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호

“조각(組閣)만 잘하면 농사 끝! 공직후보 흠결 先공개 고려”

박근혜 비서실과 인수위 속사정

  • 허만섭 기자│mshue@donga.com

    입력2013-01-22 15: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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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총리·장관 ‘흠집’ 안 날 방법 노심초사
    • 측근 쥐었다 폈다 하는 박근혜 용인술
    • “얼리 버드 아니다”…MB 스타일 다 바꿔
    “조각(組閣)만 잘하면 농사 끝! 공직후보 흠결 先공개 고려”

    1월 7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구내식당에서 박근혜 당선인과 인수위원들이 식사를 덜고 있다. 김장수 인수위원 (오른쪽에서 세 번째)은 “밥이 영 부실해서 안되겠어”라고 말했다.

    “과거 인수위에서 설익은 내용들이 마구 보도되는 바람에 국민의 신뢰가 깨졌다” “당선인 대변인만 두지 말고 인수위에도 대변인을 둬야 한다” “대변인을 공보 창구로 삼아 인수위가 기자들에게 직접 노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단독 보도가 많을수록 새 정권의 지지율은 떨어진다” “인수위 취재기자들이 특종 경쟁으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는데 이런 스트레스를 덜어드릴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당선인의 언론 대응 기조에 관해 전혀 알려진 게 없을 때인 지난해 12월 21일 ‘신동아’1월호 기사에 소개된, 박근혜 당선인 주변 인사들의 말이다. 발언자들 중엔 박근혜 당선인을 돕는 핵심 인사도 있었다.

    이후 박근혜 당선인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이례적으로 인수위 대변인(윤창중)을 별도로 두고 인수위 대변인으로 공보 창구를 일원화하는 등 ‘신동아’ 1월호 기사 내용과 일치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특종도 없고 낙종도 없다”는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의 1월 6일 발언은 “특종경쟁 스트레스를 덜어드리겠다”는 기사 속 당선인 핵심 인사의 발언과 같은 맥락이다.

    이들 인사는 기사에서 “이명박 당선인은 대선 직후 인수위를 구성했지만, 우리는 박근혜 당선인에게 크리스마스와 연말에 조금 쉬면서 천천히 하시라고 건의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인수위는 1월 초가 돼서야 출범했다. 이렇게 기사 내용대로 인수위가 진행된 정황에 따르면 이들 인사가 당선인 측 속사정을 정확하게 말해주고 있는 점이 입증된다.

    아무 데나 편한 데 앉아



    관가, 경제계, 정치권 등 이해당사자는 물론이고 상당수 국민은 인수위 내부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한다. 신동아 1월호 기사에 등장한 당선인 측 인사들을 다시 만나 인수위 운영의 속사정을 들어봤다. 이들의 발언은 언론에 소개되는 당선인 측근 또는 인수위 관계자의 발언 중 비교적 상세한 내용일 것이다. 특히 기자실이 있는 삼청동 인수위와 달리 언론 접근이 차단된 통의동 당선인 비서실 내부 풍경도 전해주고 있다. 다음은 이 가운데 한 인사의 발언 내용이다.

    당선인 비서실은 1월 8일이 첫 출근일이었다. 근무자는 유일호 비서실장(새누리당 의원), 이정현 정무팀장(새누리당 최고위원), 변추석 홍보팀장(전 박근혜 후보 선대위 홍보본부장), 박선규 당선인 대변인(전 청와대 대변인), 조윤선 당선인 대변인(전 새누리당 의원) 등 의원급이 5명이다. 이재만 전 박근혜 의원 보좌관, 정호성 전 박근혜 의원 비서관, 조인근 전 선대위 메시지팀장, 최진웅 전 김무성 의원 보좌관, 이창근 전 한선교 의원 보좌관(이상 정무팀원), 음종환 보좌관(김회선 새누리당 의원·대변인실 팀원), 유현석 씨, 전경수 씨, 김지홍 씨, 김태하 씨, 김철수 씨, 조진욱 씨, 유성훈 씨(이상 전 선대위 홍보본부 소속·홍보팀원) 등 실무진이 20여 명이다.

