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호

다윗의 혁신 막는 골리앗의 법률

  • 김승열 │법무법인 양헌 대표변호사·KAIST 겸직교수

    입력2014-08-20 10: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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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디지털 시대는 상거래 시장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아날로그 시대를 지배했던 거래 방식이나 질서가 한순간에 무용지물이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진다. ‘티몬’이나 ‘위메프’ 같은 소셜커머스는 대표적 사례다.

    소셜커머스는 쉽게 말하면, 이마트나 홈플러스 같은 대형 할인매장을 온라인에 만든 것이라 할 수 있다. 대규모 할인 구매를 통해 가격을 낮추는 방식의 할인매장의 사업 형태를 인터넷에 적용한 것이다. 공간·인력·설비 등 비용 부담이 적어 그만큼 가격이 낮아지는 측면도 크다. 소셜커머스는 아웃소싱이나 오픈 이노베이션을 적극 활용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세계적으로 논란이 되는 ‘앱을 이용한 차량 호출 서비스’도 이전에는 볼 수 없던 상거래 방식이다. 이 앱을 이용하면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등록 차량이 확인되고, 목적지를 설정하면 요금까지 알려준다. 결제가 끝나면 차량이 도착해 목적지까지 태워준다. 가격도 그때그때 다르다. 차량에 대한 수요가 많으면 컴퓨터 자동시스템에 의해 높은 가격이 형성돼 수요와 공급이 조정된다. 수요가 감소하면 가격이 낮아져 새로운 수요를 만든다.

    이 서비스에 가입하면 거대 택시회사에 소속돼 있지 않은 차량운송사업자도 소비자와 손쉽게 접촉할 수 있다. 거대 택시회사에 소속된 것과 같은 안정적 매출도 보장된다. 수요자와 공급자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맞춤형 택시 서비스인 셈이다. 당연히 오프라인 택시업계나 감독 당국은 반발한다. 현행법상 자가용 영업행위는 위법임에도 이 앱을 통해 자가용이 불법 영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지적한다. 몇몇 나라에서는 관련 소송이 줄을 잇는다.

    이런 반발에 대응해 국내의 한 인터넷 업체는 택시업자만을 회원으로 하는 차량 호출 서비스를 만들기도 했다. 기존 법률을 뛰어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는 것. 간단한 형태의 앱 하나가 오랜 역사를 지닌 택시 시장을 붕괴시키는 것이다.



    경직성이 강한 법률 시장에도 변화의 바람이 분다. 거대 로펌에 대응하는 인터넷 로펌이 대두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변호사들이 인터넷망을 중심으로 유연한 형태의 조직망을 형성해 새로운 법률 시장을 창출하는 모델도 조만간 현실화할전망이다. 프로젝트별로 변호사들이 온라인상에서 협업하는 오픈 이노베이션도 가시화할 분위기다. 많은 전문가는 머지 않은 장래에 법률 시장도 온라인 로펌을 중심으로 재편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다윗의 혁신 막는 골리앗의 법률
    온라인 택시, 온라인 로펌

    기술혁신이 만들어낸 이러한 인터넷 기반의 신규사업은 그동안 여러 차례 기존 법질서와 부딪쳤고 기존 법질서를 흔들었다. 그중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것이 미국의 인터넷 TV업체인 ‘에어리오’가 지상파 방송사들과 벌인 소송이다. 국내 소비자에게는 다소 낯선 기업인 에어리오는 안테나를 통해 수신한 지상파 방송을 녹화해 회원들에게 수수료를 받아 인터넷을 통해 전송해주는 사업을 하는 미국의 방송 회사다. 안테나를 통해 방송을 수신해 사용하다보니 지상파에 별도의 저작권료를 지급하지 않았다. 지상파에 수수료를 내고 프로그램을 받아 전송해온 케이블TV보다 가격경쟁력이 높아 소비자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에어리오가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자 수년 전 미국의 지상파 방송사들은 “에어리오의 사업은 지상파 프로그램의 재전송에 해당되기 때문에 저작권자인 지상파에 저작권료를 지불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대규모 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에서는 에어리오가 승소했다. 그러나 미연방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 판사 9명 중 6명이 “에어리오가 지상파 프로그램을 재전송해 저작권을 침해했다”며 지상파 방송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나머지 판사들은 “에어리오의 사업은 비난의 대상은 될 수 있지만, 현행법상 이를 규제하는 규정은 없기 때문에 이를 위법하다고 판단할 수 없다”고 사실상 판단을 유보했다.

