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호

“음택(陰宅) 발복(發福) 통계적 분석 명당 복은 3대 후손이 받아”

풍수 연구하는 첨단공학자 이문호 교수

  • 백경선 │객원기자 sudaqueen@hanmail.net

    입력2014-02-21 13: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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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풍수와 과학. 이문호 영남대 교수는 왠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두 영역을 결합해
    • 풍수의 과학화를 주장한다. “관념에서 빠져나오면 풍수에 과학의 날개를
    • 달 수 있다”는 것이다. 공학자로서 10년째 풍수과학을 연구하며 관념의 풍수이론을
    • 과학의 범주로 끌어들인 이 교수를 만났다.
    “음택(陰宅) 발복(發福) 통계적 분석 명당 복은 3대 후손이 받아”
    흔히들 풍수(風水)는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인 영역이라 여기고, 나아가 미신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바람처럼 움켜잡을 수 없고 물처럼 사라져버리기 때문에 풍수를 진실로 파악하기란 어렵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풍수는 과학’이라고 주장하는 이가 있다. 바로 영남대 이문호(60) 교수다.

    풍수와 과학이라는 두 영역을 결합하는 것이 가능할까. 이 같은 의문에 이 교수는 “왜 가능하지 않을 것 같냐”고 되묻는다.

    “풍수는 자연을 대상으로 합니다. 그럼에도 자연이 아닌 관념으로 풍수를 역설하니 그 내용이 미신처럼 들릴 수밖에 없죠. 관념에서 빠져나오면 풍수도 과학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3가지를 갖추어야 합니다. 경험에 바탕을 둔 보편성과 객관성, 재현성이 그것입니다. 다시 말해 언제 어디에서 관찰해도, 누가 관찰해도, 항상 같은 현상으로 기술되는 사실을 귀납적 방법으로 설명하면 풍수도 과학이 되는 것입니다.”

    그는 “풍수는 천 년간 우리 민족과 함께해온, 사람이 사는 자연 공간에 대한 이야기로 애매하고 모호한 것도 많지만 연구해보니 과학적인 근거도 찾을 수 있었다”고 했다.

    풍수가 천 년을 이어온 이유



    그가 풍수를 연구한다면 모두 놀란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이력을 보면 풍수와는 거리가 멀다.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KAIST 재료공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27세에 영남대 공과대에 최연소 교수로 임용됐다. 현재 영남대 신소재공학부 교수 겸 대학원 응용전자학과 주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공학자로서 다양한 업적을 쌓았다. 환경 계측 감시용 초전형 감열 및 가스센서를 개발하고, 지자기(수맥)와 관련한 국내외 특허만도 20여 건을 가졌다. 특히 2002년 세계 최초로 석유 및 지질조사 장비인 비시추·비접촉 지질 탐사기를 개발해 지질탐사의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운명적으로’ 풍수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2004년 풍수지리를 공부한 대학원 학생과 인연을 맺으면서다.

    “풍수지리가 2명이 우리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풍수를 연구하는 데는 지질조사가 중요합니다. 지질조사를 할 때 응용전자학이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저더러 논문 지도를 해달라고 하더군요. 손사래를 쳤죠. 풍수라면 그땐 속된 말로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저도 끈질겼지만 제자들은 더 끈질겼죠. 그래서 어디 한 번 나를 믿게 만들어 보라고 했습니다. 풍수를 학문적으로 접근하려면 근거와 논리를 갖춰야 한다면서 데이터를 정리해보라고 요구했습니다. 해오더라고요. 놀랍고 신기해서 제가 두 손 들었습니다.(웃음)”

    그들은 전국 수천 기의 묏자리를 찾아 입지를 분석하고 족보를 찾아 묘소 주인의 후손 수를 조사했다. 그 결과는 신기했다. 경사가 심한 산비탈이나 산꼭대기에 쓴 묘소 주인의 후손 수가 급감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를 보고 그는 자신이 주도해서 연구해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풍수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가 아닐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풍수가 아무리 관습이고 관념이라 하지만, 맞는 것이 없고 허무맹랑하기만 했다면 아마 일찍이 버려졌을 겁니다. 그렇지 않고 천 년을 유지해왔다는 것은 무언가 경험적으로 맞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주말마다 귀신에 홀린 듯 제자들을 따라 전국의 묏자리를 찾아다녔다. 그동안 돌아본 묏자리만 1만5000기에 달한다. 그렇게 그가 풍수에 과학적으로 접근하겠다고 도전한 지도 어언 10년째다.

