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선의 막이 내렸다. 긴 여정이 끝나고 또 다른 여정이 시작된다.
- 앞의 여정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상대방을 꺾고 이기지 않으면 안 되는 운동경기 같은 각축이었다면, 이후의 여정은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길이라면 승자의 지배 욕망을 좀 누그러뜨려도 좋을 여정이다. 그렇다고 앞으로 펼쳐질 정치 역정이, 편하고 여유롭고 뜻대로 이루어지는 길은 결코 아닐 것이다.
- 온갖 요구를 충족시켜야 하고 거센 비판과 거친 비난을 견뎌야 하는 가시밭길 앞에 선 새 대통령이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2012년 8월 새누리당 대선후보 지명 전당대회에서 대선후보로 선출된 뒤 밝게 웃고 있다.
게다가 정작 대통령이 싸워야 할 적이 정부 안에 있다. 사람들은 민주주의의 대립각이 공산주의인 줄 알지만 공산주의는 자본주의의 상대 개념이다. 민주주의의 적은 관료주의다. 고식적(姑息的)인 사고의 틀, 제도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후보자로서 국민에게 한 공약을 이행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게 어렵사리 고난의 역정을 이기고 당선된 대통령이 그래도 성공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돼야 하지 않겠는가?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참고로 선거기간 중 조선일보가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박근혜·문재인 두 후보의 국가운영 능력에 대한 평가는 10점 만점에 각각 6.22점과 5.66점이었다. 큰 차이가 없었던 셈이다.
한 시대의 표상
“루스벨트는 미국인이 아니라 미국이다”라고 말한 영국의 자유주의 정치가 존 몰리는 시어도어 루스벨트를 한 개인 정치가가 아니라 시대 그 자체라고 했다. 루스벨트는 요즘의 우리처럼 재벌에 반대하고 사회민주주의의 이념에 따라 수정 자본주의를 추구한 카리스마 넘치는 귀족이었다. 미국에서는 루스벨트 말고도 여러 대통령이 그런 반열에 선다. 미국의 패권을 조용히 관리한 경영자 같은 아이젠하워나, 전문가보다는 평범한 친아버지 같은 인상을 풍겼던 레이건과 포드, 경제력과 재능을 겸비해 1990년대와 잘 어울렸던 빌 클린턴 모두가 루스벨트처럼 ‘시대의 인물’로 받아들여진다. 월러 뉴엘 미국 칼튼대 정치학과 교수가 쓴 책 ‘대통령의 조건: 우리는 철학이 있는 리더를 원한다’(21세기북스)에 나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에서는 누가 뭐라 해도 나라를 세운 이승만이 시대의 인물이었고, 현대 국가의 국력을 반석 위에 올려놓은 박정희도, 찬반이 극명하게 엇갈리지만, 시대의 구체적 표현이라고 하기에 손색이 없다. 그럼에도 미국과 달리 우리는 반대편에서 끝까지 개인 중심의 평가를 한다. 그 정부가 이룬 업적을 평가하는 데 매우 인색해 자연인으로서의 개인이 사장되기 일쑤다. 그러나 대통령이 된 사람이 시대를 넘어, 구 패러다임을 넘어 국민 개개인의 욕구보다 전체의 욕구를 용해해 새로운 시대의 규범을 만들고 새롭고 아름다운 관행을 국정에 심는다면, 그는 진정 ‘시대의 인물’로 역사에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도덕적인 확신이 필요하다.
국민은 지도자가 도덕적이기를 원한다. 도덕성을 갖추는 것은 지도자가 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도덕적으로 국민을 실망시킨 예는 허다하다. 대통령 자신이 그런 인물일 때도 있고, 주변 인물이 비도덕적인 때도 있다.
문제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항상 선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선정(善政)을 베풀어야 한다고 하지만 선한 얼굴의 이면에는 야누스의 다른 한쪽이 자리 잡는다. 마키아벨리가 말했다. 세상이 선하지 않은데 자신만 선한 척하며 경쟁에서 이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한편 세계적인 경영 컨설턴트 울프 린케는 리더가 도덕적이기를 포기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마이크는 항상 켜져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리더의 행동은 항상 드러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위대한 리더가 되려면 희생이 따르더라도 옳은 일만 해야 한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바로 그런 예다. 그는 독실한 침례교도로 재임 중 한국에 왔을 때 여의도 침례교회에서 예배를 본 적이 있다. 그는 세상을 순수하게 봤고 미국의 관점에서 세계정세를 분석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당시 그의 상대는 다분히 전략적이며 불순한 의도로 가득 찬 소련이었다. 결국 미국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막지 못했다.
