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호

“공급과잉, 자리 부족, 전공기피 국악교육 3중苦, 악순환 거듭”

박범훈 靑교육문화수석의 國樂 위기 진단

  •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입력2012-12-28 10: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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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급과잉, 자리 부족, 전공기피 국악교육 3중苦, 악순환 거듭”

    박범훈<br> ● 1948년 경기 양평 출생<br>● 중앙대 작곡과 졸업, 무사시노음악대학대학원 음악연구학 석사, 동국대 대학원 철학박사, 산둥대 교육학 명예박사<br>● 중앙국악관현악단 초대단장, 오케스트라 아시아 상임지휘자, 중국 중앙음악학원 객좌교수, 중앙대 부총장 및 총장 등 역임<br> ● 국민훈장 석류장, 한국무용음악 작곡상, KBS 국악대상 작곡상, 제1회 박헌봉국악상 등 다수 수상<br>● ‘붓다’ ‘하늘다리’ 등 앨범 발매, ‘국악기 이해’ ‘소리연’등 저서 다수

    12월 4일 오전 10시 30분, 청와대 연풍문 2층 소회의실. 각 잡힌 정장 스타일을 고수하는 청와대 사람들의 평균 이미지와 달리 머리가 허옇게 세고 차림새도 헐렁한 한 남자가 들어섰다. 2011년 2월 중앙대 총장 자리에서 물러나 이곳에 입성한 박범훈 교육문화수석비서관(65)이다.

    일반인에겐 생소한 이름일지도 모르지만 박 수석은 국내 최초로 국악 관련 교육기관을 설립하고 86아시아경기대회·88서울올림픽·2002한일월드컵 등 우리나라에서 열린 세계적인 행사의 음악총감독을 맡은 국악계의 거장이다. 어디 그뿐인가. 한국의 대표적인 국악 작곡가이자 1981년 ‘허생전’을 시작으로 마당놀이를 국민축제로 일군, 국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도 정평이 나 있다. 이런 명성의 주인공이니 한복에 두루마기를 걸친 근엄한 모습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웬걸.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옆집 아저씨 같은 인상이 처음 대면한 그와의 거리감을 단숨에 잊게 했다.

    음료를 시켜놓고 기다리면서 인사를 나누던 중 그가 불쑥 물었다. “근데 취재하려는 내용이 뭐라고 했죠?” 섭외 과정에서 충분히 취지를 설명했는데 재차 답을 구하는 것은 방향을 명확히 해두려는 의도일 터.

    ▼ 국악이 양악(洋樂)에 비해 홀대받고, 일자리도 별로 없고, 대학 국악과 수도 계속 줄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러다 국악의 맥이 끊어지면 어쩌나, 우려하는 국악인이 적지 않다. 위기를 맞은 국악의 명암을 짚어보고자 한다.

    “좋은 주제다. 타이밍도 적절하다. 사회가 수용하지 못하는데 국악인이 많이 배출되다보니 이런 문제가 생겼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전통예술 분야에 많은 지원을 해주는 나라도 드물다. 일본에는 일본 전통음악 하는 악단에 월급 주는 기관이 NHK 하나밖에 없다. 우리보다 전공자가 서너 배는 더 많은데도 다 잘 먹고 잘산다. 왜냐? 사회가 받아준다. 그만큼 일자리가 있다는 거다. 또 일본 전통음악 종사자는 해외에 많이 진출해서 외국인에게 기모노 입혀놓고 자기네 춤 가르치고 그런다. 누구보다 국악인 스스로 분발해야 한다. 전공자라서 이런 얘기도 할 수 있는 거다. 국악인 만나면 왜 우릴 안 도와주느냐고 한다. 근데 생활 속에서 대중이 함께하려고 하지 않으면 억지로 안되는 거다. 사회에서는 받아들일 준비가 안 돼 있는데 안에서만 돌파구를 찾으려 하니 당연한 결과다.”



