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호

참사로 배우는 일본 참사로 싸우는 한국

세월호 참사 vs 고베 대지진

  • 이성권 주일 고베총영사 | lsksml@naver.com

    입력2015-04-23 16: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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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판 세월호’ 시운마루호 사고 후 수영교육 강화
    • 거리 곳곳에 멈춘 벽시계…“영원히 잊지 말자”
    • 재해기념관 세워 안전교육 생활화
    참사로 배우는 일본 참사로 싸우는 한국

    마트에서 지진 발생을 가정한 ‘셰이크아웃’ 훈련을 하는 주부들.

    2012년 8월 일본 고베 총영사로 부임하고 난 직후 나를 짐짓 놀라게 한 일이 있다. 초등학생인 딸이 현지 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수영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취미가 아니라 학교에서 정식 수업으로 수영교육을 하는데, 그것도 전교생이 다 배운다고 했다. 한국에서였다면 학부모들로부터 ‘공부할 시간도 없는데 쓸데없이 시간 낭비한다’는 소리를 듣지 않았을까.

    궁금증이 일었다. 다른 종목도 아니고 왜 하필 수영일까. 학교를 통해 조사해보니, 전교생이 수영을 배우게 된 계기가 있었다. 우리의 세월호 참사와 유사한 선박 침몰사고 때문이었다고 했다.

    1955년 5월 11일, ‘시운마루(紫雲丸)’라는 카페리호가 세토내해의 짙은 안개 속에서 ‘우코우(宇高)호’라는 연락선과 충돌해 침몰했다. 초·중학생 100명을 포함해 168명이 익사하는 대형 참사였다. 이 사고 후 사고 원인과 해결 방안을 둘러싸고 많은 논쟁이 일었다. 항해사의 부주의뿐 아니라 학생들의 수영 미숙이 사망자를 늘렸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때부터 학교마다 수영장을 설치하고, 수영교육을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현재 일본 내 초등학교에는 90% 가까이 수영장이 설치돼 수영교육을 하며, 수영장 설치가 어려운 경우에는 지역사회의 스포츠센터를 활용한다. 실제 ‘수영장 보급률과 수난(水難)사고 관계’를 보면 이 정책이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수영장 보급률이 높아질수록 수난사고는 반비례해 줄어드는 것을 알 수 있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도 학교에 수영장을 설치하거나 수영교육을 일괄적으로 도입하자는 것이 아니다. 일본은 어떤 사고가 발생했을 때,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혹은 재발해도 인명과 재산 피해가 최소화할 수 있도록 ‘눈에 보이는’ 대책을 마련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필자가 해외에서 보는 세월호 참사 이후의 한국 사회는 이전과 별반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오히려 갈등과 대립만 심화된 양상이다. 앞에서 소개한 것처럼, 일본은 어떤 사고가 발생하면 그 대책을 놓고 ‘질서정연한’ 토론과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내놓았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1년이 지난 현재 시점까지 한국 사회는 어떤가. 국민안전처 신설 등 시스템은 보강했지만, 우리의 인식 변화에 대해서는 곱씹을 부분이 있다. 필자의 눈에는 3가지 문제가 두드러진다.

    첫째 문제는 ‘빨리 잊자’는 분위기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몇 개월이 되지 않은 지난해 9월경부터 ‘민생이 중요하다’ ‘이제는 세월호로부터 출구전략이 필요하다’ 등의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물론 사회적 추모 분위기 속에 자영업자들의 생계는 타격을 받았을 수 있지만 우리 경제가 세월호 참사와 같은 단일 사고로 인해 위험할 정도로 취약한지는 의문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원인 규명과 해결 방안 마련이 ‘민생’과 대립되는, 따라서 그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구조였는지도 의문이었다. 결국 우리는 세월호 참사로부터 ‘눈에 보이는’ 대책을 마련하기도 전에 지치거나 회피하려 했던 건 아닐까.

    갈등만 양산한 한국 사회

    두 번째 문제는 ‘슬픔에 대한 공격’ 분위기다. 죽음 자체는 슬픈 것이며, 더욱이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슬픔은 유가족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 정신적 손상을 가져온다. 따라서 슬픔에 대한 공감은 당연한 것이며, 공동체 내부의 유대를 위해서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그럼에도 희생자 및 유가족들을 조롱하는 ‘일베(일간베스트)’의 공격적인 행동, 이에 동조하는 일부 보수단체 및 인터넷에서의 풍조 등은 ‘공동체 한국’을 위협하는 일이었다.

    세 번째 문제는 ‘진영 간 대결의 과잉’이다. 세월호 참사 초기에는 국가적으로 애도 분위기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보수와 진보의 진영 대결이 개입되면서 한국 사회는 두 쪽으로 갈라졌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시민단체뿐 아니라 정치권도 예외가 아니었다. 북한 잠수정 공격설 혹은 미군 잠수정과의 충돌설 등 음모론이 인터넷에서 떠다녔다. 특별법 통과 및 특별조사위 구성과 운영, 기능을 둘러싼 여야 간 대결도 낭비적인 면이 강했다. 이런 ‘진영 간 대결의 과잉’은 결과적으로 ‘질서정연한’ 대책 마련을 방해하고, 세월호 참사의 슬픔에 대한 진정한 극복도 요원하게 만든다.

