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과 대만 간 교류 확대의 필요성을 역설한 왕진핑 대만 입법원장.
왕진핑 입법원장(72)은 ‘SKKU Distinguished Fellow’ 수상 소감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SKKU Distinguished Fellow’는 성균관대가 학문 및 사회 활동 등에서 뛰어난 성과를 낸 개인에게 주는 상이다. 그러나 왕 입법원장은 개인의 영광에 대해 결코 이야기하지 않았다. 대신 “이 수상이 한국과 대만의 끈끈한 우의는 결코 끊길 수 없다는 것을 상징하는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왕 입법원장의 이번 방한은 개인 자격으로 이뤄졌다. 11월 29일 시상식을 포함해 3박 4일간 한국에 머무는 동안 그는 입법기관 수장으로서의 공식 의전을 받지 못했다. 1992년 8월 단교 이후 우리나라에서 대만은 국가가 아닌 탓이다. 한중수교 당시 우리 정부는 중국과 ‘하나의 중국’ 원칙에 합의했다. 이듬해 제정한 ‘대만과의 교류협력에 관한 기본지침’ 등에 따르면 대만 입법원장은 원칙적으로 방한이 불허된다. 왕 입법원장은 2008년 2월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에 맞춰 축하 사절을 이끌고 내한했다가 행사에 참석하지 못한 채 돌아간 일이 있다. 한국 언론에 내한 사실이 보도된 뒤 중국 측이 강력히 반발했기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대만 고위급 인사 대거 방한
이런 과거에 비하면 왕 입법원장의 이번 방문은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이뤄졌다. 장관급인 양용밍(楊永明) 대만 국가안전회의(우리의 국가정보원) 부비서장과 왕즈강(王志剛) 대만 대외무역발전협회장 등 정·재계 인사가 동행했다. ‘대만·한국 국회의원 우호협회’회장인 린더푸(林德福) 입법위원 등도 방문단에 포함됐다. 이들은 한국에 체류하는 동안 국내 각계 인사를 ‘비공식적으로’ 만났다.
왕 입법원장이 한국 언론과 인터뷰를 가진 것도 이례적인 일이다. 그는 표면상 한·대만 간 학술교류 차원에서 진행된 이번 방한 일정 동안 한국 국민에게 대만의 메시지를 최대한 전달하려고 노력하는 듯했다. 따뜻한 황금빛 넥타이를 매고 만면에 웃음을 띤 채 질문에 답하는 모습은 친근해 보였지만, 한·대만 관계와 국제사회 내 대만의 역할 등에 대한 의견을 밝힐 때는 30년 넘게 입법부를 지켜온 노정치인의 경륜이 느껴졌다.
왕 입법원장은“양안(兩岸)의 장기적인 분할 통치 때문에 대만 외교는 오랫동안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우리는 세계 민주국가와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고, 실제로 많은 나라와 교류하고 있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현재 대만은 미국을 포함한 세계 131개국과 무비자 여행 협정을 맺고 있다. 2009년에는 12년간 이어졌던 실패를 딛고 세계보건총회(WHA)에 옵서버 자격으로 참여했으며, 2010년 정부조달협정(GPA)에도 가입했다.
한국과 대만 관계에도 최근 순풍이 불고 있다. 2012년 6월 양국 정부는 경제 분야 교류 확대를 위한 투자보장협정(BIT) 체결 협상을 시작했다. 같은 해 4월 서울 김포와 타이베이 쑹산(松山)공항 사이에 직항 항공편이 개통했고, 7월부터는 상호 무비자 방문기간이 종전 30일에서 90일로 길어지는 등 문화·관광 분야 협력도 확대되는 추세다.
왕 입법원장은 “현재 대만과 교류하는 나라 중 어디도 그 이유로 중국과의 관계에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 이번에 한국을 방문한 목적 중 하나는 이런 내용을 한국 정부와 국민에게 알리고 양국 간 교류 확대를 촉구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