올 때도 광고하는 제품을 슬쩍이라도 보여주는 그런 센스가 있어요. 널리 알려져서 많이 쓰이기를 바라면서요. 그래선지 CF를 찍으면 계약기간을 연장하는 광고주가 많아요.”

    ▼ 광고 수입 덕에 돈 좀 모았겠네요?

    “전보다 많이 벌긴 하지만 갈수록 목표가 커져서 그걸 이루기엔 계속 모자라요. 수입을 엄마와 함께 관리하는데 사고 싶은 건물을 아직 못 샀어요. 여러 곳에 분산 투자해 수익형 재테크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 가수 활동을 재개할 생각이 있나요?

    “영화에 출연해 주제곡을 부르거나 CF, 드라마 삽입곡을 부르는 건 좋지만 가수로 컴백하긴 힘들지 않을까요. 무대를 내려온 지 오래됐고 재능 있는 후배가 많아서 설 틈도 없을 거예요. 대신 기회가 되면 뮤지컬을 해보고 싶어요. 연기에 대한 기본기가 갖춰진 사람이 아니라서 그게 내 자신감을 갉아먹고 있거든요.”

    ▼ 이루고 싶은 꿈이 있나요?

    “너무 많아요. 세계일주도 하고 싶고, 빌딩도 짓고 싶고, 백화점도 갖고 싶어요. 동물을 좋아해서 불쌍한 강아지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넓은 농장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 가부에도 관심이 있나요?

    “관심 있기는 한데 꿈을 이루고 여유가 생겼을 때 하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해요. 여유에 대한 가치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욕심도 많고 꿈이 큰 만큼 좀 더 여유가 필요할 것 같아요. 아니, 욕심이 너무 많으면 해가 되니까 적당한 선에서 생각을 해봐야겠어요(웃음).”

    ▼ 일 욕심이 많은 편인가요?

    “완전 많아요. 작품이 들어왔을 때 할까 말까 고민될 때도 ‘혹시 나 대신 다른 사람이 해서 잘되면 너무 배 아플 것 같아서 해요(웃음). 그 정도로 단순해요.”

    ▼ 10년 후엔 뭐하고 있을 것 같나요?

    “연기하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때면 서른아홉 살이니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지 않을까요. 아이는 한 세 명 있으면 좋겠어요.”

    ▼ 몸매 망가질 텐데요?

    “안 망가질 자신 있어요. 자신감이 주특기잖아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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