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호

좌절이 분노와 공격으로 ‘죽일 놈’ 잡아야 해소

‘세월호 분노’의 비이성

  •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입력2014-06-19 14: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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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관계주의적이고 물질주의적인 심리 특성은 분노의 대상을 사람에서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그 ‘죽일 놈’을 잡아야 분노가 해소된다.
    좌절이 분노와 공격으로 ‘죽일 놈’ 잡아야 해소

    진도 팽목항에 유병언 부자 수배 전단지가 붙어 있다.

    많은 사람이 얘기한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세월호 사고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그만큼 세월호 사고는 한국인에게 너무나 안타깝고, 슬프고, 괴롭고, 힘든 사건이었다. 꽃다운 고등학생 200여 명을 포함한 300명이 넘는 사람이 죽었거나 실종되었다.

    단지 많은 사람이 생명을 잃었다는 사실도 충분히 비극적이지만, 지금까지 언론을 통해 알려진 사고가 일어나게 된 원인과 그 과정, 그리고 사고 이후의 구조와 대처 과정을 보면 더 비극적이고 실망스러울 따름이다. 아직도 실종자가 남아 있고, 수많은 조사가 진행 중이며, 앞으로도 관련 사실들을 밝히기 위한 노력이 오랜 기간 필요하다.

    더구나 사고와 관련해서 책임질 사람과 잘못에 대한 철저한 처벌도 뒤따라야 한다. 그래서 사고 이후 지금까지 공식적이거나 비공식적 조사, 여론과 다양한 논의, 사회적 관심은 사고 원인의 규명과 구조과정의 문제점에 초점을 맞추어왔다. 또한 이제는 이러한 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한 제도적 또는 인적 쇄신과 개선 방안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가 진행된다. 

    분노에 대한 냉철한 분석

    지난 50여 일 동안 비통함, 슬픔, 실망, 미안함, 분노에 다 같이 빠져 있었고 그렇게 빠져 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 우리는 스스로에 대한 분석을 할 여유도 이유도 없었다. 오히려 이러한 언급이나 분석을 시도하는 것이 매우 큰 논란을 일으켰다. 부적절한 표현과 방식의 논의가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전문적이고 합리적인 논의라도 그대로 받아들여지기에는 국민의 아픔이 너무 컸기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라는 이유 자체만으로도 국민의 고통을 함께하지 않는, 공감능력이 부족한 반사회적 인물로 낙인찍히기 쉬운 분위기다.



    더구나 감성과 정서에 유난히 예민한 한국 사회에서 당연하게 생각되는 행동에 대한 논의 자체가 우리 스스로를 비난하는 것처럼 인식될 가능성이 있기에 위험할 수밖에 없다. 거기다 최근 우리 사회의 모든 사회적 이슈는 정치적 이념과 연결되어 논란이 되기에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세월호 사고에 책임이 있는 선장, 선원, 해경, 유병언 일가 등에 대해 논의하는 것에는 모두가 의견을 같이하지만,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는 우리 행동에 대한 분석은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다심리학자마다 동의하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심리학은 가치중립적인 학문이다. 심리학도 인간이 하는 것이니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가능한 한 가치 중립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심리학은 인간의 사고와 행동이 어떤지를 규명하는 데 목적이 있지, ‘어떠해야 한다’라든지, ‘어떡해서 잘못됐다’라는 판단은 되도록 피한다.

    사자가 사슴을 잡아먹는다고, 그것도 산 채로 잡아먹는다고, 심지어 동물원의 사육사를 잡아먹는다고 사자를 탓할 일이 아니다. 그냥 사자는 그렇게 타고났다. 인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선한 본성만큼이나 악한 본성을, 합리성만큼이나 비합리성을, 지혜만큼이나 착각을, 이타성만큼이나 이기성과 공격성을 가졌다고 해서 심리학자는 실망하지도 않고 당황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항상 스스로를 살짝 긍정적으로 보려는 인간의 본능적 착각을 극복하기 위해 인간의 부정적인 측면을 밝혀내는 데 더 초점을 맞춘다.

    그러다보니 심리학은 인간의 어두운 면을 밝히는 데 중독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이런 심리학은 결코 우리 스스로가 바로 우리가 원하는 그런 존재가 아님을 알게 해준다. 하지만 우리의 본질과 한계를 명확히 알 때, 우리가 원하는 그런 모습으로 변해가는 데 가장 효율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을 찾을 수 있다.

