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호

섹스리스 극복 못하면 차라리 상대를 놓아주라

안 하는 남편, 거부하는 아내

  • 최명기 | 청담하버드심리센터 연구소장 artppper@hanmail.net

    입력2015-04-23 11: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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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욕은 잘 통제되지 않는다. 거부당한 욕망은 어디론가 방출돼야 한다.
    • 따라서 부부는 상대방의 성욕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 책임져야 한다.
    • 도저히 극복할 수 없다면 차라리 상대를 자유롭게 놓아주는 게 옳을지도 모른다
    섹스리스 극복 못하면 차라리  상대를  놓아주라

    일러스트• 김영민

    섹스를 너무 안 해서 언제 섹스를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부부가 늘고 있다. 바빠서 시간이 없다고도 하고, 일이 힘들고 생활에 지치다보니 피곤해서 성관계를 갖지 못한다는 부부도 있다. 어떤 부부는 아무리 바빠도 섹스할 때만은 귀신같이 시간을 맞춘다. 과거에는 이런 부부를 두고 ‘속궁합’이 잘 맞는다고 했다.

    섹스를 안 한다는 커플의 상당수는 이런저런 핑계로 섹스를 기피한다. 관계를 갖기 싫다고 하면 상대방이 상처받을 것 같아 이런저런 핑계를 댄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남편은 아내와, 아내는 남편과 섹스를 안 하려는 걸까.

    먼저 아내와의 섹스를 기피하는 남자들의 심리에 대해서 살펴보자. 너무 아름다운 여인과 결혼했는데 신혼이 지나자마자 애정이 식어버리는 남자들이 있다. 예쁘고 매력적인 아내가 있지만 잠자리에선 흥분되지 않는다. 갖은 핑계로 아내와의 잠자리를 피하고는 아내보다 외모나 성격이 못한 여자들과 어울려 다닌다. 남자들은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고전적 정신분석 이론에서는 매력적인 아내에게 성욕을 못 느끼는 남자의 마음을 소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통해 설명했다. 남자아이는 어머니를 소유하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그런데 아버지의 처벌이 두려워 어머니를 소유하기를 포기한다. 대신 다른 여성들을 소유하고자 노력하면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해소된다고 가정한다.

    어머니를 범하는 두려움



    그런데 모성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강한 경우 어머니와 일체화하고자 하는 욕망을 포기하지 못한다. 어머니가 자식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거나 간섭하는 경우다. 어려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거나 이혼을 해 어머니가 자식을 독점하게 되면 그 자식은 어머니와 심리적 분리가 되지 못할 수 있다. 아버지가 지나치게 나약한 경우 역시 그러하다.

    아버지가 구타, 체벌, 욕설 등으로 모자(母子)를 학대할 경우에도 모자의 심리적 유대감이 극단적으로 강해지게 된다. 이렇게 어머니와 일체화하고자 하는 욕망을 포기하지 못하면 고전적 정신분석에서는 아내와 성관계를 가질 때마다 어머니를 범하는 듯한 두려움이 발생해 성관계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어떤 남자는 아내가 임신하고 자녀를 출산하기 전까지는 아내를 욕망의 대상으로 열망한다. 그런데 아내가 자녀를 낳고 어머니가 되면 그때부터 아내를 무의식적으로 모성과 동일시하면서 근친상간에 대한 무의식적 두려움을 모면하기 위해 아내를 피한다고 고전적 정신분석에서는 설명한다.

    굳이 이런 정신분석 이론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많은 남성이 아내에게 어머니의 역할을 기대하는 것은 사실이다. 마치 엄마처럼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주기를 바라는 경우다. 아내가 마치 엄마가 자식을 사랑하듯이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으면,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아내를 멀리하는 남자도 의외로 많다.

    여자가 바람을 피웠을지 모른다는 무의식적 의심 때문에 아내를 멀리하는 남성도 종종 있다. 이 경우에도 강한 의심은 일정 부분 타고난다. 자신감이 많이 저하되면 아내를 더욱 의심하게 된다. 아버지 혹은 어머니가 바람을 피우고 그 과정에서 버림받은 아픔이 있는 남성은 여성을 의심하기 쉽다. 자신의 과거가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이다. 아내가 언제든 다른 남자와 관계를 가질지도 모를 부정한 대상이라는 무의식 때문에 멀리하게 된다.

    최근에는 진화심리학적 측면에서 이런 현상을 설명하는 학자도 많다. 남자들은 어떻게든 많은 여성에게 임신을 시켜서 자신의 유전자를 많이 퍼뜨리고자 하는 본능이 있다고 가정한다. 그런데 일부일처제가 문명의 주류가 되면서 유전자를 퍼뜨리고자 하는 본능을 절제할 수밖에 없게 됐다. 문제는 남자들 중 일부가 여전히 이런 본능에 강렬하게 사로잡혀 있다는 점이다.

