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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 투자, 책임시공으로 정면 승부 어린이 공간 디자인 특화 성공”

(주)디브이씨 성정아 대표

  • 최호열 기자 │honeypapa@donga.com

“R&D 투자, 책임시공으로 정면 승부 어린이 공간 디자인 특화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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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어음은 주지도 받지도 않겠다” 경영 원칙
  • ● 서울상상나라, 꿈아띠체험관 등 200여 개 시공
  • ● 연구소 설립, 어린이공간디자인학교 운영
  • ● 통합발주는 수직적 갑을관계 양산, 분리발주가 대안
  • ‘건설 산업’ 하면 대형 종합건설업체를 떠올린다. 하지만 대형 건설사로부터 공종별로 하도급을 받아 실제 시공하는 전문건설업체야말로 우리나라 건설 산업을 실질적으로 떠받치는 주역이라 하겠다. 대표적인 전문건설업체를 찾아 우리나라 전문건설 기술의 우수성을 살펴보고, 그들의 애환을 통해 건설업계의 구조적 문제점을 짚어보면서 대안을 모색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R&D 투자, 책임시공으로 정면 승부 어린이 공간 디자인 특화 성공”
21세기는 디자인이 경쟁력인 시대다. 공간의 실용성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추구하는 실내건축디자인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과거 인테리어나 디스플레이 정도의 개념에 머물던 실내건축디자인을 2000년대 들어서면서 ‘공간디자인’으로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주)디브이씨는 인테리어부터 상업·주택·오피스 디자인, 전시 디자인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대표적인 공간 디자인 회사다. 1999년 4명으로 창업해 연 매출액 200억 원이 넘는, 국내 4500여 개 실내건축공사업체 중에서 100위 안에 드는 건실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학구파 CEO

디브이씨는 외형보다 내실이 더 알차다. 한국디자인진흥원(KIDP)에서 올해를 비롯해 4차례나 우수디자인전문회사로 선정했다. 2011년 한국실내건축가협회 골든스케일어워드 특별상을 수상했으며, 2012년 기술혁신형 중소기업(INNO-BIZ)으로 선정됐다. 품질경영시스템인증(ISO9001:2008)도 2012년 획득했다.

디브이씨를 이끄는 성정아(47) 대표는 실내건축공사업계에서는 드물게 디자인을 전공한 여성 경영인이다. 홍익대 미대를 나온 그는 현재 홍익대 산업미술대학원 공간디자인과 박사과정을 밟는 학구파이기도 하다. (사)한국실내건축가협회 상임이사, (사)대한전시디자인학회 전시기술위원회 위원장, 실내건축공사업협의회 서울대표회원으로 활동하는 등 업계에서 그 실력을 인정받는다.



▼ 공간 디자인을 하게 된 계기는.

“대학을 졸업하기 전인 1989년, 나고야 디자인엑스포를 관람할 기회가 있었다. 그야말로 눈이 번쩍 뜨이는 별천지, 신세계였다. 졸업 후 디스플레이 디자이너로 일하던 중 대전엑스포 전시 디자이너 구인공고를 보고 ‘이거다’ 하고 지원했다.”

▼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창업한 이유는.

“7, 8년 하니까 에너지가 다 소진된 느낌이 들어 재충전을 위해 대학원 석사과정에 진학했다. 졸업 무렵 졸업작품 삼아 오피스 디자인 일을 해보라는 제의를 받고 동기 4명과 함께 작업을 했다. 그런데 일을 끝내고 돈을 받는데 사업자등록증이 필요하다고 했다. 돈을 받기 위해 창업을 한 셈이다. 그게 1999년 말이었다.”

그의 첫 작품이 썩 괜찮았던지 여기저기서 요청이 들어왔다. IMF 외환위기 시절, 잇따라 기업이 도산하고 실직자가 넘쳐났지만 벤처기업계는 반대로 활황이었다. 매일같이 새로운 벤처기업이 생겨났고, 이에 따라 사무실 실내디자인 일감이 줄을 지었다.

“아무 준비 없이 사업을 시작했는데 일이 끊이지 않고 들어왔다. 매출이 늘어나자 회계사무소에서 절세를 위해 법인화를 권했다. 그래서 2003년 법인화했다.”

▼ 성공 요인이 있다면?

“이왕 하는 거 잘했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그러다보니 책임질 일이 늘어났다. 처음엔 설계만 했는데 결과물을 보니 영 엉뚱하게 나와 의뢰인에게 감리권을 달라고 했다. 그런데 현장 감리를 갔더니 시공업체가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말을 안 들었다. 우리가 어려 우습게 보였을 것이다. 결국 퀄리티를 지키기 위해 2001년경부터는 설계는 물론 시공까지 직접 다 했다. 그러다보니 직원이 점점 늘어났다.”



주로 공공기관 전시시설 수주

▼ 경영 원칙이 있다면.

“회사를 시작하면서 다짐한 게 ‘어음은 절대 발행하지도 받지도 않겠다’였다. 그래서 종합건설사들과는 일을 안 했다. 만약 민간 기업이나 종합건축사무실의 일을 했다면 2008년 금융위기 때 어음부도로 무너졌을 것이다.”

▼ 그럼 일감을 얻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벤처 창업 붐이 수그러들면서 오피스디자인 의뢰가 많이 줄었다. 그래서 협력회사란 이름으로 대기업 디자인 파트너로 일했다. 이런 일은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방식이라, 일감은 지속적으로 들어오지만 회사를 알릴 수 없었다. 특히 KT본사에 들어선 복합문화공간 ‘T샘’(현재의 올레스퀘어)은 우리가 실시설계·시공했지만 계약자가 아니어서 우리 이름 한 줄 들어가지 않았다. 우리 이름을 걸고 일을 하고 싶었다. 2008년 ‘대한주택공사 대전충청권 국민임대주택 홍보관’ 현상공모에 참여했는데 덜컥 당선이 됐다. 이 일을 계기로 전시 분야 업체로 입지를 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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