    우리 모습에 대한 심리학적 분석은 그래서 ‘잘한다’ ‘잘못한다’라는 가치판단을 최대한 피한다. 그냥 우리가 그렇다는 얘기다. 그러니 만약 우리가 다른 모습을 원한다면, 자신에 대한 정확한 분석을 근거로 해서 대책과 계획을 세우면 된다. 세월호 사고에 대한 한국인의 반응을 분석하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한국인의 행동과 문화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좌절-공격 이론

    세월호 사고에 대한 국민의 분노는 기존의 어떤 사고보다도 크다. 피해자의 규모나 사고의 내용 면에서 최악의 사고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삼풍백화점에서 502명의 사망자가 나온 것이나 비슷한 규모의 288명 사망자를 낸 서해 훼리호 사고 등과 비교할 때, 국민의 분노 수준은 훨씬 높고 격해 보인다. 물론 청소년의 희생이 그 분노를 증폭시키는 요소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슬픔이나 안타까움뿐 아니라 분노의 수준이 유달리 높은 현재의 상황을 설명하는 데는 좌절-공격 이론(frustration-aggression theory)이 적절해 보인다. 

    사회심리학에서 인간의 분노와 공격 행동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이론 중 하나인 좌절-공격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기본적으로 좌절을 경험할 때 분노와 공격행동이 일어나게 된다. 여기서 좌절은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 달성이 누군가나 어떤 것에 의해서 방해받는 경험이다. 이 좌절은 단순한 실패와는 다르다.

    너무 높은 나무에 매달려 있는 과일을 혼자 쳐다보면서 아무리 아쉬워해도 이 고통스러운 경험은 실패와 실망이지 좌절이 아니다. 이 경우 나무에 분노하거나 나무를 공격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히 손이 닿을 수 있는 과일을 막 먹으려 할 때, 누군가가 그 과일을 가로채거나 나무를 흔들어 떨어뜨려 과일을 버린다거나 나를 밀치며 방해한다면 이 경험은 좌절이 된다. 이때 그 누군가에게는 분노하게 되고 공격하게 된다. 그렇다고 누군가 나한테 고통을 주고 실패를 경험하게 한다고 항상 좌절하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지하철에서 누군가 내 발을 밟아서 너무 아플 때가 있다. 이때 만약 출퇴근 시간이어서 지하철에 사람이 가득 차서 모든 사람이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는 상황에서 어떤 사람 자신이 원하지도 않고 어쩔 수도 없이 내 발을 밟았다면 우리는 짜증은 나도 분노하지는 않는다. 반대로 지하철이 텅 비어서 충분히 안 그럴 수 있었는데도 누군가 내 발을 밟는다면 별로 아프지 않았어도 우리는 무척 분노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이 바로 정당화(justification)다. 정당화할 수 있는 좌절은 분노를 일으키지 않는데 정당화할 수 없는 좌절은 분노와 공격행동을 일으킨다. 실제로 인생에서 많은 실패와 고통, 그리고 부정적인 사건을 경험하면서 살지만 그것이 반드시 좌절도 아니고 분노를 일으키지도 않는 이유다. 

    세월호 사고는 좌절-공격 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도저히 정당화할 수 없는 좌절의 연속이었다. 세월호 사고의 가장 큰 특징은 상대적으로 긴 시간 동안 진행된 침몰 과정, 그리고 완전히 가라앉지 않고 배의 일부가 계속 보였다는 사실, 긴 구조작업이었다. 그냥 대형버스끼리 충돌하는 교통사고나 대형 화재로 삽시간에 건물이 불길에 휩싸여서 대규모 인명피해가 난 사건과 다소 다르다. 배가 채 넘어가기도 전부터 전국에 생방송되기 시작했고, 넘어가는 과정에서 침몰하는 순간까지, 심지어 침몰한 이후에도 뒤집힌 배의 앞부분이 물 위로 계속 나와 있었다.

    이런 사고 자체가 편안하고 안전하게 살고 싶어 하는 우리 국민에게는 실패이고 일정 부분 좌절로 경험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방송에서 생중계되는 순간부터 온 국민의 마음속에는 배 안의 사람들이 살아서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과 꺼내오고 싶어 하는 간절한 바람이 굉장히 컸다. 무려 그 기간이 골든타임이라는 72시간을 넘어 비현실적이었지만 거의 2~3주를 유지했다.

