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년 10월 대전 유성구 KAIST에서 과학자들과 간담회를 갖는 박근혜 대통령당선인.
아무 연관성 없는 무의미한 단어 나열로 보이지만, 대한민국 정부에서 이들은 하나의 커다란 공통점을 갖는다. 바로 지식경제부라는 1개 부처에서 관리·감독 및 규제와 진흥을 맡고 있는 대상이란 점이다.
양말은 섬유패션 영역이라서, 대형마트는 유통업이란 이유로, 로봇은 차세대 성장동력이라는 이름으로 지경부가 지원과 규제를 맡는다. 원자력발전소는 한국의 중요한 에너지 공급원이어서, 자동차는 한국의 대표산업이기에 지경부 영역이라는 점에는 공감하지만 택배와 카지노에 와서는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택배는 2008년 지경부 산하기관이 된 우정사업본부의 ‘우체국 택배’ 때문에, 카지노는 폐광지역 개발 지원에 관한 특별법(폐특법)을 근거로 강원도 정선에 세워진 강원랜드가 국내 유일의 내국인 카지노를 갖고 있기 때문에 각각 지경부가 관장한다.
실물산업 ‘모든 것’ 떠맡아
담당 영역이 이처럼 넓고 다양하다는 건, 이명박 정부에서 지경부의 위상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지경부 홈페이지에 소개된 이 부처의 설립 목적은 무려 9개다. 수출의 지속적 증대를 비롯해 △외국인투자 유치 △에너지 정책 수립 △미래지향적 산업발전 정책 수립 △지역경제·산업정책 수립 및 추진 △기술개발 및 산업표준화 △주력 기간산업의 경쟁력 강화 △신성장산업 발굴·육성 등 대한민국 실물산업의 ‘모든 것’을 떠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 부처 중 가장 힘이 세다는 기획재정부의 주요 업무가 △경제정책 방향 수립 △전략적 재원배분 △조세정책 총괄 등 고작(?) 7개에 불과한 것과 비교하면 지경부의 업무 영역이 얼마나 넓은지 실감할 수 있다.‘공룡부처’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지경부의 역사는 ‘굴곡과 부침’으로 요약된다. 지경부의 뿌리는 1948년 정부 수립과 함께 출범한 상공부. 정부 출범 초기, 존재감조차 미미했던 상공부는 박정희 정권 출범 이후 ‘수출 드라이브’ 정책이 가시화되면서 전성기를 맞는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현장에서 진두지휘하며 경제기획원, 재무부와 함께 이른바 경제부처 트로이카로 자리매김했다.
이 세 부처의 장관을 모두 역임한 나웅배 전 경제부총리는 “경제기획원은 아너러블(honorable)하고, 재무부는 파워풀(powerful)하고, 상공부는 컬러풀(colorful)하다”는 말로 트로이카 체제를 설명한다. 컨트롤타워인 기획원이 밑그림을 그리면 금융과 조세를 통해 돈줄을 쥐고 있는 재무부가 자원(돈)을 조율했다. 그리고 이른바 ‘될 놈’을 뽑아 기술과 인력을 지원하고 나사못 하나까지 꼼꼼하게 지원·규제한 곳이 바로 상공부다. 전자, 조선, 석유화학, 자동차 등 오늘날까지도 한국을 먹여 살리는 산업은 모두 상공부가 발굴· 육성한 ‘자식’들이다. 박 대통령이 주재하고 상공부가 꾸려갔던 수출진흥확대회의는 ‘안건으로 올리기만 하면 안 되는 일 없던’ 회의로 지금까지도 전설로 통한다. 다소 무리한 정책이 회의 안건으로 올라와도 “그건 상공부 얘기가 맞다”는 박 대통령의 말 한마디면 모든 게 ‘상황 종료’ 됐다고 한다.
朴統 시절 무소불위 상공부
하지만 문민정부 출범 이후 상공부는 본격적인 조직개편 도마에 오른다. 한국의 주력산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만큼 시어머니 같은 간섭이 필요한지에 대한 의문이 시작된 것이다. 1993년 동력자원부와 합쳐진 상공자원부가 출범했고, 1994년 통산 분야를 강화한 통상산업부로 개편됐다. 그러나 출범 초기부터 정무(政務) 중심의 외교를 경제, 통상 중심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결국 김대중 정부에서 통상 업무는 외교부(현 외교통상부)로 넘어갔고 산업 및 에너지를 총괄하는 산업자원부로 재탄생했다.
노무현 정부까지 10년간 이어지던 산자부는 이명박 대통령을 맞아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다. 이른바 ‘작은 정부’론(論)을 바탕으로 방만한 부처 조직을 통폐합하면서 그간 업무 영역이 겹치던 부처들을 하나로 묶는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예산, 국고, 세제를 총괄하는 기획재정부와 실물산업을 총괄하는 지식경제부가 탄생했다. 과거 뚜렷한 영역 구별이 가능했던 정보기술(IT), 연구개발(R·D), 산업진흥의 융합이 갈수록 가속화되면서 정보통신부, 과학기술부, 산자부 간에 업무 갈등이 끊임없이 계속됐던 게 결정적 이유였다.
2008년 1월 16일, 정부인수위원회는 기존 산자부와 정통부의 IT산업정책, 과기부의 산업기술 및 연구개발(R·D) 정책을 통합한 지식경제부 신설을 발표했다. 여기에 정통부 소속이었던 우정사업본부까지 끌어왔다. 정원 3만2611명(우정사업본부 3만1857명 포함)에 달하는 메머드급 부처가 탄생한 것이다. ‘지식경제(Knowledge Economy)’라는 이름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정부 초기 거센 조직개편 물결에 휩쓸려 크게 이슈로 떠오르진 않았다.
지경부 개편 문제를 논하기 전에 우선 지난 5년간 지경부의 성과와 한계를 따져보자. 가장 큰 성과는 업무 영역을 두고 벌어졌던 소모적인 갈등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과거 전자상거래, 로봇산업, 바이오(Bio)산업 등 신산업이 부상할 때마다 산자부, 정통부, 과기부가 서로 자기 업무라고 갈등을 일으켜 이들 산업의 진흥은커녕 민간 사업자의 발목만 번번이 잡았던 걸 생각하면 이는 분명 큰 성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