    당선인 비서실은 통의동 금융감독원 연수원 건물을 빌려 쓰는데 비서실 관계자 전원은 이 건물 3층에서 함께 근무한다. 3층이 꽤 널찍한데 “책상 많으니 아무 데나 편한 데 앉아서 일하라”라고 하는 등 자유스러운 분위기다. 예를 들어 정무팀원이라고 해서 꼭 이정현 정무팀장 방에서 일해야 하는 건 아니다. 의원시절부터 박근혜 당선인을 오랫동안 모셔온 이재만 전 보좌관과 정호성 전 비서관은 한곳에 자리를 잡았다. 외부적으로는 직제가 정무팀, 홍보팀, 대변인실로 구분돼 있지만 사무실 공간 배치나 업무 성격으로 볼 때 집단적 의사결정이 이뤄지기도 한다.

    거의 매일 아침 8시 30분 비서실장 주재 회의가 열린다. 팀원 중 일부가 참석한다. 보통 이 회의 시작 전까지 출근한다. (“5년 전 이명박 대통령당선인 비서실의 경우 아침 7시에 출근했다”고 질문하자) 이명박 정권의 인수위는 스스로를 ‘얼리 버드(early bird·일찍 일어나는 새)’라고 불렀는데 우린 얼리 버드가 아니다. 그땐 엄청 다그쳤다. 공약에도 없던 새로운 것을 많이 추진했다. 그러다 사고도 많이 났고. 우린 “새로운 것 하지 마라”라고 한다. 정부를 제대로 인수받고 당선인 공약이행계획을 세우는 데에만 집중한다.

    (“당선인 비서실의 주요 업무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비서실은 세 가지 업무가 가장 중요하다. 조각(組閣), 청와대 인선, 정부조직 개편이 그것이다. 셋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조각이다. 조각만 잘하면 올 한 해 농사 거의 다 지은 것과 같다.

    ‘훈계만 늘어놓는 밉상 취재원’

    마지막 말을 바꿔서 하면, 첫 조각을 잘못하면 집권 1년 차를 거의 망친다는 이야기. 대통합을 강조하는 박 당선인의 행보로 볼 때 이명박 정권 식의 ‘고소영’ ‘강부자’ 편중인사를 반복할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조각이 좋은 평가를 받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박근혜 인수위가 자초한 측면이 있지만, 언론 환경이 악화일로다. 일부 인수위 관계자들은 기자들에게 ‘기삿거리는 안 주고 훈계만 늘어놓는 밉상 취재원’으로 비치고 있다. 총리-장관 후보들에게 도덕성 문제가 나올 때 언론에 포용과 관용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이런 가운데 야당은 대선 패배의 반전 계기를 인사검증에서 찾으려 하고 있다.

    따라서 박 당선인의 처지에서 조각의 성공 여부는 ‘가급적 흠결 없는 공직 후보들을 내놓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연히 당선인 측 내부의 자체 검증이 중요해진다. 이와 관련해 당선인 측 한 인사는 자체 검증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아직 (당선인 비서실 내) 검증팀이 확정되지 않았다. 경찰, 국가정보원 등 부처에서 지원인력이 오는지, 검증팀 규모가 어떻게 되는지도 미정이다. 다만 원칙적으로 말하면, 당선인이 염두에 두는 후보자 리스트를 검증팀에 먼저 주면 검증팀이 결격사유가 있는지를 검증한 뒤 검증결과 요지를 당선인에게 보고하는 방식이 될 것 같다. 후보자 본인의 동의 후 각 부처에서 이들의 개인정보를 제공받아 검증팀이 ‘위장전입’ ‘다운계약’ ‘세금미납’과 같은 것을 면밀히 조사할 것이다. 그렇더라도 결격사유를 완벽하게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쪽방촌 투기의혹’ ‘논문 표절’처럼 서류엔 안 나오는 것도 부지기수다. 이런 것은 현장을 직접 방문하거나 논문을 일일이 읽어봐야 알 수 있다.

    조각에서 보안은 훨씬 중시될 것이므로 검증에 참여하는 인원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인수위 업무에 참여하고 있는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당선인 측이 하루 대여섯 명의 후보자를 검증하기도 빠듯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체 검증이 어렵고 더디게 진행되며 하자(瑕疵)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총리와 15명이 넘는 장관의 최소 3배수 후보를 검증해야 하고 그 결과를 국회에 청문회 준비기간(15일 이내)과 청문회 기간(3일 이내)까지 줘야 한다. 또한 총리를 먼저 임명한 뒤 총리 제청으로 장관을 임명해야 한다. 2월 25일 취임식 전 총리-장관 인선을 마치려면 시일이 매우 촉박하다.

