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서울과 파리 사이 101장면 ⑦

라 윈 서점이 크리스티앙 디오르 매장 몰아내다

다시 만난 낯선 파리

  • 정수복│사회학자·작가

라 윈 서점이 크리스티앙 디오르 매장 몰아내다

2/5
18세기를 대표하는 팡테옹은 처음에는 성당으로 지어졌다가 프랑스 혁명기에 위인들을 모시는 영예의 장소가 되었다. 건물 외벽에는 1791년 파스토레 백작이 지은 “조국이 감사하는 위대한 인물에게”라는 문장이 적혀 있다. 혁명의 주역이었던 마라와 당통이 여기에 안장되었다 철회되었고 프랑스 혁명에 이념을 제공한 볼테르와 루소가 지하 묘지 맨 앞자리에 모셔져 있다. 1885년에는 빅토르 위고가 이곳에 안장되었다.

파리에는 위인들뿐만 아니라 혁명에 참여한 민중의 유해도 곳곳에 모셔져 있다. 바스티유 광장의 ‘자유의 탑’에는 1830년 7월혁명의 희생자 504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그들의 유해가 탑 밑에 안장되어 있다. 페르 라 셰즈 묘지에는 1871년 파리코뮌 희생자들의 묘역이 따로 설정되어 있다. 1806년에 시작되어 1836년에 완성된 개선문이 19세기 전반기를 대표하는 기념비적 건축물이라면 1879년 프랑스 혁명 200주년을 기념해 세워진 에펠탑은 19세기 후반 시작된 산업문명을 대표하는 건축물일 것이다.

파리의 거리와 공원에는 수많은 동상과 석상이 서 있다. 나시옹 광장의 필립 오귀스트 상과 생 루이 상, 퐁뇌프의 앙리4세 상, 보즈 광장의 루이13세 상, 빅트아르 광장의 루이14세 상, 생 제르맹 데프레 거리의 당통 상, 앵발리드 안 마당의 나폴레옹 상, 리슐리외 거리의 몰리에르 상, 뤽상부르 공원 안의 베를렌, 플로베르, 스탕달, 쇼팽 등 수많은 문인 예술가들의 동상, 샹젤리제 대로의 드골 동상 등은 파리를 배경으로 활동했던 역사적 인물들을 상기시킨다.

역사적 인물들의 이름은 길거리 이름에도 새겨져 있어 파리의 거리를 걷다보면 역사 교과서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 거리를 걷다보면 건물 외벽에 붙어 있는 석판들도 많은 이야기를 전해준다. 예를 들면 파리 4구 마레 지역의 페이엔 거리 5번지에는 사회학의 아버지 오귀스트 콩트가 만년에 제창한 ‘인류교’ 사원이 있다. 그 건물 벽에는 “사랑을 원칙으로, 질서를 기초로, 진보를 목표로”라는 문장이 적혀 있다. 파리 14구 몽수리 공원 서쪽 보니에 거리 20번지에는 1909년에서 1910년 사이 레닌이 이곳에 살았다는 표지판이 붙어 있다.

풍경 #56 파리의 도로망



도시의 기본은 길로 이뤄진다. 어느 오후 내가 걸은 생자크 거리는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거리다. 이 길로 옛날 로마 군대가 진군했다고 한다. 파리에는 샹젤리제 거리 같은 대로만 있는 게 아니라 좁은 골목길도 수없이 존재한다. 파리에서 가장 좁은 길은 20구에 있는 뒤에 샛길이다. 폭이 고작 90cm에 불과하다. 파리에서 가장 넓은 길은 샹젤리제 거리가 아니라 개선문 뒤의 포슈 거리로 그 폭이 120m에 달한다.

파리가 화려하면서도 인간적인 도시의 면모를 갖추고 있는 것은 걷고 싶은 골목길이 많기 때문이다. 파리의 모든 길에는 차도와 구별된 인도에 대한 배려가 각별하다. 보행자, 걷는 사람의 권리가 운전자의 권리에 앞서는 도시가 인간적인 도시다. 서울 사대문 안 기본 도로는 조선시대에 만들어졌고 ‘신작로’라고 부른 근대적인 도로망은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졌다. 이후 1960년대 박정희 대통령의 권력을 바탕으로 불도저 시장이라는 별명을 가진 김현옥 시장이 서울의 도로망을 정비하고 기본 시설을 마련했다.

오늘날 파리의 모습은 기본적으로 나폴레옹 3세와 오스만 남작의 합작품이다. 제2제정으로 불리는 그 시기에 오스만 남작은 나폴레옹 3세의 권력을 배경으로 1860년대 파리 동서남북의 주변 마을들을 파리로 편입시켰고 파리의 주요 간선도로를 뚫었다.

효율적인 도시 생활이 가능하려면 특정한 장소를 쉽게 찾아갈 수 있어야 한다. 도로의 이름과 각각의 건물에 붙이는 번호체계가 그런 역할을 담당한다. 파리의 거리에 체계적으로 이름이 붙여지기 시작한 것은 1728년부터다. 현재 파리에서 보는 푸른색 바탕에 흰 글씨로 쓴 거리 이름과 번지수를 알리는 판은 1844년부터 부착된 것이다.

도시의 밤은 위험하다. 어두운 길에서는 갖가지 범죄가 일어나기 쉽다. 그래서 ‘와사등’으로 불리기도 한 가스등이 세워졌다. 그러다가 가스등을 대신해 전기 가로등이 설치되었다. 전기 가로등은 1844년 12월 콩코르드 광장에 처음 설치되었고, 1848년 7월에는 루브르 궁전에 두 번째로 설치되었으며 1861년에는 팔레 루아얄 입구에 가스등을 없애고 전기 가로등이 설치되었다. 파리에 전기 가로등이 일반화된 것은 1878년부터다.

2/5
정수복│사회학자·작가
연재

서울과 파리 사이 101장면

더보기
목록 닫기

라 윈 서점이 크리스티앙 디오르 매장 몰아내다

댓글 창 닫기

2019/12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