관료주의 극복
세상에는 별별 인간이 다 있지만, 다른 한편에는 거역하거나 포기할 수 없는 국가이익이 있다. 국가이익을 포기하는 국가 정상은 없을 것이다. 이를 지키기 위해 정상은 최선이 아닌 차선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링컨 전 미국 대통령은 노예제도를 즉각 폐지하자는 주장에 맞서 현실적인 방안을 선택했다. 이를 테면 차악(次惡)을 택한 것이라 갖가지 오해까지 샀지만 그래도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었다. 좋은 리더라면 적과 싸울지라도 필요할 때는 그들을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 경쟁자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다. 최근 오바마가 대선 경쟁자였던 미트 롬니 전 공화당 대선 후보를 백악관에 초청해 둘이서만 점심을 나누며 함께 가자고 호소한 것이 좋은 예다.
오바마가 최근 경험한 미국 관료주의(bureaucracy)의 폐해를 통해 관료주의와의 싸움이 얼마나 힘든지를 들여다보기로 한다. 사건은 허위보고에서 비롯된다. 리비아 벵가지 주재 미영사관 피습사건 당시 최초 보고서에는 ‘알카에다와 연계된 극단세력의 공격(attack)’이라는 표현이 있다. 이후 ‘공격’이 ‘시위(demons-tration)’로 바뀌었다. ‘알카에다 연계’라는 부분도 빠졌다. 현장의 심각성을 희석시켜 미국 대선에 미칠 영향을 줄이려는 것이라는 의심을 살 만했다. 정보기관이 정보 내용을 이렇게 바꾸면 대통령은 누굴 믿고 올바른 정책결정을 할 수 있을까. 사건은 마이클 모렐 중앙정보국(CIA) 국장 대행이 11월 27일 국회의원들에게 ‘CIA는 이를 수정하지 않았고, 아마도 연방수사국(FBI)이 했을 것’이라고 했다가 다음 날 ‘CIA 내부에서 수정이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을 바꾼 것으로 끝난다. 2만 명이 넘는 인력을 보유하고 연간 70조 원에 달하는 예산을 쓰는 거대 조직에서 일어난 일이다. 린지 그레이엄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은 ‘CIA가 의회를 바보로 만들었다’고 질타했지만 관료주의의 이 같은 오랜 습성을 누가 바꿀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런 일이 우리 정부에서도 수없이 일어나고 있다. 대통령이 관료들 말만 듣다가 정부의 정책성과가 바닥을 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난 10년간 우리 정부의 정책성과를 보자. 2003년 2.8%였던 경제성장률은 노무현 정부 말기인 2007년 5.1%까지 올랐다. 이명박 정부에선 2008년 다시 2.3%로 떨어진 경제성장률이 2010년 6% 이상으로 올랐다. 그러나 2011년에는 다시 3.6%로 떨어지고 말았다. 경제성장률은 우리 정부 혼자의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국제경제 흐름과 맞물려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의 성과는 경제성장률로 판가름 나고, 그 책임의 대부분은 경제 관료들에게 있다.
노무현 정부 말기인 2007년 299조 2000억 원이던 국가부채는 2011년 현재 420조7000억 원에 달한다. 노무현 정부 때 대학 등록금은 국·공립대의 경우 57% 폭등했다. 집값도 이루 말할 수 없이 올랐다. 1인당 세금 부담도 44%나 증가했다. 이명박 정부 때는 물가가 상승해 아파트 전셋값이 연평균 7.6% 올랐다. 가계부채가 937조 원으로 급증해 양극화 현상이 심화된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이들 모두는 대통령의 책임인 동시에 경제 관료가 어떻게 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내용이다. 정부의 성패가 관료 때문에 갈린다는 말이다.
