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알고 지내던 회장님이 있다. 산수(傘壽·80)를 넘긴 나이에도 워낙 정정해서 작고하는 날까지 출근했으니 그저 부러운 인생이다. 누구나 모아둔 돈으로 여생을 풍요롭게 보낼 수 있거나 세상 떠나는 날까지 일할 수 있는 노후를 꿈꾼다. 하지만 40대 중반부터 퇴직 걱정을 해야 하는 우리에게 은퇴란 새로운 밥벌이를 시작해야 하는 신호에 불과하다.
재취업이 어디 쉬운가? 높은 연봉에 실무 떠난 지 꽤 된 40, 50대를 반길 회사는 없다. 결국 남은 건 창업, 이른바 ‘생계형 창업’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자영업자 수는 570만 명. 통계상 자영업자로 분류되진 않았지만 무급 가족 종사자도 140만 명이다. 둘을 합치면 무려 700만 명이 넘는다. 경제활동인구가 2500만 명이니 약 30%가 자영업에 종사하는 셈. 그 증가세도 매우 가파르다. 매월 신규로 사업을 시작하는 자영업자가 적은 달에는 5000명, 많은 달에는 7000명을 넘어선다. 이것이 우리나라 자영업의 살 떨리는 현실이다.
‘장래희망이 자영업자’인 사람들이 줄을 선 현실을 반영하듯 창업 관련 서적이 매일 쏟아져 나오고 있다. 나도 그 내용이 궁금해 몇 권 사 읽어봤다. ‘미리 준비하라’ ‘고객이 최우선이다’ ‘좋은 상권을 분석하라’ 뭐 이런 식이다. 너무 주옥같아서 이대로만 하면 정말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기회비용까지 살펴야
꽤 괜찮은 회사에 다니다 퇴직한 40, 50대가 창업 아이템으로 가장 쉽게 떠올리는 것이 치킨배달집이다. 비교적 소자본으로 창업할 수 있고, 특별한 음식 노하우가 필요하지 않고, 또 본사에서 알아서 광고해주니 그나마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치킨집을 해서 매달 300만 원 소득을 올리려면 매일 치킨을 몇 마리나 팔아야 할까? 을 보자.
실제 내가 만나본 치킨배달집들의 사정을 반영해 치킨배달집 경영 상황을 시뮬레이션 해봤다. 매달 30일 가게 문을 열고(사실상 쉬는 날이 없다), 치킨 원가율을 43%로 가정한 뒤 10%를 추가했다. 이 10%에 서비스로 제공하는 콜라, 무, 포장재료, 오토바이 기름값 등이 들어간다. 또 카드수수료는 2%, 인건비는 월 150만 원씩 주고 배달부 2명을 고용하는 것으로 계산했다. 본인과 가족 1명이 가게에서 전화 주문을 받고 닭도 튀기는 것을 전제로 말이다.
여기까지 보면 매일 40마리씩만 팔아도 400만 원 가까운 현금을 손에 쥐게 되니 치킨집 창업, 할 만해 보인다. 씀씀이 관리만 잘한다면 자녀 학자금도 내주고 주문이 뜸한 낮 시간에는 취미생활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의 계산법은 장사에 처음 나서는 사람들이 쉽게 저지르는 실수다. 많은 이가 최초 투자자금에 대한 회수를 고려하지 않고 현금 기준 이익을 실제이익이라고 착각한다. 음식점을 차릴 때 인테리어에 투자해야 하는데, 이는 폐업할 때 되돌려 받을 수 없다. 폐업하지 않더라도 몇 년 후 인테리어를 새롭게 해야 하기 때문에 감가상각비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인테리어에 1억 원을 쓰고 4년간 사용한다면 감가상각비는 연간 2500만 원이 된다. 프랜차이즈 가맹 계약서에는 보통 인테리어 갱신 주기가 명시되어 있으므로 그 기간을 감가상각 기간으로 계산해야 한다.
