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탠퍼드대와 같은 세계적 명문대학이 박태준 전 명예회장의 리더십과 더불어 포스코의 투명성에 주목하고 학습하고 있기도 하다.
포스코의 독립경영에 대한 의지는 회사 창립 시점부터 경영진에 의해 주도되어왔다. 1967년 11월 10일 종합제철사업추진위원회에서 포항제철을 상법상의 주식회사로 설립키로 결정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일본의 야와타제철이 전후 오랫동안 적자를 낸 사실을 지적하며 정부의 재정 지원과 조세 감면이 가능한 공사 형태를 권유했다. 하지만 박태준 당시 위원장(2011년 작고)이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해 경영효율 면에서 큰 장점을 지닌 주식회사 형태를 고집해서 관철시킨 일화는 유명하다.
포스코의 투명성과 관련해서도 박 대통령과 경영진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됐다. 종합제철소 착공 준비가 한창이던 1970년 2월 정부나 정치권의 인사청탁이 잇따르고 납품 요청이 거세지자 박 대통령은 정부 관료의 간섭을 배제한다는 의미의 문서에 자필서명을 해주고 외부 압력이 있을 경우 이를 제시하라고 박태준 당시 사장에게 주문한 적이 있다. 이를 포스코 내에서는 ‘종이마패’라 한다.
공기업에 대한 정치적 외풍이 극에 달했던 1980년 당시 박태준 회장은 정계 진출로 몸소 포스코 바람막이에 나섰다. 박 회장은 철권통치형의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자 권력의 요청을 받아들여 입법회의 제1경제위원장으로 정치에 뛰어든 것이다. 박 회장은 평전과 여러 인터뷰를 통해서 ‘박정희 대통령 서거 후 실질적인 외풍 차단막이 없어지자 제2제철 건설을 마칠 때까지 스스로 포스코의 울타리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전두환 대통령의 요청을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국가가 부도위기를 맞이하며 허덕거리던 1997년 국내 대기업 중 가장 선도적으로 사외이사제를 도입한 회사가 포스코이다. 박태준 회장이 주도해 창업한 포스코에 역대 CEO 중 유일하게 외부에서 온 이가 김영삼 정부 시절에 있었다. 경제부총리 출신의 김만제 회장이다. 외부에서 온 김 회장도 취임 3년 후 독립적 지배구조가 포스코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사외이사제를 전격 도입했고, 사외이사 중심의 이사회를 운영했다.
사외이사제 선도적 도입
2003년 포스코는 기업 지배구조 강화에 대한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고 민영화된 기업의 지배구조에 대한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기 위해 새로운 모색을 시도했다. 그 일환으로 포스코는 6∼11월 한국이사협회(회장 이헌재) 및 고려대 기업지배구조연구소에 지배구조 개선방안과 관련한 연구용역을 의뢰했다. 또 사외이사 구성 비중을 추가로 확대해 이사회의 독립성을 강화하고, 후보의 3배수를 추천하는 사외이사 후보추천자문단을 운영해 이사회 운영의 투명성 및 객관성을 높이고자 했다.
독립성과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06년 3월 CEO와 이사회 의장직을 분리하고 CEO후보추천위원회를 신설한 것이다. 사외이사가 주축인 이사회가 CEO의 경영활동 감시와 견제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사외이사 중에서 이사회 의장을 선출하고, 사외이사 전원으로 구성된 CEO 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해 투명하고 공정하게 CEO 후보를 선발해 자격을 심사하기로 한 것이다.
사외이사 대부분은 학계는 물론 시민단체 출신까지 대중적 인지도와 투명성을 충분히 검증받은 인사들로 구성되어 있다. 경영권 독립과 관련해서는 아무리 전략적으로 기획된 정치수단이 동원돼도 뚫을 수 없을 정도로 견고한 시스템을 갖춘 것이다. 이 체계에 의해 2007년 첫 추천위원회가 개최되었고, 이구택 전 회장의 연임이 결의됐다.
물론 포스코의 사외이사제도에 대한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안철수 전 무소속 대선후보가 미국 유학시절 사외이사로서 과도한 대우를 받았다는 비판도 있었고, 견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포스코 사외이사제도의 우수성을 평가절하해서는 안 된다. 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외부 평가는 대부분 긍정적이다. 포스코는 2011년 한국거래소로부터 지배구조 우수기업에 선정됐고, 지분도 외국인(48.4%), 자사주(11.4%), 국민연금(6.8%) 등 고르게 분산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