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대통령당선인이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세계 무역규모 8위국의 첫 여성 대통령’‘민주 선거로 대통령이 된 독재자의 딸’‘부모를 흉탄에 잃고 독신의 삶을 살아온 비운의 여성’‘김정일을 만난 한국 지도자’…. 인간적으로 관심을 끄는 대목이 적지 않다. 박근혜는 대통령이 됨으로써 일약 김대중 못지않은 글로벌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러나 박근혜 당선인의 앞길이 순탄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세계적 경제위기는 언제라도 나라를 덮칠 기세다. 주변엔 아베(일본), 시진핑(중국), 푸틴(러시아), 김정은(북한)과 같은 마초 기질의 지도자들이 이 여성 대통령을 상대하려고 기다리고 있다. 국내에선 사회적 갈등이 위험수위를 넘나들고 있고 ‘박근혜라면 무조건 싫다’는 층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박근혜가 과연 국정을 제대로 운영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 불안감이 엄존하는 것도 사실이다.
노무현-이명박의 교훈
돌이켜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선되자마자 내리막이었다. 집권 1년여 만에 탄핵소추를 당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마찬가지 길을 걸었다. 70%에 육박하던 지지율을 당선 수개월 만에 거의 다 까먹고 ‘MB OUT’이라고 적힌 피켓들이 광화문 한복판을 뒤덮는 굴욕적인 광우병 사태를 겪어야 했다. 이런 전례들에 따르면 박 당선인이 집권 초 바로 권력누수에 빠진다고 해도 별로 이상할 게 없다.
노무현과 이명박을 반대편이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고 끌어내렸듯이 박근혜를 반대편이 인정하지 않을 가능성도 상존한다. 이들은 박 당선인이 허점을 보이기를 기다릴 것이다. 박 당선인은 새누리당을 오른쪽에서 중간지대로 옮겨놓는 공약들로 유권자의 마음을 얻었다. 이런 점은 이제 박 당선인에게 무거운 채무로 작용한다.
그렇다면 박 당선인은 지금 어떠한 정무적 판단을 하고 있고 나라를 어떻게 이끌어가려 하고 있을까. 지금 많은 사람이 가지는 궁극적인 물음일 것이다. 이와 관련해 대선에서 박 당선인을 가까이서 도운 핵심 측근들을 만나 박 당선인의 국정 플랜에 관해 들어봤다. 익명을 전제로 한 이들의 말은 생생하고 깊이가 있어 박 당선인과 이너서클의 심중 의도를 읽어볼 수 있다. 아래와 같이 이들의 증언을 그대로 전재했으며 일부 실명 증언을 괄호 속에 담았다.
박근혜 당선인에겐 휴식이 필요하다. 투표일까지 살얼음판을 걷는 격전을 치렀다. 곧 크리스마스이고 연말이다. 주변에선 ‘조금 쉬면서 차분히 정국을 구상하는 게 낫다’는 건의를 올린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이명박 정부 때처럼 당선되자마자 구성할 수도 있지만 꼭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명박 당선인은 2007년 대선 때 상대 후보를 멀찌감치 앞서고 있어서 10월경부터 내부적으로 인수위 논의를 시작했다. 당선 직후 바로 인수위를 꾸릴 수 있었다. 우리는 워낙 박빙의 선거를 치르느라 인수위는 거의 생각도 못했다. 투표일 며칠 전에야 박 당선인이 정호성 비서관 등에게 인수위안(案)을 짜보라고 한 것으로 안다. 그때도 당선을 확신하진 못했다.
정호성 비서관에 인수위案 지시
박 당선인이 국정기조를 잡아가는 데에 있어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은 ‘대통합 탕평인사’와 ‘중산층 복원’이 될 것이다. 이런 기조에 맞춰 인수위를 구성해 운영할 것으로 본다. (이와 관련해 이정현 선대위 공보단장은 기자에게 ‘박 후보는 호남을 포함한 대통합, 100% 대한민국을 이야기해왔는데 당선 후 인사에서 이 점을 적극 구현할 것’이라고 말했다.)
새 정권이 여론의 도마에 오르는 이유는 두 가지인데 첫 번째는 인사파행이고 두 번째는 정책혼선이다. 사실 정권의 성패는 인사가 좌우한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박 당선인은 권력투쟁, 코드인사, 지역편중인사로 비치지 않게 노력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경우 집권 초부터 인수위, 청와대, 내각의 인선을 둘러싸고 이상득 전 의원,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제2차관, 정두언 의원 간에 권력투쟁 양상이 나타났다. 코드인사, 지역편중인사라는 평도 나왔다. 비슷한 전철을 밟아 ‘만사올통’‘친박 싹쓸이’같은 소문에 휩싸이면 대선 승리 효과는 금방 옅어진다. 이런 점을 잘 알고 있으니 이렇게 안 할 것이다. 특정 친박 정치인을 중용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도로 친박’이라는 말이 나오면 끝장이다.
역대 정권의 인사에서 청와대와 내각의 요직에 발탁된 인사들이 각종 구설에 휘말리는 일이 잦았다. 박 당선인의 인수위는 비공식 인사 검증 팀을 가동해 공직후보자들을 검증할 것이다. 청와대, 국가정보원 등의 협조도 받는다.
인수위원은 24명 이내로 두지만 사무직이나 자문위원 등 전체 인원엔 제한을 두지 않는다. 전 정권의 인수위는 200여 명으로 시작해 500명 이상으로 늘었다. 이듬해 4월 총선 출마예정자들에게 자리를 나눠줘야 했기 때문이다. 이번엔 이렇게 대규모로 구성하지는 않을 것이다. 전 정권 인수위의 경우 위원장만 외부에서 깜짝 발탁하고 부위원장, 비서실장, 주요 인수위원을 대선 캠프 인사들로 채웠다. 이것은 공약을 정책으로 연결해야 하기 때문에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