능력보다 인성
인사에서도 대통령은 관료에게 끌려간다. 인사는 팀을 어떻게 짜느냐와 직결된다. 이명박 정부는 경제정책이나 복지 등의 면에서 전 정부보다 못한 것이 없어 보이지만, 내용으로 보면 인사는 망친 것과 다름없다. 최근 불거진 검찰총장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사이의 갈등이 이를 전적으로 보여준다. 전임 검찰총장은 국회 인사청문회 때부터 말이 여간 많지 않았다. 이처럼 인사가 엉망이었던 사례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리가 전범으로 삼아야 할 것은 미국이다. 미국은 선거를 6개월 정도 앞두고 인사팀을 구성해 국정운영을 준비하는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 우리는 어림도 없다. 대선 때는 급하니 이런저런 사람을 데려다 쓰고, 승리하면 자리 달라고 조르는 것을 못 이겨 아무 데나 앉히다 사달이 난다. 노무현 정부 때부터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들이 국정을 농단하는 예가 눈에 띄었다. 이들이 ‘주군’ 밑에서 경험을 쌓았다고는 하지만 나쁜 전례도 그대로 배워 답습하니 정부가 온전할 수가 없다.
내가 오래전부터 주장하는 것은 선거캠페인 팀과 국정운영 팀을 구분하는 것이다. 국정을 맡을 팀은 선거 전략 수립이나 순간 판단력보다 앞을 보고 국익에 도움이 되는 것을 선택할 줄 아는 사람으로 구성해야 한다. 선거참모는 약 30%만 국정 팀에 포함시키고 나머지는 달리 인선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성공하는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당선자가 당장 할 일은 여러 참모 중 정부가 성공하는 데 도움이 될 인물을 골라내는 일이다. 개인의 능력도 고려해야 하지만, 그보다는 서로 돕고 조화를 이룰 줄 아는 인성의 소유자인지를 우선해야 한다. 대통령을 당선시킨 공신들 사이에서는 지금부터 자리다툼과 실세로 군림하기 위한 암투가 시작된다고 보면 거의 틀림없다. 대통령은 이런 참모들 간의 역학관계를 꿰뚫고 있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성층권에서 맴돌 뿐 땅에 발을 디딜 수 없다.
팀을 잘 짜야 정부가 성공한다. 불완전한 개인이 만나 완벽한 팀을 이루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다. 결속력이 약해지면 팀은 있으나마나다. 21세기 리더는 ‘나보다 너보다 우리’가 함께 가야 한다. ‘Non mihi, non tibi, sed nobis’라는 라틴어가 바로 이 뜻을 담고 있다.
동행의 리더십
리더는 자기중심적이기보다는 함께 나아가려는 협동심이 있어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팀 리더십이다. 리더는 ‘끌고 가는 자’가 아니라 모두 함께 가는 사람 중의 하나다. ‘코 리더십(co-leadership)’‘나누어 갖는 리더십(shared leadership)’‘팀 리더십(team leadership)’이 필요하다. 지시하고 군림하는 명령의 리더십이 통하는 시대는 지났다. ‘역사를 만드는 리더십’의 저자 장현규 박사는 구성원과 ‘함께하는(Let′s go)’ 동행의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했다. 리더십 연구자 존 어데어는 “모든 유능한 리더는 공동체 정신인 ‘단결심’을 창조하는데, 이는 가장 어려운 일이나 단조로운 일조차 흥미롭게 만드는 효과를 발휘한다”고 주장한다. ‘최고의 리더’ 등을 쓴 제임스 쿠제스는 “협력과 협동에서 상호 의존 정신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는 다른 사람들이 성공하지 않으면 자신도 성공할 수 없으며, 다른 사람들이 협력해야 자신도 비로소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한 사람의 성공이 다른 사람의 성공에 영향을 받는다는 인식이 있어야 긍정적인 팀워크를 형성할 수 있다.
‘최고의 리더’에는 미국 샌타클래라대 커크 한슨 교수가 밝힌 리더의 아킬레스건이 소개돼 있다. 그에 따르면 리더들은 예외 없이 ‘자신이 모두 알고 있고, 모든 것을 혼자 했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곧 조직이라고 생각한다’. 리더가 팀이나 집단을 도외시하고 혼자만 돋보이려고 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협동과 조화를 무시하고 혼자만 앞장서려는 생각은 부메랑으로 돌아와 리더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다. 그런데도 리더들은 이런 집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언젠가 방송인 류정아가 국회방송에서 내게 물은 적이 있다. 스스로 리더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아니라고 답했다.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리더 자격이 없다는 의미였다.
