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호

“순항 끝나고 태풍 몰아쳐도 한국서 하던 대로 던질 것”

미국 현지취재 - ‘곰’의 모습을 한 ‘여우’ 류현진

  • 이영미 │스포츠 칼럼니스트 riveroflym22@naver.com

    입력2014-06-20 11: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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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리베는 모든 것 받아주는 친형 같은 존재”
    • 쿠어스필드 등판 마치고 휴~ 소리 나온 까닭
    • 퍼펙트게임? “욕심났다. 심장 터지는 줄 알았다”
    • “나는 영리하지 않다, 다만 판단 빠를 뿐”
    “순항 끝나고 태풍 몰아쳐도 한국서 하던 대로 던질 것”

    5월 28일 필라델피아 한 호텔에서 기자와 인터뷰하는 류현진.

    메이저리그 데뷔 2년차 징크스 없이 순항을 이어가는 류현진(27). 6월 15일 현재, 7승3패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류현진은 올 시즌 원정에서 7경기에 선발 등판, 5승 1패를 거뒀다. 더욱이 어깨 부상 이후 4연승을 내달렸다는 점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이는 류현진이 메이저리그 데뷔 해인 지난해에 비해 질적, 양적으로 성장했음을 나타내는 수치다.

    올 시즌 류현진이 승승장구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단어를 통해 류현진이 다저스는 물론 메이저리그에서 상위권에 속하는 투수로 성장한 배경을 알아본다.

    해발고도 1600m에 위치한 콜로라도 로키스의 홈구장인 쿠어스필드는 ‘투수들의 무덤’으로 불리는 곳이다. 고지대에 위치한 구장의 특성상 기압이 낮고 공기 저항이 줄어들기 때문에 장타가 나올 확률이 높다. 투수의 변화구 제구도 다른 구장과 달리 여의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6월 7일(한국시각) 류현진은 메이저리그 데뷔 후 처음으로 쿠어스필드 마운드에 올랐다. 그동안 몇 차례 쿠어스필드에서 등판할 기회를 맞이했지만, 그때마다 묘하게 부상 등이 생기는 바람에 쿠어스필드를 피해 갈 수 있었다.

    #쿠어스필드



    생애 첫 쿠어스필드 등판을 앞두고 류현진은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경기 전 워밍업 차원에서 하는 불펜피칭 당시 류현진은 쿠어스필드가 어떠한 곳인지 제대로 실감할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불펜피칭을 하면서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분명 포수의 미트를 향해 공을 던졌는데 공이 스트라이크 존에 꽂히질 않았다. 불펜피칭을 마칠 때까지 단 한 개도 스트라이크를 잡지 못했다. 순간 ‘이게 뭐지?’하는 생각과 함께 혼란스러움이 가중됐다. 이전처럼 똑같은 투구 폼과 스피드로 공을 던졌지만 생각했던 것만큼 제구가 되지 않으면서 연속적으로 볼이 나오는 걸 보고선 속으로 ‘큰일 났다’ 싶었다.”

    류현진은 1회 마운드에 오르기 직전까지 더그아웃에 앉아 생각을 정리했다. 이전과 같은 피칭 포인트를 가지고선 상대팀 타자들한테 두들겨 맞을 게 분명했고, 포수의 미트보다 좀 더 낮게 던져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공이 들어갈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좀 더 쉽게 표현하면 땅바닥만 보고 던진 셈이다. 즉 땅바닥이 포수의 미트라고 생각하고 던지니까 그 공이 낮게 들어가더라. ‘아, 이래서 쿠어스필드를 투수들의 무덤이라고 하는구나’ 싶었다. 콜로라도 로키스와 6회까지 6대 2로 앞선 상태에서 내려오는데 어려운 숙제를 마쳤다는 홀가분함에 절로 ‘휴’ 소리가 나왔다.”