    국악 홀대하는 정서 안타까워

    ▼ 국악인만 노력해서 될 일인가?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국·공립 예술공연단체를 장르별로 분석한 2011년 자료에 따르면 양악공연단체가 179개인 데 국악공연단체는 60개에 그친다. 이 때문에 국악 전공자의 일자리 부족 현상이 더 심해진다는 주장이 나온다.

    “국립 국악공연단체는 이미 여러 개가 있다. 공립 국악공연단체를 늘리는 것 역시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판단할 문제다. 자체 예산이 부족한데 정부가 일방적으로 강요할 순 없다. 또 국악공연단체가 많아진다고 해도 일자리 수급이 원활하지는 않을 거다. 국가와 지자체에서 만든 국악단체에 들어가야 국악 활동을 제대로 하는 것처럼 인식되다보니 기를 쓰고 들어가서 절대 안 나온다. 실력 있는 젊은이들은 자리가 없어서 못 들어간다. 그러니 아무리 많이 생기면 뭐 하나. 순환이 안 되는 걸. 월급이 꾸준히 나오니 실력은 안 키우고 악단마다 노조 만들어서 자기 밥그릇만 지키려고 한다. 그래서 갈수록 나태해지고 만날 자기들끼리 싸우는 거다. 예술 하는 사람들이 그러면 쓰나.”

    ▼ 대학에서 국악을 전공해도 졸업 후 노는 사람이 많다고 들었다. 어느 정도인가?

    “전국 22개 국악과에서 배출하는 졸업생 900명 가운데 60%는 초·중·고교 국악강사나 예술 관련기관에 취업하고 20%는 대학원 진학, 남은 20%는 군 입대를 선택하거나 취업을 준비한다. 사실 공무원이나 회사원처럼 어디에 들어가서 월급 받을 생각으로 국악 전공한 사람은 없을 거다. 하지만 전공 살리며 사회봉사를 하고 싶어도 우리 사회가 수용을 못하니 결국은 다 실업자가 되는 거다. 원래 예술가는 직장을 가지려는 부류가 아닌데 지자체나 민간이 운영하는 공연단체에 들어가야만 취업이 됐다고 보는 건 잘못됐다. 학교에서 강의를 한다든지, 초등학교 수업에 참여한다든지, 학원을 한다든지, 개인적인 공연을 한다든지, 이런 게 원래 정상적인 활동인데 아직은 우리 사회가 대학에서 배출하는 국악 전공자를 모두 수용하기는 힘든 실정이다.”

    ▼ 결국 공급 과잉이 문제인 건가?

    “공급도 과잉이고 일자리도 없고 국악 입지는 자꾸 좁아지는 총체적 악순환이다. 국악을 전공해도 할 일이 없으니 국악 안 시키고 그래서 국악과가 인기가 없으니 지방대학부터 문 닫고 그러는 거다. 이런 현상이 날로 심해지는 게 앞으로 큰 문제다. 이제 기업이라든지 사회에서 양악뿐 아니라 국악에도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활성화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악단이라는 게 인원이 한정돼 있어서 공연단체만 많이 만든다고 일자리가 지속적으로 생기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국악 공연을 꾸준히 열 수 있고 볼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건 국가나 지자체만의 노력으론 안 된다.”

    ▼ 같은 기관에서 소속 단체의 장르가 국악이냐, 양악이냐에 따라 단원 급여에 차등을 두는 건 문제가 아닌가?

    “지자체들이 1980년대까지는 차별을 심하게 했다. 이후 국악인들이 들고 일어나 많이 개선된 것으로 안다. 지금은 국악, 양악 가르지 않고 모든 단원에게 공무원에 준하는 연봉 책정 기준을 적용해 차등 없이 대우하는 줄 알았는데 지금도 차별대우를 하고 있다면 그건 잘못된 거다. 100% 고쳐져야 한다. 만일 정부 차원에서 조사해서 계속 차등을 두는 곳이 있으면 시정조치 하겠다.”

