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 정부서 과기부 수장 차관급 바뀌어 불만 팽배
- 과기부는 ‘과거위상’ 찾기, 교육부는 생존 몸부림
- “초·중·고-대학 분리하는건 난센스” 지적 많아
해마다 열리는 행사지만 이날은 좀 달랐다. 유력 대선주자였던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후보가 모두 참석해 열기가 뜨거웠다. 이날 세 후보는 모두 ‘과학기술부를 독립시키겠다’는 내용의 발언을 했다. 사실 새벽부터 전국의 과학자들이 기차, 버스, 승용차를 동원해 서울로 모인 것은 바로 이런 말을 끌어내기 위해서였다.
과학기술계에서는 이명박(MB) 정권 5년 내내 “과학기술 컨트롤타워가 없다. 과학기술 전담 부처가 필요하다”고 외치고 다녔다. 과학기술자들이 관련 단체를 통해 성명도 발표하고 국회를 방문하는 등 실력행사를 하기도 했다.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주요 후보들에게서 ‘전담부처’ 비슷한 얘기를 공식석상에서 이끌어냈으니 나름대로 ‘투쟁’ 효과를 본 것이다.
교육-과학, 예정된 별거
대선 후보들이 일제히 과학부처 신설을 약속한 만큼 누가 당선되든 교육과 과학이 분리되는 것은 일찌감치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 MB 정부 들어 2개의 부총리급 부처가 하나의 장관급 부처로 격하됐던 교육과학기술부. 옛 교육인적자원부와 과학기술부가 합쳐진 교과부는 결국 5년 천하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남은 관심사는 교육과 과학이 업무 영역을 어떻게 나누고, 쪼개진 부처의 규모가 각기 어느 정도로 줄어들 것인가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2012년 10월 창조경제 스마트뉴딜 정책을 발표하면서 ‘미래창조과학부’를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사실, 박 당선인은 선거관리위원회에 공시한 주요 공약에 과학기술이라는 명칭이 명확하게 표현되지는 않았지만, 박 당선인의 창조경제론에서 그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박 당선인 측은 과학기술과 정보통신을 담당하는 미래창조과학부를 통해 ‘창의적인 융합인재 양성’ ‘미래를 이끌 연구’ ‘지식생태계를 위한 법제도’ 등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교육 분야는 정권을 떠나 중장기적인 발전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국가미래교육위원회’를 만들겠다고 했다.
과학기술계는 적어도 1967년부터 2007년까지 40년간은 자신들을 대변하기도, 더러는 괴롭히기도 했던 전담 부처를 갖고 있었다. 과학기술 관련 업무를 정부에서 독립적으로 다룬 것은 1962년 박정희 정부가 들어선 이후부터다. 박정희 정부는 공업화 과정에서 필요한 기술을 수입하고 활용하기 위해 1962년 경제기획원 안에 기술관리국을 설치했다. 그리고 5년 뒤 1967년 과학기술처(과기처)로 독립시켰다. 박 전 대통령은 국가 경제 발전에 과학기술의 힘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미국 등의 원조를 받아 종합연구소인 과학기술연구원(KIST)을 1966년에 설립하는 등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이후 과기처는 전두환 정부, 노태우 정부, 김영삼 정부를 거치면서 독립 부처로 당당히 존재해왔다.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정권이 교체됐지만 정치권의 바람을 타지 않았다.
과학기술 전담 부처는 오히려 정권이 야당으로 교체된 뒤 강화됐다. 1998년 김대중 정부는 과기처를 과학기술부(과기부)로 승격시켰다. 박정희 정권의 산물로 볼 수도 있었지만, 개의치 않고 강화한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의 어려움을 맞은 시점에서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이전 정부들이 정부와 출연연이 중심이 된 과학기술 개발 정책을 중시했다면 김대중 정부에서는 민간 기업과 대학교 등이 중심이 된 민간 중심의 연구개발(R·D)을 강조했다.