    또한 이날은 주심의 스트라이크 존이 흔들리면서 2회에는 무려 투구수가 30개에 육박했다.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류현진도 그로 인해 당황한 기색을 보이기도 했지만, 경기를 마친 후 오히려 “심판 콜이 오락가락하는 바람에 조금 힘들긴 했어도 투수는 경기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는 스트라이크 존에 적응해야 한다”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 퍼펙트 게임

    5월 27일, 뉴욕 메츠와의 원정 경기를 승리로 장식하고 로스앤젤레스(LA) 다저스타디움으로 돌아간 류현진은 홈에서 신시내티 레즈를 맞아 시즌 6승을 거머쥐었다. 당시만 해도 류현진은 앞선 8경기에서 4승 2패를 거두는 동안 홈에서는 무승에 그쳤다. 그런데 레즈 전에서 7⅓이닝 3실점 호투로 승리 투수가 되면서 홈팬에게 기쁨을 안겼다. 더욱이 7회 등판을 마칠 때까지만 해도 1루에 단 한 명의 주자도 내보내지 않으며 퍼펙트 게임을 향해 조심스러운 피칭을 이어가고 있었다.

    “신시내티 레즈전을 앞두고선 홈에서 첫 승을 거두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또다시 홈에서 패할 경우 ‘홈경기 징크스’란 말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게 불 보듯 했다. 그래서 1이닝 2이닝 3이닝을 막고 있었는데 6이닝까지 볼넷은 물론 안타 하나 허용하지 않는 상황이 연출되면서 돈 매팅리 감독은 물론 동료 선수들도 그때부터 퍼펙트 게임을 떠올리고 있었다. 나도 물론이었다. 7회 마운드에 올라가는데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웃음)”

    류현진은 7회까지 퍼펙트 행진을 이어가며 압도적 투구를 펼쳤지만, 8회 3안타를 맞고 3실점하면서 패전 위기까지 내몰렸다가 간신히 승리를 챙겼다. 그날 경기 후 류현진은 자신의 통역을 돕는 LA 다저스 국제마케팅 직원 마틴 김에게 소감을 이렇게 전했다. “형, 퍼펙트 게임은 아무한테나 주어지는 선물이 아닌가봐. 처음엔 퍼펙트 행진이 깨진 게 아쉬웠지만, 지금은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해. 메이저리그 2년차에 퍼펙트까지 달성하면 앞으로 야구가 재미없어질 테니까.”

    마틴 김은 그때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그려냈다.

    “현진이가 7이닝을 마치고 들어오는데 더그아웃의 모든 선수가, 심지어 허니컷 투수코치까지 현진이와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어느 누구도 현진이한테 다가가지 않았다. 모두가 조심스러웠던 것이다. 자칫 잘못해서 퍼펙트가 깨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 신경을 썼다. 현진이가 8회 마운드에 올라가서 신시내티 레즈의 첫 타자인 토드 프레이저한테 안타를 맞았을 때는 매팅리 감독이 크게 소리를 질렀다. 모두가 아쉬워했고, 모두의 눈앞에서 사라진 퍼펙트 게임을 안타까워했다. 8회 불펜투수와 교체된 후 클럽하우스로 들어간 현진이는 오히려 해맑게 웃고 있더라.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있는 현진이의 여유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류현진은 이후 자신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퍼펙트 게임 직전까지 갔던 것도 충분히 잘했다고 생각했다. 메이저리그 데뷔 후 난 매 이닝 퍼펙트 게임을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마운드에 오르지만, 매번 1, 2회 때 안타나 포볼을 내줬다. 그런데 신시내티 레즈전 같은 경험은 미국에서 처

    음이었고, 순간적으로 욕심이 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봤을 때, 퍼펙트 게임을 놓친 게 내 야구 인생에 더 도움이 된다고 본다. 나한테도 언젠가는 슬럼프가 닥칠 것이다. 그럴 때 레즈전에서 퍼펙트 게임을 놓친 부분은 슬럼프를 극복하는 데 좋은 자극제가 될 것이다.”