    그는 풍수를 과학으로 풀어낼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 대한 답을 찾는 데 8년을 투자했다고 고백한다. 그가 찾은 답은 통계학적인 분석이었다. 그 결과를 2012년 ‘오묘한 지구-풍수도 과학이다’란 책을 통해 정리한 바 있다. 물론 그전에도 ‘좋은 집이 우리를 건강하게 만든다’(2005), ‘공학박사의 음택풍수기행’(2006), ‘조상을 잘 모셔야 자손이 번성한다’(2007) 등 풍수에 과학적으로 접근한 다수의 책을 펴냈다. 그리고 최근 그것을 잇는 ‘명당-부와 권력의 운명을 풍수과학으로 풀어쓴 이야기’를 발간했다.

    지질구조 탐사

    “음택(陰宅) 발복(發福) 통계적 분석 명당 복은 3대 후손이 받아”

    명당으로 꼽히는 곳을 자력탐사하고 있다.

    풍수는 살아 있는 사람이 거주하는 주거지에 관한 양택(陽宅) 풍수와 사자(死者)를 매장하는 묘지에 관한 음택(陰宅) 풍수로 나뉜다. ‘명당’의 내용은 음택 풍수에 관한 것이다. 음택 풍수에서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는 것은, 음택 명당과 후손의 부(富)·귀(貴)·손(孫)의 상관관계다. 그는 책에서 바로 그 문제를 통계학적이고 귀납적인 방법으로 풀어냈다. 또한 지질구조 탐사를 통해 알아낸 명당의 존재와 실체를 구체적인 형상으로 소개했다.

    그는 음택 명당과 후손의 부·귀·손의 상관관계를 알아내기 위해 지난해 여름과 가을 전국을 돌며 후손이 많은 묘소와 적은 묘소, 후손이 재벌인 묘소, 조선시대 대제학 후손을 둔 묘소, 재벌이 된 기업인의 선대 묘소 등을 찾아 지질구조를 탐사하고 분석했다.

    그 결과 명당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바로 전통 풍수에서 말하는, 시신을 안치하기에 가장 좋은 곳을 의미하는 혈의 존재였다.

    “명당은 관을 묻는 지점 아래 구덩이 형태로 움푹 꺼진 암석층이 있고, 그 구덩이에는 풍화가 잘된 고운 흙층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조상 묘소가 혈에 위치한 명당일 때 대부분 후손 수가 많거나 부자인 후손이 나타났습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후손 번성과 관계가 깊은 것은 부모 묘소가 아닌 증조부모의 묘소라는 사실이다. 그는 “전통 풍수에서 말하는 음택 발복(發福)의 발현 시기는 묘소의 3대 후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1대와 2대가 아닌 3대에서 음택 발복이 일어나는 과정과 이유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현재로서 불가능하다”라고 덧붙였다.

    “묏자리의 영향이 왜 하필 증손자대에 나타나는지, 조상의 묘가 어떤 과정을 거쳐 후손의 복에 영향을 주는지는 규명하지 못했지만, 3대 음택 발복에 대해 통계학적으로 분석했다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그는 일본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의 증조부모 묘소를 최고의 명당으로 꼽았다. 손정의 회장 증조부모의 묘소는 다른 재벌 선대 묘소들과 비교할 때 묘소 기반의 구조 면에서는 차이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데 사(砂)의 형태와 위치에 큰 차이가 있었다. 전통적인 풍수에서 거론하는 사는 묘소를 둘러싼 산을 의미하며, 부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산은 밥그릇을 엎어놓은 형태인 밥그릇형과 함지를 엎어놓은 형태인 함지형으로 나눌 수 있다. 함지형은 밑바닥의 길이에 비해 높이가 낮다.

    “함지형 타원호는 대체로 1개 혹은 많은 경우에 2개까지 관찰되는데, 손정의 회장 증조부모의 묘소에서는 무려 3개나 관찰됐습니다. 또한 함지형 타원호는 산의 중간이나 아래쪽에 위치하는 것이 보통인데, 손정의 회장 증조부모 묘소에서 관찰된 함지형 타원호 3개 중 2개는 산의 위쪽인 공제선(skyline)에 위치합니다.”

