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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에 떠밀려 ‘탈탈 털기’ ‘표적 사정’ 욕먹고 용두사미?

오락가락 포스코 비자금 수사

  • 최우열 |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dnsp@donga.com

총리에 떠밀려 ‘탈탈 털기’ ‘표적 사정’ 욕먹고 용두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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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검찰에 ‘시범 케이스’로 포스코건설 던져줘
  • ● 한 달 끈 ‘국가적 수사’에 고작 상무·전무 구속
  • ● 지루한 압수수색…업계에 ‘공포와 피로’ 확산
  • ● 부패 척결인가, ‘손봐주기’ 정치쇼인가
총리에 떠밀려 ‘탈탈 털기’ ‘표적 사정’ 욕먹고 용두사미?

3월 13일 검찰이 포스코건설을 압수수색해 내부 서류를 상자에 담아 나왔다.

포스코는 사람들 마음속에 ‘국민기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 포항제철은 ‘조국 근대화’의 상징이었다. 포항제철이 이끈 철강산업은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초석이 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3월 독일에서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여기 오셔서 아우토반이라든가 제철소를 보면서 고속도로와 제철소를 구상했다”고 말했다. 1965년 한일협정 타결 후 일본은 한국에 대일청구권자금 5억 달러를 제공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 중 24%인 1억2000만 달러를 포항제철에 투입했다. 36년 일제강점기 희생의 대가로 받은 돈이 이 회사의 주춧돌이 된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1970년 기공식의 발파 스위치를 누를 때부터 1979년까지 포항제철을 13번 찾았다.

“뭔가 산만하게 진행”

요즘 검찰은 포스코 수사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완구 총리가 3월 12일 선언한 ‘부정부패 척결’의 시범 케이스 격이다. 과거에도 포스코에 대한 검찰 수사는 간간이 있었다. 그러나 포스코 본사부터 포스코건설, 그룹 전체 인수·합병까지 전반적으로 ‘탈탈’ 터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포스코에 대한 국민 정서를 감안할 때 이 회사가 대대적 수사를 받는 것이 정치적으로 긍정적 효과를 거두는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와 검찰은 사정 정국을 여는 첫 대상으로 포스코를 택했다.

3월 13일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2부(부장 조상준)가 인천 송도 포스코건설 본사를 압수수색한 것이 시발점이었다. 수사는 그 후 한 달 넘도록 계속됐다. 국내외 미디어에도 대서특필돼 그야말로 ‘국가적 수사’가 돼버렸다.



그런데 지금까지 결과는? 고작 상무·전무급 임원, 납품업체 사장을 구속한 정도다. ‘산 중턱’도 넘지 못한 느낌이다. 그사이 검찰은 납품업체들을 띄엄띄엄 지루하게 압수수색했다. 철강업계 내 공포와 피로의 확산을 방치하는 식이었다. 포스코 수사를 지켜보는 검사들조차 “권력비리 수사나 대기업 대상 특별수사는 짧고 신속하게 하는 게 원칙인데 포스코 수사는 뭔가 산만하게 진행된다”고 평가할 정도다.

수사 진행과정을 보면 이런 평가가 나오는 이유를 알 수 있다. 2월 26일 국회에서 새누리당 이종진 의원이 포스코건설의 베트남 비자금 의혹을 묻자 이 총리는 “사실이라면 우리 사회의 심각한 부패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비리·횡령 등 위법이나 탈법이 있을 경우 법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하겠다. 관계 기관에 즉각 사실을 조사하도록 지시를 내렸다”고 말했다.

마치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이 총리는 ‘심각’ ‘부패’ ‘비리’ ‘위법’ ‘엄정’ ‘즉각’ 같은 강한 단어들로 포스코건설에 융단폭격을 했다. 질문자인 이종진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지역구(대구 달성)를 물려받은 친박계 의원이다.

그러나 이후에도 한동안 검찰은 ‘빠릿빠릿’ 움직이지 않았다. JTBC가 3월 3일 ‘포스코 비자금 의혹…검찰 계좌추적’이라고 보도했고, ‘세계일보’가 3월 4일 ‘포스코건설 사건 특수부 배당해 수사 착수’라고 보도했지만 검찰은 되레 “포스코건설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바 없다”고 부인했다.

얼마 뒤인 3월 12일 이 총리는 ‘부정부패 척결’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주된 테마로 자원외교, 방위사업 비리와 함께 ‘대기업 비자금 의혹’이라고 다시 포스코건설 비자금 의혹을 족집게처럼 집어서 언급했다.

이렇게 총리가 ‘포스코건설을 수사해야 한다’고 말하고, 언론이 보도하고, 검찰이 부인하고, 총리가 다시 ‘수사해야 한다’고 말하는 과정이 반복됐다. 총리 담화 다음 날 검찰은 포스코건설을 압수수색했다. 사실상 총리의 하명에 떠밀려 수사한 모양새가 돼버렸다.

이런 과정 때문인지 검찰 관계자는 포스코건설의 베트남 비자금 사건을 수사하면서도 “이 사건 말고도 포스코의 국내 사업 관련 비리를 내사한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총리 때문에 베트남 비자금 사건을 수사하지만 우리가 하고 싶은 수사는 정작 따로 있다’는 이야기였다.

“총리가 난데없이 해먹었다”

심지어 검찰 내부에선 “검찰은 나름대로 내사를 착착 진행해왔는데, 총리가 난데없이 끼어들면서 검찰 수사를 ‘해먹어’ 버렸다”는 말도 돈다. 한 관계자는 “검찰 업무가 정치권에 철저히 이용된 것”이라고까지 말한다. 이 무렵 20%대를 찍던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다시 40%를 향해 상승곡선을 그렸다.

포스코건설 압수수색 나흘째인 3월 17일 검찰은 협력사인 부산의 H건설을 압수수색했다. 포스코가 추진한 국내외 사업의 오랜 동반자인 이 회사는 해외 비자금 조성 창구로 의심받았다. 나아가 포스코의 국내 사업 전반에 대한 수사도 시작됐다.

검찰은 특히 포스코 주변에 폭넓은 인맥을 가진 이 회사 이모(57) 회장을 핵심 수사 대상에 올렸다. 서울대 법대 출신 이 회장이 비자금 조성 경위와 용처를 소상히 알 뿐 아니라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 의원, 이 전 대통령의 측근인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2차관과의 다리 구실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그러나 이 회장 측은 “이 전 의원과 박 전 차관 등은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이고 정 전 회장은 먼발치에서 본 적이 있을 뿐”이라며 의혹을 부인했다.

이 무렵 검찰 주변에서 풍미한 ‘관전 포인트’는 ‘과연 정동화 전 포스코건설 부회장,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 박영준 전 차관, 이상득 전 의원을 잇는 연결고리가 있을까. 있다면 검찰이 그걸 캐낼 수 있을까’였다.

그러나 베트남 비자금 수사 한 달이 넘도록 검찰 수사는 정동화 전 부회장에게조차 이르지 못했다. 정 전 부회장과 정 전 회장과의 연결고리 같은 것은 당연히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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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열 |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dns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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