    ▼ 기업 행사나 후원 공연에서도 서양음악가가 국악인보다 후한 대우를 받는다고 들었다.

    “나도 겪었다. 예전에 한 공공기관 행사에 갔는데 나하고 안숙선에게는 개런티로 100만 원씩 주고 서양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조수미에게는 1000만 원씩 주더라. 우리도 나름대로 국악계에선 톱클래스인데 양악과 국악을 이런 식으로 차별하나 싶어 굉장히 불쾌해 따졌더니 국악인은 부르면 금방 오는데 그쪽은 튕긴다고 하더라. 그래서 출연료를 더 높였다는 어처구니없는 변명을 했다. 공무원의 사고방식이 이 정도니 기업은 오죽하겠나. 이런 인식은 잘못된 거다. 빨리 버려야 한다. 앞으로는 기업이 국악 공연도 적극 지원했으면 한다. 그런 메세나 활동은 기업의 이미지도 좋게 만들고 국악의 건강한 발전에도 기여하는 윈윈(win-win)의 모범사례가 될 거다.”

    좋은 작품은 다 보게 해야

    공연활동지원금도 장르에 따라 차등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 중견 국악인은 “오페라에는 300억 원 지원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면서 창극은 3000만 원이면 만드는 줄 안다”며 “외국산은 귀하게 여기고, 우리 것은 하찮게 보는 정서가 뿌리 깊이 박혀 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함께 진행한 2011년 공연예술실태조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이 자료에 따르면 2011년 한 국악 공연단체에 들어간 공적지원금은 평균 5억여 원으로 양악 공연단체의 절반 수준이었다. 민간 기업이나 문화재단의 공연 기부금은 차별이 더 심해 양악 공연단체 한 곳당 평균 2억여 원을 후원한 반면 국악 공연단체엔 10분의 1 수준에도 못 미치는 1926만 원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 박 수석은 “지원금은 작품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면서도 국악을 양악보다 한 수 아래로 취급하는 현실을 개탄했다.

    “오페라도 어떤 오페라냐에 따라 무대장치라든지 의상 같은 데 들어가는 비용이 차이가 많이 난다. 제작비와 작품 규모를 놓고 지원금을 달리하는 건 이해하지만 장르를 따져 오페라와 창극에 차별을 둬선 안 된다. 창극도 오페라와 다를 바가 없다. 돈이 없어서 규모를 줄여서 하는 거지, 돈만 준다면야 얼마든지 더 멋지고 근사하게 왜 못 만들겠나.”

    ▼ 국악이 양악보다 홀대받은 것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 않은가?

    “우리 때만 하더라도 국악을 전공하면 ‘왜 그런 걸 하느냐, 아버지나 어머니가 혹시 무당이나 광대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과거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다가 개방하면서 어떻게 변했느냐면, 내 것을 부정하고 서구의 신문화를 빨리 받아들이는 것이 엘리트가 되는 지름길이라는 인식이 박혀버렸다. 마지막 자존심이던 상투를 자르고 서구 것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면서 내 것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생긴 거다. 내 딸 셋이 다 국악을 하는데 지금은 국악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더라. 고맙게도 요즘 젊은이들은 가야금 전공하는 것과 피아노 전공하는 것을 동일선상에 두고 생각한다. 아이들 얘기가 그렇다. 오히려 나이든 사람들 중에는 양악과 국악을 차별하는 이가 있지만 예전보다 심하진 않다. 나이 든 사람들이 국악에 대한 편견을 버리지 않으면 시대에 뒤처진 조선사람 취급 받는다. 생각을 바꿔야 한다.”

    배우기 쉽게 악기 개량 절실

    ▼ 문화바우처로 국악 공연을 접할 기회를 늘려주자는 의견도 있는데.

