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각의 포스코 경영권 흠집 내기 바람직 않아
- 대외신인도·기업가치 하락하면 경쟁국 돕는 꼴
- 사외이사제도 등 선진 지배구조 장점 살려야
- 글로벌 무한경쟁 이겨낼 성장동력 찾기에 전념해야
포스코 광양제철소 전경.
이런 상황에서 한때 엄청난 식성을 자랑하며 관련 기업들을 인수합병(M·A)해 1억 t 이상의 생산량을 자랑하던 세계 최대 철강회사 아르셀로미탈은 요즘 사들였던 철강사들을 매물로 내놓고 있다. 한때 북미대륙을 호령했던 US스틸(Steel)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생산량 4위 포스코, 경쟁력은 1위
그러나 이런 구조조정 노력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세계 철강업계의 공급과잉은 해소될 것 같지 않다. 정부의 막대한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 철강사의 경우 세계 최대 생산국가의 자리를 당분간 유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철강생산시설을 대형화, 신예화하면서 기존의 노후화된 설비를 적기에 폐쇄하지 못했다. 세수와 고용 문제를 우려한 지방정부가 결단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근 일부 지역 제철소를 폐쇄하는 등 구조조정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으나 이것이 본격화될 때까지는 세계 철강업계가 힘든 고난의 터널을 함께 지나가야 할 것 같다.
그동안 포스코가 이룩한 성과는 대단하다. 최근 세계 경기침체와 철강 공급과잉으로 두 자리 숫자를 기록하던 영업이익률이 한 자릿수로 떨어지기는 했지만 세계 철강업계에서 포스코의 경쟁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포스코는 연간 3800만 t의 조강 생산 능력을 갖고 있다. 생산규모가 3배에 달하는 아르셀로미탈이나 신일본제철보다 시가총액에서 앞서 있고, 영업이익률도 글로벌 철강사들에 비해 2~6% 포인트 앞선다는 점에서 여전히 우수하다. 이는 미국의 철강전문 분석기관인 WSD (World Steel Dynamics)의 발표 자료를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럼에도 2012년 중반 포스코의 경영상태가 구설에 오른 적이 있었다. 제보자가 누군지 알 수 없으나 포스코와 최고경영자(CEO)를 음해하는 상당량의 문건이 언론사에 제보됐다. 제보 내용은 사실관계가 규명되지 않은 것이 많고, 겉으로는 포스코의 ‘악화된’ 경영실적을 문제 삼았으나 결국 포스코에 흠집을 내려는 의도였다는 지적이다.
유상부 회장은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물러났고, 이구택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지 1년 뒤에 물러났다. 이를 두고 어떤 이들은 포스코의 지배구조가 잘못돼 정치권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지적한다. 과연 그 때문일까.
포스코의 민영화는 2000년에 이뤄졌다. 민영화로 확보한 외화는 당시 외환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정부에 단비나 마찬가지였다. 한때 1국가, 1철강기업 구도를 유지해 ‘프레스티지(prestige·명망)’ 산업으로 각광받았으나 철강업계가 극심한 글로벌 경쟁에 들어가면서 민영화는 포스코의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도 상당히 설득력 있는 대안이었다. 정부는 당시 포스코를 민영화하면서 1인당 주식 소유한도를 3%로 묶었다. 특정 기업집단의 주식 집중 매입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포스코가 어느 개인의 소유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이었던 것이다.
어떤 이들은 포스코의 경영권 방어노력이 부족하고 심지어는 내부에 외부세력을 끌어들이는 세력들이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이는 3년 전 CEO 선임 과정에서 정치권의 개입 여부가 논란이 되었기 때문에 생긴 우려들이다. 사실 포스코의 전직 CEO들은 퇴임하면서 한 번도 정치권의 압력을 인정한 적이 없다. 그래서 유력 CEO 후보가 외압 사실을 폭로한 데 대해 포스코 직원들은 적잖이 당황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배구조 혁신
포스코는 민영화 이후 전문경영진의 전횡 가능성을 막고 외부에서 투명성을 의심할 여지를 최소화하기 위해 지배구조(governance)를 혁신적이고 지속적으로 개선해왔다. 현재 포스코는 사외이사 중에서 이사회 의장을 뽑아 실질적으로 경영진을 감시하게 하고, CEO를 뽑는 작업도 사외이사들이 주도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민영화를 거친 과거의 공기업은 물론 민간기업에서조차 찾아볼 수 없는 투명한 구조이다. 세계 최고의 투자가들이 포스코 주식에 우호지분의 성격으로 투자 증대와 투자 유지를 고집하는 이유가 이러한 투명한 지배구조의 선도적 확보에 있다는 점은 해외에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스탠퍼드대와 같은 세계적 명문대학이 박태준 전 명예회장의 리더십과 더불어 포스코의 투명성에 주목하고 학습하고 있기도 하다.
