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호

39년 만에 누명 벗은 저항시인 김지하

  • 최호열 기자 honeypapa@donga.com

    입력2013-01-23 14: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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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년 만에 누명 벗은 저항시인 김지하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으로 투옥됐던 김지하(72) 시인이 39년 만에 누명을 벗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이원범 부장판사)는 1월 4일 대통령 긴급조치 제4호 위반, 국가보안법 위반, 내란선동 등의 혐의로 7년여간 옥살이를 한 김 시인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유신 시절 대표적인 저항시인으로 꼽히던 그는 민청학련 사건을 배후조종한 혐의로 비상보통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국제적인 구명(救命)운동으로 10개월 만에 풀려났지만, 사건 진상을 알리는 글을 썼다가 재수감돼 6년간 복역했다. 김 시인은 2010년 11월 서울중앙지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재판부는 “긴급조치 4호는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해 무효이고, 피고인의 행위도 범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하며 “피고인은 유신 헌법을 비판하고 독재 정권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사형선고를 받은 후 큰 고난을 당했다. 당시 사법부가 본연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점에 진실로 사죄의 뜻을 전한다”고 밝혔다. 또한 시인이 1970년 ‘사상계’에 정부 비판적인 내용을 담은 시 ‘오적(五賊)’을 게재해 반공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건에 대해서는 법정 최하한형인 징역 1월의 선고유예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수사기관의 가혹행위 등을 증명할 자료가 제출되지 않은 법리상 한계 때문에 유죄 판단을 유지한 점을 양해해달라”고 설명했다.

    재판 후 소회를 묻자 김 시인은 “아무 생각 없다.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다”며 무표정하게 답했다. 이어 “오적 사건 때문에 수십 년 동안 풍자시를 쓸 수 없었는데 선고유예 판결을 받은 점이 아쉽다”며 “앞으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국고에서) 27억 원씩 받고 도망간 여자도 있는데 사형선고 받고 얻어터진 김지하가 몇 푼 받아서야 되겠느냐. 30억 정도는 돼야지”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 시인은 오적 필화 사건 선고유예에 불복해 1월 8일 항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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