    “(문화바우처를) 줘도 영화만 보러 간다. 우리 국악 공연이나 창극 같은 건 어렵고 재미없다는 선입견이 강해서다. 북한에선 ‘꽃 파는 처녀’ ‘피바다’ 같은 공연을 30년 동안 계속 무대에 올려서 고급관리에서부터 농사짓는 사람에게까지 다 보여준다. 우리 국립극장에서도 좋은 작품 몇 편 선정해서 반은 대여하고 반은 무료로 보여주면 된다. 청와대 공무원부터 학생, 농사짓는 사람들까지 다 초청해서 말이다. 근데 극장은 하나지, 공연할 것은 많지, 그러니까 안 되는 거다. 공산국가에선 누구한테나 보여주니 ‘피바다’를 안 본 사람이 없다. 내가 평양에서 ‘꽃 파는 처녀’ 보고 지주 노릇 한 악역배우가 연기를 너무 잘하기에 그 사람에게 꽃다발 줬다가 쫓겨날 뻔했다. 왜 지주한테 주느냐고 난리가 났다. 그 악역배우는 잔인한 연기를 기막히게 잘해서 한 동네에 못 살고 만날 이사 다닌다더라. 많은 사람을 초청해 공연을 계속 보여주면 나중엔 재미가 들어 자기 발로 보러 다닌다. 이건 정책적으로 추진할 일이다.”

    ▼ 이 정도면 정말 국악의 위기인데 해법이 있나?

    “이 문제는 교육으로만 해결될 수 있다. 초등학교 음악 교육과정에 국악을 30% 넘게 넣어서 의무적으로 배우게끔 하고 있다. 그런데 국악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교사는 양성하지 않고 교육과정만 둬서 제대로 된 교육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임용고사에서 국악을 가르치는 역량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아서다. 이런 상황에서 해마다 국악 전공자 900명, 한국무용 전공자가 600명씩 쏟아져 나오는데 이들이 갈 데가 없다.”

    국악이론을 전공한 변미애(한국교원대 음악교육과) 교수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변 교수는 “임용고시에서 실기 배점이 100점 만점에 10점인데 지역에 따라 국악 관련 실기를 보기도 하고 안 보기도 한다. 보더라도 단소 좀 불고 그러는 정도지, 교과과정의 30%가 넘는 국악 내용을 충실히 가르칠 수 있는지는 간과한다. 이러니 교육현장에서 국악교육이 제대로 될 리가 있겠나. 임용고사보다 더 큰 문제는 교육대학과 사범대에서 국악교육을 소홀히 하는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교사를 양성하는 대학에서부터 우리 전통음악에 애정과 관심을 갖고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육과정에 나오는 국악을 어떤 방식으로 가르칠지를 깊이 고민해야 한다. 외국인들은 우리가 학교에서 서양음악만 가르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하더라. 한국 사람이 우리 전통음악을 등한시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며 우리 스스로 정체성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수석이 중앙대 제2캠퍼스 부총장으로 취임한 2001년 국내 최초로 국악대학을 설립하고 2003년 국악교육대학원을 문 연 것도 “우리 전통음악을 가르칠 수 있는 선생을 양성하는 일이 국악의 저변 확대를 위한 첫걸음”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초등학교 선생은 두루두루 다 잘해야 하니 음악만 전공할 순 없다. 더구나 국악은 서양음악과 달라 따로 이론과 실기를 익히지 않으면 남을 가르치기가 어렵다. 그런데 국악교육대학원이 사립이라서 등록금이 한 한기에 500만 원쯤 했다. 등록금이 비싸서 한 학기를 다니는 게 부담되니까 20일 동안 합숙훈련하면서 실기와 이론을 배운 뒤 아이들을 가르치더라. 근데 그게 교과서에 실린 일부이니, 나머지는 못 가르치고 있는 거다. 청와대에 들어와서 가장 잘한 일 중 하나가 교내 오케스트라 지원이다. 5일제 수업 활성화와 학교폭력 근절을 위해 8000만 원씩 줘서 오케스트라를 만들게 했다. 합창, 악기 연주 같은 예체능 활동을 하면 폭력은 줄게 돼 있다. 서양 오케스트라만 하지 말고 국악관현악단도 필요하다고 했더니 전국 43개 학교에 국악관현악단이 생겼다. 강원 속초시에 있는 대포초등학교는 아이들에게 국악기 하나씩 다 배우게 했더니 60명밖에 안돼 폐교 직전이던 이 학교 학생 수가 600명으로 늘어났다. 아이들이 청와대 초청으로 서울까지 와서 국립국악원에서 공연도 했다. 교육정책으로 밀어줬더니 바로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누구보다 강원도립국악관현악단이 그 학교와 재능기부협약을 맺고 단원 한 명이 아이 10명씩 맡아 꾸준히 가르친 덕분이다. 국악교육의 방향과 기성 국악인이 나아갈 길을 보여준 좋은 사례다. 국악이 살아나려면 아마추어 교육이 활성화돼야 한다.”

