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춘가도는 많은 이에게 사랑의 장소였다.
내 최종의 목적지는 춘천에 새로 개관한 KT&G 상상마당이었다. 이 익숙한 문화적 실험 공간은 홍대 앞 비대칭 건물 속의 다양한 공연, 전시, 영상, 강의 등으로 문화예술계에 널리 알려졌다. 비주류 및 신진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일반 대중에게는 폭넓은 문화 경험을 제공하려고 KT&G가 2007년 서울 홍대 앞에 첫 번째 상상마당을 개관했고, 2011년에는 충남 논산에 두 번째 상상마당을 열었는데, 올봄에 그 세 번째 공간으로 춘천 어린이회관 일대를 리뉴얼해 개관한 것이다.
공식 이름이 ‘KT&G상상마당 춘천’이 되는 그곳에 공연장, 스튜디오, 갤러리, 강의실, 카페 등의 ‘아트센터’와 객실, 연습실, 세미나실을 구비한 ‘스테이’ 두 공간을 마련했다 하여 찾아가게 된 것이다. 더불어 그곳의 개관 기념 강의까지 맡게 되어 내친김에 하룻밤을 공지천을 내다보며 보내기 위해 나는 연휴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토요일 낮에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차량이 산더미처럼 막힌다는 소식에 일부러 시간을 넉넉히 잡고 양수리 쪽으로 행로를 잡았다가 다시 고속도로에 올랐다가 차라리 꽉 막힌 고속도로에 있을 거라면 국도변으로 융통성 있게 움직였다가 쉬었다가 다시 움직일 요량으로 청평, 가평 쪽의 경춘가도를 다시 선택해 대낮에 출발해 저녁 어스름에 공지천에 이르는 여정이 되고 말았다.
만화가는 ‘만화와 상상력’을, 동화작가는 ‘동화와 상상력’을, 건축 전문기자는 ‘건축과 상상력’을 맡았고, 나는 ‘인문학과 상상력’이라는 주제를 맡았는데, 춘천까지 가는 동안 도무지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실마리가 풀리지 않았다.
인문학과 상상력이라고 하면, 손쉽게, 그러니까 말하기 좋고 듣기 좋은 근사한 말을 이리저리 엮어 한두 시간쯤 푸짐한 어휘의 성찬으로 채울 수 있으련만, 세월호 이후의 시간을 견디는 과정에서 그러한 말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걱정이었다. 그 어떤 말도 함부로 꺼낼 수 없는 상황이 되었으며 아마도 내 강의를 들을 사람들 또한 예전처럼 평화롭고 한가롭게 ‘사유’니 ‘성찰’이니 ‘상상’이니 하는 말을 듣고 있을 상황은 아닐 듯싶었다. 모든 일상이 판단 중지된 상황, 세월호 이전이었으면 아무렇지도 않았을 사소한 농담이나 환한 웃음도 모조리 정지 상태에 놓였으므로 나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해 내게 주어진 강의 시간을 보낼 수 있을지, 꽉 막힌 도로 위에서도 오로지 그 걱정뿐이었다.
경춘가도의 쓸쓸함
온통 물이었다. 강변북로를 따라 달리다가 팔당대교를 건너고 양수리까지 내려갔다가 잠시 고속도로를 탔다가 다시 북한강을 끼고 달리는 경춘가도를 이용해 공지천에 이르러 최종의 브레이크를 밟았으니, 끝도 없는 물의 연속이었고 물빛이 번들거리는 여정이었다. 오래전에, 그러니까 1992년 시인 윤중호는 ‘양수리에서’라는 시를 썼는데, 요절한 이 참된 시인은, 짧지만 정확한 언어로 양수리를 다음과 같이 그린 적 있다.
북한강 남한강이, 서로
살을 섞어도, 티눈처럼, 서로 서글프게, 등 돌리고 누워
풀섶이나 더듬는 모진 바람으로
끼룩끼룩, 철새 몇 마리 띄워보내는,
양수리에
늦장마 들어, 길이란 길은
다 쓸어내고, 그 자리에
다시 길을 내며
흘러드는 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