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호

사랑을 전해드립니다, 대신

  • 신달자 | 시인

    입력2015-06-24 13: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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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는 남자도 아니야!” 약속 시각보다 30분 늦게 도착한 남자에게 정면으로 퍼부은 한마디 탓에 남자는 뒤돌아섰다. 갑자기 강의 시간이 길어져 이삿짐 트럭을 타고 땀 뻘뻘 흘리며 달려온 남자는 거칠고 참을성 없는 여자에게 대뜸 마음이 식었나보다.

    한데 그렇게 돌아서버리니 여자는 그 남자가 싫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 좋아졌다. 그 뒤로 몇 번 전화해도, 집으로 찾아가도 만남을 거절당했다. 여자는 더욱 뜨거워지고 견디기 어려울 만큼 그 남자가 그리웠다. 직접 만남이 아니라 간접적이면 효과가 더 좋지 않을까. 여자는 고민 끝에 친구를 보내 대신 사과해달라고 하기로 맘먹었다. 제발 한번 만나주라는 부탁도 하라고 했다. ‘제발’이라는 말을 강조했다. 달자도 후회하고 다시 시작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전해달라 했다. 그걸 대리사과 혹은 대리 감정 전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교 3학년 때니 벌써 50년 전 일이다. 지금껏 그렇게까지 남자에게 매달려본 기억이 없다. 그렇게 친구를 내세워 관계를 회복하려 한 일도 없다. 요즘은 청소, 벌초, 심부름까지 해주는 대행업체가 성행한다는데, 바쁜 사람에게는 참 실용적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도저히 찾아갈 수 없는 사람에게 잘못했다는 ‘사과’를 대신 해주기도 하고, 마음이 없거나 시간이 없는 사람을 대신해 ‘효도’를 해주는 대행업도 있다니 놀랍다. 가령 아버지, 어머니에게 하루 한 번 문자를 넣어드리는 것이다. 함께 술 마시기, 지압, 산책할 때 함께 가기 등도 있다. 물론 프러포즈도 해준다. 이러다가 신혼여행을 함께 가주는 대행 업무도 생길지 모른다. 그리고 또 하나 있다. 헤어지자는 통보를 해주는 대행 업무도 있다고 한다.

    나는 좀 당혹스럽다. 사랑을 고백하거나 사과하는 건 본인이 아니면 사실 의미가 없는 것 아닌가. 영 쑥스러워서 도저히 할 수 없다고 대행에 맡기고 자신은 빠져버리면, 그게 감정 전달이 되는 일일까. 효도를 남의 손으로 대행하면 효도가 되는 것일까. ‘안 하는 것보다 좋다’고 할 수 있겠으나 개운하지 않다.



    “미안해”를 못하는 사람들

    사랑이란 함께하는 것이라는 말을 굳이 하지 않더라도, 진정한 마음이라야 사랑 고백도 사과도 효도도 가능한 것인데, 인간의 본성조차 싹뚝 자르는 이런 대행은 세상의 무서운 얼굴을 보여주는 것 같다. 대리 사과나 사랑은 왠지 시대의 차가운 얼굴을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 저리다. 사실 불쾌하기도 한 것이다.

    폭염이 기승을 부린다는 뉴스가 벌써 나오는데, 사람들의 마음은 깊은 겨울의 혹한으로 향해 가는 것 같아 마음이 춥다. 따뜻한 마음에 움 돋는 진심, 그게 전해지는 진정한 봄의 얼굴은 아예 스러져간 것일까. 봄의 얼굴은 어디에 있을까.

    며칠 전 친구와 전화하다 민감한 문제가 불거졌다. 또 다른 친구가 내게 분명히 잔인한 말로 내 가슴을 서늘하게 했는데 왠지 그 말 한마디가 몇 개월이나 가슴을 뜨끔거리게 했다. 그런데 전화하고 있던 친구가 그 이야기를 꺼냈다. “걔도 너한테 미안해하더라.” 말하자면 친구끼리 무료 사과를 그렇게 한 것이다. 나는 안다. 그 친구뿐 아니라 한국 사람은 누구나 내성적이어서 그때 그 시간에 “미안해”를 못하는 바람에 가정에서고 학교에서고 친구끼리도 감정 대립이 많다는 것을.

    순간을 놓치면 우리는 그만큼 거리가 멀어진다. 잠자리까지 따라오는 그 미적지근한 대립을 말로 확 풀지 못하는 것, 그런 게 한국 사람에겐 있다. 아무리 하늘이 고와도 꽃이 고와도 모르는 사람에게는 말을 걸지 않는 한국 사람들이 절친하다는 관계에서까지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그 한마디를 못하고 입을 다무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한국 사람들이 더 외로움을 타는지 모른다.

