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석사논문을 읽느냐’는 말이 대학가에 나돈다. 일반대학원, 전문대학원, 특수대학원 등 석사과정 학생은 많고 교수는 적으니 논문은 그저 학위 취득을 위한 요식행위란 뜻이 저간에 깔린 말이다. 그렇다면 학생 수도 적고 논문 작성에 더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이는 박사학위 논문은 정성들여 양성되고 있을까. 최근 문제가 제기된 두 편의 박사논문을 보면 꼭 그렇지는 않은 듯하다.
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은 1999년 건국대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정책결정 참여자 간 네트워크에 관한 연구’란 논문으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런데 동아일보 및 채널A의 보도에 따르면, 이 논문은 1996년 한국행정학보에 실린 논문 ‘지방정책에 대한 이론모형의 개발과 실증적 적용’(이종수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과 거의 모든 내용이 일치한다고 한다. 동아일보는 ‘13쪽가량의 원문 중 6쪽을 토씨까지 그대로 표절했다’며 ‘허 비서실장 내정자는 이 교수 논문을 참고문헌으로도 표시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김재우 전 방문진 이사장의 단국대 경제학 박사논문은 신경민 민주통합당 의원실에서 지난해 8월에 표절 의혹을 거론했다. 김 전 이사장이 2005년 발표한 논문 ‘한국주택산업의 경쟁력과 내장공정 모듈화에 관한 연구’가 연구소 보고서 4건, 논문 3건, 언론사 기사 2건 등을 그대로 가져다 썼다는 것. 이에 이 논문에 대한 연구윤리위원회를 구성한 단국대는 ‘표절한 부분이 양적으로 방대할 뿐만 아니라 그 정도가 통상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났다’는 결론을 내리고 김 전 이사장의 박사학위를 취소했다. 김 전 이사장의 박사논문을 지도한 심모 단국대 명예교수는 “내 불찰이고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표절 여부를 사전에 발견하지 못한 데 대해서는 “나는 전공이 경제학인데 해당 논문이 건설 관계 논문이다보니 내가 그쪽을 잘 모른다”고 했다.
논문 전반에 걸쳐 표절이 광범위하게 일어난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표절은 ‘이론적 배경’이나 ‘선행연구’를 설명하는 논문 앞쪽에 집중된다. 따라서 표절 혐의를 받은 이들은 “논문의 핵심은 베끼지 않았다”고 항변한다. 교수들도 “몇 쪽씩 그냥 베끼는 게 관행인데 그런 것까지 문제 삼을 수 있느나”는 반응이다.
김미화 씨는 ‘연예인 평판이 진행자 호감과 선정에 미치는 영향을 제작자 입장에서 알아보고자’ 방송국 종사자들에게 120부의 설문지를 배포해 100부를 회수했고, 총 100명을 포커스 그룹 인터뷰했다. 김미경 아트앤스피치 원장도 남녀평등 의식에 기반을 둔 성희롱 예방교육이 기존 교육에 비해 효과가 있음을 검증하기 위해 학교 교직원과 재무부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410부의 설문조사지를 배포해 301부를 수거, 연구 데이터로 활용했다. 지난해 석·박사 논문 표절 혐의로 집중 공격을 받은 문대성 19대 국회의원의 자기방어 논리 역시 “논문의 핵심인 실험은 직접 수행했다”는 것이었다.
교수들은 ‘사전에 알았다면 그대로 통과시키지 않았겠지만, 대부분의 논문이 마찬가지인 상황에서 유명인의 표절만 문제 삼는 건 문제’라는 반응을 보인다. 이성한 청장을 지도한 이모 교수는 “박사논문이라 해도 이론적 배경은 거의 다 짜깁기 수준”이라고 말했다. 심모 단국대 명예교수는 “논문의 체계적인 전개 과정을 지도하는 거지, 지도교수라고 해서 학생의 참고문헌을 일일이 찾아보고 글자 하나하나를 보는 건 아니”라고 했다. 서울 소재 대학의 김모 교수는 언론의 ‘폭로식 표절 보도’에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특히 특수대학원에서 나오는 석사논문은 거의 다 표절”이라며 “박사는 몰라도 특수대학원 석사는 실정이 그런데도 언론에서 선정적으로 다루는 건 정말 문제가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올 초 문대성 의원의 석사논문 표절 여부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 용인대 모 교수는 이렇게 토로했다.
“문 의원이 2002년 우리 대학에서 ‘태권도 국가대표 선수의 경쟁상태 불안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논문 앞쪽에 ‘불안’에 관한 설명이 20여 쪽 되는데, 대부분 남의 것을 인용 표시 없이 베꼈다. 체육 쪽 학생들이 심리학에 속하는 불안에 대해 잘 알 리가 없다. 그러니까 이런 일이 생긴 것 아니겠나. 표절이 맞는데, 그렇다고 논문의 핵심도 아닌 부분의 표절 때문에 학위 취소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 정말 고민스럽다. 사실 이론적 배경 부분은 논문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남의 것을 베끼고 짜깁기하는 게 현실이지 않은가.”
국회에서든 언론에서든 표절 시비가 제기된 논문을 배출한 대학들은 비판적인 여론을 인식해 해당 논문에 대한 연구윤리위원회(혹은 연구진실성위원회)를 꾸리고 있다. 보통 예비조사 및 본조사를 거쳐 표절 여부를 결정하고, 학위 취소 등 처분 사항을 대학원에 권고한다. 그러면 해당 대학원은 별도 위원회를 열어 처분을 결정한다. 김혜수 씨가 “학위를 반납하겠다”고 했지만, 학위는 본인이 반납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이와 같은 절차를 통해 대학으로부터 취소 등의 처분을 받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