    # 어깨 근육 부상

    4월 28일 LA 다저스타디움에서 벌어진 콜로라도 로키스전에 선발 등판한 류현진은 경기 후 어깨 통증을 호소했고, 급기야 15일짜리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류현진이 메이저리그 데뷔 후 부상자 명단에 오른 건 그때가 처음이다. 부상 부위는 이전 한화 이글스 시절에도 겪은 바 있는 어깨근육염증인 견갑골 통증.

    류현진은 로키스전 3이닝을 마친 이후부터 어깨 통증을 느꼈고, 5이닝 이후 매팅리 감독에게 어깨에 통증이 있음을 알렸다고 한다. 그러나 선발투수는 퀄리티스타트(6이닝 이상 투구, 3자책점 이하)를 기록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6회에도 마운드에 올랐다가 3점 홈런을 얻어맞고 말았다.

    “6이닝 3실점하려다 5이닝 6실점이 된, 정말 안타까운 장면이었다. 어깨에 통증을 느끼며 투구를 하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6회에도 마운드에 오른 게 역효과를 낸 셈이었다. 감독님은 가급적이면 부상자 명단에 올리지 않으려 하셨던 것 같다. 시간을 두고 호전되기만을 기다리신 듯한데 마이애미 원정을 가서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결국엔 나랑 마틴 형 먼저 LA로 돌아가 팀 닥터를 만나는 것으로 결정됐다.”

    류현진은 당시 미국 진출 후 처음으로 다저스 선수단 전세기가 아닌 마이애미에서 국내선을 이용해 LA로 향했다. 선수단 전세기는 선수들을 태운 버스가 활주로까지 진입해 선수들이 바로 비행기에 오를 수 있는 데 반해 일반 국내선은 길게 줄을 서서 검색대를 통과해야 하고, 탑승할 때까지 오랫동안 대기 상태로 공항에서 머물러야 했다.

    “마틴 형이 없었으면 정말 정신 못 차렸을 것이다. 나 혼자서 미국 비행기를 타본 적이 없기 때문에 경황이 없었다. 나중에 검색대 통과 후 탑승을 기다리면서 마틴 형이랑 햄버거 사들고 공항 내에서 우걱우걱 먹고 있는데 순간 웃음이 나오더라. 아무도 우리를 못 알아봤고, 그 속에 있는 난, 그저 덩치 큰 동양 남자일 뿐이었다. 그런데 LA 공항에 내리니까 상황이 달라졌다. 사인 요청 때문에 제대로 걷기조차 힘들었다.(웃음)”

    어깨 부상은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본다면 류현진에게 오히려 ‘보약’으로 작용했다. 여느 시즌보다 일찍 호주까지 가서 선발 경기를 치렀고, 샌프란시스코 메이저리그 개막전을 비롯해, 홈 개막전까지 연달아 개막전에 선발 등판하면서 그의 어깨는 지쳐만 갔다. 그런 가운데 15일짜리 휴식은 그에게 한 템포 쉬어갈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어깨근육염증은 쉬어야 낫는 병이다. 욕심 같아선 더 오랫동안 쉬고 싶었다. 어깨 상태를 더욱 싱싱하게 만들려면 조금 더 쉬어야 했지만, 팀 사정상 15일 이후 복귀해야 했다. 아마 감독님도 뉴욕 메츠전으로 복귀 경기를 할 때, 긴가민가하는 심정이셨을 것이다. 솔직히 나도 그랬다. 마무리 짓고 내려오는데 어깨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복귀전에서 승리한 것보다 어깨가 아프지 않다는 게 더 기분 좋았다.”

