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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로 만난 이순신과 조선

목마구민(牧馬救民)으로 선순환 경제모델 개척

이순신의 진중(陣中) 경영

  • 박종평 | 이순신 연구가 goldagebook@naver.com

목마구민(牧馬救民)으로 선순환 경제모델 개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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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량과 군자금 확보를 위한 이순신의 소금 전매사업, 어업과 물고기 판매 활동은 ‘난중일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1595년 5월 17일. 쇳물을 부어 소금 가마솥 한 개를 주조했다. △1595년 5월 19일. 소금 가마솥 한 개를 주조했다. △1597년 10월 20일. 김종려를 소음도 등 13개 섬 염장(鹽場·염전)의 감자도감검(監煮都監檢·염전에서 소금 굽는 것을 관리 및 감독하는 관리)으로 임명했다. △1595년 2월 19일. 송한련이 와서 “고기를 잡아 군량을 사겠다”고 했다. △1595년 12월 4일. 황득중과 오수 등이 청어 7000여 두름을 실어왔다. 그래서 김희방의 곡식 판매 배(貿穀船)에 계산해줬다. △1596년 1월 6일. 오수가 청어 1310두름, 박춘양은 787두름을 바쳤다. 하천수가 받아다가 말렸다. 황득중은 202두름을 바쳤다.

일기에 쓴 대로 이순신은 군사들과 함께 어부가 되기도 했고, 소금 굽는 노동자가 되기도 했다. 군사와 백성의 생존을 위한 ‘경영자 이순신’의 선택이다. ‘이충무공행록’에서도 그런 모습을 볼 수 있다.

계사년(1593, 49세). 진영에 있으면서 매번 군량을 걱정해 백성들을 모아 둔전을 짓게 했고, 사람을 시켜 물고기를 잡게 했고, 소금을 구웠고, 그릇을 만드는 일까지 하지 않는 일이 없었으며, 그것을 배에 실어 내다 팔게 해 몇 달이 못 돼 곡식 수만 석을 비축했다.

이순신이 둔전을 만들거나, 시장을 활성화하거나, 집을 지어 팔거나, 소금을 제조·판매했다는 것은 ‘장수 이순신’만 아는 사람들에게는 깜짝 놀랄 만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런 경영정책은 류성룡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됐기에 독창적이라고 할 수 없다. 류성룡과 무관한 ‘혁신 경영자 이순신’의 면모는 이순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자세히 기록한 ‘징비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명량대첩 이후 이순신의 군사는 8000여 명이었다. 고금도로 진을 옮겼다. 이순신은 군량 확보를 위해 ‘해로통행첩(海路通行帖)’을 만들었다. “삼도(三道, 충청·전라·경상)의 연안 바다를 통행하는 공선(公船)과 사선(私船)이 해로통행첩을 지니고 있지 않으면 간첩으로 보고 통행치 못하게 할 것이다.”

그러자 배를 타고 피난하던 백성들이 모두 통행첩을 받아갔다. 이순신은 배의 크기에 따라 통행첩의 대가로 곡식을 받았다. 작은 배는 1석, 중간 배는 2석, 큰 배는 3석을 지불해야 했다. 피난민들은 재물과 곡식을 배에 싣고 피난했기에 곡식 내는 것을 어렵게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어 기뻐했다. 10일 만에 군량 1만여 석을 확보했다.

이순신의 ‘혁신 5원칙’

해로통행첩은 오늘날 면허증을 받을 때 내는 수입인지대나 수수료 같은 것이다. 그때껏 존재하지 않던 제도로 이순신이 처음 시도했다. 그 성과는 ‘징비록’에서 보듯이 대단했다.

이순신은 명량해전 직후 그들을 따라 이동하던 피난선들과 함께 몇 차례 진을 옮겼다. 1597년 10월 29일 고하도에 도착했으나 군량과 군사가 태부족했다.

그때 이순신의 참모 이의온(李宜溫·1577~1636)이 해로통행첩이라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놨다. 그는 백성들에게 통행첩을 제공해 어업 활동의 자유와 이동의 편의를 보장하는 대가로 곡식을 받자고 제안했다.

현대 경영학의 구루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혁신을 가리켜 ‘기존에 있던 것을 개선하거나 변형시키는 것을 넘어서 새롭고도 다른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라 정의했다. 이순신은 이의온의 제안을 받아들여 드러커가 정의한 혁신과 혁신의 5원칙을 수백 년 전에 적용했다.

①수군과 피난민의 상황을 철저하고 객관적으로 분석해 각자의 욕구를 파악했다. 수군은 군량이 필요했고, 식량을 싣고 다니던 피난민은 안전이 필요했다. ②피난민에게는 생업을 위한 땅이 필요했는데 이것도 제공했다. ③본래의 과업에 집중했다. 일본군의 서해 북상 저지를 위한 수군 재건이 이순신에게는 과제였다. 재건의 기초가 되는 군사와 군량 확보를 위해 백성이 필요했다. 그래서 통행첩을 만들어 그의 부대가 주둔한 섬과 인근 섬에 백성이 정착게 했다. ④수군과 백성 모두가 동의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했다. 통행첩의 대가는 합리적으로 정했다. 피난선의 크기에 따라 징수량을 3등급으로 나눴다. 공정한 기준으로 공평하게 징수하자 백성들이 수긍했다. ⑤실천 가능한 범위에서 단계적으로 확대했다. 처음엔 고하도에서 소규모로 시작해 검증을 거쳤고 이후 환경이 개선된 고금도에서 확대했다.

혁신의 5원칙을 지키며 실시한 이 전례 없는 제도는 모두에게 이익이었다. 조선 수군은 일본군 간첩을 식별해 정보 유출을 막을 수 있었다. 백성들은 생명을 지킬 수 있었다. 섬의 땅을 개간할 수 있었기에 군사와 백성 모두 스스로 먹을거리를 생산할 수 있었고, 백성이 안정되자 조선 수군은 그들 중에서 군사를 모집해 활용할 수 있었다.

진중 경영자 이순신

7년 전쟁 동안 이순신은 불패의 명장으로 활약했다. 불패의 배경에는 거북선을 만든 발명가 이순신, 빼어난 전략·전술을 활용한 명장 이순신이 있다. 그러나 7년이라는 장기 전쟁에서는, 군사와 백성의 먹을거리와 군수물자를 확보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해결책을 마련해 운영한 ‘진중 경영자 이순신’을 더 높이 평가해야 할지도 모른다.

목마구민(牧馬救民)으로 선순환 경제모델 개척
박 종 평

1964년 충남 보령 출생

서강대 정외과 졸업, 고려대 석사(정치학)

저서: ‘진심진력 : 삶의 전장에서 이순신을 만나다’ ‘흔들리는 마흔, 이순신을 만나다’ ‘이순신, 꿈속을 걸어 나오다’ 외 2권


이순신은 백성에게서 일방적으로 세금을 걷어 운영하기보다 스스로 생산하면서 보급했다. 불가피하게 세금을 걷더라도 세금을 내야 하는 정당한 이유를 제시해 동의를 이끌어냈다. 혁신 경영자 이순신은 공존과 공생의 선순환 경제모델을 개척했다.

신동아 2015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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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평 | 이순신 연구가 goldageboo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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