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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한국의 명장

가장 자연스럽고 가장 인간적인 공예

완초장 이상재

  • 글·한경심 │한국문화평론가 icecreamhan@empas.com 사진·박해윤 기자

가장 자연스럽고 가장 인간적인 공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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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골로 자리와 방석, 용기를 만드는 완초 공예는 풀의 색감과 감촉이 그대로 살아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공예품이다. 특히 소품은 어떤 기구도 없이 사람 손으로만 만든 가장 인간적인 공예품이기도 하다. 완초 소품으로 이름난 교동도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완초에 인생을 건 이상재(李祥宰·70) 명장의 작품은 솜씨가 뛰어날 뿐 아니라 색감이나 형태가 매우 아름다워 단번에 중요무형문화재로 인정받았다.
가장 자연스럽고 가장 인간적인 공예

이상재는 젊은 시절부터 새로운 형태의 작품을 많이 창작했다. 그는 전통 기술과 창의성을 겸비한 장인이다.

나무와 흙으로 집을 짓고 대나무를 쪼개 발을 엮고, 모시풀로 베를 짜는 것도 자연을 우리 삶으로 끌어들인 것이지만 풀로 엮은 기물만큼 자연미를 간직한 것은 없다. 벼를 닮은 왕골 풀로 엮은 완초 공예품은 마른 식물 줄기인 짚의 느낌이 그대로 살아 있는, 자연을 가장 잘 간직한 기물이다. 대나무를 이용한 죽세공품처럼 가볍고 시원한 느낌도 주지만 쓸수록 누레지는 그 빛깔은 참으로 정다워 할머니가 쓰던 물품처럼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한여름 대나무로 만든 자리에 누우면 촉감은 시원하지만 오래 있으면 땀이 찹니다. 그런데 왕골은 땀을 흡수해서 늘 상쾌하지요. 또 왕골은 온기도 보존하기 때문에 겨울에도 차갑지 않습니다. 그래서 왕골자리는 사시사철 쓸 수 있습니다.”

왕골에 대한 자부심을 내보이는 이상재 명장의 설명이 아니어도 어린 시절 대청마루에 깔던 왕골 돗자리에 대한 기억이 다사롭다. 다만 그런 자리가 더위를 식히는 용도로만 쓰인 줄 알았는데, 냉기도 막아주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하긴 일본의 다다미도 골풀이나 부들로 만든 것임을 떠올리면 풀로 만든 자리가 사계절용이라는 게 납득이 간다.

이처럼 왕골을 비롯한 골, 볏짚, 밀짚 등 모든 식물 줄기로 짠 품목 중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방석과 바닥에 까는 자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강화도 화문석이나 보성의 용문석처럼 큰 자리는 발을 짤 때처럼 고드랫돌(실패 비슷한 기구)을 이용하거나(강화 화문석), 돗틀을 써서 직물을 짤 때처럼 바디에 끼워서 짠다(돗자리, 보성 용문석). 이에 반해 방석이나 물건을 담아 보관하는 용기인 송동이 같은 비교적 작은 물품은 순전히 손으로만 엮어 완성한다. 이상재 장인은 큰 자리는 짜지 않고 손으로 만드는 완초 세공품만 전문으로 해왔다.

“제 다리가 불편하니 큰 자리는 처음부터 짤 생각을 하지 않고 소품에 주력해왔습니다. 큰 자리는 강화도의 특산품이고 제 고향 교동도는 완초 소품이 특산품이니 자연스러운 선택이기도 하지요.”



완초 공예의 고장 교동도

이상재에게 완초 공예는 선택이자 운명이었던 것 같다. 우선 그는 왕골 소품으로 유명한 교동도에서 태어났고, 그가 자라던 때 교동에서는 집집마다 왕골을 엮어 만든 방석이나 자리, 반짇고리, 송동이 등을 부지런히 내다팔았다. 지금은 귀한 자연친화적 공예품으로 대접받고 있지만 그때는 그저 실생활에 없어서는 안 되는 일상용품이었다.

“없어서 못 팔 만큼 만드는 족족 팔려나가던 때였지요. 솜씨가 시원찮으면 자기 집에서 쓰고 솜씨 좋게 엮은 것은 팔려나갔고요. 돈이 되니 누구든 이 기술을 배우려고 했습니다.”

그의 집도 할아버지를 비롯해 부모 양친, 위로 두 누이와 남동생까지 모두 왕골을 엮었다. 여느 교동 아이들처럼 그에게 왕골은 자연스럽고 익숙한 환경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왕골 엮기가 흔한 일이라 해도 다 좋아할 수는 없는 법이고, 또 솜씨는 제각각이기 마련. 그의 빼어난 솜씨를 생각하면 특별히 재능 있는 핏줄을 타고났을 법하다. 하지만 그의 첫 스승인 어머니는 특별한 솜씨가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보통 사람들처럼 부업 삼아 엮어 파는 정도의 솜씨였지요. 아버지도 특별한 솜씨는 아니었고요. 할아버지가 솜씨가 좀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봤자 담뱃값을 버는 정도였지만요.”

할아버지 솜씨를 이어받았으니 굳이 핏줄을 따지자면 격세유전의 재능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고, 그는 ‘보통 솜씨’의 어머니에게 기초를 배웠다. 그러나 그에게는 특별함이 있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왕골 부업에 뛰어든 그의 첫 작품이 썩 잘 나온 데다 금방 팔려나갔으니. 그러나 진짜 그가 특별한 것은, 자신의 솜씨에 만족하지 못했다는 점일 것이다.

“한동네 사는 유형식 할아버지가 솜씨가 좋았는데, 어머니에게 부탁해서 그분께 배우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보통 솜씨로 만든 작품도 잘 팔리는 마당에 더 나은 실력을 갖추고자 하는 발심과 이 일을 평생의 업으로 삼겠다는 적극적인 선택이 있었기에, 오늘날 많은 완초 장인 가운데 그만이 유일하게 중요무형문화재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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