    당선인 측의 다른 관계자는 “자체 검증 결과를 먼저 공개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일부 선진국에선 이렇게 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당선인 측과 인수위 내부의 이런 아이디어가 실현된다면 새로운 인사검증문화가 된다. 이 관계자의 이어지는 설명이다.

    지금까진 야당이나 언론이 후보자의 위장전입 같은 것을 찾아내 폭로하면 당사자가 마지못해 해명하는 방식이었다. 이로 인해 인사검증이 정쟁(政爭)의 대상이 됐다. 또 똑같은 사안을 인사권자, 야당, 언론이 이중삼중으로 조사하는 것이니 국가적으로 큰 낭비다. 이보다는 인사권자 측이 ‘후보자에게 자녀 교육 목적의 위장전입이 있음’을 먼저 밝히고 용인할 만한 수준인지를 여론에 묻는 방식이 낫다고 본다. 여론이 ‘도저히 안되겠다’고 하면 다른 후보자를 찾으면 된다. 대신 ‘왜 이런 사람을 후보자로 올렸는가’라고 당선인을 비난해선 안 된다. 공직후보자에 오를 만한 세대 가운데 한두 가지 흠이 없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제는 ‘이 정도면 됐다’라는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이렇게 하면 선진국처럼 후보자의 능력과 국정철학 중심으로 청문회를 진행할 수 있다. 국민의 공감을 얻는 조각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어떤 인선-검증방법을 동원하든 박근혜 당선인 측의 궁극적 목표는 하나다. 총리-장관들을 가급적 ‘흠집’ 내지 않고 산뜻하게 출발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국민적 이목이 집중되는 빅 이벤트인 총리 인선과 관련해선 △국정 경험 △대중성 △지역통합 △청문회 통과 가능성을 인선 기준으로 삼는 분위기다. 당선인 측 관계자는 “총리 후보자에겐 유일호 비서실장이, 장관 후보자에겐 이정현 정무팀장이 당선인의 발탁 의사를 전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靑 파견됐다 찍힌 공무원 보니…

    인수위 인선에 이은 조각에서도 ‘통합’ 콘셉트가 강하게 작동할 것이라는 게 당선인 측의 예상이다. 다만 인수위 인선에서 배제된 친박 핵심 인사 중 일부가 조각이나 청와대 인선에선 발탁될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다음은 이에 대한 당선인 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명박 정권의 경우 당선인의 측근들이 대거 인수위로 진출했다. 인수위원과 실무자의 80%가 이들로 채워졌다. 노무현 정권의 인수위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측근들이 으스대는 광경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친박이 가장 소외받았다. 당과 후보 캠프를 놓고 보면 당이 우선이었다. 인수위에 당직자 30여 명이 들어와 있지만 캠프 출신은 많지 않다. 캠프에서 중책을 맡았으나 인수위에 들어오지 못한 한 친박 핵심은 내심 아쉬웠는지 “인수위는 인수위일 뿐이다…”라고 한 뒤 여행을 떠났다. 김무성, 최경환, 권영세, 김종인, 안대희, 이상돈 등 친박과 캠프 핵심들이 인수위 인사 한 방에 허수아비가 됐다. 그러면서도 당선인은 이정현과 유정복을 기용함으로써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게 했다. 당선인이 쥐었다 폈다 하는 측근 용인술을 보여주고 있다.

    통합 콘셉트는 인수위에 파견되는 각 부처 공무원 인선에도 적용됐다. 이명박 정권의 경우 인수위가 직접 파견 공무원을 뽑았다. 당연히 관료 사회에서 ‘누구누구가 인수위(청와대)에 들어가려고 미리 줄 섰다’는 이야기가 만연했다. 이게 정권에도 안 좋았고 파견 공무원 본인에게도 안 좋았다. 정권의 인기가 떨어지자 ‘줄 서서 청와대 들어가더니만 제대로 일도 못하네’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파견 공무원의 위상이 함께 떨어졌고, 부처로 복귀해도 ‘MB맨’으로 찍혀 영(令)이 잘 안 서는 일이 나타났다. 우리는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각 부처가 직접 인수위 파견 공무원들을 추천하도록 했다. 공직 사회의 정치권 줄서기 관행을 차단하고 파견 공무원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지역통합을 위해선 총리-장·차관-사정기관장의 지역 안배가 중요하다. 그러나 더 피부에 와 닿는 것은 일선 공무원 인사에서 특정지역 출신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당선인이 지난해 대선 광주 유세에서 학연-지연 인사를 척결하겠다고 말하는 장면이 TV에도 나왔다. 특히 장관이 자기 출신 지역 공무원 챙기는 인사는 못 하도록 할 것이다.