    참사로 배우는 일본 참사로 싸우는 한국


    그러나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원점으로 돌아가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방안 마련에 몰두하면 제2의 세월호와 같은 인재(人災)를 예방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안전·방재강국인 일본의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특히, 사람의 ‘안전의식’의 중요성과 그것을 함양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재해기념관’ 건립을 대안으로 제안하고자 한다.

    일본 고베에는 1995년 1월 17일 규모 7.3의 강진에 의한 대규모 재해가 발생했다. 고베 대지진(한신·아와지 대지진)이었다. 6434명이 사망하고, 4만3792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피해 총액이 10조 엔(최대 13조 엔)에 달하는 대형 참사였다. 이는 1995년 추산한 피해액인데, 당시 우리 정부의 예산이 54조8243억 원인 점을 감안해 단순비교해도 정부 예산의 2배를 넘는 피해를 입은 것이다. 그것도 단일 자연재해로부터. 하지만 지금의 고베는 복구와 부흥을 달성하고, 도시 및 항만 인프라에서부터 주민의 정신과 의식이 창조적으로 거듭났다.

    필자가 고베 대지진으로부터 착안한 것은, 도시 복구와 방재시스템 정비 등이 아니라 재해(災害) 예방과 그 피해를 줄이려 노력하는 그들의 ‘의식세계’다. 고베 대지진은 자연재해이며, 세월호 참사는 인재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대규모 인명·재산 피해를 낸다는 결과는 같다. 인재는 오히려 사람의 부주의 혹은 고의에 의해 발생하기 때문에 예방 가능성이 더욱 높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인재일수록 사람들의 의식과 밀접하게 관련되기 때문에, 고베 대지진을 계기로 일본인의 의식을 들여다보자는 것이다.

    고베 시내를 걷다보면 건물 벽면에 유달리 벽시계가 많이 걸린 것을 발견하게 된다. 모두 5시 6분을 가리키며 멈춰 서 있다. 고베 대지진이 발생한 시각이다. 누가 강제한 것도 아니다. 건물 소유주인 시민들이 20년이 지났음에도 당시의 벽시계를 그대로 남겨둔 것이다. 잊지 말고 기억하자는 의식의 발로다. 건물은 풍화돼도 당시의 재해의 참상과 고통은 잊지 말자는 것이다.

    고베 시에 인접한 아시야(芦屋)에는 ‘사이호지(西法寺)’라는 사찰에 ‘드럼통’으로 만든 추모 종(追悼之鐘)이 있다. 고베 대지진으로 인해 집과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이 사찰에 몰려왔는데, 당시 주지스님이 드럼통을 수십 개 모아 ‘스토브’ 대용으로, 냉장고 대용으로, 욕조 대용으로 사용해 이들을 돌보았다. 드럼통과 함께 고베 대지진을 극복했기 때문에, 재해를 잊지 말자는 뜻으로 드럼통을 그대로 추도의 종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참사로 배우는 일본 참사로 싸우는 한국
    기억되지 않는 참사

    그 밖에도 진원지였던 아와지시마(淡路島)에는 지진단층인 노지마단층(野島·#26029;層)이 국가 지정 천연기념물로 보존되고, 시내에는 지진으로 파괴된 방파제와 교각 등 기념물이 300개가 넘게 보존됐다.

    고베 대지진을 경험한 일본 사회가 이전과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바로 ‘기억하고 보존하고 전달’하려는 노력이다. 그것은 정부기관에서부터 개인에 이르기까지 흐트러짐이 없다. 기억되지 않는 참사는 되풀이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이러한 기억을 기록으로 집대성하고 연구해 미래에 전달하고자 설립된 곳이 재해기념관인 ‘사람과 방재 미래센터’다. 이 시설에는 고베 대지진의 참상과 피해, 그리고 복구와 부흥의 과정에 대한 모든 자료를 오랜 시간을 들여 수집·보존한다. 현재까지 수집된 자료만 해도 16만 점이 넘는다. 이 자료들을 활용해 당시 지진재해 참상과 방재(防災)의 중요성을 깨닫도록 생생하게 전시한다.

