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양수리.
세월호 이전에 우리의 일상은 그럭저럭 행복하고 안전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더러 심각한 일이 없지는 않았으나 그런대로 참을 만했고, 되는대로 해결할 만한 일들을 되는대로 해결하면서 살아왔다. 경쟁 일변도의 이 살벌한 사회를 살아내는 게 너무 힘들고, 그런 만큼 견디고 버티는 일은 거룩하기까지 했다.
이 담화는 소설가 김훈의 에세이 ‘밥벌이의 지겨움’을 나 나름대로 옮겨본 것이다. 오래전, 김훈은 다음과 같이 썼다. “밥벌이에는 아무 대책이 없다. 그러나 우리들의 목표는 끝끝내 밥벌이가 아니다. 이걸 잊지 말고 또다시 각자 휴대폰을 차고 거리로 나가서 꾸역꾸역 밥을 벌자. 무슨 도리가 있겠는가. 아무 도리 없다.”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 자체가 이제는 기적이 되고 있을 정도다.
무슨 얘기인가. 밥벌이의 지겨움은 달리 표현해 ‘일상의 엄숙함’이다. 그렇다면 삶은? 그것은 모르겠다. 기나긴 인생의 참다운 가치? 한 번뿐인 삶의 초월적 의미? 그러한 것이 과연 있는가?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일상은 엄숙하다.
일상 앞에서 누구나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나든 당신이든 또 누구든, 삶을 살기 보다는 일상을 살아간다. 일상을 최소한의 수준으로 건사하고 그것을 평탄하게 지속하고 더러 그 속에서 작은 즐거움을 만나거나 만드는 일의 소중함 또는 엄숙함은, 무거운 일이다. 그리하여 나는 말하고 싶다. 삶보다 일상이 무겁다고. 김훈은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밥벌이라든지 돈이라든지 건강이라든지, 그러니까 말하자면 세속적인 가치들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인정할 수가 없어요. 이것은 인간에게 소중한 거예요. 돈은 엄청나게 소중한 겁니다. 돈을 열심히 벌고, 아껴 쓰고, 잘 쓸 줄 알아야죠. 돈을 하찮게 알고, 돈벌이를 우습게 알면서, 자기는 마치 고매한 정신세계에 있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을 나는 신뢰도 안 하고 경멸해요. 그러니까 나는 밥을 열심히 성실하게 벌고, 그 안에서 도덕을 실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이 한반도에서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다. 솔직히 말하자면, 굳이 김훈의 말을 빌릴 필요도 없다. 수많은 사람이 20세기의 한반도를 그렇게 살아왔으며 또 그렇게 살고 있다. 젊은 세대라고 다를 것도 없다. 누구는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했지만, 글쎄 새벽 3시쯤 편의점에 가서, 그 시간에도 서서 일하는 ‘아픈 청춘’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자신 없다. 염치없고 미안하다. 브레히트 식으로 말해 이 한반도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우리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간다.

강원 춘천시 KT&G 상상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