    MB 보고 양식 바꿔!

    인수위의 주요 목표는 세 가지 정도일 것이다. 정부 인수, 대통령 취임식 준비, 공약실현 방법 마련이 그것이다. 박 당선인은 특히 민생 공약 실현에 특히 방점을 찍고 있고, 정부는 업무보고에서 이에 필요한 재원 조달의 어려움 내지 불만을 나타냈다. 이로 인해 정부와 인수위 간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는 말이 나왔다. 박근혜 당선인이 정부 보고에 ‘격노했다’ ‘격노하지 않았다’ ‘불쾌해하기는 했다’는 언론 보도, 윤창중 대변인 브리핑, 박선규 대변인 브리핑이 이어졌다.

    당선인 측과 인수위 내부에선 ‘점령군 소리 듣지 않는 인수위’ ‘조용한 인수위’ ‘성공한 인수위’가 되고자 인수위 업무를 개혁했는데 이런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며 당혹스러워한다. 인수위 관계자는 “당선인의 공약 중 당장 실행할 만한 것을 찾아내 정책으로 구현해야 한다. 정부에 재원조달 방안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조각(組閣)만 잘하면 농사 끝! 공직후보 흠결 先공개 고려”

    1월 9일 류성걸 인수위 경제1분과 간사가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다.

    이어 이 관계자는 “대선 직후 당선인의 요구로 ‘박근혜 예산’ 6조 원이 반영되어 영·유아를 둔 모든 가정에 월 20만 원씩 보육비가 지원된다. 충분하진 않지만 도움이 되는 금액이다. 인수위가 하는 게 바로 이런 일”이라고 했다. 그는 박근혜 인수위의 정부 부처 업무보고에 관해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이명박 정권의 인수위 시절 정부 부처들이 인수위에 보고한 문서들을 검토했다. 엉망이었다. 자기 부처 업무에 대한 자체 평가는 대개 3쪽 분량밖에 안 되었다. 내용도 거의 자화자찬 일색이었고. ‘이게 무슨 정부 인수인가’라는 의문이 들기에 충분했다.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우린 각 부처의 업무보고 문서양식을 바꿨다. 보완이 필요한 정책이 무엇인지, 목표는 타당하지만 실행과정에서 문제를 노출한 정책이 무엇인지, 좋은 정책이지만 예산 문제로 실행이 안 되는 정책이 무엇인지 등을 스스로 밝히도록 유도했다. 인수 과정을 통해 좋은 정책은 살리고 나쁜 정책은 중단시킬 수 있도록 했다. 보금자리주택 등 전 정권의 대규모 사업도 면밀히 보고자 했다. 박근혜 당선인은 정부 인수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진단’과 ‘처방’이라고 말했는데 우리는 이 진단과 처방을 제대로 하고자 했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정부 인수 콘셉트는 역대 최고라고 본다.

    최근 부처 업무보고에 대한 인수위의 언론 브리핑 내용이 너무 부실하다고 여러 언론이 비판하고 있다. 국민이 궁금해하는 내용을 알려야 하는 언론의 고충이 이해된다. 다만 업무보고는 정부 인사들과 인수위 인사들이 보고하고 듣고 추가로 질의하고 추가로 답변하고 토론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결국 정부가 경과보고를 하는 건데 이게 뉴스가 되는지는 의문이다. 당선인이나 인수위가 무엇을 결정해야 뉴스가 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이에 대해 누군가는 ‘정부의 보고 중 민감한 내용은 뉴스가 충분히 된다’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는 인수위의 처지에서 볼 필요도 있다. 인수위가 정부의 보고 중 민감한 내용을 언론에 일일이 알려주면 정부가 제대로 보고하지 않을 것임에 틀림없고, 이는 인수위가 정부를 제대로 인수하지 못하고 만다는 이야기가 된다.