    이 시설에는 연간 50만 명의 방문객이 찾는데, 그중 지진을 경험하지 않은 학생 비율이 60%나 된다. 재해기념관이 자라나는 세대에게 안전과 방재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교육 기능을 충실히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재해기념관은 실천적인 방재 연구와 방재 전문가 육성, 재해 피해자의 트라우마 치료, 재해 대처 지원, 교류 및 네트워크 등의 기능을 수행한다. 일본에서 유일한 종합 재해기념관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듯 어릴 때의 안전교육과 훈련은 평생의 습관으로 체화된다. 어릴 때 자전거 타기를 배우면, 어른이 돼 다시 탈 수 있는 것처럼, 교육과 훈련은 무의식적으로 근육과 신경에 저장되는 것이다. 그리고 안전교육과 훈련이 사회 전체에서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면 그 자체가 방재(防災) 효과를 갖는다. 일본 사회는 고베 대지진을 계기로 어릴 때부터, 그리고 전사회적으로 안전·방재교육을 체계화했다. 문부과학성(한국의 교육부)은 일본의 모든 학교에 ‘위험 발생 시 대처요령(위기관리 대응매뉴얼)’을 작성해 이를 기반으로 훈련하도록 권고한다. 학교에서 하는 안전·방재교육의 목표를 ‘생존하는 힘(生きる力)’으로 규정했다. 즉 습득한 지식에 기초해 신속하게 판단하고 위험에서 벗어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만일 우리도 학교 현장에서 각종 안전사고에 대비한 교육과 훈련을 지속적으로 해왔다면, 세월호 침몰 과정에서 선장 등 세월호의 지휘부가 승객들에게 탈출을 지시하지 않아도, 학생들이 위기 상황임을 지각하고 각자의 판단에 따라 ‘생존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생존하는 힘

    일본에서는 학생뿐 아니라 일반인도 다양한 형태의 훈련을 받는다. 고베에서 올해 실시된 ‘셰이크아웃(Shakeout)’ 훈련이 대표적이다. 이 훈련은 의외로 간단하다. 사전에 훈련 일시를 지정해, 각자가 있는 장소에서 지진 발생을 가상해 일제히 대피하는 훈련이다. 시장에서든, 학교에서든, 운전 중이든 각자 상황에 맞게 알아서 대피하는 훈련이다. 올해 이 훈련에 참가한 고베시민은 전체 150만 명 중 33만7705명이라고 한다. 그토록 많은 시민이 자발적으로 훈련에 참가했다는 것은 ‘안전 불감증’에 빠진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렇듯 일본에서는 학교 현장에서의 안전교육과 훈련뿐 아니라 성인이 돼 일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때도 다양한 형태의 교육, 훈련에 참가하기 때문에 안전의식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게 되는 것이다.

    필자가 고베 대지진 이후 일본 사회의 대응을 분석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사람들의 안전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즉 안전불감증에 걸리지 않도록 사람들의 인식을 새롭게 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임을 알게 됐다. 어린 학생 때부터 시작된 안전교육은 어른이 돼서도 지속된다. 그리고 ‘사람과 방재 미래센터’와 같은 재해기념관은 남녀노소 모두에게 재해를 통해 배운 교훈을 각인한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재해가 왜 발생하는지, 그것이 얼마나 많은 피해를 초래하는지, 예방하기 위해서는 각자가 사전에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재해 발생 시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고 극복해야 하는지를 교육한다.

    그래서 필자는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우리 국민의 안전의식 고취를 위한 교육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한국형 재해기념관 건립을 제안한다.

    1993년 서해훼리호 침몰사고,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 1995년 대구지하철 가스폭발사고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이후 20여 년이 지났지만 세월호 참사와 같은 대형 재난이 반복된다. 이제는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추모하고 보상하는 과거형의 대응이 아니라, 두 번 다시 인재형 참사가 발생되지 않도록 국민 전체의 안전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대안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위험도 압축성장

    한 가지 더.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앗아갈 위험성이 가장 큰 요소는 무엇일까. 필자는 전쟁과 같은 외부 세계의 위협이 아니라 한국 사회 내부에 있다고 생각한다. 산업화 공업화, 과학기술의 발달 덕분에 편리함은 향상되었지만, 이면에는 위험도 동시에 성장하는 것이다. 편리함과 위험은 동전의 양면이다.

    우리는 압축성장과 경제성장 제일주의를 추구해온 만큼 더 위력이 센 위험을 키워온 것이다. 성수대교 붕괴 등 지금까지의 대형 재해는 성장과 함께 자라던 위험이 표출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제는 경제성장 덕분에 얻는 편리함만 가르칠 게 아니라, 그로 인해 우리의 생명과 재산이 언제든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사실도 가르치고, 따라서 안전의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할 때가 됐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교육적인 기능으로서의 재해기념관이 필요한 것이다.

    이 재해기념관에는 과거 서해훼리호 침몰사고를 비롯해 세월호 참사까지 인재형 사고에 관한 모든 자료를 수집하고 전시해야 한다. 왜 우리나라에는 인재형 사고가 잦은지 원인을 설명하고, 그 피해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으며, 그 고통이 얼마나 큰지, 그리고 인재형 참사를 방지하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재해에 직면했을 때 개인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도 알려주어야 한다.

    전국의 학생이 수학여행으로 독립기념관과 전쟁기념관을 방문하듯 재해기념관을 견학하도록 해서 어릴 때부터 안전불감증에 걸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자식의 안전을 걱정하는 부모가 아이 손을 잡고 가족 단위로 방문해 함께 고민하는 가정교육의 현장이 돼야 한다.

    세월호 참사 1년이 지나가는 시점에, 보상과 추모 논쟁에서 인재형 참사의 재발 방지 방안에 대한 논의로 옮겨가기를 바란다. 조만간 재해기념관 설립이 실현돼 우리나라가 인재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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