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판결로 대형마트를 앞세워 골목 상권을 무서운 속도로 점령하는 유통 재벌들과 이에 맞서는 중소상인들이 더욱 날카롭게 대립했다. 여기에 재벌 빵집 논란까지 더해져 여론이 악화됐다. 당황한 재벌들이 빵집에서 손을 떼겠다며 연달아 철수를 선언했다. 그러나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오히려 경제민주화 논의가 일어났다.
경제민주화는 건국이념
경제민주화는 민주주의라는 정치적 단어가 경제라는 이질적 영역과 만나 생겨났다. 최근에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26년 전인 1987년 헌법에 규정된 용어다. 세간에는 새누리당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 저작권자인 것처럼 알려져 있지만 실은 1948년 건국 헌법에도 경제민주화의 핵심 내용이 규정돼 있었다. 이후 9번의 헌법 개정을 거치면서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다. 따라서 경제민주화는 65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 건국이념 중 하나라고 봐야 한다. 건국헌법 제84조에 규정된 경제민주화 관련 내용은 이렇다.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기함을 기본으로 삼는다. 각인의 경제상 자유는 이 한계 내에서 보장된다.”
건국헌법은 국민의 경제활동에 있어 ‘균형 속의 자유’를 선언하고 있다. 1960년 4차 개정 헌법까지 이 규정은 그대로 유지된다. 그러다가 1962년 박정희 정권에 의한 5차 개정 헌법에서 이렇게 바뀐다.
제111조 ①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개인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 ②국가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시키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하여 필요한 범위 안에서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한다.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원칙으로 하고 그 원칙하에 사회 정의의 실현을 위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도록 바뀐 것이다. 그러니까 원칙과 예외가 뒤바뀐 것이다. 이 규정은 유신헌법, 전두환 정권의 1980년 헌법에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특히 1980년 헌법은 독과점의 폐단을 적절히 규제한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산물로 이루어진 현행 헌법은 ‘경제의 민주화’라고 아래와 같이 구체적으로 표현한다.
제119조 ①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 ②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법원이 연달아 대형마트 의무휴업 처분에 대해 위법하다고 판결한 것은 헌법에 반한 판결일까. 실제로 중소상인들은 ‘법원이 재벌 편을 들어 소상인들을 죽게 한다’며 비난했다. 그러나 판결문을 잘 읽어보면 대형마트 의무휴업 정책이 정당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결론만을 보고 법원의 판결을 오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법원이 유통 재벌 편드나
일각에선 대형마트 의무휴업이 경제민주화에 부합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법원이 사소한 절차상의 문제로 의무휴업 자체를 못하도록 형식적으로 판단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이는 매우 위험한 주장이다. 마치 경제발전을 위해서라면 독재도 허용될 수 있다는 박정희 정권의 논리와 유사하다.
유통산업발전법과 지방자치단체들이 만든 조례는 크게 두 가지 점에서 차이가 있다.
첫째, 법은 지자체장에게 건전한 유통질서 확립, 근로자의 건강권, 대규모 점포와 중소유통업의 상생 발전을 위해 영업시간 제한이나 의무휴업이 필요한지 아닌지에 대해 판단할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그런데 조례는 지자체장에게 그러한 판단을 할 여지를 박탈하고 무조건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을 지정하도록 명하고 있다.
둘째, 법은 1차 판단을 한 다음에도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을 지정할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는 재량을 부여한다. 둘 중 어떤 수단을 택할지도 지자체장의 재량으로 두고 있다. 그러나 조례는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일 지정을 모두 하도록 의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요컨대 법은 분명히 지자체장에게 재량을 부여하고 있는데 조례가 그러한 지자체장의 재량을 박탈한 것이다. 국회가 만든 법률은 지방자치단체가 만든 조례보다 상위 규범으로 우월한 효력을 가진다. 그렇기 때문에 법률에 저촉하는 조례는 무효가 될 수밖에 없다.
일련의 법원 판결은 이처럼 법률과 배치되는 조례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조례가 무효이므로 조례를 근거로 내린 강제휴무일 지정 처분도 무효라고 판결한 것이다.
재판 진행 중 한 구청장은 “지방의회 조례에서 구청장에게 재량을 부여했다고 하더라도 구청장은 당연히 강제휴무일 지정을 했을 것이므로 구청장의 재량권을 침해한 것이 아니다”라며 조례를 옹호했다. 자신의 권한을 박탈한 조례가 정당하다고 한 이례적인 주장이었다.
이에 대해 법원은 “법이 구청장에게 판단재량권을 부여한 것은 권한뿐만 아니라 의무도 함께 부여한 것인데 구청장의 주장은 이러한 법적 의무를 방기하겠다고 하는 것”이라며 구청장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외 의무휴업일 지정 전에 대형마트에 사전통지를 하고 의견제출 기회를 부여해야 하는데 이렇게 하지 않은 절차적인 문제도 있었다는 것이 법원의 지적이었다.
대형마트 중 하나로클럽은 강제휴무를 하지 않는 반면 코스트코는 서울시의 표적감사를 받는 등 더 심한 제재를 받고 있는데 이러한 차이가 발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농협이 운영하는 하나로클럽과 하나로마트는 강제휴업 대상에서 빠졌다. 이는 유통산업발전법이 연간 총매출액 중 농수산물의 매출액 비중이 51% 이상인 대규모 점포는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의회 조례만 바꾸면 돼
코스트코는 지자체로부터 강제휴업 조치를 받고도 다른 대형마트들과 같이 소송에 참가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코스트코에 대한 강제휴업 처분은 그대로 효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럼에도 코스트코는 강제휴업일에 장사를 계속하는 대담한 얌체 짓을 했다. 서울시는 이에 대해 단속을 실시한 것이다.
우리 헌법에 따르면 대형마트의 시장 지배를 막기 위해 국회와 지방의회가 법률과 조례로써 대형마트의 영업시간을 제한하고 의무휴업일을 지정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지방의회가 유통산업기본법이 규정한 대로 조례를 개정하면 그만이다. 실제로 문제가 되는 조례를 개정한 서울 강서구의 경우 지자체가 대형마트와의 소송에서 승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