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보니 국무총리 후보로 임명이 가능한 직군은 정치인과 언론인 두 부류로 좁혀졌다. 여당에서는 김무성 의원과 김문수 경기도지사 등 정치인을 강하게 추천했다. 특히 김 의원을 추천하는 이가 많았다. 박 대통령 처지에서도 2008년 이후 멀어진 김 의원의 총리 임명이 부담스러웠지만 함께 일하지 못할 정도로 신뢰가 깨진 것은 아니었다. 반면 김 지사는 차기 대선주자라 대통령과 각을 세울 수 있는 데다 2012년 대선 경선 때 대통령을 향해 독재자의 딸, 공주라고 맹공격했던 데 대한 앙금이 겹쳐 애초부터 후보로 유력하게 검토하지는 않았다.
청와대와 여당 주류는 7월 전당대회에서 서청원, 김무성 의원이 빅 매치를 벌이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컸다. 세월호 참사의 여파도 있는데 당권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것이 국민 보기에 볼썽사나울 수 있는 데다 서로 감정의 골이 깊어지면 누가 이기든 후유증이 예상됐기 때문. 치열한 경선 과정 속에서 의원 줄 세우기 등 부작용도 나올 수 있고 두 후보 모두 ‘변화와 쇄신’ 이미지는 아니라는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전당대회 출마 의지가 워낙 강해 김 의원을 총리로 이동시키면 전당대회 경쟁도 줄일 수 있는 일석이조라는 생각도 일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게다가 김 의원은 야당 의원들과의 관계도 좋아 치명적인 흠이 없는 한 청문회도 넘어갈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었다.
그러나 김 의원은 청와대가 제안한 검증 동의서에 동의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고는 부산 영도 유세장에서 “나보고 총리를 하란다. 그러나 당 대표를 하겠다”며 제안을 받은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청와대는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했다는 생각에 발끈했고 없던 카드가 됐다. 이후 청와대 내부에서는 최경환 국무총리 카드도 검토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친정체제를 구축해 정면 돌파로 제대로 국정을 쥐고 가자는 의견이었다. 그러나 측근을 총리로 앉히는 것에 대한 부담이 컸다.
안 전 대법관이 낙마한 이후 대통령의 모든 구상은 꼬여버렸다. 박 대통령은 안 전 대법관이 청문회를 통과해 정식 임명되는 6월 초 개각을 마친다는 계획이었다. 신임 국무총리의 정식 제청을 받아 개각을 하면서 새 총리에게 힘을 실어주겠다는 복안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안 전 대법관 낙마 이후 신임 국무총리 임명이 늦어지면서 국정 공백이 길어진다는 우려 때문에 결국 물러나는 정홍원 국무총리의 제청을 받아 개각을 하는 형태가 되어 스타일을 구겼다.
박 대통령은 6·4 지방선거가 끝나자마자 주말인 6월 8일경 총리를 발표할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발표 전날 그동안 압축했던 후보군 모두 검증에서 하자가 발견됐다는 보고서가 올라오면서 청와대는 다시 한 번 바빠졌다. 부랴부랴 새로 추천을 받았는데 언론인들이 중점적으로 검토됐다고 한다. 문창극 신임 국무총리 후보자의 발탁은 그렇게 이뤄졌다.
달라진 인사 스타일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이 춘추관에서 총리 인선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번 국무총리 인선 때 두 사람을 모두 검토했다. 안 전 대법관은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됐다가 낙마했고, 김종인 전 국민행복추진위원장도 주변에서 많이 추천해 검토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개혁 이미지가 강하고 전북 출신의 야권 인사라는 점에서 국민 화합과도 어울린다는 판단이었다.
문제는 동화은행 측으로부터 뇌물을 받아 구속됐던 전력이었다. 청와대 내부에서는 어차피 민주당이 그 사건 이후 김 전 위원장에게 비례대표 공천을 준 적이 있으니 별문제가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래도 안 전 대법관 낙마 이후 높아진 검증 문턱을 넘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더 많아 접은 것으로 전해졌다.
어찌 보면 안대희나 김종인을 찾았다는 건 그만큼 수첩인사 풀이 바닥을 드러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은 이번 인선 과정에서 당을 비롯해 주변의 추천을 많이 받았다. 검토했던 인사 중에는 박준영 전남지사, 조순형 전 의원, 강철규 전 공정거래위원장, 진념 전 감사원장과 같은 야권 인사들도 포함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박 지사나 진 전 감사원장은 2012년 대선 때도 국민대통합 과정에서 검토해 실제로 접촉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지만 그때보다 야권 인사에 대한 검토 폭은 더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