포스코의 독립경영에 대한 의지는 회사 창립 시점부터 경영진에 의해 주도되어왔다. 1967년 11월 10일 종합제철사업추진위원회에서 포항제철을 상법상의 주식회사로 설립키로 결정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일본의 야와타제철이 전후 오랫동안 적자를 낸 사실을 지적하며 정부의 재정 지원과 조세 감면이 가능한 공사 형태를 권유했다. 하지만 박태준 당시 위원장(2011년 작고)이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해 경영효율 면에서 큰 장점을 지닌 주식회사 형태를 고집해서 관철시킨 일화는 유명하다.
포스코의 투명성과 관련해서도 박 대통령과 경영진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됐다. 종합제철소 착공 준비가 한창이던 1970년 2월 정부나 정치권의 인사청탁이 잇따르고 납품 요청이 거세지자 박 대통령은 정부 관료의 간섭을 배제한다는 의미의 문서에 자필서명을 해주고 외부 압력이 있을 경우 이를 제시하라고 박태준 당시 사장에게 주문한 적이 있다. 이를 포스코 내에서는 ‘종이마패’라 한다.
공기업에 대한 정치적 외풍이 극에 달했던 1980년 당시 박태준 회장은 정계 진출로 몸소 포스코 바람막이에 나섰다. 박 회장은 철권통치형의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자 권력의 요청을 받아들여 입법회의 제1경제위원장으로 정치에 뛰어든 것이다. 박 회장은 평전과 여러 인터뷰를 통해서 ‘박정희 대통령 서거 후 실질적인 외풍 차단막이 없어지자 제2제철 건설을 마칠 때까지 스스로 포스코의 울타리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전두환 대통령의 요청을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국가가 부도위기를 맞이하며 허덕거리던 1997년 국내 대기업 중 가장 선도적으로 사외이사제를 도입한 회사가 포스코이다. 박태준 회장이 주도해 창업한 포스코에 역대 CEO 중 유일하게 외부에서 온 이가 김영삼 정부 시절에 있었다. 경제부총리 출신의 김만제 회장이다. 외부에서 온 김 회장도 취임 3년 후 독립적 지배구조가 포스코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사외이사제를 전격 도입했고, 사외이사 중심의 이사회를 운영했다.
사외이사제 선도적 도입
2003년 포스코는 기업 지배구조 강화에 대한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고 민영화된 기업의 지배구조에 대한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기 위해 새로운 모색을 시도했다. 그 일환으로 포스코는 6∼11월 한국이사협회(회장 이헌재) 및 고려대 기업지배구조연구소에 지배구조 개선방안과 관련한 연구용역을 의뢰했다. 또 사외이사 구성 비중을 추가로 확대해 이사회의 독립성을 강화하고, 후보의 3배수를 추천하는 사외이사 후보추천자문단을 운영해 이사회 운영의 투명성 및 객관성을 높이고자 했다.
독립성과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06년 3월 CEO와 이사회 의장직을 분리하고 CEO후보추천위원회를 신설한 것이다. 사외이사가 주축인 이사회가 CEO의 경영활동 감시와 견제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사외이사 중에서 이사회 의장을 선출하고, 사외이사 전원으로 구성된 CEO 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해 투명하고 공정하게 CEO 후보를 선발해 자격을 심사하기로 한 것이다.
사외이사 대부분은 학계는 물론 시민단체 출신까지 대중적 인지도와 투명성을 충분히 검증받은 인사들로 구성되어 있다. 경영권 독립과 관련해서는 아무리 전략적으로 기획된 정치수단이 동원돼도 뚫을 수 없을 정도로 견고한 시스템을 갖춘 것이다. 이 체계에 의해 2007년 첫 추천위원회가 개최되었고, 이구택 전 회장의 연임이 결의됐다.
