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대통령이 3월 20일 청와대에서 ‘규제개혁장관회의 및 민관합동규제개혁 점검회의’를 직접 주재했다
체육계 비리는 박 대통령이 취임 이후 ‘비정상의 정상화’의 대표 사례로 예시할 정도로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는 주제 중 하나였다. 지난해 7월 국무회의에서 처음으로 제기한 뒤 수차 개선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사격 국가대표 선수 출신의 박종길 전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이 물러난 뒤 인사위원회는 후임 인사로 언론계 출신을 추천했으나 박 대통령이 체육계 인사(김종 차관)를 선택한 것도 체육계 비리를 뿌리 뽑겠다는 의지의 반영이었다. 박 대통령은 1월 15일 문체부가 체육단체 특별감사 결과 및 대책을 발표했지만 더 강도 높은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박 대통령의 이 발언 이후 회계 중심의 체육단체 감사가 파벌, 심판 등 전방위적인 감사로 이어졌다.
국정 홍보에 대한 답답함
박 대통령은 2월 25일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 대해서도 기획재정부와 경제수석실에서 올린 초안을 보고 실망이 컸던 것으로 전해졌다. 가짓수는 많지만 기존의 사업을 짜깁기한 재탕 비중이 컸다.
박 대통령은 이 때문에 비공개 수석비서관회의 때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은 경제수석만의 일이 아니다. 모든 수석실이 다 검토를 해서 올려라”고 수석들에게 지시했다. 그리고 본인이 직접 다 챙겼다. 본래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발표할 예정이었던 경제혁신 3개년 계획도 취임 1주년 2월 25일 직접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대통령의 발언이 점점 비유가 많아진 또 하나의 이유는 국정 홍보에 대한 답답함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연말 이후 매번 회의 때마다 “국민이 모르는 정책은 없는 정책과 다름없다”는 말을 반복해왔다.
신년 기자회견에서 말한 “통일은 대박”이라는 표현이 호평을 받으면서 이런 쉬운 비유로 국민에게 정확히 본인의 뜻을 전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으로 보인다. “사자나 호랑이가 작은 토끼 한 마리를 잡는 데도 최선을 다한다” “쉽게 생각하고 툭툭 규제를 던져놓는데 개구리는 거기 맞아서 죽을 수도 있다” “규제 완화는 간절한 마음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장가를 못 간 아들, 시집을 못 간 딸은 부모가 모든 정성을 다해 꼭 결혼시키려고 하지 않느냐”는 등 비유가 쏟아졌다. 자신이 솔선수범해 쉬운 비유로 설명할 테니 각 부처도 정책을 홍보할 때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라는 주문이기도 했다.
대통령의 만기친람 리더십이 관료의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자세의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그런 관료의 태도는 또다시 대통령이 만기친람 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이번 세월호 참사 사고로 관료에 대한 대통령의 불만이 폭발했다. 박 대통령은 4월 29일 국무회의에서 “공직사회가 바뀌어야 하고 공직자가 바뀌어야 한다”고 강하게 주문하며 다 뜯어고치겠다는 강한 의지를 밝혔다.
한 참모의 말이다.
“박 대통령은 주변의 만류를 다 뿌리치고 청와대와 내각에 모두 관료를 썼다. 그들에 대한 배신감이 클 거다. 1970년 아버지 박 대통령 시절 애국심으로 가득 찬 능력이 뛰어난 관료를 기대했던 박 대통령은 국가가 아닌 소속 부처만을 위해 일하고 일에 대한 열정보다는 책임 회피로 일관하며 복지부동하는 공무원에 대한 배신감이 크다. 만기친람 리더십이라고 하지만 그동안 대통령이 반복해서 말한 건 ‘협업해라’ ‘국민만 봐라’ ‘현장이 중요하다’ 는 등 원칙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면 알아서 좀 해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취임 1년이 지났는데도 진행은 더뎠다. 그러다 세월호 사고가 터지면서 더 이상 관료에게 희망을 가지기 힘들어졌다.”
박 대통령이 이번 세월호 참사 사고로 불거진 관(官)피아에 대해 무방비로 있었던 건 아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3월 첫 번째 외청장 인사를 발표하면서 민형종 조달청장, 김영민 특허청장 등 18명 중 9명을 내부 승진시켰다.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은 1998년 금감원 설립 이후 내부 승진으로 금감원장에 오른 첫 사례였다.
당시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은 “주무부에서 청장이 내려왔던 것을 최소화하고 내부 차장을 적극 승진 발령했다”고 인선 배경을 설명했다. 주무부에서 청장으로 간 경우는 3명뿐이었다.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주무부처가 외청장까지 장악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분명히 갖고 있었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6월 공공기관 인사를 중단한 적도 있다. 대통령이 정치권 인사를 적극적으로 챙기지 않자 관료 출신이 모든 공공기관 인사를 장악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박 대통령은 추천 수를 3배수에서 6배수로 늘리고, 장관과 청와대가 절반씩 추천하도록 했다. 이후 관료 출신이 다소 줄었고 대신 정치권 낙하산 인사가 다소 늘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렇더라도 전문성 위주로 뽑는 공모제 자체가 워낙 관료 출신에게 유리하고 전관예우 행태가 곳곳에 남아 있어 관피아는 더 공고해졌다.
이번 세월호 사고 초반 해경과 안전행정부, 해양수산부가 실종자 통계를 각각 대통령에게 보고했는데 그 숫자가 제각각이었다고 한다. 대통령은 정확한 숫자를 원했지만 누구도 책임지고 이를 파악하지 않았다. 대통령에게 거듭 수정된 숫자를 보고하면서도 잘못된 숫자를 보고한 데 대한 어떤 책임감도 느끼지 않았다고 한다.
선박의 안전검사를 담당하는 한국선급에 해양수산부와 해양경찰청 전직 간부들이 임원으로 가면서 선박 안전관리 감독이 소홀해지는 ‘해피아(해양수산부+마피아)’ 문제도 터졌다.
거기에 김장수 대통령국가안보실장이 “재난 컨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는 동아일보의 지적에 “청와대가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고 반박하면서 청와대조차 책임회피를 한다는 비난 여론에 직면해 대통령에게 큰 타격을 줬다.
박 대통령의 과격한 발언이 이어질지 예전의 간결한 ‘문체’를 되찾을지는 관료로부터 시작된 성과에 대한 갈증을 어떻게 푸느냐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개각과 청와대 개편에 더욱 관심이 쏠린다. 주변에서는 박 대통령이 추진력 있는 정치인이나 외부 전문가를 적극 기용하고 이들에게 더 많은 자율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대통령이 임기 초반에 청와대와 내각을 관료 중심으로 꾸린 것은 자신이 일일이 다 챙기기 위해 실무형을 포진시킨 것이고 결국 그 착오가 부메랑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대통령국정기획수석을 지낸 곽승준 고려대 교수의 “관료는 소속 부처가 싫어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기 때문에 관료 개혁이 불가피한 정권 초창기에는 관료보다는 전문가와 정치인이 필요하다”는 말은 그래서 새겨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