2003년 출범한 노무현 정부에서 과기부는 부총리급 부처로 또다시 승격됐다. 김영삼 정부 들어 체신부에서 승격한 정보통신부(정통부), 산업정책을 담당한 산업자원부(산자부) 등의 연구 개발을 총괄할 수 있는 기능을 맡으며 핵심 부처로 떠올랐다. 과기 분야뿐 아니라 산업, 환경, 통신, 농업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R·D가 필요해졌고, 정부의 연구비 규모도 늘었다. ‘미래의 먹거리 창출’을 위해서는 과거의 과기부보다 종합적인 시각으로 국가 전체의 R·D를 기획하고 조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과학기술 부처가 6개의 정권을 거친 40년 동안 승승장구한 것은 ‘과학기술 경제입국’이라는 명제가 있어서 가능했다. 오랫동안 과기 관련 부처 관료들과 출연연의 연구자들은 과학의 전문성과 순수성을 내세우면서 “비정치적인 분야이니만큼 권력의 변화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2008년 교과부가 탄생하면서 부총리였던 과기부 수장은 졸지에 ‘제2차관’으로 떨어졌다. 표면적으로는 ‘과학기술 역량강화와 기술의 실용화 촉진’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과기부와 정통부 등이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 핵심 부처로 성장 동력을 담당했다는 점에서 정치적인 폐지라는 비판이 강하다.
과학기술 컨트롤타워
MB 정부 2년차에 접어들면서 과학기술인들은 ‘과학기술 컨트롤타워’의 필요성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시민단체인 ‘바른 과학기술사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 출연연연구발전협의회(연발협),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 등이 이를 주도했다.
과학계의 요구에 따라 정부는 2010년에 청와대에 과학기술, 환경, 정보통신을 담당하는 미래전략비서관을 신설하고 유명희 과학기술연구원 박사를 임명했다. 같은 해 10월 비상설 대통령 자문기관이던 국가과학기술위원회(국과위)를 상설 행정위원회로 바꿨다. 국과위는 과학기술 정책 기획, 주요 R·D 예산 배분 및 조정, 조사 분석 및 평가, 기술성 평가 등을 담당한다. 위원장은 장관, 상임위원은 차관급이다.
2010년 7월 15일 이명박 대통령이 유명희 미래전략기획관에게 임명장을 주고 있다. 미래전략기획관은 과학계의 요구로 신설됐다.
과학기술계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는 반면, 교육계는 상대적으로 위기감이 더 커 보인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개혁과 척결 대상으로 꼽혔던 악몽이 되살아나는 분위기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정부 조직개편안을 내놓자 교육계는 패닉 상태에 빠졌다. 가뜩이나 과기부와 통합하는 것도 당황스러운 마당에, 부처 이름에서 ‘교육’이라는 용어가 사라지게 됐기 때문이다.
인수위는 교육인적자원부의 초중등 교육 기능을 지방으로 넘겨 교육 업무를 줄이는 대신 과학기술인력 양성과 기초과학 육성, 산업인력 양성 기능을 통합한 ‘인재과학부’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교육부의 힘이었던 초중고교의 조직 정비, 교원의 임용 및 인사 권한도 시도교육청에 넘기겠다고 했다. 대학의 학생 선발과 관련해서도 규제를 풀고 대학에 자율권을 주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교육’이라는 단어가 공급자 관점에 서 있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부처 이름에서 교육을 뺀다고 설명했다.
당장 교육계 원로와 교육 관련 단체들이 들고 일어났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인수위를 항의방문하고, 국회에 정부조직법 통과 과정에서 명칭 변경에 반대하라고 요구하는 등 집단행동에 나섰다. 결국 인수위는 이름을 교육과학부로 고쳤다. 날아갈 뻔했던 교육이라는 명칭이 간신히 살아난 셈이다. 그러나 교육 부문의 힘을 빼려는 기조는 계속 됐다. 부처 통합 이후에도 교육과 관련된 각종 규제를 계속 풀고, 초중등 및 입시와 관련된 권한을 분산하라는 압박을 받았다.
한 지붕 두 부처
MB 정부 초기에 교과부는 대학 교육과 과학기술 업무를 주로 맡고, 초중등 교육은 교육청에 이관하겠다는 구상으로 출범했다. 그러나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지방교육자치 여건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초중등 교육을 지방에 넘긴다는 것은 비현실적인 계획이었다. 특히 일부 직선 교육감들이 교과부의 방침과 반대 노선을 걸으면서 교과부는 지방 교육청에 더 강력하게 개입하는 모양새가 돼버렸다. 학교생활기록부에 학교폭력 가해사실을 기재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교과부와 일부 교육청이 대립하면서 감사와 소송이 쏟아진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교과부가 옛 교육부처럼 초중등 관련 업무에 에너지를 많이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어졌다.
그러다보니 과학기술계에서는 정부가 과기 분야를 홀대한다는 불만이 커졌다. 과학기술 정책과 교육 정책은 업무 성격도 매우 다르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 과학기술 정책은 주로 5~10년 이후를 내다보고 긴 호흡으로 추진해야 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에 비해 교육은 입시, 학교폭력 등 현안이 많다. 자연히 시급한 교육 이슈에 무게가 실리고, 과학기술 정책은 뒷전으로 밀린다는 소외감이 생긴 것이다.