    어깨 부상 후 24일 만에 마운드로 돌아온 류현진은 뉴욕 메츠전에서 6이닝 9피안타(1피홈런) 9탈삼진 2실점을 기록하며 시즌 4승을 챙겼다. 이날 류현진은 최고 구속 94마일의 빠른 공과 체인지업, 슬라이더, 커브를 자유롭게 구사하며 메츠 타선을 요리해나갔다. 미국 스포츠 전문 매체 ESPN은 “류현진이 첫 5이닝 동안 맞은 5개의 안타가 점수로 이어지지 못했다”면서 “더욱이 메츠 선수들은 만루 상황에서 유독 약한 면모를 보였다”고 지적했다.

    기자는 뉴욕 메츠의 홈구장인 시티필드에서 그 경기를 지켜봤고, 경기 후 다저스 클럽하우스가 아닌 뉴욕 메츠 클럽하우스를 찾았다. 류현진과 맞붙었던 메츠 선수들의 소감을 듣기 위해서였다. 1회말 첫 안타를 기록한 대니얼 머피는 류현진의 투구에 대해 “정말 치기 어려운 공만 던지는 선수였다. 류현진이 나오는 날에는 다저스가 이길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말로 류현진을 추켜세웠다. 6회 류현진을 상대로 2점짜리 홈런을 뽑아낸 에릭 켐벨은 자신이 홈런을 친 건 류현진의 실투였음을 밝히며 “류현진은 오늘 공의 구질과 구속을 잘 섞어가며 빼어난 마운드 운영을 해가고 있었다. 오늘 딱 한 개의 실투를 한 것 같은데, 그 기회가 나한테 찾아왔을 뿐이다”라고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류현진을 상대로 안타 2개를 뽑아낸 윌머 플로레스도 “커브와 슬라이더를 적절히 섞어가면서 낮은 제구로 경기 운영을 잘했다”고 찬사를 보냈다.

    “순항 끝나고 태풍 몰아쳐도 한국서 하던 대로 던질 것”

    류현진은 LA 다저스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에 대해 “열 살 많은 형 같을 때가 있다. 닮고 싶은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뉴욕 메츠 선수들은 류현진이 메이저리그 데뷔 2년차밖에 안 된 선수라는 데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더욱이 메이저리그 데뷔 첫해 15승12패(평균자책점 4.40), 이듬해 18승3패(평균자책점 2.90)를 기록하며 ‘괴물 투수’로 이름을 널리 알렸던 뉴욕 메츠의 마쓰자카 다이스케는 류현진에 대해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오늘뿐 아니라 지난 시즌에도 류현진의 투구를 직접 본 적이 있다. 그는 제구력이 아주 뛰어난 선수다. 어느 카운트에서 어떤 공을 던져야 하는지 알고 있는 선수다. 뉴욕 양키스의 다나카 마사히로도 루키 시즌부터 돌풍을 일으키고 있지만, 2년차인 류현진은 그에 못지않은 안정된 마운드 운영을 보이며 다저스의 핵심 선발로 자리 잡았다. 앞으로 류현진과 다나카가 서부와 동부에서 흥미로운 활약을 펼칠 것이다.”

    류현진이 다저스 선수단에서 마틴 김 외에 가장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류씨 형제’로 불리는 후안 유리베다. 류현진보다 여덟 살이나 위인 그는 지난 시즌부터 류현진과 가장 가깝게 어울리며 한국 팬들로부터 관심과 인기를 한 몸에 받는다. 한국 기자들이 다저스를 찾을 때마다 유리베는 중요한 취재원이 된다. 류현진과 관련된 어떤 질문에도 싫은 내색 없이 기분 좋은 얼굴로 취재진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 후안 유리베

    LA 다저스가 필라델피아 원정을 갔을 때 일이다. 경기를 마치고 다저스 선수단이 묵는 필라델피아 시내의 한 호텔에서 기자와 만난 류현진은 기자를 자신의 방으로 안내했다. 사전에 약속된 인터뷰를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류현진이 자신의 방에 다다랐을 때 갑자기 맞은편 방문을 세게 두드렸다. 그가 방문을 두드리며 부른 이름은 ‘유리베’였다. 유리베는 당시 허벅지 부상으로 전력에서 제외된 상태였고, 경기가 끝나기 전에 숙소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마침내 류현진은 유리베를 자신의 방으로 불렀고, 사람 좋은 유리베는 그런 동생의 부름이 싫지 않았는지, 바로 류현진 방으로 건너왔다.

