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호

‘메두사의 뗏목’ ‘미친 여자’

테오도르 제리코

  • 박상희 |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 포사람 원장

    입력2015-06-26 10: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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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두사의 뗏목’ ‘미친 여자’
    이 코너의 이름은 ‘미술과 마음 이야기’입니다. 그래서인지 원고를 쓰는 매월 말에는 자연스레 마음이란 어떤 것일까를 생각해보곤 합니다. 마음에 관한 단어 중에서 최근 우리 사회를 설명할 때 가장 많이 쓰는 것은 ‘분노’가 아닐까 합니다.

    분노란 ‘분개하여 몹시 성을 내거나 또는 그렇게 내는 성’을 뜻합니다. 경우에 따라 분노는 범죄행위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저는 주말을 제외한 매일 오후 사건과 사고를 다루는 방송 프로그램에 패널로 출연하는데, 우리 사회에서 이른바 ‘분노 범죄’가 갈수록 늘어나는 것을 보고 안타까움을 느끼게 됩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과 비교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체질적으로 화를 더 많이 낸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 사회에서 분노 범죄가 늘어나는 걸까요.

    먼저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개인적인 스트레스입니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 사회의 구조적 특성은 사회 구성원들에게 살아남기 위한 경쟁을 하도록 부추깁니다. 경쟁에서 오는 압박은 스트레스를 쌓이게 하는데, 스트레스를 더는 견디기 어려울 때 그것은 분노로 폭발합니다. 공동체 문화가 견고한 우리 사회에서 분노의 폭발은 ‘욱하는’ 성격으로 이해되기도 했습니다.

    분노가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적 현상에 대해서도 분노할 수 있습니다. 공분(公憤)은 이런 분노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대중이 함께 분노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남양유업 사태나 ‘땅콩 회항’ 사건이 공분의 대표적 사례입니다. 권력을 가진 이들의 이른바 ‘갑질’이 많은 시민으로 하여금 사회적, 집단적 분노를 일으키게 한 셈입니다.

    분노와 격노



    분노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한편에서 건강한 분노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자신이 인간다운 대접을 받지 못할 때, 정의롭지 못한 사회적 사건을 대할 때 우리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참고 견뎌내는 게 꼭 좋은 것은 아닙니다. 타인에게 위해가 되지 않는다면 때에 따라서는 분노를 표현하는 것이 옳고, 좋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노가 범죄를 유발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는 심히 걱정스럽습니다. 타인의 생명을 위협하고 재산을 앗아가는 분노는 정당한 분노가 아닙니다.

    심리학자 하인즈 코헛(Heinz Kohut)은 ‘분노’와 ‘격노’를 구분했습니다. 격노란 격한 분노를 의미합니다. 정당한 분노는 내면에 건강한 자아가 형성된 사람이 드러내는 감정이지만, 격노는 내면의 핵(core)이 취약하고 파편화한 사람이 드러내는 분노입니다. 그는 이 격노의 뿌리가, 채워지지 않은 애정의 욕구에 있다고 파악했습니다. 애정 결핍으로 이런 격노가 생겼다는 점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채워지지 않은 욕구 때문에 타인에게 해를 주는 것은 일종의 병리 상태로 볼 수 있습니다.

    서양 회화에서 분노를 가장 잘 표현한 작품의 하나로 꼽는 것은 프랑스 화가 테오도르 제리코(Theodore Gericault·1791~1824)의 ‘메두사의 뗏목(The Raft of the Medusa·1819)’입니다. 회화에 관심없는 이들도 어디선가 한 번은 보았을 유명한 작품입니다. 제리코는 들라크루아와 함께 19세기 낭만주의 회화를 대표하는 화가입니다. 들라크루아에게 영향을 준 선배이기도 한데, 오늘 소개할 그림 ‘메두사의 뗏목’은 낭만주의 시대를 연 작품으로 평가돼왔습니다.