    필자와 필자의 아내도 거의 하루 종일 TV를 보면서 한 명이라도 살아서 돌아오길 빌고 또 빌었다. 하지만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했다. 한 구의 시체가 나올 때마다 사람들이 겪었을 좌절은 상상하기 힘들다. 나도 그 좌절감에 가슴이 답답해서 잠을 이루지 못한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 건물이나 다리처럼 매우 빠른 시간에 사고가 종결되는 사건에서는 오히려 좌절을 덜 경험한다. 또 한두 명이라도 구조한다면 그 좌절감은 크게 상쇄되고 위로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세월호 사고에서는 한 달이 넘는 기간에 한 명도 구조되지 않고 시신으로 돌아오는 것을 계속 지켜봐야 했다. 이렇게 오랜 시간 온 국민이 동시에 좌절을 겪은 예는 역사상 찾기 힘들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좌절을 경험하게 만든 대상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특별히 방해한 사람이 없이 불가항력적으로 과일을 못 따 먹은 게 아니다. 태풍이 와서 배가 뒤집힌 것도, 태풍 때문에 구조가 어려웠던 것도 아니었다. 망망대해 한가운데서 사고가 일어나서 구조하는 데 시간이 걸린 것도 아니었다. 조류 때문에 구조가 힘들었을 수 있지만 조류는 눈에 보이지도 않기에 지켜보는 국민이 이해하기 힘들다. 오히려 배가 침몰하기도 전에 수많은 어선과 심지어 경비정도 접근했고, 사고가 일어나자마자 수많은 인력과 장비가 도착했는데도 단 한 명도 살리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그것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냐를 떠나 못 구한 게 아니라 안 구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 마치 텅 빈 지하철에서 바짝 가까이 서 있다가 발을 밟고는 지하철이 갑자기 움직여서 중심을 잃어서 발을 밟았다고 변명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발을 밟혀서 아픈 사람 처지에서는 왜 처음부터 텅 빈 공간 놔두고 가까이 서 있는데…라고 생각하고, 좌절하고 분노할 수밖에 없다. 보통 좌절의 양이 분노와 공격행동의 양을 결정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온 국민이 지난 50여 일 동안 누적한 좌절의 양에 비교하면 이 정도의 분노는 많이 참았다고 얘기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이 너무 오랫동안 좌절을 경험하게 된 데는 사고 이후 정부의 대처 과정도 상당 부분 일조했다. 계속되는 발표 자료의 오류, 통합적 구조 시스템의 부재,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여러 국가 기관 간의 다툼과 비협조, 구조 방법과 과정을 둘러싼 혼란과 논란 등 이 모든 과정은 국민에게 엄청난 좌절을 안겨줬다.

    공격의 전이

    그래서 어찌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세월호 사고의 가장 큰 책임을 진 선장과 선원은 잊혀버렸다. 지금은 오히려 정부와 유병언 일가가 관심의 초점이 되었고 책임의 주체가 됐다. 객관적으로 생각해본다면 세월호의 침몰에서부터 대규모 인명피해가 나게 된 과정에서 다른 모든 원인은 2차적이고 간접적이다. 선장과 일부 선원들의 비정상적이고 비윤리적인 행동이 가장 큰 원인이다. 선장과 선원이 적절히 행동했다면, 퇴선 명령과 인명구조 활동만 열심히 했다면 사실 배는 가라앉아도 이렇게까지 큰 사고로 이어질 일은 아니었다. 많은 이는 퇴선 명령만 제때 내렸어도 인명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아 얘기한다.

    좌절이 분노와 공격으로 ‘죽일 놈’ 잡아야 해소

    구원파 신도들이 경기 안성 보개면 금수원 출입구에 현수막을 내걸고 결사항전을 다짐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그렇다면 국민 대부분의 좌절과 분노는 선장과 선원을 향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사고 직후에는 선장과 선원에게 분노하던 국민도, 그들을 비난하던 언론도 이제는 선장과 선원을 잊은 것 같다. 왜? 선장과 선원이 너무 일찍 잡혔다. 국민은 선장과 선원이 잡힐 때도, 잡힌 이후에도 계속 좌절했던 것이다. 한 명도 살아 돌아오지 못하고 계속 시신만 나올 때, 그 후에 구조와 대처 과정에서 계속 좌절했는데 이 좌절은 이미 잡힌 선장과 선원에게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오랫동안 지속됐다.