    그렇게 기자와 류현진, 유리베가 한 방에 있게 됐다. 그때 류현진은 자신의 휴대전화를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상대방은 한화 이글스의 정근우였다. 정근우와 영상 통화를 시도한 류현진은 경기에 나가기 직전 원정 숙소에서 편히 쉬고 있는 정근우와 유리베를 영상으로 인사를 시켰고, 한화의 외국인 선수 펠릭스 피에를 찾았다. 도미니카공화국 출신인 유리베가 한화의 피에와 친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류현진은 유리베와 피에를 영상 통화로 연결해주려 했던 것이다. 피에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고 대답한 정근우는 유리베와 ‘콩글리시’로 대화를 시도했고, 영어가 ‘짧은’ 유리베도 추신수의 베스트 프렌드라는 류현진의 소개에 정근우와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았다.

    그날 유리베가 류현진의 방에서 보여준 행동은 경기장 더그아웃에서 장난치는 모습과 크게 다를 바 없었지만, 류현진을 바라보는 따뜻한 눈빛과 동생의 장난을 기분 좋게 받아들이는 여유와 배려가 기자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유리베는 류현진에게 “제발 나 좀 그만 괴롭히라”고 웃으며 하소연했고, 장난기가 발동한 류현진은 “유리베가 먼저 건드리지 않으면 나도 이러지 않을 것”이라며 뒤통수 때리기에 잔뜩 신나 했다.

    투수 류현진과 야수 유리베가 클럽하우스에서 친분을 맺기 시작한 것과 관련해 현지 기자들은 호기심과 궁금증을 갖고 있었다. 투수와 타자들은 라커룸 위치도 다르고 훈련 스케줄도 엇갈려 서로 부딪칠 일이 많지 않은데도 두 선수는 상식을 뛰어넘는 친분을 과시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MLB.com의 켄 거닉 기자(지난해 스프링캠프에서 류현진의 흡연을 거론하며 달리기에서 꼴찌로 들어온 데 대해 체력 문제를 제기함)는 한국에서 온 기자에게 서로 언어도 문화도 포지션도 다른 류현진과 유리베가 어떻게 친해졌는지 궁금증을 드러낸 바 있다. 이에 대한 류현진의 대답이다.

    “둘 다 미국에서는 ‘이방인’이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 싶다. 각각 한국과 도미니카공화국 출신이다보니 메이저리그에서 생활하는 데 이방인만이 느끼는 공감대가 있다. 그러나 이방인이라고 해서 모두 유리베 같지는 않다. 푸이그만 해도 유리베와는 다른 느낌을 준다. 그래서인지 유리베가 내 뒤통수를 때릴 때는 괜찮지만, 푸이그가 그럴 때는 확 열이 받는다.(웃음) 유리베는 나한테 친형 같은 존재다. 나의 모든 걸 다 받아주는…. 지난 시즌을 마치고 다저스가 유리베와 재계약하는 걸 미뤘다. 그때 걱정 많이 했다. 만약 유리베가 이 팀을 떠나면 난 누구랑 놀지? 하는 생각이 앞섰다. 다행히 유리베는 재계약을 맺었고, 내년까진 걱정 없이 한 배를 타고 같은 곳을 바라보며 야구를 할 수 있게 됐다.”

    기자가 유리베에게 “만약 류현진이 당신을 한국으로 초대한다면 응할 마음이 있느냐”고 묻자, 유리베는 환한 웃음을 보이며 “현진이가 오라고 하는데 안 갈 이유가 없다”면서 “그렇지 않아도 현진이와 함께 CF 출연 제의도 받았다. 현진이가 맛집을 소개해준다고도 했다.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 꼭 가보고 싶다”라고 대답했다.