    제리코는 서른세 살에 요절한 천재 화가입니다. 그의 성품은 자유분방했다고 합니다.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활기차면서도 동시에 우울했다고 합니다. 전형적인 낭만적 기질의 소유자였던 셈입니다. 이런 성격을 가졌기에 그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것으로부터 벗어나 인간의 자유로운 감정을 마음껏 표현하고자 한 낭만주의 회화를 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역동적인 구도, 대담한 색채, 생동감 있는 붓 터치 등을 부각한 낭만주의 회화는 우리 마음의 심연 가운데 어느 한 곳을 뒤흔들어놓습니다.

    난파한 메두사호

    제리코가 이 작품을 그린 데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이 그림이 담은 사건은 이렇습니다. 1816년 아프리카 세네갈로 가는, 400여 명을 태운 프랑스 군함 메두사호(號)가 대서양에서 암초를 만나 난파됐습니다. 선장을 포함한 일부 선원은 구명보트를 타고 탈출했고, 남은 선원과 승객 150명은 뗏목을 만들어 탈출을 시도했습니다. 표류하는 뗏목 위에서는 살아남기 위해 죽은 사람의 고기를 먹는 등 끔찍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구조됐을 때 남은 이가 겨우 15명에 불과했는데, 뗏목 위에서 벌어진 이들의 끔찍한 사투는 당시 프랑스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줬습니다.

    젊은 제리코는 이 사건을 작품으로 그리기 위해 시체안치소를 방문하고 생존자를 인터뷰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어떤 장면을 그릴까 고민하다 끝까지 살아남은 이들이 자신을 구조할 수 있는 배를 발견하는 마지막 순간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이미 시체가 되어버린 사람, 죽음의 공포 앞에서 절망하는 사람, 살아남기 위해 절규하는 사람, 그리고 구조할 배를 발견해 기뻐하는 사람 등을 포함한 다양한 군상의 극적인 모습을 담은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메두사의 뗏목’ ‘미친 여자’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이 거대한 작품 앞에 서면 역동적인 구도와 격렬한 감정 표현에 많은 사람이 충격을 받습니다. 스물다섯 살의 젊은 제리코는 절제와 균형을 강조한 다비드의 신고전주의를 넘어서서 인간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전율을 느낄 정도로 리얼하게 재현해낸 것이지요. 그림을 자세히 보자면 마치 신화를 역동적으로 묘사한 바로크의 대표 화가 루벤스가 참혹한 현실 세계로 하강한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실제로 제리코는 루벤스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낭만주의 회화의 대표작이라면 많은 이가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떠올리는데, 제리코의 ‘메두사의 뗏목’이 있었기에 그 작품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당대에 ‘메두사의 뗏목’이 큰 관심을 모은 이유 중 하나는 이 사건의 원인에 있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배가 암초에 걸려 난파당하자 선장과 일부 선원은 구명보트로 탈출했는데, 퇴역 장성 출신인 뒤 쇼마레라는 선장은 뇌물을 주고 선장 자리를 얻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5년 동안 배를 타본 경험이 없던 그가 승객을 놔두고 먼저 탈출한 비윤리적 행동은 당시 프랑스 국민의 큰 공분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아프리카 식민지 개발을 위해 떠나는 거대한 군함, 선장의 뇌물과 관료의 부패, 자기들만 살겠다는 상류층의 이기주의 등이 이 작품의 배경에 있습니다.

    인간 내면에 주목

    요컨대, 제리코는 이 작품을 통해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을 묘사하는 동시에 많은 이를 위기로 내몬 상류층의 부정부패를 고발하고자 했습니다. 작품이 발표되자마자 격렬한 반향을 불러일으킨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의 참혹성에 대한 경악과 부패한 사회 현실에 대한 분노가 작품에 그대로 드러난 셈입니다.

