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호 참사는 수십 년간 사회 전반에 걸쳐 쌓인 안전불감증, 부정부패, 직업윤리, 책임의식 부재 등의 총체적 부실이 빚어낸 결과였다. 물 위에 떠다녀서는 안 될 세월호의 전복과 침몰은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필연적인 사고였다. 이러한 구조적인 후진성에서 벗어나지 않고는 대한민국은 결코 선진국이나 안전한 나라 대열에 설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사고 당시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없었다. 하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어린 학생들을 살리기 위해 선실로 뛰어든 교사, 승객, 승무원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에서 우리 사회 저변이 건강하고 희망이 있다는 위안을 받기도 했다.
먼저 지난 1년간 벌어진 일을 짚어본 후 앞으로 정부와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려 한다.
모든 안전관리체제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예방 및 대비 단계와 사고 발생 시 대응과 수습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단계인 예방과 대비 분야를 살펴보자.
세월호 사고는 잘못된 관행에 따른 인재(人災)였음이 검경 조사, 국회 국정감사, 감사원 감사, 해난 심판을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 해양 · 선박 관련법과 제도(면허, 검사, 점검, 교육훈련, 운항관리 등)는 갖췄다. 문제는 관련기관 · 단체의 관리 · 감독 부실과 선사 · 선박의 규정 불이행이었다.
선체 침몰 막을 수 있었다
해양사고 대응 관련법이 이원화돼 사고 초기 지휘체계의 혼선이 빚어지기도 했다. 사고 발생 후 초기 대응은 엉터리였다. 대응 주체인 세월호 선장과 승무원의 직무유기 및 도피가 피해를 키운 첫째 이유였다. 게다가 수색구조본부의 미숙한 현장 지휘로 선체 침몰 방지 및 지연 조치가 따르지 않았다. 결국 세월호는 전복 이틀 만에 완전 침몰하고 말았다. 선박 조난사고가 나면 제일 먼저 현장에 투입해야 하는 것이 잠수 바지(barge·밑바닥이 편평한 운반선)다. 하지만 3일 이상 투입이 지연된 탓에 실종자 수색 및 구조에 큰 차질을 빚었다.
또한 구조 당국의 민간 잠수사 공모도 미숙해 수백 명의 민간 잠수사가 몰려 혼란을 초래하고 잠수사 간 갈등을 빚기도 했다. 악조건의 심해 잠수 경력이 풍부한 산업잠수사가 필요했다. 그러나 자격제도의 미비로 옥석 구분이 어려웠다. 향후 국제 자격기준제도와 잠수 경력인증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 밖에 다이빙벨, ROV(원격수중탐색장비), 재호흡 스쿠바 투입 실패 등 우여곡절을 겪었고, 민간 잠수사 2명이 작업 중 사망하는 불상사가 발생하기도 했다.
사고 발생 한 달이 지나면서 과거 서해 페리호와 천안함 사건 때처럼 선체를 인양해 남은 실종자를 수습하자는 이야기가 조심스럽게 나왔다. 하지만 실종자 가족들이 “하루도 힘든데 1년을 어찌 기다리느냐”고 거세게 반발하는 바람에 인양의 ‘인’자도 꺼낼 수 없는 분위기가 됐다. 그 후 11월까지 6개월간 실종자 수습이 10여 명(희생자 전체의 3%)에 그친 것은 장기간 경과에 따른 뻘(개흙) 유입, 태풍의 영향 등으로 선내 비철 구조물과 벽체, 바닥, 천장 등이 붕괴돼 선체 내 이동과 수색이 위험하고 힘들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