    “공급과잉, 자리 부족, 전공기피 국악교육 3중苦, 악순환 거듭”

    박범훈 수석이 곡을 쓴 ‘이춘풍전’.

    “국민축제 마당놀이 부활했으면…”

    ▼ 모든 초등학교에서 ‘1인 1국악기’를 배우게 하는 건 어떤가?

    “어릴 때부터 국악교육을 시키는 게 좋다. 우리 전통예술처럼 인성교육에 적합한 과목이 없다. 단 이것을 교육정책을 총괄하는 자리에서 정책에 어떻게 반영하느냐가 관건이다. 현재 교과서에 편성된 국악의 비중을 꾸준히 늘려야 한다. 30~35%로는 부족하다. 근데 문제는 국악기가 소리 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고양이가 지나가도 소리가 나는 피아노와는 다르다. 그래서 단소를 소리가 잘 나도록 개량했다. 아이에게 맞게끔 국악기를 개량하는 일이 시급하다. 어린아이는 피부가 약해 가야금 몇 번 튕기면 물집이 생기는데 무조건 배우라고만 하면 역효과가 난다. 어릴 때 국악과 쉽게 친해지게 하려면 타악기부터 가르치는 게 좋다. 국악 리듬을 익히는 데 타악기만한 것이 없다. 우리 가락에 재미난 리듬이 꽤 많다.”

    2012년 3월부터 초·중·고교에서 주 5일제 수업이 전면 실시되면서 방과 후 수업이나 토요문화학교가 예술문화교육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예술문화교육의 전문성을 가진 교사를 임용고시로는 가리기 힘든 실정이다. 박 수석은 “그게 안타까워 만든 것이 2012년 8월부터 시행된 문화예술교육사 제도”라고 밝혔다. 문화예술교육사는 국가가 인정해주는 일종의 교사자격증이다. 국악, 미술, 음악, 무용, 애니메이션 등 문화예술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사람은 지정과목의 자격증을 취득한 후 초·중·고교와 국·공립 문예회관, 박물관, 미술관 같은 교육시설에서 활동할 수 있다.

    “사립학교에서는 이미 문화예술교육사를 모집해서 임용하고 있고, 국·공립학교에서 의무 채용하도록 하는 건 다음 정부에서 하지 않겠나. 하지만 문화예술교육사만으론 국악교육을 활성화할 수 없다. 국악인들도 어린이에게 맞는 국악교육 커리큘럼을 책임지고 만들어내야 한다. 뱃노래는 어른이 불렀던 민요지, 어린이가 부르는 게 아니다. 연령별 특성과 수준을 고려해 따라 할 수 있는 춤과 노래를 만들어줘야지, 민요는 다 좋은 줄 알고 집어넣어서는 안 된다. 떨고 꺾고 하는 노래를 아이가 그 맛이 나게 부를 수 있겠나. 아이들도 배우고 싶어 하고 선생들도 가르치고 싶어 하는 게 뭔지 국악에 대한 교육적 연구가 계속돼야 한다. 전통음악이라고 보존만 할 게 아니라 재미를 느끼게끔 만들어야 한다. 전통음악도 당시에는 창작이었다. 우리도 옛것을 우려먹지만 말고 창작을 통해 다음 세대의 전통을 만들어야 한다.”