대통령의 관심사는 ‘5년 임기 동안 어떤 음식(정책)을 어떻게 요리해(관리해) 국민이 건강하게 살고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하며 내일의 희망을 안겨주느냐’다. 요리 재료는 나라에 산재한 자원들이고 도구는 정부기구다. 음식을 풍성하게 만들어 국민에게 주면 그 이상 좋을 수 없겠지만 재료가 넉넉지 않은 것이 오늘의 사정이다. 빚을 져야 한다면 아무리 잘 먹은들 속이 편할 리 없다. 국가 채무를 한껏 늘리면서 여러 공사를 해 뒤치다꺼리를 후손에게 넘기는 일 이상이 아니다. 당장 고용을 창출하고 불편을 줄이기 위해 하는 일이라도 부담이 크다면 본말전도가 된다. 그런데도 새 대통령은 선거 때 밝힌 공약을 이행하려 판을 벌일 것이다.
정책 수립의 선후
정책 중 어떤 약속부터 이행하느냐가 중요하다. 양극화 해소, 중산층 복원 등은 분배와 관련된 내용이다. 이는 동시에 재벌을 어떻게 다스리는 것이 전체의 부를 충족시키는 데 도움이 되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재벌 재산을 모두 몰수해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공산혁명을 하면 간단할지 모른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숨 쉬는 민주공화국에서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재벌제도를 고치기 위해 순환출자제 등 규정과 법을 고쳐야 하는데 이런 것들이 5년 안에 국회를 통과할 수 있을지 의문이 앞선다. 18대 국회 때 재벌의 금융사업 관련 법안을 고치려고 여러 번 시도했지만 처리하지 못한 것만 봐도 재정 관련 법안의 성사가 쉽지 않다는 것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외에도 무상급식, 반값 등록금, 육아와 보육 정책, 전·월세 문제 해결 등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대통령은 청와대 참모진, 그리고 각료들과 머리를 맞대고 매일 숙의하겠지만 결과는 뻔하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
새 정부에 제의하고 싶은 것 중 하나는 시작을 잘하기 위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부터 새롭게 구성하고 운영 방식도 과거와 달리했으면 하는 것이다. 그중 하나만 말하면 이번부터는 정부 조직과 기구, 인력 등에 대한 개선책을 인수위가 내지 말고 각 부처가 마련해 제출하도록 하라는 것이다. 기대에 어긋나면 엄중히 책임을 묻는 것을 전제로 하고 말이다. 지금까지 인수위는 전 정부를 마치 범법자인 양 윽박지르며 활동했다. 이런 전례가 반복되면 5년 후 똑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다. 미국은 인수팀이 워싱턴에 상주하지 않는다. 캘리포니아에 사무실을 차려놓은 적도 있다. 전 정부를 존중하며 서로 의논해 일을 진척시켰다.
정부조직을 개편할 때도 이번부터는 대부처 대과주의를 지양했으면 한다. 기능을 한곳으로 몰아넣으면 힘이 막강해져 국민 위에 군림하고 부처에서도 군림한다. 일반 국민은 정부 부처끼리 자리다툼, 예산다툼을 하느라 시간과 힘을 소진해 정작 국민에게 돌아올 서비스의 양과 질이 뚝 떨어진다는 것을 모른다. 게다가 부처 기능이 막강해지면 견제와 감시가 그만큼 줄어든다. 민주주의의 기본원리가 견제와 균형인 것을 새겨 정부 조직을개편할 때 한곳으로 몰지 말고 적당히 힘을 나누어 분산하는 것이 성공하는 대통령이 되는 지름길이다.
