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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으로 읽는 우리 근대문학

연애보다 담배를 먼저 배웠다

정지용

  • 소래섭 | 울산대 국어국문학부 교수 letsbe27@ulsan.ac.kr

연애보다 담배를 먼저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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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는 모두 골초인가

1920~30년대의 작가들 중 실제 흡연자는 얼마나 됐을까. 1937년 월간지 ‘조광’에 실린 ‘담배 피는 사람’이라는 글은 당대 작가들의 흡연 경향을 소개한다. 이 글에 따르면 당대 최고의 애연가는 탐정소설가 김래성이었다. 그는 하루에 열 갑을 피웠다고 한다. 당시에는 열 개비가 한 갑이었으므로 하루에 100개비를 피웠다는 것인데, 오상순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결코 적은 양도 아니다. 월탄 박종화는 하루에 40개비를 피웠고 하루에 30개비를 피우는 사람으로는 서광재, 김진섭, 서항석, 임화 등이 있었다. 10개비를 피우는 작가로는 박태원, 김광섭, 이헌구, 엄흥섭 등이 있었고, 채만식은 파이프로 40대 정도를 피웠다.

반면 안회남은 하루에 한 개비만 피우는 ‘괴벽’이 있었고, 이태준, 김상용, 주요섭, 김환태, 박용철, 윤기정, 유치진, 김남천 등은 전혀 담배를 못 피우는 ‘무연파(無煙派)’였다. 담배를 끊은 ‘금연파(禁煙派)’로는 양주동과 박영희 등이 있었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겠지만, 당시에도 작가라고 해서 모두 흡연자였던 것은 아니다. 담배를 전혀 못 피우거나 담배를 끊은 사람도 적지 않았다.

사실 당대에는 남녀노소와 귀천을 막론하고 담배를 즐겼다. 개화기에 조선을 방문한 서양인들이 남긴 기록을 보면, 당시 조선인의 흡연 경향은 놀라울 정도였다. 독일인 에손 시드 씨는 1902년 ‘조선왕국 이야기: 100년 전 유럽인이 유럽에 전한’에 실린 글에서 “대한제국의 남자들이 얼마나 골초인가 하면, 그들이 50여 년 일생 동안 피우는 담배 연기만으로 베를린의 국립보건소 인원 전체를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게 할 만하다. 그런데도 조선 남자들은 모두가 괄괄하고 건강하게만 보인다”라고 썼다.

흡연율 증가에 비례해, 금연운동도 만만치 않은 기세로 확장됐다. 개화기부터 전국에서 단연(斷煙)·금연(禁煙)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됐다. 최초로 금연운동을 벌인 것은 개신교 선교사들이었다. 청교도적이었던 그들은 담배를 악으로 규정하고 금연을 독려했다. 선교사들의 금연운동에 힘을 더한 것은 1907년 시작한 국채보상운동이었다. ‘국채보상취지문’은 “2000만 동포가 석 달만 연초를 끊고 한 달에 20전씩 모은다면 1300만 원이 될 터이니 국채 갚는 것이 어찌 걱정이랴”라는 셈법을 내놓았다. 1300만 원은 대한제국의 1년 예산 규모에 해당하는 액수였다.



국채보상운동 이후에도 일제강점기 내내 전국 방방곡곡에서 단연운동이 끊임없이 전개되었다. 이렇게 금연운동이 지속적으로 전개된 것은 역으로 금연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말해주는 반증이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면, ‘예술가는 모두 골초’라는 고정관념은 적어도 1920~30년대에는 통용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1920년대 후반부터 문인의 아지트로 자리 잡은 다방이 ‘담배 연기가 가득한 공간’으로 묘사되면서 고정관념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김동인 “담배는 百利”

연애보다 담배를 먼저 배웠다

문인들의 사랑방이었던 서울 상수동 ‘제비다방’에서. 아랫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이상.

당시에는 담배가 건강을 위협한다는 생각이 보편적이지 않았다. 20세기 초 ‘니코틴’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담배의 해독성이 대두되긴 했지만 담배가 온갖 질병의 원인일 정도로 치명적이라는 인식은 없었다. 오히려 담배의 해로움을 지적하면서도 그에 못지않게 유용한 면이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심지어 김동인은 “백리(百利)가 있고도 일해(一害)도 발견되지 않는” 것이 담배라며, 담배를 멀리하는 사람을 “가련한 사람들”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식후의 제일미(第一味), 용변시의 제일미, 기침의 제일미쯤은 너무도 상식적이매 거듭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 소위 제일미라는 것은 심신의 상쾌를 의미하는 것으로, 심신의 상쾌가 보건상 큰 영향을 주는 것도 거듭 말할 필요가 없다.

생각이 막혔을 때에 한 모금의 연초는 막힌 생각을 트게 하는 것은 흡연가가 다 아는 바다. 근심이 있을 때에 한 모금 흡연은 그 근심을 반감케 한다. 권태를 느낄 때에 한 모금 흡연은 그 능률을 올리게 한다. 피곤할 때에 한 모금 흡연은 그 피곤을 사라지게 한다. 더울 때의 흡연은 그에게 양미(凉味)를 주고 추울 때의 흡연은 온미(溫味)를 주고 우중에 떠오르는 연초 연기는 시인에게 시를 줄 것이며 암중(暗中) 연초는 공상가에게 철리(哲理)를 줄 것이며 꼽아내려 가자면 연초의 효용이라는 점은 수없이 많고 또 이 많은 조건이 결합해 인체에 끼치는 좋은 영향은 능히 사람의 수명에까지 좋은 결과를 줄 터이니, 연초는 가히 예찬할 자이지 금할 자가 아니다.

-김동인, ‘연초의 효용’

김동인의 글에는 지금껏 애연가들이 담배의 유용성으로 주장하는 모든 논리가 담겨 있다. 식후, 용변 시, 기상 시 등에 피우는 담배가 가장 맛있다는 것은 흡연자들의 오랜 증언이다. 또 근심과 피곤을 덜고 일의 능률을 올리며 창작이나 공상에 도움이 된다는 것도 담배 예찬론자들의 한결같은 논리다. 김동인은 한 술 더 떠 담배가 건강을 유지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몸에 이상이 생기면 먼저 담배 맛부터 변하기 때문에 조기에 질병을 발견하고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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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래섭 | 울산대 국어국문학부 교수 letsbe27@ul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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