    달아오르는 지구, 식어가는 인간관계

    일본에서 새로운 돈벌이가 등장했다. 전화 상담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상담원들은 오래전부터 있어왔지만 개인 감정을 들어주는 그런 상담은 없다. 이 상담을 하려면 돈이 든다. 전화 통화시간이 곧 돈으로 계산된다. 철수라는 사람이 전화를 건다. 그때부터 계산이 시작된다. 화를 내도 되고, 고함을 질러도 된다. 어떤 사람이 죽이고 싶다고 하면 상담원은 말한다. “아이고, 화가 많이 나셨네요. 그러나 자신을 위해 감정을 누그러뜨리세요. 그 사람이 미운 짓을 했네요. 어쩌죠. 그러나 용서해버리세요….” 뭐 이런 식으로 말을 들어주는 직업이라고 할 수 있다.

    아내를, 남편을, 사장을, 친구를, 후배를, 옆집 사람을 욕할 수 있다. 다 들어준다. 10분에 1만 원쯤 나간다고 한다. 이 전화 서비스의 제목이 저릿하다. ‘죽을 만큼 외로운 사람은 전화하세요’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덜컥 그 전화번호를 누르고 싶어진다. 누구를 욕할 것인가. 많다. 그러나 돈을 내고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 돈을 지불하고 감정을 토로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하면 실로 짠하다. 요즘은 그런 사람이 많다. 이 숫자 버튼을 누르고 화를 풀면 그 어떤 범죄도 조금은 희석될 것이다. 이렇게 이 시대는 차가워진다. 집에서 혼자 욕하면 이상하게 화가 가라앉지 않는다. 이 세상엔 대상이 필요하다 그래서 돈을 내는 것 아닐까.

    많고 많은 사람들, 집에서 나가면 어깨를 수시로 부딪는 사람들 속에서 왜 사람들은 이렇게 외로운 것일까. 숨이 콱 막히게 고독에 헤매는 사람이 많은 것은, 지구가 온난화로 달아오르지만 온난화 속에 숨 쉬는 사람들은 영하의 기온으로 뚝뚝 떨어져 얼음 속에 경직돼 가기 때문이다.

    너무 교과서적이지만 돈을 내고까지 표현해야 하는 미움이라면 상대를 만나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은 어리석다. 그렇지 않은가. 차라리 돈을 내고 감정을 폭발시키는 쪽이 훨씬 경제적이지 않나. 그 순간을 참으면 몸이 아프지 않겠나. 아니, 전화료보다 더 낭비되는 일을 저지를 수가 있기 때문이다. 모두 그렇게 생각한다.

    가슴에 묻은 말을 꺼내라

    다들 말하는 연습이 부족한 것 같다. 사실 어릴 때 가장 잘 가르쳐야 하는 일이 말하는 습관이다. 언제나 상대를 생각하는 말하기. 때를 놓치지 않고 ‘미안해’를 할 수 있는 말하기 재능을 가르쳐야 한다. 관계 회복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빛나는 브로치가 아니라 핵심을 풀 수 있는 말 한마디다. 그것이 어색해서 관계 개선이 늦어지고 더 꼬인다.

    사람은 말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다. 어떻게 하는가. 그것이 그 사람의 진면목을 아는 일이다. 소리 내어 말하는 데는 힘이 실린다. 아무리 소중해도 마음속에 담고 있으면 그것은 말이 아니다.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소리 내어 확실하게, 그것이 어떤 말이건 전달하면 그 말에는 영적인 힘이 실리는 것이다.

    사랑을 전해드립니다, 대신
    신달자

    1943년 경남 거창 출생

    ‘현대문학’으로 등단

    제38대 한국시인협회장

    영랑시문학상, 공초문학상, 대산문학상, 은관문화훈장 등

    소설 ‘물 위를 걷는 여자’, 에세이 ‘백치애인’, 시집 ‘살 흐르다’ 등


    가슴에 묻은 말을 꺼내라. 그리고 그 상대에게 하라. 그러면 그 말이 기적의 입술을 통해 상대의 가슴으로 녹아들 것이다. 돈을 들일 필요는 없다. 서툴게라도 말로 더듬더듬 사랑을 찾아가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찾아야 할 우리의 소중한 힘일 것이다.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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