    “음택(陰宅) 발복(發福) 통계적 분석 명당 복은 3대 후손이 받아”

    이문호 교수가 최고의 명당으로 꼽는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의 증조부 묘를 답사하고 있다.

    명당은 ‘주어지는’ 것

    주변 사람들이 간혹 그에게 명당을 좀 잡아달라고 부탁한다. 그럴 때마다 그는 똑같은 대답을 준다. “명당은 남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므로 배려하는 삶을 살면 저절로 얻을 수 있다”고.

    대제학의 후손이 쇠락한 것이 그것을 반증한다. 항상 반듯하고 대쪽 같아야 했던 대제학은 독야청청하며 타인을 배려하지 못한 탓에 후손이 망했다는 것. 증조부모의 배려가 대제학을 만들고, 대제학의 배려하지 못함이 후손의 쇠락을 초래했다고 그는 부연했다. 다소 추상적이거나 혹은 싱거운 답변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통계학적으로 분석하고 도출한 결론이라고 강조했다.

    “사람들은 열심히 명당을 찾습니다. 조선의 양반사회에서는 명당을 확보하는 것을 효라 여겼고, 일제강점 초기에 접수된 소송 중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이 산송(山訟), 즉 묘지에 관한 소송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명당은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입니다. 훌륭한 가풍을 갖고 있는 집에서는 그에 잘 적응할 수 있는 배우자를 맞으며, 그들에게서 태어난 후손은 조상의 훌륭한 유전자를 물려받아 좋은 품성을 계속 이어갑니다. 그래서 그들의 부모는 명당에 안장되고 그들의 좋은 유전형질은 계속 발전해 훌륭한 3대 후손을 만들었는지도 모릅니다.”

    한편 명당은 시대나 그 용도에 따라 달라진다고 그는 말한다. 전통적 풍수에 따르면 경복궁 터는 명당이다. 경복궁의 주산은 북(北) 현무인 ‘백악산’이, 남(南) 주작은 관악산이, 좌청룡은 대학로 뒷산인 낙산이, 우백호는 인왕산이 맡았고, 물은 장대한 한강이 담당하고 있음이 그 이유다. 하지만 그는 현재의 시각으로 해석하면 경복궁 터는 명당이 아니라고 했다. 전통적 관점에서는 ‘안정’이 좋은 것이었지만 현재는 ‘변화’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변화가 없고 일이 없는 경복궁 터는 명당이 아니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국회의사당 터는 섬의 가장자리에 있어 물길이 정면으로 치받고 그로 인해 바람이 잦고 흔들림이 잦은 곳이다. 그 흔들림 때문에 전통적 풍수에서는 흉당이지만, 그는 그래서 오히려 현대에는 명당이라고 본다. 국회는 정쟁을 하는 곳으로 사람과 사고(思考)가 고정되면 망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 흔들림이 좋은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다. 그는 명당의 기준에 대해 고정불변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풍수 콘서트

    2월 학위를 받는 2명을 포함해 그는 지금까지 모두 17명의 풍수 관련 공학박사(응용전자학)를 배출했다. 그 제자들과 함께 최근 행사를 마련했다. 풍수를 과학적으로 이야기하는 풍수 콘서트를 영남대에서 개최한 것이다. 이미 2004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풍수학술대회를 열었고, 2007년과 2009년에는 그가 지도한 제자들의 박사학위논문 공개발표회를 연 바 있다. 풍수 콘서트는 학술대회나 논문발표회보다 더 쉽고 편안하게 대중에게 다가가는 형식이라고 했다.

    그는 지난 10년간 오판과 이론이 난무했던 풍수를 과학적인 방법으로 조사하고 분석해 제도권 학문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는다. 이제 그는 그것을 다시 대중과 제대로 소통하고 싶다는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또 하나, 그가 요즘 집중하는 것이 있다. 음택 명당과 후손의 부·귀·손의 상관관계 중에서도 특히 부에 관심을 쏟고 있다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를 움직이는 사람은 정치인이나 학자가 아니라 경제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명당’의 에필로그에는 “이제 남은 열정이라고는 뼛속까지에도 없습니다”라는 그의 고백이 실려 있다. 그런데 실제로 만난 그는 열정이 식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그의 증조부모의 묏자리가 궁금하다고 하자, “저는 그분들만큼 배려를 하지 못하고 삽니다”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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