    ‘불통’과 ‘재원 미확보’의 근본 원인

    재계의 관심사인 경제민주화에 대해 당선인 측 인사는 “경제민주화는 민생의 하위개념이다. 경제민주화 관련 공약은 그대로 이행될 것으로 안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경제민주화는 대기업의 전횡을 막아 중소기업과 서민도 살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신규 순환출자 금지 등 관련 공약은 그대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대기업이 좀 답답해할 것이다. 야당이 정권을 잡는 것과 비교할 때 그렇다. 야당은 목소리는 크지만 제대로 안 한다. 원래 무서운 게 보수가 하는 개혁이다. 보수는 개혁을 하고자 하면 제대로 한다. 예를 들어 김영삼 정권 초기 금융실명제, 하나회 청산 등 전광석화처럼 했다. 반면 노무현 정권은 재벌개혁, 정치개혁, 검찰개혁을 내걸고 집권했지만 하나도 못 했다. 이명박 정권은 개혁에 대한 마인드 자체가 없었다.

    박근혜 인수위는 지금 ‘불통(不通)’과 ‘재원 미확보’라는 심각한 두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불통’ 문제는 언론에 관한 인수위의 ‘철학 부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공보창구의 일원화로 인수위 내부의 설익은 논의가 마구 보도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는 일견 타당하다. 그러나 이것이 부실 브리핑 논란으로 연결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제2차 세계대전 때의 미국 루스벨트 정부와 1차 걸프전 때의 부시 정부는 공보창구 일원화로 정보를 철저하게 통제했다. 동시에 전황에 관한 상세한 브리핑으로 언론과 국민의 정보 갈증을 충족시켜줬다. 이때의 원칙은 ‘정보를 공평하게 주되 충분하게 주라’는 것이다. 언론은 특종이 없는 대신 풍부한 정보를 바탕으로 ‘해석과 편집의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다. 언론은 정권과 호의적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박근혜 인수위는 특종도, 풍부한 정보도, 편집권도 전혀 고려하지 않으니 언론과 관계가 좋을 리 없다. 긍정적 뉴스거리가 턱없이 부족하면 언론은 신문 지면과 방송 시간을 메우기 위해 부정적 뉴스거리라도 찾아 나서야 한다. 박근혜의 인수위는 이렇게 부정적 보도를 자초하고 있고 ‘불통’ 이미지에 스스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옴짝달싹 못하는 현실

    재원 미확보 문제는 ‘불통’ 문제와 달리 당선인 측의 과오라기보다는 우리 제도의 모순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2013년 2월 임기가 끝나는 이명박 정권은 2013년 정부 예산을 모두 편성했다. 2013년 2월부터 임기가 시작되는 박근혜 정권은 지출항목이 명시된 이 예산을 넘겨받아 국정을 운영해야 하니 공약을 구현할 돈을 마련하기 어려운 것이다. 증세, 세출 구조조정, 지하경제 활성화 등 별별 묘안을 짜내보고 있지만 수십 조 단위의 재원을 새로 창출하는 것은 ‘마술’에 가까운 일이다. 설령 그렇게 하더라도 새로운 부작용이 나타나게 된다. 정부 부처가 재원 확보에 관해 인수위에 부정적 보고를 올리는 것은 이런 점에선 당연하다.

    근원적인 원인은 전 정권이 새 정권의 첫해 예산을 결정하는 모순에서 비롯된다. 이런 구조하에서 모든 대통령당선인은 공약 재원을 확보하지 못하는 똑같은 난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임기 첫해는 정권의 성패를 가름하는 중요한 시기인데 정권은 이렇게 손발이 묶인 상태에서 출범해 야 한다. 개헌을 통해 대통령선거일을 12월에서 앞당기든지 해서 대통령당선인이 자신의 임기 첫해 예산 편성에 관여할 수 있도록 하지 않는 한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일각에선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짚지 않고 당선인 측에만 ‘공약 재원 미확보’ ‘정부와의 갈등’의 책임을 돌려 일방적으로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당선인 측과 인수위가 옴짝달싹하기 힘든 현실적 한계 내에서 공약을 조금이라도 구현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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