    비록 에어리오의 패소로 끝난 소송이지만, 이 소송은 여러 가지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단 거대 기업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방송 사업이 단순한 컴퓨터 시스템만으로 가능다는 것을 보여준 점이 눈에 띈다. 디지털시대에서는 누구나 창의적인 아이디어만으로 거대한 사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도 에어리오의 성과로 평가받는다. 소년에 불과한 다윗이 무장한 거대 장수 골리앗을 이길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물론 에어리오 같은 새로운 형태의 사업모델이 사회 통념과 법질서를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고민과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비록 소송에서는 졌지만, 많은 전문가는 앞으로 에어리오 같은 형태의 신규 사업모델, 에어리오가 지상파 방송사들과 벌인 형태의 소송은 앞으로 점점 늘어날 것으로 본다. 그리고 언젠가는 오랜 전통을 가진 거대 시장이 에어리오 같은 혁신기업들에 의해 서서히 허물어질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최근 중국 정부가 내놓은 금융정책 혁신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중국은 최근 알리바바 등 온라인 쇼핑몰업체들이 금융사업을 할 수 있도록 관련 법률을 개정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금융업 허가를 내준 셈이다. 우리로선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다. 더 놀라운 건 시장의 반응이다. 알리바바가 내놓은 머니마켓펀드(MMF)상품 ‘위어바오’엔 단기간에 100조 원 가까운 돈이 몰렸다. 인터넷 기업이 갖는 접근성, 축적된 고객데이터가 금융과 접합되면서 만들어낸 결과였다.

    중국 정부가 금융정책을 혁신한 이유는 그림자금융(은행과 비슷한 기능을 하면서도 은행과 같은 엄격한 건전성 규제를 받지 않는 금융기관)을 막고 5대 국유은행의 독점을 견제하면서 민간 은행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다. 그럼 점에서 보면 상당한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받는다. 우려도 적지 않다. 중국에서 MMF는 주로 중국 지방정부 발행 국공채에 투자되는데, 지방정부 재정에 문제가 발생하면 그로 인한 파장이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우려에도 인터넷기업들이 향후 중국 소매 금융시장을 주도할 것이란 전망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중국의 금융 혁신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떨까. 아쉽게도 우리나라의 디지털 관련 법률, 특히 디지털 금융법제화는 상당히 뒤떨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미 여러 나라에서 도입돼 상용화한 인터넷 전문 은행도입은 물론이고, 인터넷업체의 금융업 진출에 대해서도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기존 금융시장의 반발이 논의 자체를 어렵게 한다. 최근에야 인터넷 전문은행의 도입이나 은행과 제휴한 인터넷업체의 소액 송금 및 결제 서비스의 필요성이 제기돼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많은 인터넷 사용자가 인터넷 기업의 금융업무 진입을 요청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늦어도 너무 늦은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디지털 시대에 맞는 지원 법률의 정비는 시대적인 흐름이다. 사회적 인프라의 기초를 마련한다는 점에서도 필요하다. 창조경제 시대를 이끌어갈 새로운 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도 그렇다. 게다가 디지털 시대에 맞는 법제화에는 시간이 꽤 걸릴 수밖에 없다. 개인정보는 어떻게 보호할지, 기존 제도와 법률과는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 새로운 성장동력을 위한 기술혁신을 정부 차원에서 어떻게 지원할지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가 그리 쉽지 않기 때문이다. 빨리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윗의 혁신 막는 골리앗의 법률
    김승열

    1961년 대구 출생

    서울대 법학과 졸업, 미국 노스 웨스턴대 로스쿨 석사.

    대통령소속 국가지식재산위원회 민간위원, 금융위원회 자금세탁방지정책위원, Paul Weiss(미국 뉴욕) 변호사


    역사적으로 볼 때, 법과 제도가 세상을 바꾸지는 못했다. 그러나 제도의 정비가 변화를 독려하고 변화를 혁신으로 이끄는 역할을 해온 건 사실이다. 법과 제도가 미비해 혁신이 좌절된 경험도 우리에겐 많다. 대통령까지 제기하고 나선 ‘불필요한 규제의 제거’도 따지고 보면 세상의 변화를 읽지 못한 구시대적인 규제로 인한 발전의 정체라 정리할 수 있다. 미래의 국가경쟁력은 변화를 앞서가는 제도의 마련이 전제될 때 가능할 수 있다고 믿는다. 구시대적인 골리앗을 제거해야 스마트 시대에 맞는 다윗이 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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