    횟수와 열정

    그들은 성관계를 갖기 전까지는 매우 열정적이다. 하지만 일단 성관계를 갖고 나면 상대에게 무관심해진다. 여성을 평생 책임지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 그런 남성은 신혼 초 얼마간의 열정적인 기간이 지나면 아내에게서 여성으로서의 매력을 더는 느끼지 못한다. 어떤 남성은 자녀를 갖기 위해 아내와 성관계를 할 때는 열정적이지만, 더 이상 자녀를 갖지 않기로 하면 그때부터 열정이 사라지기도 한다. 정관수술을 하고 나서 성적 기능이 떨어졌다고 느끼는 이들도 있다.

    유명 연예인과 결혼하는 남성들 중에는 아내의 명예를 소유하려는 심리적 욕망을 지닌 경우가 있다. 물론 여배우나 탤런트이기에 아내는 아름답다. 하지만 아무리 예쁜 여자라도 매일 함께 살다보면 미모에 익숙해진다. 그런데 그 남성이 결혼한 이유는 유명해지고 싶은 무의식적 욕망에 있었다. 이런 경우 일단 결혼하면 욕망은 충족되지만 열정이 급속도로 식어버린다.

    돈이 부족한 남자의 눈에는 부유한 여성이 아름다워 보인다. 그런데 결혼하고 자신이 아내의 부를 소유하게 되거나, 결혼했음에도 아내의 돈에 손댈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되면 아내가 못생겨 보인다. 때로는 자신이 못생겼다는 열등감 때문에 아름다운 여성과 결혼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도 신혼이 지나면서 매력이 사라진다. 명문대에 못 간 남성이 대학교수 여성과 결혼하는 경우도 사정이 비슷하다.

    원인이야 어찌 됐건 남편이 섹스를 거부하면 아내는 남편이 자신을 거부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곤 한다. 자신에게 매력이 없어져서 남편이 섹스를 하지 않는다고 여기고는 섹스 횟수로 남편의 사랑 정도를 측정한다. 자주 하면 할수록 자신을 더 많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경우 오르가슴을 못 느껴도 남편에게 계속 성관계를 요구하게 된다. 심지어 ‘1주일에 몇 번’이라고 횟수를 정하는 아내도 있다. 그렇게 의무적으로 성관계를 가져야 하면 남편은 마지못해 섹스를 한다. 그런 공허한 섹스는 아내의 심리적 허전함을 더할 뿐이다.

    이번에는 아내가 남편과의 성관계, 섹스 요구를 거부하는 심리를 살펴보자. 남자의 성욕과 여자의 성욕은 다르다. 남자는 여자가 자신과의 성관계에 욕구가 없거나 싫어한다는 것을 알더라도 성적 매력을 느끼면 성관계를 갖는다. 하지만 여자는 성관계를 가질 때 정서적인 부분이 더 중요하다. 여자는 자신을 싫어하고 미워하는 이와 성관계를 갖고 싶지 않다.

    스트레스성 섹스&섹스리스

    남성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섹스를 통해 해소하려는 경향이 있다. 수억 원의 돈을 횡령하거나 절도한 이들이 그 돈을 유흥비로 흥청망청 다 써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유흥비’라고 표현하지만, 발각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나 체포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섹스로 해소하는 데 돈을 써버리는 것이다.

    반면 여성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섹스에 대한 생각이 사라진다. 여성에게 섹스란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는 것으로 이어지는 단계 중 하나다. 지금은 문명이 발달해서 임신과 출산이 비교적 안전하다.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임신과 출산은 위험한 일이었다. 스트레스 상황은 그러한 위험을 무의식적으로 상기시킨다.

    따라서 시댁, 금전, 직장 문제 등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여성은 섹스에 대한 관심이 저하된다. 더군다나 스트레스를 주는 원인이 남편에게 있다면 여성은 그와의 섹스를 거부하게 마련이다. 남편은 둘 사이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섹스를 통해서 확인하고자 하지만, 여성은 둘 사이에 문제가 있는 한 섹스를 거부한다.

    여성은 우울증 때문에 섹스를 거부하기도 한다. 우울증상 중 하나가 성욕 저하다. 아내가 마음이 우울하고, 사람들 만나는 것도 싫어하고, 잠도 못 자고, 식욕도 떨어지고, 몸무게도 줄어든다면 우울증에 걸린 것이다. 일단은 우울증을 치료해야 성욕도 생긴다. 아내에게 섹스를 계속 요구하기보다는 우울증 치료를 받도록 하는 게 먼저다.

    섹스는 퇴행이다!

    어떤 남자는 아내가 성관계를 거부하면 자신을 무시하는 것으로 여긴다. 자신을 남자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받아들여 자존심이 상한다. 아내가 거부하더라도 관계를 가지려고 들이댄다. 아내는 그런 관계가 불쾌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억지로 관계를 가지려 한다. 부인을 구타해 정신을 못 차리게 하고 섹스를 하는 남자도 있다. 고급스럽게 말하면 ‘새디즘’이고 법적으로는 성폭력이다. 부인에게 성관계는 고통이 되고 부인은 따라서 더더욱 거부한다.