    # 투수들의 타율 경쟁

    내셔널리그에 속한 LA 다저스는 투수들도 타석에 선다. 지난해 헬멧을 쓰고 방망이를 든 류현진의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본 팬이 한두 명이 아닐 것이다. 류현진의 지난 시즌 타율은 리그 투수 중 8위인 2할7리. 그러나 올해는 타석에서 재미를 보지 못했다. 6월 9일 현재 23타수 3안타로 1할3푼을 기록 중이다.

    “난 타석에 서는 게 재밌다. 한국에 있을 때도 타격 훈련하는 선수들을 보면서 ‘아, 나도 한번 타격 훈련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그 소원을 미국에서 풀게 됐다. 지난 시즌에 너무 좋은 타율을 기록해서인지, 올 시즌 저조한 성적에 팬들이 실망을 금치 못하는 것 같다.(웃음) 마운드에서는 ‘2년차 징크스’가 없는데, 타석에선 그 징크스를 심하게 겪는 중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순항 끝나고 태풍 몰아쳐도 한국서 하던 대로 던질 것”
    류현진은 자신과 클레이튼 커쇼, 잭 그레인키, 댄 해런, 조시 베켓 등 선발진 다섯 명이 타격 점수를 매기면서 내기를 한다는 얘기도 털어놓았다.

    “선발투수들끼리 안타, 번트, 볼넷,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등을 구분해 점수를 매긴다. 번트를 실패하거나 삼구 삼진을 당하면 마이너스 점수가 붙는다. 반면에 공을 7개 이상 보면 점수가 플러스되기도 한다. 이렇게 점수를 매겨 합계를 낸 후 제일 높게 나온 선수에게 100달러씩 갹출해 400달러를 전달한다. 지난해 난 딱 한 번 그 돈을 받았다. 제일 많이 받은 사람은 그레인키다. 난 올해 두 번 정도 받는 게 목표다. 내년에는 세 번. 선발투수 5인의 사적인 게임인데, 은근히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한다.(웃음)”

    류현진은 팀 내에서 가장 닮고 싶은 선수로 자신보다 한 살 아래인 클레이튼 커쇼를 꼽았다. 지난 스프링캠프 때도 류현진은 커쇼와 한 조가 돼 훈련하며 틈틈이 대화를 나누는 등 첫 시즌 때보다 한층 더 가까운 듯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유리베의 뒤통수치기 장난과는 또 다른 느낌의 친분을 커쇼한테 보인 것이다.

    “내가 영어가 짧은데도 커쇼는 나를 기다려줄 줄 안다. 어떤 얘기를 해도 진지하게 받아준다. 가끔은 커쇼가 나보다 한 열 살은 많은 형 같을 때도 있다. 나이답지 않게 점잖고 뛰어난 실력과 인성을 갖춘 선수라 닮고 싶은 부분이 많다.”

    류현진은 시즌 전 시범경기에서 커쇼가 부진을 거듭하자, 커쇼에 대한 주위의 우려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로 커쇼를 두둔했다. “커쇼는 커쇼다. 정규 시즌 들어가면 에이스 본능을 제대로 보여줄 것이다.” 실제로 커쇼는 6월 9일 현재 시즌 5승째를 거두며 다저스의 마운드를 강건하게 지키고 있다.

    # ‘강심장’ 류현진

    MBC스포츠에서 류현진의 메이저리그 경기를 전담하는 허구연 해설위원은 “류현진처럼 자신감 있게 피칭하는 선수가 흔치 않다. 메이저리그 2년차가 베테랑 선수처럼 영리하게 경기를 운용한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넉넉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마운드에서만큼은 머리 회전이 뛰어나다는 얘기는 김인식 전 한화 이글스 감독도 강조했던 내용이다. 이에 대한 류현진의 생각이 궁금했다.