생명의 정치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자신의 능력을 입증할 수 있는 2, 3개의 주요 목표를 세워야 한다. 남북문제나 경제문제, 교육문제처럼 큰 이슈에 집중하는 것이 현명하다. 환경에 대한 목표 역시 필요하다.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한 도시를 구원하는 것은 그 도시에 사는 올바른 사람보다 오히려 그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숲과 자연”이라고 했다. 도시에서 나아가 나라, 세계를 구원하려면 환경에 대한 사고와 행동이 필요하다. 그린 리더십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글로벌 시민에서 그린 시민으로 변모해야 할 때다. 그런 방향으로 시선을 둘 수 있는 리더가 절실하다. 그린 리더십에서 중요한 것은 생명체에 대한 인식인데, 리더 역시 생명의 세계에 대한 지식과 인식을 바탕으로 ‘생명의 정치’를 펴야 할 것이다. 모든 존재, 모든 생명을 존중하고 귀하게 여기는 철학을 가진 리더가 필요하다.
대통령이 구현하려는 목표는 결코 단시일 안에 달성되지 않는다. 대처 전 영국 총리는 자신의 성향과 전혀 맞지 않는 온건파 에드워드 히스 내각에서 일하며 조용히 친시장적인 견해를 다듬었다.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도 오랜 세월에 걸쳐 자유기업 제도에 대한 신념과 공산주의에 대한 혐오감을 키웠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도 민주당이 더 이상 자본주의의 적처럼 행동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마음속에서 수없이 되뇌었다. 대통령으로 성공했다는 말을 들으려면 한두 가지 목표만 달성해도 된다. 남북문제나 경제문제가 교육과 더불어 큰 과제이기에 큰 이슈에 집중하는 것이 현명하다.
2008년 90회 생일 기념식에서 연설하는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만델라는 아름다운 리더십의 상징이다.
아름다운 리더
대통령으로 성공하려면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시사지 ‘타임’이 2008년 7월 9일자 커버스토리로 소개한 내용이다.
앞에서 감동적인 수사법의 효과를 이야기했다. 이를 위해서는 리더 자신부터 감성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리더 스스로 느끼지 않고 감(感) 없는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것은 알맹이 없는 껍질만 열심히 손질하는 것과 같다. 이성뿐 아니라 감성까지 두루 갖출 때 융합적인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 융합적 사고에는 6가지 조건이 있다. 전체를 조감하는 전일주의적 태도, 다름을 인정하고 이분법을 넘어서는 태도, 이성 중심의 서양적인 사고를 넘어 감성의 중요성을 깨닫는 태도, 쌍방향적인 관계를 중시하는 태도, 느낌과 감성 위주의 신비적 태도, 인지에 대비되는 인미(認美)를 중시하는 태도가 그것이다.
새 시대가 열린다. 새 시대가 열릴 수밖에 없다. 전례 드문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새 시대는 뭔가 달라야 하고 대통령도 이에 맞게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로운 리더는 궁극적으로 아름다운 리더였으면 한다. 아름다운 리더의 특성 중 하나는 여유를 갖추는 것이다. 더불어 아상(我相)을 버리고 진아(眞我)를 가진 리더는 아름답다. 자신의 고집만 주장하지 않고 세상과 역사가 나아가는 방향으로 나아갈 때 역사가 선택한 지도자가 될 수 있다. 이런 리더가 아름다운 리더다. 칸트는 아름다움은 이해관계가 없는 즐거움이라고 했고, 라이프니츠는 아름다움은 이해관계가 없는 사랑이라고 했다. 이런 아름다움이 리더의 속성이 될 때, 리더십은 과학이 아니라 예술이라고 말한 리더십 연구자 스티븐 샘플의 말이 실현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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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리더는 어떤 리더인가?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룬 최상의 상태를 아름답다고 말한다. 이는 통전성(統全性)이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아이젠하워는 지도자에게 있어 최상의 자질은 통전성이라고 했다. 통전성은 정직하고 견고한 성품, 말과 행동이 일치해 신뢰할 만한 성품, 그리고 지·정·의가 조화를 이룬 성품을 의미한다. ‘파충류처럼 냉정하고 포유류처럼 긍정하라’의 저자 조지프 화이트 역시 “정신적, 육체적, 감성적으로 강인하고 냉철한 파충류적인 리더와, 다른 이들을 존중하며 온유하고 인간적인 포유류적인 리더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말했다.
새 대통령이여, 아름다워라. 세상을 아름답게 꾸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