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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의 재구성 ⑦

왜 그녀의 후손은 범죄자가 되었나

우생학·골상학의 시대

  • 이창무│한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형사사법학 jbalanced@gmail.com

왜 그녀의 후손은 범죄자가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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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드레퓌스 사건 또한 유대인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과 혐오가 빚어낸 일이었다. 이 사건은 1894년 프랑스 육군 포병 대위 알프레드 드레퓌스 대위가 반역 혐의로 기소되면서 시작된다. 1894년 10월 프랑스 육군 참모본부에 근무하던 드레퓌스가 파리 주재 독일대사관에 군사기밀을 넘겨줬다는 혐의로 체포됐다. 이후 비공개 군법회의가 열려 드레퓌스는 종신형 판결을 받았다. 독일대사관에서 몰래 빼낸 서류에 나타난 필적이 드레퓌스의 것과 비슷하다는 것 말고는 증거가 없었는데도.

2년 뒤인 1896년 헝가리 태생의 페르디낭 에스테르하지 소령이 실제 범인이라는 증거가 나왔으나 군 고위층은 새로운 증거를 묵살했고 군사재판부는 형식적 심문과 재판을 한 뒤 에스테르하지를 석방했다. 드레퓌스는 풀려날 수 없었다. 문제는 드레퓌스가 유대인이라는 점이었다. 유대인에 대한 뿌리 깊은 반감과 편견이 다른 객관적 증거를 묵살하게 만든 주요한 원인 중 하나였다.

진범이 밝혀진 뒤에도 이 사건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으나 1897년 프랑스 상원 부의장인 슈레르 케스트너가 의회에서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하는 연설을 하면서 관심을 끌게 됐다. 급기야 소설가 에밀 졸라가 ‘나는 고발한다’라는 공개서한을 대통령에게 보내면서 사건이 재조명받게 됐다. 프랑스 정치권은 진보적인 드레퓌스파와 수구적인 반(反)드레퓌스파로 나뉘어 격렬하게 대립했다. 결국 정권이 무너지고 드레퓌스파에 우호적인 발데크 루소 내각이 들어서면서 재심 요구가 받아들여졌다. 1899년 9월 재심을 위해 열린 군법회의에서 드레퓌스는 다시 유죄를 선고받았으나 대통령 특사로 석방됐다. 무죄를 확인받고자 법정 투쟁을 계속한 드레퓌스는 1906년 프랑스 최고재판소로부터 마침내 무죄판결을 받고 군에 복직했다.

드레퓌스는 오랜 법적 투쟁 끝에 억울한 누명을 벗었으나 당시의 우생학과 유전이론은 수많은 사회적 약자를 고달프게 했다. 인종주의와 선민의식 등이 우생학과 연결되면서 정치적 이데올로기화했고 일부는 극단적 행태로 치달았다. 히틀러의 범게르만주의가 대표적이라고 하겠다. 인종청소, 대학살과 같은 끔찍한 범죄의 바탕에는 과학처럼 포장한 비과학 이론이 깔려 있었다.

미국의 흑백 인종차별도 두말할 나위가 없다. 동양인도 차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미국으로 이주한 중국인은 이민 초기에 갖가지 차별에 시달렸다. 노예와 다를 바 없이 캘리포니아 철도 부설 노역에 동원됐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꼽히는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金門橋)를 건설하느라 숱한 이가 희생됐다. 공사 중 너무 많은 사람이 숨지자 극락으로 가는 금문을 통과하라는 의미에서 다리 이름을 금문교로 지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코레마츠 사건은 미국의 인종적 편견과 반감을 그대로 드러낸 사례다. 1941년 12월 7일 일본은 미국의 진주만을 기습 공격했다. 미국은 즉각 선전포고를 하고 반격에 나섰다. 미국 정부는 일본군이 캘리포니아 등 태평양 연안에 상륙할지 모른다는 불안 탓에 당시 미국 서부지역에 거주하던 일본계 미국인을 황무지로 강제 이주시켰다. 1942년 5월 12만 명에 달하는 일본계 미국인이 집과 재산 처분도 제대로 못한 채 네바다 사막 등지의 수용소에 감금됐다. 이들의 대부분은 미국 시민권자였다.

미국은 또 다른 교전 당사국인 독일이나 이탈리아계 미국인은 대규모로 강제 이주시키지 않았다. 독일계 미국인 중 1만1000명가량을 수용소에 가뒀을 뿐이다. 당시 이탈리아계 미국인은 70만 명이 넘었는데, 그중 1881명을 수용소에 감금했다. 수용된 이들의 대부분은 미국 시민권을 갖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1944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미국 정부의 강제이주와 수용소 감금 결정을 합헌이라고 판결했다. 이 결정은 1983년이 돼서야 비로소 미국 항소법원 판결에 의해 번복된다.

얄팍하고 그릇된 지식과 편견이 인류 문명의 진보를 가로막은 사건은 이밖에도 많다.

신동아 2013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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