    “사람들은 나더러 ‘영리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러나 난 내가 그리 영리한 스타일이 아니라는 걸 잘 안다. 단, 상황에 대한 판단이 빠르고, 민첩하게 대응하려는 부분은 있다. 그런 점이 다른 투수보다 더 뛰어난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좋은 결과로 이어졌을 때는 ‘영리하다’ 할 것이고,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는 ‘생긴 대로 던진다’고 말하는 게 여론이다. 그래서 주위에서 무슨 말을 해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편이다.”

    류현진은 LA 다저스 소속 선수로 활약하지만, 자신의 출신에 대해 잊지 않았다. 무엇보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활약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는다.

    “지난해엔 불펜피칭을 거른다거나 마운드에서 설렁설렁 한다거나 담배를 피운다고 이런저런 말이 많았다. 그러나 올 시즌에는 아직까지 이렇다 할 지적을 받지 않았다. 지난해엔 루키였는데도 한국에서 몸에 밴 생활 습관을 메이저리그라고 해서 바꾸고 싶지 않았다. ‘하던 대로 하고 살겠다’는 생각이었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최고’ 소릴 듣던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도 자존심 상했다. 한국에서 하던 대로, 변함없는 모습을 보이며 성적을 내는 게 중요했고, 지금까진 운 좋게 순항 중이다. 설령 태풍이 불어오고 홍수가 난다고 해도 내가 해오던 생활 패턴은 바꾸지 않을 것이다.”

    투수들이 가장 꺼리는 것은 홈런과 볼넷일 것이다. 류현진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루키 신분으로 메이저리그를 경험하면서 그도 잠시 홈런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마운드에 오를 때마다 홈런을 맞게 될까봐 걱정이 앞선 적도 있단다.

    “투수는 마운드에 서면 누구에게 기댈 수가 없다. 오로지 포수의 사인에 맞게 제구가 되는 공을 던져야 한다. 그러나 실투가 생기고, 그게 홈런으로 이어지면 순간 멍해진다. 얻어맞는 데 대한 두려움이 생긴다. 지난해 몇 차례 그런 경험을 했다. 올해는 가급적 편하게 생각하고 나 자신과의 싸움에 집중하려고 하는 편이다. 내가 스피드로 승부를 거는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에 무엇보다 낮게 제구되는 공으로 상대 선수를 공략한다. 결국은 자신감과의 싸움이다. 그게 있고 없고에 따라 경기 결과가 완전히 달라진다.”

    야구 기자로는 최초로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피터 개몬스. 저명한 메이저리그 칼럼니스트인 그가 올해 3월 애리조나 캠프에서 기자에게 전해준 내용이 떠오른다. 그는 올 시즌 류현진의 활약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류현진은 탁월한 완급 조절 능력을 가진 선수다. 그는 지난 시즌을 통해 팀 내 3선발로 자리를 확고히 했고, 커쇼라는 훌륭한 에이스가 방패 역할을 해주며 앞을 든든히 지켜준 덕에 루키 시즌에 안정적으로 빅리그에 연착륙할 수 있었다. 비록 지난 시즌 사이영상 수상에 빛나는 커쇼의 그림자에 가려진 부분이 있지만 올 시즌 류현진은 팀이 어려울 때 진가를 발휘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입증해 보일 것이다.”

    피터 개몬스의 예상대로 류현진은 커쇼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올 시즌 에이스급 활약을 펼친다. 류현진은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한다. 지금은 성공 운운할 수조차 없는 성적이라는 것. 다저스의 진정한 에이스로 자리매김했을 때, 약간의 만족감을 나타낼지도 모른다. 겉으론 ‘곰’처럼 보이는 류현진. 그의 성공 비결은 속 안의 ‘여우’ 기질이 아니었을까. 물론 그는 여우란 단어를 싫어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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