    ▼ 1980~90년대를 풍미한 ‘마당놀이’가 부활하면 전통예술공연이나 국악에 대한 관심이 커질 것 같은데….

    “내가 ‘마당놀이’ 음악을 30년간 작곡한 것도 대중과 함께 호흡하며 놀 수 있는 민속놀이이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주연배우였던 윤문식 김성녀도 스타가 되지 않았나. 마당에서 놀게 하려고 대학교수 하면서 별짓 다했다. 마당놀이가 사라진 걸 아쉬워하는 사람이 많더라. 다시 하면 좋겠는데 나도 여기로 들어왔지, 배우들도 다 늙어 힘이 없다. ‘우리 것이 소중하다, 같이 들어야 한다’로는 대중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예술이라는 건 자기가 보고 좋아야지 동화가 된다. 물론 국악이 좋아지게 하려면 교육을 통해 많이 듣고 보고 느끼게 하면 된다. 그래서 우리가 학교에 국악관현악단을 많이 만들어서 정책적으로 뒷받침하는 것 아닌가. 아이들은 가르치기만 하면 국악이든 양악이든 쉽게 받아들인다.”

    ▼ 그러고 보니 젊은 국악 스타가 없다.

    “관현악곡은 듣기에 힘들고 재미가 없거든. 전자악기와 국악기 한두 개를 놓고 퓨전 스타일로 연주회를 하는 것도 좋다. 이러면 안 되는 줄 알고 미리 걱정부터 하는데 음악은 재미없으면 죽게 돼 있다. 인정 못 받으면 음악도, 음악인도 죽어가는 거다. 국악은 꼭 관현악단 형식이 아니더라도 연주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데도 관현악단을 만들어놓고 곡이 없어서 연주를 못 한다. 그럼 어떤 현상이 나타나느냐, 보는 사람이 없어진다. 그럼 지자체에서 돈 주고 이것을 왜 해야 하느냐는 소리가 나온다. 이제 없애라, 그렇게 된다.”

    “교수가 레슨으로 돈벌면 되나”

    ▼ 국악 상설 공연장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은데….

    “상설 공연장을 만들자는 의견을 참 많이도 냈다. 외국에 가면 그 나라 전통문화를 가늠할 수 있는 공연이 상시 열린다. 그런데 우리에겐 그런 게 없다. 세종문화회관이나 국립극장에서 오페라는 연일 열려도 국악 공연은 구경하기 힘들다. 유동인구가 많은 서울역 근처에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우리 전통예술 상설공연장을 만들면 좋을 것 같다. 근처에서 국밥도 먹고 마당놀이도 보고, 농악이나 탈춤도 볼 수 있는 전용극장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럼 문화예술은 물론 관광, 식품, 서비스 분야의 일자리도 늘고, 젊은 국악 스타도 나올 것이다. 국악의 저변 확대는 덤으로 따라올 거고.”

    박 수석은 국악 레슨비에 대해서도 일침을 놓았다.

