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국 공급 과잉이 문제인 건가?
“공급도 과잉이고 일자리도 없고 국악 입지는 자꾸 좁아지는 총체적 악순환이다. 국악을 전공해도 할 일이 없으니 국악 안 시키고 그래서 국악과가 인기가 없으니 지방대학부터 문 닫고 그러는 거다. 이런 현상이 날로 심해지는 게 앞으로 큰 문제다. 이제 기업이라든지 사회에서 양악뿐 아니라 국악에도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활성화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악단이라는 게 인원이 한정돼 있어서 공연단체만 많이 만든다고 일자리가 지속적으로 생기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국악 공연을 꾸준히 열 수 있고 볼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건 국가나 지자체만의 노력으론 안 된다.”
▼ 같은 기관에서 소속 단체의 장르가 국악이냐, 양악이냐에 따라 단원 급여에 차등을 두는 건 문제가 아닌가?
“지자체들이 1980년대까지는 차별을 심하게 했다. 이후 국악인들이 들고 일어나 많이 개선된 것으로 안다. 지금은 국악, 양악 가르지 않고 모든 단원에게 공무원에 준하는 연봉 책정 기준을 적용해 차등 없이 대우하는 줄 알았는데 지금도 차별대우를 하고 있다면 그건 잘못된 거다. 100% 고쳐져야 한다. 만일 정부 차원에서 조사해서 계속 차등을 두는 곳이 있으면 시정조치 하겠다.”
▼ 기업 행사나 후원 공연에서도 서양음악가가 국악인보다 후한 대우를 받는다고 들었다.
“나도 겪었다. 예전에 한 공공기관 행사에 갔는데 나하고 안숙선에게는 개런티로 100만 원씩 주고 서양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조수미에게는 1000만 원씩 주더라. 우리도 나름대로 국악계에선 톱클래스인데 양악과 국악을 이런 식으로 차별하나 싶어 굉장히 불쾌해 따졌더니 국악인은 부르면 금방 오는데 그쪽은 튕긴다고 하더라. 그래서 출연료를 더 높였다는 어처구니없는 변명을 했다. 공무원의 사고방식이 이 정도니 기업은 오죽하겠나. 이런 인식은 잘못된 거다. 빨리 버려야 한다. 앞으로는 기업이 국악 공연도 적극 지원했으면 한다. 그런 메세나 활동은 기업의 이미지도 좋게 만들고 국악의 건강한 발전에도 기여하는 윈윈(win-win)의 모범사례가 될 거다.”
좋은 작품은 다 보게 해야
공연활동지원금도 장르에 따라 차등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 중견 국악인은 “오페라에는 300억 원 지원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면서 창극은 3000만 원이면 만드는 줄 안다”며 “외국산은 귀하게 여기고, 우리 것은 하찮게 보는 정서가 뿌리 깊이 박혀 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함께 진행한 2011년 공연예술실태조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이 자료에 따르면 2011년 한 국악 공연단체에 들어간 공적지원금은 평균 5억여 원으로 양악 공연단체의 절반 수준이었다. 민간 기업이나 문화재단의 공연 기부금은 차별이 더 심해 양악 공연단체 한 곳당 평균 2억여 원을 후원한 반면 국악 공연단체엔 10분의 1 수준에도 못 미치는 1926만 원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 박 수석은 “지원금은 작품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면서도 국악을 양악보다 한 수 아래로 취급하는 현실을 개탄했다.
“오페라도 어떤 오페라냐에 따라 무대장치라든지 의상 같은 데 들어가는 비용이 차이가 많이 난다. 제작비와 작품 규모를 놓고 지원금을 달리하는 건 이해하지만 장르를 따져 오페라와 창극에 차별을 둬선 안 된다. 창극도 오페라와 다를 바가 없다. 돈이 없어서 규모를 줄여서 하는 거지, 돈만 준다면야 얼마든지 더 멋지고 근사하게 왜 못 만들겠나.”
▼ 국악이 양악보다 홀대받은 것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 않은가?
“우리 때만 하더라도 국악을 전공하면 ‘왜 그런 걸 하느냐, 아버지나 어머니가 혹시 무당이나 광대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과거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다가 개방하면서 어떻게 변했느냐면, 내 것을 부정하고 서구의 신문화를 빨리 받아들이는 것이 엘리트가 되는 지름길이라는 인식이 박혀버렸다. 마지막 자존심이던 상투를 자르고 서구 것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면서 내 것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생긴 거다. 내 딸 셋이 다 국악을 하는데 지금은 국악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더라. 고맙게도 요즘 젊은이들은 가야금 전공하는 것과 피아노 전공하는 것을 동일선상에 두고 생각한다. 아이들 얘기가 그렇다. 오히려 나이든 사람들 중에는 양악과 국악을 차별하는 이가 있지만 예전보다 심하진 않다. 나이 든 사람들이 국악에 대한 편견을 버리지 않으면 시대에 뒤처진 조선사람 취급 받는다. 생각을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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