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3월호

삼성家 재판의 불편한 진실

  • 입력2013-02-21 15: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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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家 재판의 불편한 진실

    삼성 일가 소송에서 패한 이맹희 씨 측 소송대리인 차동언 변호사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원고 이맹희 외 4명과 피고 이건희 외 1명 등 삼성 일가는 상속재산을 둘러싸고 소송을 벌이고 있다. 이 소송은 소송금액만 4조 원이 넘고 원고들이 법원에 낸 인지대만 127억 원에 달하는, 그야말로 초대형 소송이다. 1심에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승소했다.

    이 소송의 쟁점 중 하나는 상속회복청구권의 행사 기간이 지났는지 여부라고 할 수 있다. 원고들은 행사 기간이 지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원고들은 패소의 쓴 잔을 맛보아야 했다.

    이 소송에서 거론되는 상속회복청구권은 일반인도 알아두면 유용한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의 소송 사례들과 삼성 소송 사례를 통해 상속회복청구권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상속회복청구권이란?

    #사례 1 미국에 거주하는 이모 씨는 한국에서 혼자 살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귀국했다. 장례를 치른 후 이씨의 형은 유산 상속과 관련된 일은 알아서 해결하겠다고 말했다. 이 씨는 이 말만 믿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나중에 확인해보니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부동산과 예금 등 모든 재산을 형이 독차지했다. 이 씨는 어떻게 자기 몫의 유산을 되찾을 수 있을까.



    #사례 2 왕모 씨는 결혼하기 전에 사귀던 애인이 자신의 아들을 낳은 줄 모르고 살았다. 이후 왕 씨는 처자식도 없이 재산만 남기고 사망했고 왕 씨의 재산은 왕 씨의 부모가 상속했다. 그런데 이후 왕 씨의 애인이 낳은 아들이 왕 씨의 친자로 인정되어 뒤늦게 왕 씨의 상속인이 됐다. 이때 왕 씨의 아들은 왕 씨의 재산을 상속한 부모로부터 자기 몫의 유산을 돌려받을 수 있을까.

    이 씨나 왕 씨의 아들과 같이 상속인이 상속권을 침해받은 경우 상속재산을 침해한 사람을 상대로 법원에 그 침해의 회복을 청구할 수 있는데 이를 상속회복청구권이라고 한다. 이 씨와 왕 씨의 아들처럼 상속권을 침해당한 사람을 진정상속인이라고 한다. 이 씨의 형, 왕 씨의 부모처럼 다른 사람의 상속권을 침해한 사람을 참칭상속인이라고 한다. 이 씨의 형은 공동상속인인 이 씨의 상속분을 침해한 경우이고, 왕 씨의 부모는 왕 씨의 아들보다 후순위 상속인이므로 선순위 상속인의 상속분을 침해한 경우다.

    상속회복청구는 참칭상속인 또는 참칭상속인으로부터 재산을 이전받은 사람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방법으로 행사해야 하는데, 피상속인의 주소지 법원에 제기해야 한다. 만일 진정상속인이 상속회복청구권을 행사하려다가 사망한 경우 진정상속인의 자녀는 진정상속인의 다른 재산권을 모두 상속받지만 상속회복청구권은 상속받지 못한다. 상속회복청구권은 상속인만 행사할 수 있는 권리로 보아 상속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권리를 일신전속권이라고 한다.

    매매 등의 거래를 통해 참칭상속인으로부터 상속재산을 넘겨받은 제3자는 그 재산이 동산이나 유가증권일 경우 선의취득이 인정되므로 재산을 계속 취득할 수 있다. 그러나 부동산일 경우라면 선의취득이 인정되지 않으므로 진정상속인에게 돌려줘야 한다. 제3자는 부동산등기부에 참칭상속인이 소유자로 되어 있는 것을 보고 구입했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부동산 등기를 믿고 구입한 선의의 피해자를 보호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법 제도에서는 재산을 침해받은 사람은 기간의 제한을 받지 않고 권리를 되찾을 수 있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상속권이 침해되어 상속회복청구를 하는 경우에는 권리를 되찾을 수 있는 기간에 제한을 둔다. ‘침해를 안 날로부터 3년, 침해된 날로부터 10년’ 이내에 권리를 행사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이를 제척기간이라고 한다. 재산권 침해를 받은 날로부터 10년이 지난 후에 재산권을 되찾고자 하는 경우 일반 재산권이 침해됐다면 소송을 제기해 되찾을 수 있지만 상속권 침해인 경우 제척기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각하된다.