    좌절은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분노와 공격행동을 통해 배출된다. 그렇게 배출되어야 궁극적으로 완전히 해소될 수 있다. 그래서 좌절을 경험했을 때 가장 바람직한 좌절 극복 방법과 분노 해소 방법은 자신에게 좌절을 안겨준 그 대상에게 바로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리 분노를 쉽게 표출할 수 있는 대상이라면 처음부터 나에게 좌절을 안겨주지도 못했을 것이다. 보통 나에게 좌절을 안겨주는, 즉 나의 목표 달성을 성공적으로 방해할 수 있는 존재는 나보다 강한 존재일 가능성이 크다. 이런 존재에게 직접적인 분노를 표출하면 보복당해서 더 큰 좌절을 경험하는 악순환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분노를 표현할 좀 더 안전한 대상을 찾는다. 자신에게 좌절을 안겨준 사람과 닮은 사람에게 분노를 표출하면 더 만족스럽지만, 더 닮을수록 위험하므로 항상 그 절묘한 균형점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시어머니에게 좌절을 경험한 며느리에게 가장 시원한 분노 표출의 대상은 시어머니다.

    하지만 이런 패륜은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시어머니를 닮은 남편을 향해 분노를 폭발하기도 한다. 남편도 만만치 않으면 그 대상은 시어머니를 유달리 닮은 자식으로 옮겨간다. 그래서 시어머니를 닮은 손자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이유도 없이 미움을 받는다. 이런 현실적인 과정은 심리학에서는 공격의 전이(displacement)라고 한다. 술에 취해서 울분을 토하는 사람이 가끔 고개를 들어 두리번거릴 때는 눈을 마주치면 안 된다. 분노로 가득 찬 그 사람은 자신에게 좌절을 안겨준 그 죽일 놈을 닮은 사람을 찾는 것이다. 이때는 진짜 닮아서가 아니라, 그냥 걸리면 닮은 사람이 된다. 그리 합리적이거나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지만, 우리의 정신건강을 위해 전이는 반드시 필요한 심리기제 중 하나다.

    이런 전이의 관점에서 세월호 사고를 보면 더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선장과 선원이 너무나 쉽게 잡히고 죽일 놈들이 되는 순간을 넘어 국민은 지속적으로 너무 많은 좌절을 경험했다. 이 좌절은 이제 선장과 선원으로 해결될 수 없다. 그래서 국민의 분노는 그 대상을 찾아 떠돌고 있다. 그래서 조금만 의견이 다른, 또는 적절하지 않은 표현을 사용한 발언이 걸리면 그 사람은 사회적으로 죽일 놈이 되면서 매장된다.

    그리고 시간이 가면서 그 분노는 해경, 언딘, 정부 관계자, 청와대를 거쳐 지금은 유병언과 그 일가에 집중된다. 대통령은 그런 국민의 뜻을 받들어 해경을 해체했다. 수사기관은 구조 단계에 개입한 여러 기관과 사람들을 조사하고 사법처리 수순을 밟고 있으며 유병언 일가와 구원파 수사에 몰두한다. 물론 이들 모두 잘못이 있다. 그들의 잘못은 세월호 사고라는 참사가 일어나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이들의 잘못에는 경중이 있고, 정도의 차이가 있고,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던 것도 있다. 고의가 아닌 순간의 실수인 측면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그런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얘기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 아직 국민의 분노가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노의 힘

    일반적으로 서구적 관점에서 정서나 감정은 부정적으로 평가된다. 감정은 동물적인 욕구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므로 항상 이성의 통제를 받아야 하는 그런 본능적 존재로 인식된다. 서구의 심리학에는 이러한 관점이 크게 반영됐다. 프로이트도 인간의 행동은 타고난 본능적 욕구에 해당하는 이드(id)와 현실적인 에고(ego) 간의 갈등의 결과라고 봤다.

