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 28일 필라델피아 한 호텔에서 기자와 인터뷰하는 류현진.
올 시즌 류현진이 승승장구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단어를 통해 류현진이 다저스는 물론 메이저리그에서 상위권에 속하는 투수로 성장한 배경을 알아본다.
해발고도 1600m에 위치한 콜로라도 로키스의 홈구장인 쿠어스필드는 ‘투수들의 무덤’으로 불리는 곳이다. 고지대에 위치한 구장의 특성상 기압이 낮고 공기 저항이 줄어들기 때문에 장타가 나올 확률이 높다. 투수의 변화구 제구도 다른 구장과 달리 여의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6월 7일(한국시각) 류현진은 메이저리그 데뷔 후 처음으로 쿠어스필드 마운드에 올랐다. 그동안 몇 차례 쿠어스필드에서 등판할 기회를 맞이했지만, 그때마다 묘하게 부상 등이 생기는 바람에 쿠어스필드를 피해 갈 수 있었다.
#쿠어스필드
생애 첫 쿠어스필드 등판을 앞두고 류현진은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경기 전 워밍업 차원에서 하는 불펜피칭 당시 류현진은 쿠어스필드가 어떠한 곳인지 제대로 실감할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불펜피칭을 하면서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분명 포수의 미트를 향해 공을 던졌는데 공이 스트라이크 존에 꽂히질 않았다. 불펜피칭을 마칠 때까지 단 한 개도 스트라이크를 잡지 못했다. 순간 ‘이게 뭐지?’하는 생각과 함께 혼란스러움이 가중됐다. 이전처럼 똑같은 투구 폼과 스피드로 공을 던졌지만 생각했던 것만큼 제구가 되지 않으면서 연속적으로 볼이 나오는 걸 보고선 속으로 ‘큰일 났다’ 싶었다.”
류현진은 1회 마운드에 오르기 직전까지 더그아웃에 앉아 생각을 정리했다. 이전과 같은 피칭 포인트를 가지고선 상대팀 타자들한테 두들겨 맞을 게 분명했고, 포수의 미트보다 좀 더 낮게 던져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공이 들어갈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좀 더 쉽게 표현하면 땅바닥만 보고 던진 셈이다. 즉 땅바닥이 포수의 미트라고 생각하고 던지니까 그 공이 낮게 들어가더라. ‘아, 이래서 쿠어스필드를 투수들의 무덤이라고 하는구나’ 싶었다. 콜로라도 로키스와 6회까지 6대 2로 앞선 상태에서 내려오는데 어려운 숙제를 마쳤다는 홀가분함에 절로 ‘휴’ 소리가 나왔다.”
또한 이날은 주심의 스트라이크 존이 흔들리면서 2회에는 무려 투구수가 30개에 육박했다.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류현진도 그로 인해 당황한 기색을 보이기도 했지만, 경기를 마친 후 오히려 “심판 콜이 오락가락하는 바람에 조금 힘들긴 했어도 투수는 경기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는 스트라이크 존에 적응해야 한다”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 퍼펙트 게임
5월 27일, 뉴욕 메츠와의 원정 경기를 승리로 장식하고 로스앤젤레스(LA) 다저스타디움으로 돌아간 류현진은 홈에서 신시내티 레즈를 맞아 시즌 6승을 거머쥐었다. 당시만 해도 류현진은 앞선 8경기에서 4승 2패를 거두는 동안 홈에서는 무승에 그쳤다. 그런데 레즈 전에서 7⅓이닝 3실점 호투로 승리 투수가 되면서 홈팬에게 기쁨을 안겼다. 더욱이 7회 등판을 마칠 때까지만 해도 1루에 단 한 명의 주자도 내보내지 않으며 퍼펙트 게임을 향해 조심스러운 피칭을 이어가고 있었다.
“신시내티 레즈전을 앞두고선 홈에서 첫 승을 거두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또다시 홈에서 패할 경우 ‘홈경기 징크스’란 말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게 불 보듯 했다. 그래서 1이닝 2이닝 3이닝을 막고 있었는데 6이닝까지 볼넷은 물론 안타 하나 허용하지 않는 상황이 연출되면서 돈 매팅리 감독은 물론 동료 선수들도 그때부터 퍼펙트 게임을 떠올리고 있었다. 나도 물론이었다. 7회 마운드에 올라가는데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웃음)”
류현진은 7회까지 퍼펙트 행진을 이어가며 압도적 투구를 펼쳤지만, 8회 3안타를 맞고 3실점하면서 패전 위기까지 내몰렸다가 간신히 승리를 챙겼다. 그날 경기 후 류현진은 자신의 통역을 돕는 LA 다저스 국제마케팅 직원 마틴 김에게 소감을 이렇게 전했다. “형, 퍼펙트 게임은 아무한테나 주어지는 선물이 아닌가봐. 처음엔 퍼펙트 행진이 깨진 게 아쉬웠지만, 지금은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해. 메이저리그 2년차에 퍼펙트까지 달성하면 앞으로 야구가 재미없어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