또 퇴직금이나 보유 자금으로 투자한 경우에는 금융비용이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 돈을 고스란히 은행에 넣어둔다면? 당연히 매달 이자수익이 생긴다. 따라서 이를 기회비용으로 생각하고 손익계산서에 반영해야 한다. 그리고 본인과 무급 봉사자인 가족의 인건비는? 만일 본인이나 아내가 장사를 하지 않고 다른 곳에서 일한다면 받을 수 있는 급여도 또 다른 기회비용으로 간주해야 한다.
를 보자. 숨어 있는 비용까지 고려해 시뮬레이션한 치킨집의 손익 결과다. 인테리어 투자금을 1억 원, 4년 사용 예정으로 산정했다(월 평균 감가상각비 200여만 원). 또 인테리어를 비롯해 권리금 등 약 2억 원을 투자했고 이자율은 6%로 가정했다. 무급 가족인건비도 넣었다.
숨은 비용까지 고려하니 하루 40마리씩 팔면 400만 원에 가까운 소득은커녕 매달 100만 원 이상 적자를 보는 셈이다. 하루 50마리씩 팔아도 월 소득 100만 원 남짓이니 생계가 가능할 수 없다. 즉, 적어도 월 매출 2500만 원이 되어야 실제 이익이 300만 원 조금 넘는다는 결론이 나온다. 하루 판매량이 몇 마리만 줄어도, 가게 문을 며칠 닫아도 치킨사업은 위태로워질 수 있다.
하루 60마리 이상 팔 자신이 있다 해도 리스크는 여전하다. 우선 배달부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20대의 건장한 친구들이 와주면 좋으련만, 주로 10대 청소년들이 찾아온다. 여러 법적 문제 때문에 부모 동의를 구한 다음에 취업시켜야 한다. 일 시작한 지 며칠 되지 않아 그만둔다고 하거나, 심지어 치킨 값을 손에 쥐고 오토바이와 함께 영영 돌아오지 않는 일도 왕왕 발생한다.
종업원을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고 상권이 좋아 장사가 잘되는 커피전문점 사장님을 한 분 알고 있다. 처음 6개월은 행복했다. 왜 진작 창업하지 않았는지 후회할 정도였다. 그런데 바로 옆에 글로벌 브랜드를 자랑하는 커피전문점이 들어오고 나서는 장사가 영 신통치 않게 되었다. 이처럼 본인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닌 경쟁력은 오래가기 어렵다. 다른 사람들이 쉽게 따라올 수 없는 노하우, 따라오더라도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일수록 진정한 경쟁력이다. 그저 쉽게 프랜차이즈에 기댔다가는 대자본의 희생양이 되기 쉽다.
Return 전 Risk 고려해야
회계사라는 직업 특성상 정말 많은 사장님을 만난다. 사업이 정말 잘돼 세금 문제로 골치 아픈 행복한 사장님이 있는가 하면, 만성 적자를 못 이기고 결국 폐업하고 마는 사장님도 있다. 아침 일찍 하루 를 시작하는 것이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이라는데, 망한 사장님 중 상당수도 아침 일찍 일과를 시작하는 걸 나는 많이 보아왔다. 그러므로 “열심히 하겠다”는 각오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래도 창업을 고민하는 분들께 조언을 드리자면, 실제 창업을 하기 전에 해당 업종에 취업해보라는 것이다. 몇 개월이라도 실제 일을 해보고, 이왕이면 잘되는 집과 안되는 집에서 모두 일해보기를 권한다. 실제로 대박집에서 노하우를 배운 후 창업해 성공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원칙은 꼭 지키기 바란다. 사업에서 나오는 최소한의 현금흐름으로 이자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최악의 상황에서 본인이나 가족 등 무급 종사자의 인건비는 없는 셈 친다 하더라도, 장사해서 번 돈으로 임차료와 이자는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빚을 내어 빚을 갚는 악순환에 빠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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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2막으로 창업을 생각하는 분들에게 어두운 얘기만 한 것 같아 죄송스럽다. 하지만 평생 모은 은퇴자금을 허무하게 날려버리는 분이 너무 많아 잔소리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리스크 앤 리턴(Risk and Return). 위험을 감수해야 수익이 있는 것이 세상 이치다. 그러나 리턴을 보기 전에 리스크를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