물론 포스코의 사외이사제도에 대한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안철수 전 무소속 대선후보가 미국 유학시절 사외이사로서 과도한 대우를 받았다는 비판도 있었고, 견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포스코 사외이사제도의 우수성을 평가절하해서는 안 된다. 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외부 평가는 대부분 긍정적이다. 포스코는 2011년 한국거래소로부터 지배구조 우수기업에 선정됐고, 지분도 외국인(48.4%), 자사주(11.4%), 국민연금(6.8%) 등 고르게 분산돼 있다.
포스코 이사회 전경.
그럼에도 이러한 시도들은 포스코의 경쟁력을 훼손시킨다는 점에서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 2012년 4월 외압설이 다시 보도되었을 때 포스코는 해외 파트너사로부터 향후 수십 년간 동반자 관계를 지속할 수 있을지에 대한 검증을 다시 받아야 했다. 그 파트너사는 그 보도를 보고 향후 수년간 지속될 대형 프로젝트를 정치적으로 자유롭지 못한 기업과 함께 하는 것에 대해 우려한 것이다. 결국 포스코는 그것이 우발적인 사고라고 해명한 뒤에야 동반자 관계를 약속받을 수 있었다. 결국 한국 경제의 손실로 연결될 수 있다.
포스코가 민영화된 지 12년이 지났다. 이제 포스코도 정치권도 달라질 때다. 포스코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최고의 경쟁력을 구가하고 있지만 전성기에 비해 영업이익도, 시가총액도 많이 줄었다. 그나마 향후 어려워질 철강 경기를 예측하고 2~3년 전부터 소재와 에너지 분야로 핵심사업 축을 넓힌 것은 대단히 다행스러운 일이다.
서울 대치동 포스코센터.
포스코 주주나 이해관계자들도 포스코의 판단을 믿고 기다려줘야 한다. 새로운 분야에 기업을 만들어도 수년이 걸려야 정상화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포스코가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려 신설한 회사가 대부분 적자라고 비난만 할 게 아니라 어려운 경영환경 속에서도 비전을 갖고 묵묵히 미래의 씨를 뿌리는 포스코의 노력에 박수를 쳐줄 수는 없을까?
최근 전력예비력이 관심단계인 400만㎾ 이하로 떨어져 비상이 걸렸고, 올겨울 혹한까지 겹쳐 전력부족이 심각할 전망이다. 발전 사업 투자가 지체된 것은 고환율 시기에 정부는 물론 민간 발전사업자들도 설비투자를 주저한 때문이다. 그러나 포스코에너지는 2008년 과감히 인천에 600MW급 발전소 2기를 추가 건설해 국내 최대 민간 발전사업자로 도약했다.
지금 포스코가 자체 확보하고자 하는 리튬이나 마그네슘, 티타늄, 지르코늄 등은 산업고도화에 따라 필수적으로 확보해야 하는 소재다. 지금 당장 경쟁력이 없다고 해서 투자를 게을리한다면 머지않아 우리는 중국, 일본, 러시아 등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소재 종속국이 될지도 모른다.
포스코 구성원도 자성해야
포스코 전·현진 임직원들은 12월13일 박태준 전 명예회장의 1주기를 맞아 추모행사를 갖고 한마음으로 글로벌 경제위기를 이겨내자고 다짐했다. 실제로 포스코 구성원들은 달라져야 한다. 미묘한 시기에 내부 관련 정보가 외부에 많이 노출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어려울 때일수록 내부 단결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 사회가 선진화하려면 원칙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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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가 회사 고유의 지배구조, 의사결정 시스템이 부정되고 경영 리더십이 상실되는 삼류 기업으로 전락해선 안 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눈치를 봐야하고, 미래가 예측되지 않는 글로벌기업에 관심 가질 투자자는 어디에도 없다. 글로벌 무한경쟁에 맞서 기술개발에 나서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며, 새로운 미래 성장 분야를 찾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왜 포스코가 민영화된 이후에도 이른바 ‘국민기업’이고 왜 청년들이 가장 존경하고 일하고 싶은 기업인지 곰곰이 되씹어보아야 한다.
세계 경제전선에서 국위를 선양하고, 국민이 자랑스러워하는 기업을 존중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시대적, 사회적 책무와 가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