    제리코의 그림을 포함한 낭만주의 회화를 볼 때마다 저는 인간 본성에 대해 생각해보곤 합니다. 인간은 이성적 존재인 동시에 감성적 존재입니다. 학교에서는 이성을 중시하지만 현실에서는 감성이 앞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차가운 이성도 중요하지만 따뜻한 감성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핵심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지나치게 감성적인 게 바람직한 태도는 아니지만, 자기 감정에 솔직하고 그 감정을 적절한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개인 정신건강을 위해서나 건강한 인간관계를 위해서나 모두 중요한 일입니다. 자연스러운 감정에 대한 과도한 억압은 결국 우리 인간의 정신을 병들게 하고, 소중한 인간관계에서도 여러 가지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합니다.

    안타깝게도 세상을 일찍 떠난 탓에 제리코는 다른 작가들처럼 많은 작품을 남기지는 못했습니다. ‘메두사의 뗏목’ 외에 주목을 받은 그의 작품들은 정신병자를 다룬 초상화 연작입니다. 낭만주의자답게 그는 인간의 내면에 주목했고, 인간의 심리적 고통에 큰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는 정신병자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정신병원을 찾아가 환자를 직접 관찰하고 의사의 자료를 참고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심리적 좌절과 공격성

    ‘미친 여자(Insane Woman·1822)’는 이러한 연작 중 하나입니다. 얼굴에는 따뜻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상대방을 응시하는 눈빛이 매우 서늘합니다. 무엇인가를 의심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동시에 다소 외로워 보이기도 합니다. 어느 하나를 골똘히 생각하거나, 아니면 생각 자체를 잃어버리면 이런 표정을 짓게 되지 않을까요. 제리코가 젊은 나이인데도 이렇듯 인간의 내면을 형상화하는 데 탁월한 역량을 발휘했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인간은 심리적으로 섬세한 존재이고, 깨지기 쉬운 존재입니다. 감정의 영역은 특히 그렇습니다. 개인적으로 인간의 감정을 과도하게 드러내는 낭만주의 회화에 늘 공감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상담학을 공부해온 제게 제리코의 작품은 인간의 본래적인 심리와 감정에 대해서 작지 않은 통찰을 안겨줍니다. 200년 전에 그려졌음에도 그의 그림에서는 제가 상담을 통해 만나는 현대인의 고통스러운 마음을 그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분노 문제로 돌아가면, 현재 우리 사회에서 큰 문제가 되는 분노조절장애는 심리적 장애의 하나입니다. 이를 해결하려면 개인이 적극적으로 치료받아야 합 니다. 그러나 동시에 사회적 차원에서 분노를 유발하는 조건들에 대한 적극적인 대책 역시 세워야 합니다. 심리적 좌절이 타자에 대한 공격성으로 드러나는 게 분노라면, 이런 심리적 좌절을 낳은 과도한 경쟁에 대한 사회적 처방은 시급하면서도 중요한 일입니다.

    ‘메두사의 뗏목’ ‘미친 여자’
    박상희

    1973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문학박사, 미국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방문학자

    現 샤론정신건강연구소 소장, 포사람(사단법인) 원장, JTBC ‘사건반장’ 고정 패널

    저서 : ‘자기대상 경험을 통한 역기능적 하나님 표상의 변화에 대한 연구’ 등


    우리 사회를 물들이는 분노 현상을 지켜보면서 문명의 발전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됩니다. 문명의 발전은 기본적으로 이성의 성숙과 과학기술의 혁신에 기반을 둡니다. 문명이 이렇게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데 자기 마음속 분노를 조절할 수 없어 자신도, 타인도 파괴해버리는 사람이 점점 더 늘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 한편이 답답해집니다. 지구를 포함해 우주는 참으로 넓은 공간입니다. 하지만 이 우주 못지않게 인간의 마음 역시 넓고 깊은 또 다른 공간입니다. 또 하나의 우주인 마음에 대한 공부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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