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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만날 수 없다면 편지 한 장만이라도…”

네덜란드 입양인 소냐의 10년 사모곡

  • 박은경 | 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나를 만날 수 없다면 편지 한 장만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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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만날 수 없다면 편지 한 장만이라도…”

조산소에서 작성한 출생증명서.

서류를 받아든 소냐 씨는 자신이 태어난 조산소를 맨 먼저 찾았다. 당장 친부모를 찾아 나서고 싶었지만 기록 어디에도 출산 당시 친부모의 상세한 주소가 없었다. 언덕배기의 조산소는 이미 오래전 문을 닫았고, 단독주택의 일반 가정집이 돼 있었다. 마포구 신공덕동 일대는 재개발을 거쳐 아파트 숲으로 변했지만 조산소 부근은 낡은 주택가 그대로였다.

“집 안까지 들어가 볼 순 없었지만 그래도 동네에서 출산을 도와준 분(조산사)의 여동생을 만났다. 그분께 조산소 기록이 남아 있는지 물어봤지만 모른다고 했다. 나이 든 동네 분들 중에는 조산소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았다. 할머니 한 분이 ‘너희 엄마를 꼭 찾으면 좋겠다’고 꽉 껴안아주셨다. 낯선 사람을 스스럼없이 안아주는 동양적 정서가 좀 생경했지만 좋은 느낌이었다. 안쓰러워하는 할머니의 마음이 전해졌으니까.”

소냐 씨가 14개월 전 딸을 출산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은 자신을 나아준 ‘엄마’였다고 한다.

“출산할 때 ‘엄마가 옆에 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마음에 몹시 아쉬웠다. 양부모님이 옆에 계셨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양아버지는 네덜란드에 계시는데, 양어머니는 내가 19세 때 돌아가셨다.”

소냐 씨는 양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스스로 돈을 벌어 네덜란드에서 대학(학사·석사 통합과정)을 마쳤다. 졸업 후 한국에 오기 직전까지는 주(駐)대만 네덜란드 대사관에서 일했다. 그가 안정적인 직장까지 버리고 다시 이 땅을 찾게 한 절실함은 어떤 것이었을까.



‘내가 받아들여지는 느낌’

“나를 만날 수 없다면 편지 한 장만이라도…”

한국사회봉사회가 입양 보낼 당시 찍은 소냐 씨 사진 (생후 3개월).

“입양인이든 아니든 누구라도 자기 부모가 누구인지, 내가 어디서 왔는지 자신의 뿌리를 알고 싶어 하는 건 당연한 감정 아닌가. 다만 일반인은 자연스럽게 탄생의 뿌리, 가족의 역사를 알게 되지만 입양인은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더 간절히 친부모를 만나고 싶고, 그들과 자신에 대해 알고 싶어 한다.” 소냐 씨가 석·박사 논문 주제를 모두 ‘한국 입양인’으로 잡은 까닭을 짐작게 한다. 그의 남동생도 입양인이다. 자식을 낳을 수 없었던 양부모가 소냐 씨에 이어 4살 터울의 남동생도 입양했다. 너무 어릴 때라 기억이 뚜렷하진 않지만 소냐 씨는 남동생을 처음 본 순간 ‘얘와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 곳에서 왔구나’라고 느꼈다. 당시 가족이 살던 지역에는 한국 입양인이 없었고 양부모를 비롯한 주변 사람도 모두 네덜란드인이었다.

네덜란드에서 사는 남동생은 소냐 씨와 달리 친부모 찾기에 관심이 없다. 입양인 대다수가 남동생과 마찬가지다. 소냐 씨는 그 이유를 “친부모를 찾아야 하는 고통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입양기관에서 해준 얘기인데, 어렵게 친부모와 연락이 닿아도 상당수가 입양인을 만나려 하지 않고, 비밀이 보장되는 공간에서 만나게 해주겠다고 설득해도 거절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배우자와 사별했거나 혼자 사는 친부모는 입양인을 만나려 하지만, 가정을 이루고 사는 친부모는 대부분 이제 와서 가정의 평화가 깨질까봐 선뜻 그러지 못한다. 그런 얘기를 듣는 순간 입양인은 좌절하고 친부모로부터 두 번 버림받는 느낌을 갖는다. 태어나서 한 번, 성인이 돼서 또 한 번. 그런 게 두려워서 친부모를 찾지 않는 입양인도 많다.”

철도회사에 근무하는 양아버지와 주부인 양어머니 밑에서 평범하게 자란 소냐 씨는 “어릴 때 행복했던 기억이 별로 없다”고 했다. 평소 과묵하지만 화가 나면 다혈질이 되는 양아버지와 점잖고 내성적인 양어머니의 성격 차이로 인해 부부 사이가 원만하지 않았기 때문. 책에 파묻혀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낸 소냐 씨가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하는 것이 있다.

“학교 친구나 동네 아이들이 나를 ‘칭크(Chink·중국인을 비하하는 호칭)’, ‘차이니즈 어글리(Chinese Ugly·못생긴 중국인)’라며 놀렸다. 어른들 중에는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여기 사람이 아니구나’ 하고 느꼈다. 그래서 해외 입양인들은 한국에 오고 싶어 한다. 외모가 비슷하고 같은 피가 흐르니 내가 받아들여지는 느낌이랄까.”

입양정보 공개청구

신언항 중앙입양원 원장에 따르면, 한국인은 해외 입양인을 이방인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처음에는 ‘참 안됐다’고 생각하다가 막상 접촉해보면 의사소통이 쉽지 않고 사고방식마저 달라 자신과 다른 이방인으로 여기게 된다는 것. 신 원장은 “우리 사회에서 탈북자나 다문화가정을 바라보는 시각도 입양인을 보는 그것과 비슷하다. 우리 사회는 그들을 ‘매김’하려는 경향이 있다. 편견도 존재한다”며 “그들을 ‘우리 사회가 보듬어야 할 사람’으로 여기는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해외 입양인들이 모국에 와서 자기 뿌리를 찾고 싶어 한다면 우리에겐 그들을 도와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2011년 개정된 입양특례법에 따라 설치·운영되는 중앙입양원에 따르면, 최근 한국을 찾는 해외 입양인 수가 크게 늘었다. 현재 700여 명이 국내에 들어와 장·단기 거주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중앙입양원은 그들을 위해 모국방문 지원, 모국 문화체험 지원, 한국어 교육 지원, 적십자병원을 통한 의료비 지원 사업 등의 ‘사후관리 사업’을 펼친다. 특히 중점을 두고 있는 사업은 국내 4대 입양기관(홀트아동복지회·동방사회복지회·대한사회복지회·한국사회봉사회)이 보관하고 있는 국내외 입양인 자료를 한데 모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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