    오랫동안 심리학의 큰 주류도 결국 정서적 요인은 합리적인 인지적 사고 과정을 방해하는 요소로 인식돼왔다. 분노도 그런 관점에서 전통적으로 부정적인 것으로 평가돼왔다. ‘스파이더맨’ 3탄은 분노에 휩싸인 까만색 나쁜 스파이더맨과 이성이 지배하는 빨간색 착한 스파이더맨 사이의 갈등을 그린다. 결국 영화에서는 언제나 이성이 지배하는 빨간 스파이더맨이 이기고,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하지만 최근 이런 감정과 정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심리학에서 크게 바뀌고 있다. 감정과 정서는 나쁜 것도 아니고, 실수로 그냥 우리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다 이유가 있고 기능도 있다는 것이다. 감정은 우리에게 다양한 사회적 사건에 대해 즉각적이고 적극적으로 반응할 수 있게 해주는 기능이 있다. 슬프고, 놀라고, 무서워하고, 기뻐하는 감정적 경험은 우리의 다음 행동을 결정해준다.

    당연히 분노도 그런 기능이 있다. 분노를 느꼈을 때 사람들은 그 분노의 원인, 대상을 찾아 보복을 하든지, 위협을 하든지, 또는 비슷한 다른 대상에게 보복을 해서 원하는 것을 얻든지, 비슷한 일을 다시는 경험하지 않게끔 대비하는 등의 효과를 낸다. 그래서 과거 사건에 대한 분노이지만 결국 미래에 대한 준비도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에게 분노는 필요하다. 자신을 지키고 자신의 소중한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유병언을 검거해야 하는 이유

    다만 이 분노가 적절한 대상을 찾아 적절히 표출되고 그로 인해 다시는 분노를 경험하지 않아도 되게끔 기여한다면, 우리는 분노를 통해 발전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관계주의적이고 물질주의적인 심리 특성은 분노의 대상을 사람에게서 찾으려는 경향을 만들어낸다. 어떤 추상적인 시스템이나 비물질적인 가치 등은 분노 표출의 대상이 되기 어렵다. 그래서 항상 죽일 놈을 찾는 데 매진하게 된다. 그리고 그 죽일 놈을 잡으면 이 분노는 해소된다. 그런 죽일 놈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가 없어졌다고 우리 사회가 더 안전해지거나 좋아지지 않는다. 왜? 불행히도 인류의 역사를 보면 그런 죽일 놈이 될 후보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고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그런 죽일 놈이 나올 수 없는 사회제도와 시스템의 개선이 필요하다. 설사 그런 죽일 놈이 나오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그 죽일 놈을 잡는 순간 그 분노를 모두 그에게 풀어버리고 잊어버리는 성향이 있다. 그렇기에 사실 세월호 침몰 같은 사고가 처음도 아니고 반복되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유병언 일가를 잡기 위해 국가의 모든 능력을 집중한다. 법정 최고 현상금이 5000만 원인데도 무려 5억 원이나 걸려 있다. 아무 이유 없이 20명을 직접 죽인 연쇄살인범 유영철도 현상금이 5000만 원이었다. 그런데 5억 원을 현상금으로 걸면서 나온 체포영장의 죄목은 조세포탈과 배임이다. 아직 유병언과 세월호 사고를 관련지을 수 있는 죄목도 결정이 안 되어 있어 법조계에서는 유병언은 세월호 사고보다는 개인 비리로 처벌받게 될지도 모른다고 한다. 유병언의 아들, 딸과 세월호 사고와의 연관성은 아마 더욱더 증명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앞으로 법적 처리는 지금 온 국민의 관심과 분노가 온통 유병언 일가에게 쏟아지는 상황과는 전혀 다르게 진행될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좌절이 분노와 공격으로 ‘죽일 놈’ 잡아야 해소
    허태균

    1968년생

    고려대 심리학과 졸업,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 문학석사(일반심리학)·노스웨스턴대 철학박사(사회심리학)

    저서 : ‘가끔은 제정신’


    그래도 유병언 일가는 잡혀야 한다. 세월호 사고와 무관하게라도 이들이 지금까지 자행해온 모든 비리와 잘못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 지금처럼 법을 농락하며 도망 다니는 행위는 처벌받아 마땅하다. 더 중요한 이유는 그래야 우리 국민도 이 분노를 내려놓을 수 있다. 이 분노는 지금 떠돌고 있다. 누굴 대상으로 할까, 어디 또 죽일 놈 없나 싶어서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단지 유병언이 잡혔다는 이유로 또 모든 것을 잊고 과거의 관행적 비리와 잘못된 시스템을 그대로 놔두는 실수를 범하지 않는다면, 이들이 잡혀야지만 우리 국민은 그나마 마음의 빚을 덜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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