성격이 다른 두 부처가 하루아침에 합치려다보니 물리적, 화학적 결합 과정도 녹록지 않았다. 공무원들은 한 지붕 아래서도 출신 부처를 따지기 일쑤였다. 서로 일하는 방식, 보고 방식, 하다못해 야근 패턴을 두고도 “저쪽이랑은 너무 달라서 맞추기가 힘들다”는 푸념을 하기도 했다. 교육부 출신 국·과장이 과기 부서로 발령이 나 전문 용어를 습득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과기부 출신 국과장은 교육 부서로 발령이 나 교육정책이 만들어진 배경이나 교육과정의 특성 등을 파악하지 못한 채 현안에 파묻혀 헤매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이제 두 부처가 좀 섞여 돌아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올 때쯤 다시 부처 분리 얘기가 나오자 교과부 공무원들의 표정은 밝지 않다. 겨우 적응했다 싶은데 또 변화가 생긴다니 피로감이 드는 것이다.
정부조직 개편을 앞두고 일각에서는 부처를 합친 지 불과 5년 만에 굳이 이를 다시 분리해야하느냐는 회의론도 나온다. 사실 핀란드(교육문화부) 스웨덴(교육연구부) 일본(문부과학성) 독일(교육연구부) 러시아(교육과학부) 영국(교육부) 등 대부분 국가가 교육과 과학기술을 한 부처에서 다루고 있다.
교과부의 융합으로 얻어진 긍정적인 변화도 있었다. 교육 분야에서는 일선 초중고교의 수학·과학 교육에 대학이나 연구기관이 많이 참여하게 된 것이 성과다. KAIST, GIST(광주과기원), UNIST (울산과기대) 같은 과학기술 특성화 대학이 과거에는 과기부 쪽에만 참여했지만, 교과부를 통해 초중등의 영재교육에도 참여하고 있다. 학교폭력 대책을 만들 때도 DGIST(대구경북과기원)에 있는 한국뇌연구원에 학생정신보건연구센터를 만드는 등 시너지를 내고 있다.
그럼에도 이미 대선 공약으로 약속한 과기부처 부활이 무산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박 당선인 측의 한 관계자는 “우리나 문 후보 측이나 과기 부처 부활 약속을 통해 잡은 표가 적지 않다. 고지식한 과기계의 풍토를 생각하면 과기 부활 공약을 접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등교육 업무분장
박 당선인 측의 정책 담당자들은 박 당선인의 공약을 이행하면 교과부가 MB 정부 이전의 교육부와 과기부 체제로 돌아가는 형태가 유력하다고 보고 있다. 다만 과거와 달리 두 부처 모두 국과위와 국가교육미래위원회라는 옥상옥(屋上屋) 조직이 함께 갈 가능성이 있다.
두 부처가 갈라설 때 고려해야 할 점은 교과부 결합 이후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했던 과학기술계의 기대치와 요구 수준이 높다는 점이다. 특히 과거 교과부로 합쳐지면서 기존 교육부의 영역이던 대학 관련 업무가 2차관 산하(과학기술 분야)로 넘어온 것이 최대 관건이다. 일부 과학기술계 인사들이 ‘과기부에 대학 업무에 대한 지분을 넘겨줘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기계의 논리는 대학의 연구 기능을 감안하면 과학기술 부처가 대학 업무를 맡아야 한다는 것. 실제로 MB 정부 들어 늘어난 R·D 예산 5조 원 가운데 상당 부분은 대학을 통해 집행됐다.
하지만 교육계에서는 대학 분리에 반대하는 논리도 만만치 않아 논의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사실상 대학 입시에 따라 초중등 교육이 모두 휘둘리는 상황에서 초중등과 고등 교육을 분리하면 혼란이 더 커질 거란 논리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2012년 10월 교육 과학 분리론이 불거지자 성명을 통해 “유아교육법, 초중등교육법, 고등교육법, 평생교육법으로 이어지는 교육법 체제와 학생발달 단계, 고교 교육과 대입의 관련성이 우선 고려되어야 한다. 대학의 산학협력과 연구개발 기능을 지나치게 강조해서 유초중등과 고등교육을 분리하려는 사고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대통령직인수위에서도 교과부 조직개편 논의의 핵심은 고등교육 업무 분장을 둘러싸고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