    “난 서양음악을 하다가 국악을 했는데 우리가 국악을 배울 때는 선생이 먹을 게 없는데도 제자 삼으려고 데려다 먹이면서 가르쳤다. 왜냐? 자기가 가진 기술을 전수해야겠다는 생각에 죽어라 가르친 거다. 지금도 국악계는 사제지간의 정이 부모보다 더 끈끈하다. 그런데 일부 문화재가 된 국악인이나 대학교수 중에 서양음악 하는 사람들처럼 레슨비를 받고 제자를 키우는 사람이 있다. 가르치는 대가를 받는 것을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국악도 레슨비는 받아야 한다. 하지만 너무 심하면 안된다는 거다. 원래 대학교수는 레슨을 못 하게 돼 있다. 양악, 국악 모두 마찬가지다. 시간강사는 어쩔 수 없지만 최고의 자리에 있고 그에 맞는 대우를 받고 있는데 아이들을 과외로 가르치며 돈벌이하면 쓰나. 자기가 키운 자식 같은 제자들이 나가서 할 일이 없으니 몇 명 모아 학원 차리고 아이들 가르치는데 일거리를 빼앗으면 되느냔 말이다. 그건 제자를 실업자로 내모는 것과 같다. 현직에 있는 교수는 절대 레슨해선 안 된다.”

    ▼ 입시 레슨이 대학 교수에게 몰리는 건 학부형에게도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지금은 실력만 있으면 들어가는데 학부형들이 그것을 못 믿는다. 누구한테 배워야 붙는다는 소리를 듣고 그 사람한테 몰리는 거다. 부모 심정은 알지만 이런 인식이 바뀌어야만 한다. 지금은 학생선발과정이 투명해졌다. 국악과는 특히 학생이 부족해서 모셔갈 정도가 됐으니 입시과외를 할 필요가 없다. 국악계는 앞으로 실버 시대를 겨냥해 사회교육에 힘써야 한다. 각 구청이나 지자체에서도 노인을 위한 문화교실을 열어 한국 춤과 국악기를 가르치는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한다. 그러면 국악인들도 안정된 일자리를 얻고, 노인들도 치매예방 같은 건강 증진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박 수석은 인터뷰 말미에 정부 정책만으로 국악의 저변을 넓히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학교에서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국악을 접할 기회가 많아져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기도 했다.

    “공영방송인 KBS1-TV만이라도 우리 전통예술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매일 프라임 시간대에 내보내야 한다. 일본에는 그 나라 전통예술을 다루는 TV채널이 3개나 된다. 그중 하나는 에도시대 일본의 서민연극이었던 ‘가부키(歌舞伎)’를 13시간 동안 보여주더라. 그런데 우리는 전통예술 공연을 시청률이 안 나오는 한밤중 아니면 토요일이나 일요일 낮에 편성한다. 그것도 어쩌다 한 번씩 비정기적으로. 그래선 안된다. 방송은 물론 언론에서도 우리 것에 좀 더 관심을 기울여 많은 이가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도와야 한다. 또 많은 기업이 해외로 뻗어나가 공장만 세울 게 아니라 코리아타운을 조성해 우리 문화와 교육이 파고들어가게 해야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내가 대통령께 건의해서 세계 각지에 있는 한국문화원과 교육원을 통합했다. 태권도처럼 우리 전통예술도 해외로 진출해 수출 길을 열어야 일자리 걱정이 사라진다.”

    ▼ 해외로 뻗어나갈 묘안이 있나?

    “한류와 K팝의 보폭을 넓혀서 우리 전통음악이 덕을 봐야지, 국악만 가지고는 안된다. 국악이 싸이 같은 K팝스타와 손잡고 해외로 진출하면 파급력이 엄청날 거다. 이게 문화의 힘이다. 문화콘텐츠를 개발해 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한 시대다. 내가 중앙대 총장이 되자마자 교내에 한류아카데미를 만든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한류를 대한민국의 지속발전을 위한 미래 성장동력으로 만들려면 지도자를 제대로 교육시켜야 한다. 한류가 흘러가는 대로 둘 게 아니라 멀리 내다보고 준비해야 한다. 그래서 교육이 중요하다. 교육을 통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세계 문화예술의 추세를 우리가 주도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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