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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곳에 가고 싶다

외로운 섬, 울창한 솔숲 바람결에 실려온 피냄새

‘관상’ 심적(心的) 촬영지, 강원도 영월

  • 글 · 오동진 | 영화평론가 사진 · 김성룡 | 포토그래퍼

외로운 섬, 울창한 솔숲 바람결에 실려온 피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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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관상’이 촬영된 곳은 영월이 아니다. 그러나 단종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수양대군에게 쫓겨나 열일곱에 사약을 받고 죽임을 당한 임금. 결국 ‘관상’은 그 얘기를 하려던 것 아니었는가.
외로운 섬, 울창한 솔숲 바람결에 실려온 피냄새
생각보다 그리 크지 않은 김종서는 호랑이상(相)답게 근엄하고 꼿꼿한 자세로 밤길을 나선다. 그는 기분이 나쁘지 않다. 하루가 멀다 하고 근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종사(宗社)의 일이었다. 문종이 서거하신 후 세자가 왕위에 올랐지만 아직 너무 어리다. 거기다 권력을 찬탈하려(한다고 생각하)는 수양대군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그러나 내일이면 이런저런 걱정도 끝이다. 내일 수양대군이 명나라 사신을 맞으러 갈 때 호위가 약해진 틈을 노려 그를 없앨 것이다. 왕가의 자식이어도 어쩔 수 없다. 종묘사직의 안위를 위해서는.

호랑이 사냥

그러나 아뿔싸.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대문 앞에는 김종서를 노린 척살자들이 진을 치고 있다. 김종서에겐 마땅히 들고 싸울 만한 무기도 없다. 오늘은 위병들도 뿌리친 상태. 그의 목숨은 이제 경각에 걸렸다.

쿠데타 순간만큼 드라마틱하고 영화적인 장면도 없다. 선의에서 저지른 것이든, 악의의 발로이든(대개는 이 경우지만) 역모(逆謀)에는 늘 핏빛 아드레날린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영화 ‘관상’에서 수양대군(이정재)이 김종서 장군(백윤식)을 암살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피와 살이 튀기는 처절함 그 자체였다. 우리 영화가 이 정도로 디테일이 좋구나 하는 생각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정말 잘 찍었다. 그럴듯하다. 저랬을 것 같다.

김종서의 가슴팍에 정확하게 꽂히는 장검 한 자루. 그러나 김종서는 요지부동이다. 오히려 칼날을 부여잡고 몸을 앞으로 끌어당기며 상대에게 한 방을 날린다. 또 하나의 장검이 그의 가슴을 겨냥하며 날카롭게 파고들지만 역전의 노장군은 여전히 눈썹 하나 움직이지 않는다.



그는 죽을 것이다. 그러나 장군답게 죽을 것이다. 죽어가는 사람이나 죽이는 사람이나 그걸 너무나 잘 안다. 오히려 이럴 때 죽이는 사람은 대개, 그런 그를 위해, 그런 사내 중의 사내가 고통 없이 죽어가도록 예를 갖추기 위해 더 잔인해지는 법이다. 이어서 김종서의 머리를 강타하는 철퇴. 피와 함께 그의 뇌수가 튄다. 김종서의 피와 살이 얼굴까지 튄 상태에서 수양대군은 일갈한다. 그의 입술이 흥분감과 묘한 공포감 그 엇비슷한 무엇으로 살짝 떨린다.

“자, 이제 호랑이 사냥이 끝났다!”

외로운 섬, 울창한 솔숲 바람결에 실려온 피냄새

영화 ‘관상’은 수양대군과 김종서의 정쟁을 그렸다.

세조는 단종이 그렇게 싫었을까

강원도 영월에 가기로 한 것은 순전히 이 영화 때문이었다. 이번 취재길은 지난번 길들과 조금 다르다. ‘관상’이 촬영된 곳은 영월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글의 취지에 맞추려면 강원도가 아니라 경기도 용문으로 향해야 했다. 특히 ‘관상’의 첫 장면을 찍은 경기도 유명산 자락 설매재 고갯길의 억새밭, 그곳으로. 영화의 내용으로 보면 영월은 ‘관상’의 이후를 얘기하는 곳이어야 한다. ‘관상2’가 만들어진다면 분명 촬영지는 여기가 될 터이다.

‘관상’을 생각하면 단종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수양대군에게 쫓겨나 열일곱 살에 사약을 받고 죽임을 당한 임금. 결국 ‘관상’은 그 얘기를 하려던 게 아닌가. ‘관상’이 던진 질문에 대해 답을 구하려면 유명산보다 영월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영월이야말로 ‘관상’의 ‘심적(心的) 촬영지’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차의 앞머리를 급커브해서 강원도로 돌린 이유다. 이럇!

‘관상’은 수양대군과 김종서를 양 축의 대립각으로 세우고 그 둘 사이에서 살 길을 찾는 김내경이라는 관상쟁이의 얘기로 펼쳐지지만, 이 역사의 수레바퀴의 또 다른 주인공은 분명 단종이었다. 세조는 조카가 그렇게도 싫었을까. 한양 땅에서 여기 강원도 영월 땅이 어디라고, 이 먼 곳까지 유배를 보냈을까. 지금이야 차로 달리면 고작 2시간 반 안쪽. 하지만 그때는 천리 길에 가까웠을 것이다. 오죽 산이 많은 나라인가. 고개 하나를 간신히 넘으면 또 한 고개가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를 몇 날 며칠을 해서야 겨우 당도했을 것이다.

외로운 섬, 울창한 솔숲 바람결에 실려온 피냄새

‘관상’은 600년 전 이야기지만 오늘의 현실과 동떨어져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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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오동진 | 영화평론가 사진 · 김성룡 |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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