    제척기간이 지나면 상속회복청구권이 소멸해 진정상속인은 상속인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하는 것이다. 참칭상속인은 상속인으로서의 지위를 확정받는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참칭상속인은 상속개시일 당시로 소급해 상속인으로서의 지위를 취득하는 것이 되고 상속재산 역시 상속 개시일로 소급해 참칭상속인의 소유가 된다.

    악의를 보호하는 모순

    이번 삼성가(家) 소송의 경우 이병철 회장은 1987년 세상을 떠났다. 이 소송은 그로부터 25년이 흐른 2012년에야 제기됐다. 따라서 원고들은 제척기간 10년이 지나지 않았다는 점을 입증하는 데 성공해야 승소할 수 있었다.

    원고인 이맹희 회장 측은 이건희 회장이 이병철 회장의 차명재산을 숨기고 있었을 때에는 상속권 침해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논리를 폈다. 즉, 2008년 12월 차명주식을 이 회장 명의로 변경했을 때 비로소 상속권 침해행위가 발생한 것이고 2012년 6월 삼성 측이 차명 상속재산에 대한 확인서를 보낸 후에야 침해 사실을 인지한 것이므로 제척기간이 지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 피고인 이건희 회장 측은 이건희 회장이 참칭상속인이라고 하더라도 1987년 이병철 회장이 사망한 때부터 이건희 회장이 참칭상속인이 됐다고 봐야 하므로 이미 10년이 지났다고 주장했다. 또한 2008년 삼성 특검 때 이건희 회장이 관리해오던 차명주식의 존재가 널리 알려졌기 때문에 이맹희 씨 등 다른 상속인이 상속권 침해행위를 안 것도 3년이 지났다고 주장했다. 1심 법원은 원고 측이 제척기간이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한 입증에 성공하지 못했다고 봤다.

    사례 1에서 이 씨의 형은 이 씨의 상속분이 있는 줄을 뻔히 알고 있음에도 동생 이 씨의 상속분을 고의로 침해했다. 사례 2에서 왕 씨의 부모는 왕 씨 사망 당시 왕 씨에게 아들이 있는 줄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에 악의 없이 왕 씨 아들 몫의 재산을 상속받았다.

    이 씨의 형은 악의를 가지고 동생에게 해를 끼쳤는데도 10년만 지나면 상속재산을 완전하게 독차지할 수 있다. 이 씨의 형과 왕 씨의 부모는 분명 도덕적으로는 다른 평가를 받아야 하지만 현행 상속회복청구제도에서는 같은 평가를 받는다. 비난받아 마땅한 참칭상속인이 상속회복청구제도 뒤에서 웃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모순 때문에 상속회복청구제도가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이 2010년 제기됐다. 신청인은 “제척기간이 경과하기만 하면 참칭상속인의 악의 여부를 묻지 않고 일률적으로 진정상속인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은 진정상속인의 재산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관 9인 중 8명은 기각의견을, 1명은 각하의견을 냈다. 신청인의 청구를 인정하지 않는 데 의견 일치를 본 것이다.

    삼성家 재판에 새 학설 적용하면?

    헌재는 “현 제척기간은 상속인이 자신의 상속재산을 회복하기 위한 권리를 행사하기에 충분한 기간으로서, 입법 재량의 범위를 일탈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악의의 참칭상속인이 보호되는 모순에 대해선 “상속회복청구권의 단기제척기간은 상속을 둘러싼 법률관계를 조기에 확정해 거래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므로 그 결과 악의의 참칭상속인이 보호받는 결과가 도출된다고 해도 이것이 청구인들의 재산권이나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고 봤다.

    이에 따르면 상속회복청구제도는 진정상속인이 재산권을 되찾을 수 있는 권리를 희생해서라도 상속재산을 둘러싼 법률관계를 이른 시간 내에 확정하고자 하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결과 보호가치가 없는 참칭상속인의 재산권이 보호되는 부당한 결과가 초래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참칭상속인의 고의나 과실이 없는 경우, 즉 참칭상속인이 본의 아니게 진정상속인의 권리를 침해한 경우에만 참칭상속인의 권리를 지금처럼 보호해주자는 학설이 제기되고 있다.

    삼성家 재판의 불편한 진실
    이 학설이 적용되면 사례 1의 이 씨의 형은 고의로 이 씨의 상속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상속 개시 10년이 지났더라도 상속재산을 이 씨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그러나 왕 씨의 부모는 고의나 과실이 없었으므로 상속 개시 10년 이후면 왕 씨의 아들에게 상속재산을 주지 않아도 된다. 이 학설을 삼성 일가 소송에 적용한다면 재판 양상은 지금과는 사뭇 달라질 수 있다. 이 경우 이건희 회장이 고의로 상속재산을 은닉했는지 여부가 가장 중요한 쟁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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