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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그후 1년, 우리는 오늘도 '세월호'를 탄다

참사로 배우는 일본 참사로 싸우는 한국

세월호 참사 vs 고베 대지진

  • 이성권 주일 고베총영사 | lsksml@naver.com

참사로 배우는 일본 참사로 싸우는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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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일본판 세월호’ 시운마루호 사고 후 수영교육 강화
  • ● 거리 곳곳에 멈춘 벽시계…“영원히 잊지 말자”
  • ● 재해기념관 세워 안전교육 생활화
참사로 배우는 일본 참사로 싸우는 한국

마트에서 지진 발생을 가정한 ‘셰이크아웃’ 훈련을 하는 주부들.

2012년 8월 일본 고베 총영사로 부임하고 난 직후 나를 짐짓 놀라게 한 일이 있다. 초등학생인 딸이 현지 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수영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취미가 아니라 학교에서 정식 수업으로 수영교육을 하는데, 그것도 전교생이 다 배운다고 했다. 한국에서였다면 학부모들로부터 ‘공부할 시간도 없는데 쓸데없이 시간 낭비한다’는 소리를 듣지 않았을까.

궁금증이 일었다. 다른 종목도 아니고 왜 하필 수영일까. 학교를 통해 조사해보니, 전교생이 수영을 배우게 된 계기가 있었다. 우리의 세월호 참사와 유사한 선박 침몰사고 때문이었다고 했다.

1955년 5월 11일, ‘시운마루(紫雲丸)’라는 카페리호가 세토내해의 짙은 안개 속에서 ‘우코우(宇高)호’라는 연락선과 충돌해 침몰했다. 초·중학생 100명을 포함해 168명이 익사하는 대형 참사였다. 이 사고 후 사고 원인과 해결 방안을 둘러싸고 많은 논쟁이 일었다. 항해사의 부주의뿐 아니라 학생들의 수영 미숙이 사망자를 늘렸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때부터 학교마다 수영장을 설치하고, 수영교육을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현재 일본 내 초등학교에는 90% 가까이 수영장이 설치돼 수영교육을 하며, 수영장 설치가 어려운 경우에는 지역사회의 스포츠센터를 활용한다. 실제 ‘수영장 보급률과 수난(水難)사고 관계’를 보면 이 정책이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수영장 보급률이 높아질수록 수난사고는 반비례해 줄어드는 것을 알 수 있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도 학교에 수영장을 설치하거나 수영교육을 일괄적으로 도입하자는 것이 아니다. 일본은 어떤 사고가 발생했을 때,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혹은 재발해도 인명과 재산 피해가 최소화할 수 있도록 ‘눈에 보이는’ 대책을 마련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필자가 해외에서 보는 세월호 참사 이후의 한국 사회는 이전과 별반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오히려 갈등과 대립만 심화된 양상이다. 앞에서 소개한 것처럼, 일본은 어떤 사고가 발생하면 그 대책을 놓고 ‘질서정연한’ 토론과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내놓았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1년이 지난 현재 시점까지 한국 사회는 어떤가. 국민안전처 신설 등 시스템은 보강했지만, 우리의 인식 변화에 대해서는 곱씹을 부분이 있다. 필자의 눈에는 3가지 문제가 두드러진다.

첫째 문제는 ‘빨리 잊자’는 분위기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몇 개월이 되지 않은 지난해 9월경부터 ‘민생이 중요하다’ ‘이제는 세월호로부터 출구전략이 필요하다’ 등의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물론 사회적 추모 분위기 속에 자영업자들의 생계는 타격을 받았을 수 있지만 우리 경제가 세월호 참사와 같은 단일 사고로 인해 위험할 정도로 취약한지는 의문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원인 규명과 해결 방안 마련이 ‘민생’과 대립되는, 따라서 그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구조였는지도 의문이었다. 결국 우리는 세월호 참사로부터 ‘눈에 보이는’ 대책을 마련하기도 전에 지치거나 회피하려 했던 건 아닐까.

갈등만 양산한 한국 사회

두 번째 문제는 ‘슬픔에 대한 공격’ 분위기다. 죽음 자체는 슬픈 것이며, 더욱이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슬픔은 유가족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 정신적 손상을 가져온다. 따라서 슬픔에 대한 공감은 당연한 것이며, 공동체 내부의 유대를 위해서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그럼에도 희생자 및 유가족들을 조롱하는 ‘일베(일간베스트)’의 공격적인 행동, 이에 동조하는 일부 보수단체 및 인터넷에서의 풍조 등은 ‘공동체 한국’을 위협하는 일이었다.

세 번째 문제는 ‘진영 간 대결의 과잉’이다. 세월호 참사 초기에는 국가적으로 애도 분위기였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보수와 진보의 진영 대결이 개입되면서 한국 사회는 두 쪽으로 갈라졌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시민단체뿐 아니라 정치권도 예외가 아니었다. 북한 잠수정 공격설 혹은 미군 잠수정과의 충돌설 등 음모론이 인터넷에서 떠다녔다. 특별법 통과 및 특별조사위 구성과 운영, 기능을 둘러싼 여야 간 대결도 낭비적인 면이 강했다. 이런 ‘진영 간 대결의 과잉’은 결과적으로 ‘질서정연한’ 대책 마련을 방해하고, 세월호 참사의 슬픔에 대한 진정한 극복도 요원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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