    대부분의 남녀에게 섹스는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아서 잘하는 몇 안 되는 일 중 하나다. 과거엔 결혼 전에 다른 이와 관계를 가졌다는 것이 알려지면 결혼 생활이 파국으로 치닫고는 했다. 하지만 지금은 사랑하는 이가 생겼을 때 내 온몸을 던져서 사랑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세상이다. 이렇게 좋은 세상이 왔건만 섹스가 너무 힘든 사람들이 있다. 도대체 왜 그런 걸까.

    부부가 성관계를 가지려면 서로의 벌거벗은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 중요한 부위를 남에게 드러내는 것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서로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필요하다. 그런데 배우자 중 한쪽 혹은 양쪽의 마음속에 불안이 내재한다면 신뢰와 사랑으로도 극복되지 않는다. 자존감이 매우 낮다면 누군가에게 자신의 몸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불안을 일으킨다. 상대방이 자신의 몸을 흉하다고 생각할 것이라며 걱정한다.

    상대방이 만족하지 못할 거라는 걱정도 불안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다보니 섹스가 너무 진지하고 심각하다. 불안하기 때문에 충분하게 흥분되지 못한다. 순간 흥분하더라도 금세 긴장하게 된다. 불안한 나머지 빨리 끝낼 생각을 한다. 성관계를 가질 때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의무처럼 여기게 된다. 아내는 성관계를 하면서 몸이 굳고, 남편은 그녀가 아파하지 않나 계속 신경이 쓰인다. 그러다보니 남편도 긴장하게 되고 나중에는 성관계가 고역, 심지어는 고통이 된다. 성관계 횟수가 점점 줄어들면서 섹스리스 부부가 된다.

    지나치게 윤리적인 경우도 문제다. 성 장애가 발생한 부부에게는 억지로 성관계를 가지려 하기보다는 일단 서로의 몸을 갖고 장난을 치도록 권한다. 그리고 나중에는 짙은 애무를 하도록 조언한다. 그런데 직접적인 성행위를 제외한 나머지에 대해 한쪽이 거부감을 갖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중도에 치료가 멈춰버린다. 그런 행위는 지저분한 것 같다고 거부한다. 상대방이 그런 행위를 하자고 하면 ‘변태’로 몰아간다.

    그런데 섹스란 어떤 점에서 충분히 ‘퇴행’돼야 가능하다. 어린아이들이 아무 생각 없이 놀듯이 그 순간에는 체면, 죄책감, 수치심은 날려버리고 섹스에 몰입할 수 있어야 한다.

    생리적인 면도 무시할 수 없다. 아내는 성행위에서 오르가슴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오르가슴을 빠르고 강렬하게 느끼는 아내는 섹스를 거부하지 않는다. 아내가 흥분하는 모습이 남편에겐 최고의 흥분제다. 그런데 생리구조상 오르가슴을 빨리 느끼는 이와 천천히 느끼는 이가 있다. 천천히 느끼는 아내라면 애무를 통해 완전히 흥분하게 한 다음 관계를 가져야 한다. 충분한 전희(前戱) 없이 남편이 일방적으로 성관계를 가지면 아내는 아무런 느낌이 없다.

    게다가 꼭 술을 마시고 섹스하는 남편이 있다. 긴장을 풀기 위해서 술을 마신다고 해도 취해서 성관계를 갖는 남성은 사정이 늦기 마련이다. 아내는 아무 느낌도 없이 남편이 만족할 때까지 상당한 시간을 의무적으로 섹스를 감당해야 한다.

    통제, 방출, 책임

    성욕이 없는 무성애자라면 모를까, 성욕이 있는 사람이 섹스를 하지 못한다는 것은 큰 고통이다. 섹스를 위해서 결혼하는 것은 아니지만, 섹스가 없다면 결혼의 의미는 반감된다. 남편은 섹스를 하고 싶은데 아내가 거부하거나, 아내는 섹스를 하고 싶은데 남편이 거부하면 옛날에는 무조건 참고 지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아내가 섹스를 거부한다고 남편이 이혼하자고 하는 것이 올바르지는 않다. 그렇다고 남편에게 평생 섹스를 하지 말라고 하는 것도 옳지 않다. 남편이 섹스를 거부한다고 해서 아내가 이혼하자는 것 역시 올바르지 않다. 그렇다고 아내가 평생 독수공방을 하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성욕이라는 것은 통제되지 않는 법이다. 거부당한 욕망은 어디론가 방출돼야 한다. 따라서 부부는 상대방의 성욕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 책임져야 한다. 도저히 극복할 수 없다면 차라리 상대방을 자유롭게 놓아주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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